굿모닝 사이언스
피터 벤틀리 지음, 류현 옮김 / 김영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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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김영사에서 출간된 <굿모닝 사이언스>입니다. 국내에는 2011년에 초판이 나왔고 이동진 평론가가 특별히 추천한 과학입문서이기도 한데요. 얼마간 <시크릿 하우스>와 비슷한 향이 나는 책이기도 합니다. (참, 저도 이 책이 훌륭한 입문서라는데 크게 동의합니다.) 책의 장르가 과학교양이다보니 저자 소개를 역시 드려야 할 것 같아요. 피터 벤틀리는 우선 영국의 컴퓨터 과학자입니다. 생경한 이력이에요. 박사학위는 진화디자인으로 받았다고 하는데 역시 생소합니다. '디지털 생물학'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으로 유명한데 역시나 여러 매거진에 글을 기재하는 저널리스트이기도 합니다. (많은 포스팅에서 말씀드렸듯, 저는 저널리스트들의 과학교양서를 좋아해요.) 상당히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는 피터 벤틀리, 그럼 과연 본문은 어떨지 볼까요?








2.


  책은 오전 7시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잠에서 깨어나는 장면에서 이 책이 시작이 됩니다. 역시 <시크릿 하우스>와 비슷한 설정이긴 해요. 그러니까 첫번째 챕터에서는 뇌파에 관해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휴식을 취할 때 나오는 알파파, 갓 잠이 들면서 나오는 세타파, 그리고 렘 수면과 몽유병, 잠꼬대 등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나가게 돼요. 대충 어떤 방향으로 책이 흘러갈지 짐작이 됩니다. 사실 저는 7시가 아니라 8시에 잠에서 깨어납니다만 책은 7시에서 일어난다고 하니 조금 더 소개를 드릴게요. 7시 10분에는 머리를 감으러 욕실에 들어갑니다. 바로 두번째 챕터는 그 욕실에서 비누를 밟고 미끄러지는 얘기를 하면서 비누, 즉 계면활성제의 원리를 풀어나가요. 어이가 없지만 인체생리학에서 유기화학으로 유려하게 방향을 트는 저자의 필력에 감탄하며 책장을 넘기게 되는데요. 8시 10분에 앉은 아침시사 자리에선 상해버린 우유를 만나게 되고요. (역시 우유의 부패과정이나 제조과정을 다루게 됩니다.) 9시 30분에는 껌이 붙게 되는데 그 껌을 떼어내는 방법에 대한 실용적인 지식까지 서술하게 됩니다. 이동진 평론가가 괜히 추천하는 책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 책은 과학도가 아닌 일반 대중들에게 있어서도 상당히 흥미로운 과학교양서적이기도 하고, 그런 것엔 개뿔 관심이 없어도 재미만으로도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3.



"정말 긴 하루였다. 온몸이 성치 않으니 마음도 심난하고 편치 않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면 그나마 마음을 진정시키고 편하게 잠자리에 들 수 있을 것 같다......


욕조에 물이 넘치는지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후닥닥 욕실로 뛰어간다. 그런데 급한 마음에 달려가다가 발가락이 욕조 벽에 쿵 하고 부딪힌다. 부딪히는 순간에는 별 이상이 없었는데 이내 엄청난 통증이 전해진다...-본문 p300."







