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데우스 - 미래의 역사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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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과학서 주제에 수많은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자리를 꿰찬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입니다. 전작인 <사피엔스>의 경우 대학 도서관은 물론이고 이제는 어떤 문법이 되었지요. 설령, 그 내용에 충분히 동의하지 못한다고 해도 관련된 현상들을 애기하려면 그 문법구조를 차용해야 하기 때문에 유발 하라리의 저술들은 결국 짚고 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므로.

 

 

그러니까 <호모 데우스>의 경우 시기적으로 <사피엔스>와 확연히 구획화되고 있습니다. 인류의 기원에서 현대인에 이르기까지, 상상력이라는 놀라운 개념으로 수많은 독자들의 입을 쩍 벌려놓았던 탁월함은 이제 그 다음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호모 데우스>는 현생 인류가 당면한 현실과, 우리를 둘러싼 과제들, 그리고 앞으로 인류가 맞게 될 위기와 그 전망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어떤 것도 강력하게 주장하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하지만 엄혹하게, 미래의 역사를 감히 그려내고 있는 책이에요.

 

 

 

 

 

 

 

2.

 

유발 하라리의 책의 특징들을 몇 가지 얘기해보려고 해요. 첫째, 그 구조가 상당히 수학적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신화 두 개를 살펴보자. 하나는 기원전 1776년 경의 함무라비 법전이다. 이는 고대 바빌로니아인 수십만 명의 협력 매뉴얼 역할을 했다. 또 하나는 1776년의 미국 독립선언문이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현대 미국인 수억 명의 협력 매뉴얼로 기능하고 있다.“

 

 

 

 

단순하게 연도가 나오는 서술들도 이처럼 배치를 탁월하게 해 놓으면 이렇게나 흥미로운 것입니다. 1776년이라는 숫자를 중심에 두고 기원전의 함무라비 법전과 18세기의 미국 독립 선언문을 배치해 놓음으로써 상당한 호소력은 물론이고 굉장히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지요.

 

 

 

둘째는, 본인이 역사학자임에도 불구하고 문장들이 상당히 문학적이라는 것입니다. 예컨대 "인간 개인의 기본 능력은 석기시대 이래로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야기의 그물은 힘을 급속도로 키워 역사를 석기시대에서 실리콘 시대로 떠밀었다." (본문 p219) 같은 문장들이지요. 이런 문장들은 확실히 유발 하라리만의 것입니다. 역사적인 사실들의 나열과 연대기를 단순히 훑어보는 책이 600페이지에 이르면 누구라도 지치지 않을까요. 유발 하라리의 책을 읽으며 밑줄을 치다간 정말 한 페이지의 절반을 번쩍거리게 만들곤 합니다.

 

 

그 외에도 역사학자로서 본인의 구비해 둔 어떤 실력과 정량화 된 자료들, 본인의 어떤 통찰들이 상당히 빛나는데 이 얘기는 다음에 기회가 있을 듯하니 우선 <호모 데우스>를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3.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저는 유발 하라리의 책이라면 얼마간 상당히 신뢰하고 있습니다. 신뢰라기보다는 쉽게 말해 팬이에요. 차례를 볼까요. 단순합니다.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좋은 책은 사실 차례만 봐도 이렇게 알 수 있습니다. 표현하고 싶은 구획이 명확합니다. 시기상, 정확히 <사피엔스>에 이어지는 구조이기에 어떤 의미에선 <사피엔스>를 계승한다고 볼 수도 있겠고, 또 어떤 의미에서는 완전히 독립된 책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사피엔스 다음 시대의 이야기이므로.

 

책의 1부와 2부는 역시 근대, 현대의 인류의 상상력(계약)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구요. 놀라운 건 3부인데 그 제목은 이렇습니다. '호모 사피엔스 지배력을 잃다'. 그리고 데이터에 대한 이야기로 책을 갈무리짓고 있는데요. 이 과정에서 유발 하라리는 함부로 대안을 제시한다던가, 낙관적인 태도와 듣기 좋은 말들로 독자들을 위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적확한 자료와 정량화된 수치를 그저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전히 유려한 문체들과 유쾌한 문장들로요. 하지만 묵직하고 엄혹하게.