  책은 매 시간마다 이러한 일화들을 수록하고 그 뒤로 에피소드에 관련된 과학적 지식을 풀어놓게 됩니다. 그러니까 위에 소개드린 일화에로부터는 C섬유와 A섬유를 통한 통각경로를 서술하게 되겠지요. 이게 전공서적에서 만나게 될 때는 수초나 직경, 전도속도같은 따분한 이야기들로 점철될 줄 알았는데 저자는 이런 표현을 하고 있어요. '크리스마스트리에 불이 들어오는 것처럼 뇌 전체에 불이 환하게 들어온다.' 굉장하죠? 전공서적도 이런 비유들로 구성되어 있으면 얼마나 공부하기가 수월할까요. 얼마간, 책은 브래디키닌같은 생경한 개념까지 소개하고 있어서 어느 정도 깊이도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확실히 소개드린 것처럼, 사려 깊은 비유와 문장들이 많아서 많은 분들에게 교양서적으로 추천드리고 싶은 책이에요. 그럼 이만 글을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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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다시 읽기 - 청년학술 30
한국종교연구회 지음 / 청년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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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서문부터 출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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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일 : 생물.도시.기업의 성장과 죽음에 관한 보편 법칙
제프리 웨스트 지음, 이한음 옮김 / 김영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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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 소개드릴 책은 김영사의 신간 <스케일>입니다. 저자는 '제프리 웨스트'라는 이론물리학자예요. 이론물리학이라고 하면 학제의 특성상, 연구결과들이 정량화되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노벨상이나 공로로 인한 수상이 힘들어요. 일례로, 최근에 별세한 스티븐 호킹의 경우도 결국 노벨상을 받지는 못했었죠. 그런 부분에서 저자의 이력을 수상실적으로 열거하는 것보다는, 서둘러 페이지를 펼쳐보겠습니다.

 

 

 

2.

 

책은 서문에서 앞으로의 방향을 뚜렷하게 짚게 됩니다. 그러니까 함께 첨부한 그래프 자료는 햄스터에서 고래와 사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개체들의 심장박동수를 그린 것입니다. 기울기없이 쭉 뻗은 직선이 보이시나요. 그러니까, 평생 뛰는 심장박동수는 사람이나 개나 당나귀가 모두 같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주석을 포함하면 660여페이지에 이르는데 앞으로 이런 놀라운 자료들을 넉넉하게 제공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 자료들로 대체 이 책은 무엇을 보여주려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이 책은 처음부터 한계가 분명히 드러나는 목표를 간직한 채 출발합니다. 바로 책의 부제목에 쓰여있듯 생물, 도시, 기업의 성장, 생명의 죽음에 관한 보편법칙을 찾겠다는 것입니다.

 

 

 

 

 

3.

 

책의 차례를 볼까요. 페이지와 어울리지 않게 책의 구성은 굉장히 깔끔합니다. 단순하게 10개의 챕터로 구성돼요. 각 챕터는 작게는 6개에서 많게는 12개 정도의 장으로 구성되고 있어요. 굳이 챕터를 소개할 필요없이 이 책은 그러니까 전 페이지를 할애해서 세상에 있는 모든 현상들과 그것들을 하나로 설명하려는 원칙을 찾으려 시도합니다. 예컨대, 3장에서는 프랙털같은 쉽게 예상이 가는 사례부터 시작해서 대사율과 자연선택, 혹은 팽창하는 우주, 산업도시와 기업에 이르기까지, 때론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주제들을 넘나들며 보편법칙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오로지 정량화된 자료들과 객관적인 연구결과들을 인용해오고 있어서 더욱 놀랍기도 해요.

 

 

 

 

인류는 두 다리로 걷고, 키가 150-180 센티미터에 이르고, 100세까지 살며, 심장은 1분에 약 60번 뛰고, 간세포 하나에 약 500개의 미토콘드리아가 들어 있는 존재가 되었다. 이 모든 특징이 임의적이고 변덕스러운 것일까? 아니면 여기에 어떤 질서가, 혹은 숨은 패턴이 있을까? 사실, 그런 것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스케일링으로 돌아가자.....”

 

 

 

 

 

4.

 

책은 이처럼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너무도 놀라워서 의심스럽기만 한 내용들을 당당하게 보여주기도 합니다. 시종 팽팽하게 독자와 줄다리기를 하며 독자의 갈증을 유발해놓고는 적확한 자료와 그래프로 그것들을 해소해주는 식이에요. 제 경우, 생명과학을 전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이 모든 자료들을 한 데 묶어내는 통찰에 꽤 놀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이야기가 생명과학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그렇습니다. 책은 5번째 챕터, '인류세에서 도시세로'로 접어들면서 이제 엔트로피와 생명에 관한 얘기를 도시와 사회, 기업으로 확장합니다. 앞에 생태계를 설명하는 논리와 같은 논리로 기업과 사회를 설명하게 되는데 이처럼 책의 중반부에 접어들면 저자가 주장하는 어떤 보편성에 상당한 무게가 실리게 되지요.

 

 

 

 

5.

 

 

예컨대, 7장에서는 x축에 인구 수를 두고 y축에는 도시의 순위나 크기를 설정합니다. 그것들의 비례관계를 적확한 자료로 제시하며 이것들을 설명할 보편법칙을 도출해내는 것인데요. 사실 저자가 에필로그에 밝히고 있다시피, 이러한 이야기들은 그 방대한 넓이를 가지기 위해서 많은 것들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당연히 많은 예외와 설명되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지만 그것은 미래의 과학이 짊어진 짐일 테지요. 그럼에도 이 책이 설명하는 어떤 보편법칙이 가지는 타당성과 호소력으 책 곳곳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앞으로는 데이터의 시대가 될 것이고 (이미 빅 데이터의 시대입니다만..) 우리는 그 데이터와 기록들을 바탕으로 많은 것들을 예측하고, 수행해 나갈 테지요. 그런 부분에서 저자가 애초부터 실패할 수 없는 이 이론을 기꺼이 소개하는 이유는 그 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실패함으로써 성공하는 것이지요.

 

 

 

 

 

6.

이 보편 이론의 기본 구성 단위는 뉴턴이론이 전제로 삼고 있는 기본 점 입자가 아니라 진동하는 작은 끈일 수 있다. 그래서 이 전망에는 '끈 이론'이라는 부제목이 붙었다....”

 

 

 

 

그러니까 물리학을 예로 들자면, 이제 뉴턴의 고전 역학으로는 설명하지 못하는 많은 현상들이 있잖아요. 이제 고정된 하나의 점, 입자, 개체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확률로서 존재하는 어떤 '상태'를 설명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밖에 핀 코스모스 꽃밭을달리는 차창에서 보면 기다란 분홍빛 띠로 보일 테지요. 이처럼 점이 아니라 끈 (string) 같은 것이 기본 단위가 된다는 얘기입니다.

 

비단 물리학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학제가 한계를 만나고 있는 만큼 다양한 학제 간의 융합이 요구되고 있지요. 그런 부분에서 이러한 일종의 끈 이론, 양자의 세계들이 많은 학제들에 스며들고 그것들은 결국 하나의 보편 법칙 안에 작동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역시 만만한 책은 아닙니다만 그만큼 귀한 경험을 선사해 줄 멋진 책으로 많은 분들께 강력히 권하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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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 미래의 역사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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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과학서 주제에 수많은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자리를 꿰찬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입니다. 전작인 <사피엔스>의 경우 대학 도서관은 물론이고 이제는 어떤 문법이 되었지요. 설령, 그 내용에 충분히 동의하지 못한다고 해도 관련된 현상들을 애기하려면 그 문법구조를 차용해야 하기 때문에 유발 하라리의 저술들은 결국 짚고 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므로.

 

 

그러니까 <호모 데우스>의 경우 시기적으로 <사피엔스>와 확연히 구획화되고 있습니다. 인류의 기원에서 현대인에 이르기까지, 상상력이라는 놀라운 개념으로 수많은 독자들의 입을 쩍 벌려놓았던 탁월함은 이제 그 다음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호모 데우스>는 현생 인류가 당면한 현실과, 우리를 둘러싼 과제들, 그리고 앞으로 인류가 맞게 될 위기와 그 전망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어떤 것도 강력하게 주장하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하지만 엄혹하게, 미래의 역사를 감히 그려내고 있는 책이에요.

 

 

 

 

 

 

 

2.

 

유발 하라리의 책의 특징들을 몇 가지 얘기해보려고 해요. 첫째, 그 구조가 상당히 수학적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신화 두 개를 살펴보자. 하나는 기원전 1776년 경의 함무라비 법전이다. 이는 고대 바빌로니아인 수십만 명의 협력 매뉴얼 역할을 했다. 또 하나는 1776년의 미국 독립선언문이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현대 미국인 수억 명의 협력 매뉴얼로 기능하고 있다.“

 

 

 

 

단순하게 연도가 나오는 서술들도 이처럼 배치를 탁월하게 해 놓으면 이렇게나 흥미로운 것입니다. 1776년이라는 숫자를 중심에 두고 기원전의 함무라비 법전과 18세기의 미국 독립 선언문을 배치해 놓음으로써 상당한 호소력은 물론이고 굉장히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지요.