어쩌면 그 칼같은 적확함이 쉽게 뱉어지는 위로보다 훨씬 사려깊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함부로 대안을 제시하는 책들보다 훨씬 더 대안으로 움직임을 이끌기도 하고요. 그럼 책의 내용을 더 보도록 할게요.

 

4.

 

좀전에 말씀드린 3, <호모 사피엔스 지배력을 잃다>의 내용입니다.

 

 

우선 그 소년에게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물었다. 소년은 데생화가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좌뇌가 제시한 대답이었다

 

연구자들은 소년의 우뇌가 뭐라고 말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종이 한 장에 이렇게 쓰고 소년의 왼쪽 시야 끝에 놓았다. '커서 무엇을 하고 싶니?' 왼쪽 시야에서 오는 데이터는 우뇌가 처리한다. 소년의 왼손은 이렇게 답했다. '자동차 경주'

 

 

 

 

이 얘기를 잘 이해한다면 사실 잠깐 책을 덮고 세수를 하고 오지 않을 수 없는 내용입니다. 책의 일부가 담겨 있기에 그 무드가 정확히 옮겨지지 않았을 텐데요. 사실 이 실험은 굉장히 유명한 뇌량 절제 실험입니다. 전공서적에서는 COWBOY를 이용해 COWBOY, 그리고 시각피질에 맺히는 상과 발화되는 내용 사이의 괴리를 단순히 기재해 두었기에 놀랍기는 하지만 살에 닿는 이야기는 아니었지요. 하지만 유발 하라리는 본인의 전공이 아님에도 우선 상당히 깊은 이해로 이 최신 이론을 유려하게 '적용'해내는데 성공합니다. 그러니까 '소개'하는 게 아니라 본인의 논지에 '적용'하고 있어요.

 

다시 말해서 우리의 자아는 단일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내면에 영혼같은 것이 있어서 우리가 자유의지로 행동한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최근의 뇌과학 이론들은 그렇지 않다고 얘기하지요. , 알 게 뭐야,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이 실험의 결과는 역시 놀랍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뇌는 데생화가가 되고 싶다고 얘기하지만 또 다른 구석에서는 정확히 자동차 경주를 하고 싶다고 얘기하는 것이에요. 단일한 자아가 아니라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걸 정량화된 실험으로 보여준 것이에요. 유발 하라리는 거기에 탁월한 문장력과 조어력을 뽐내고 있고 그것을 자유의지와 이어지는 문맥에 담아 상당히 선명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놀라운 결과들은 놀라운 데 그치지 않고 인류에게 위기의식을 주고 있지요. 유발 하라리는 그 부분에 주목하게 있고 그 총합이 3부의 내용입니다. 600여페이지에 이르는 책임에도 가독성이 상당히 높아 제 경우, 3부에 이르면서부터는 페이지 넘기는 게 아쉽기만 했어요.

 

결국 인류가 맞게 될 몇 가지 그림과 그 엄혹한 현실 앞에서 유발 하라리는 그저 질문합니다. 예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묵시록이지만 이 책은 예언이 목적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저 질문을 던짐으로써 그 예언을 파기하려는 동력을 가진 멋진 책이랄까요. 저는 <사피엔스>가 어떤 동력을 제시한 책이었다면 <호모 데우스>는 그 동력을 바탕으로 악셀을 한껏 밟는 책입니다. 어떤 것도 주장하지 않지만 책을 덮는 순간 그 어떤 책보다 독자들을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들 것입니다.

 

이 책은 모든 분께 권합니다. 사피엔스보다 먼저 읽는다고 해도 상관 없어요. 누가 봐도 이 책의 가치는 쉽게 알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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