 

 

 

둘째는, 본인이 역사학자임에도 불구하고 문장들이 상당히 문학적이라는 것입니다. 예컨대 "인간 개인의 기본 능력은 석기시대 이래로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야기의 그물은 힘을 급속도로 키워 역사를 석기시대에서 실리콘 시대로 떠밀었다." (본문 p219) 같은 문장들이지요. 이런 문장들은 확실히 유발 하라리만의 것입니다. 역사적인 사실들의 나열과 연대기를 단순히 훑어보는 책이 600페이지에 이르면 누구라도 지치지 않을까요. 유발 하라리의 책을 읽으며 밑줄을 치다간 정말 한 페이지의 절반을 번쩍거리게 만들곤 합니다.

 

 

그 외에도 역사학자로서 본인의 구비해 둔 어떤 실력과 정량화 된 자료들, 본인의 어떤 통찰들이 상당히 빛나는데 이 얘기는 다음에 기회가 있을 듯하니 우선 <호모 데우스>를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3.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저는 유발 하라리의 책이라면 얼마간 상당히 신뢰하고 있습니다. 신뢰라기보다는 쉽게 말해 팬이에요. 차례를 볼까요. 단순합니다.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좋은 책은 사실 차례만 봐도 이렇게 알 수 있습니다. 표현하고 싶은 구획이 명확합니다. 시기상, 정확히 <사피엔스>에 이어지는 구조이기에 어떤 의미에선 <사피엔스>를 계승한다고 볼 수도 있겠고, 또 어떤 의미에서는 완전히 독립된 책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사피엔스 다음 시대의 이야기이므로.

 

책의 1부와 2부는 역시 근대, 현대의 인류의 상상력(계약)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구요. 놀라운 건 3부인데 그 제목은 이렇습니다. '호모 사피엔스 지배력을 잃다'. 그리고 데이터에 대한 이야기로 책을 갈무리짓고 있는데요. 이 과정에서 유발 하라리는 함부로 대안을 제시한다던가, 낙관적인 태도와 듣기 좋은 말들로 독자들을 위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적확한 자료와 정량화된 수치를 그저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전히 유려한 문체들과 유쾌한 문장들로요. 하지만 묵직하고 엄혹하게.

어쩌면 그 칼같은 적확함이 쉽게 뱉어지는 위로보다 훨씬 사려깊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함부로 대안을 제시하는 책들보다 훨씬 더 대안으로 움직임을 이끌기도 하고요. 그럼 책의 내용을 더 보도록 할게요.

 

4.

 

좀전에 말씀드린 3, <호모 사피엔스 지배력을 잃다>의 내용입니다.

 

 

우선 그 소년에게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물었다. 소년은 데생화가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좌뇌가 제시한 대답이었다

 

연구자들은 소년의 우뇌가 뭐라고 말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종이 한 장에 이렇게 쓰고 소년의 왼쪽 시야 끝에 놓았다. '커서 무엇을 하고 싶니?' 왼쪽 시야에서 오는 데이터는 우뇌가 처리한다. 소년의 왼손은 이렇게 답했다. '자동차 경주'

 

 

 

 

이 얘기를 잘 이해한다면 사실 잠깐 책을 덮고 세수를 하고 오지 않을 수 없는 내용입니다. 책의 일부가 담겨 있기에 그 무드가 정확히 옮겨지지 않았을 텐데요. 사실 이 실험은 굉장히 유명한 뇌량 절제 실험입니다. 전공서적에서는 COWBOY를 이용해 COWBOY, 그리고 시각피질에 맺히는 상과 발화되는 내용 사이의 괴리를 단순히 기재해 두었기에 놀랍기는 하지만 살에 닿는 이야기는 아니었지요. 하지만 유발 하라리는 본인의 전공이 아님에도 우선 상당히 깊은 이해로 이 최신 이론을 유려하게 '적용'해내는데 성공합니다. 그러니까 '소개'하는 게 아니라 본인의 논지에 '적용'하고 있어요.

 

다시 말해서 우리의 자아는 단일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내면에 영혼같은 것이 있어서 우리가 자유의지로 행동한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최근의 뇌과학 이론들은 그렇지 않다고 얘기하지요. , 알 게 뭐야,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이 실험의 결과는 역시 놀랍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뇌는 데생화가가 되고 싶다고 얘기하지만 또 다른 구석에서는 정확히 자동차 경주를 하고 싶다고 얘기하는 것이에요. 단일한 자아가 아니라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걸 정량화된 실험으로 보여준 것이에요. 유발 하라리는 거기에 탁월한 문장력과 조어력을 뽐내고 있고 그것을 자유의지와 이어지는 문맥에 담아 상당히 선명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놀라운 결과들은 놀라운 데 그치지 않고 인류에게 위기의식을 주고 있지요. 유발 하라리는 그 부분에 주목하게 있고 그 총합이 3부의 내용입니다. 600여페이지에 이르는 책임에도 가독성이 상당히 높아 제 경우, 3부에 이르면서부터는 페이지 넘기는 게 아쉽기만 했어요.

 

결국 인류가 맞게 될 몇 가지 그림과 그 엄혹한 현실 앞에서 유발 하라리는 그저 질문합니다. 예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묵시록이지만 이 책은 예언이 목적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저 질문을 던짐으로써 그 예언을 파기하려는 동력을 가진 멋진 책이랄까요. 저는 <사피엔스>가 어떤 동력을 제시한 책이었다면 <호모 데우스>는 그 동력을 바탕으로 악셀을 한껏 밟는 책입니다. 어떤 것도 주장하지 않지만 책을 덮는 순간 그 어떤 책보다 독자들을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들 것입니다.

 

이 책은 모든 분께 권합니다. 사피엔스보다 먼저 읽는다고 해도 상관 없어요. 누가 봐도 이 책의 가치는 쉽게 알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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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오구니 시로 지음, 김윤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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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 소개드릴 책은 '오구니 시로'라는 저자가 쓴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입니다. <주문을 잊은 음식점>의 원작이에요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 보게 되면 "뭐가 괜찮다는 것인가생각하실지도요하지만 이 책의 첫 문장을 읽으면 금세 얼굴에 홍조가 들게 됩니다그 서문은 이렇습니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에 어서 오세요조금은 요상한 이름의 레스토랑에 흥미를 가져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중략

 

'이 레스토랑에서 주문을 받는 스태프들은 모두 치매나 인지장애를 앓고 있는 상태입니다.'“

 

 

 

 

 

2.

 

그렇습니다이 요리점에서는 주문한 요리가 정확하게 나올 수 있을지 아무도 모릅니다하지만 그걸 사전에 알고 있다면 때론 그 엉뚱함이 에피타이저가 되기도 하는 것이고 자체로 이벤트가 되기도 하겠지요자칫엄숙해지기 쉬운 소재임에도 책은 시종 따뜻한 시선과 사려깊은 문장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특히주목하고 싶은 것은 이 책의 시의성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현대는 실패에 대한 지나치게 고양된 의식을 갖게 되잖아요사실 실패는 현대에는 공기만큼 흔한 것이고누구나 겪고야 마는 경험일 텐데 그 평가는 엄혹하지요그런 부분에서 이 책은 너무도 당연하고 편안하게 실패를 이야기합니다아이쿠하구요그런 지점에서 이 책은 시기적으로 상당한 탁월함을 얻고 있어요본인의 실패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분들본인을 밀어붙이는 사람이 있다면 역시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3.

 

제 경우가제본을 먼저 받아 읽어보게 되었어요. "나는 아직 일할 수 있는데". 이런 문장이 곳곳에 있는 책입니다뭔가 속에서 뜨거운 게 울컥하고 올라오게끔 하는 문장들이 곳곳에 있어요그리고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은 그런 사람들을 초대합니다연발하는 실수로헤헤하는 웃음으로아들이 기뻐하는 장소로.

 

하지만 책은 모든 것이 따뜻하고 희망차다고 얘기하지 않습니다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여전히 사람을 꺼리기도 하고어쩔수 없이 불화하기도 하며 등장인물들이 엮이고 독자들이 섥히게 되어요힐링이랍시고 함부로 던지는 위로에 오히려 지친 분들께멋진 이야기를 들려 줄 책으로 일독을 권합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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