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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여자
오정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가을은 외부로 열린 눈이 닫히고 내면으로 향하는 문이 열리는 시기라는 글귀를 본적이 있다.
가을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지금 내가 잘 살고 있는 것인지,
자꾸 초조해지고, 삶에 대한 불안이 문뜩 문뜩 숨이 막힐 정도로 덮치고는 하는 이 가을에
가을여자를 읽게 되었는데 난 다시 오정희, 그녀의 섬세한 문체에 반해버렸다.
내가 미쳐 알아차리지도 못 한 체 지나쳐가는 감정들…
그 감정들을 하나하나 다 풀어낸 기록장 같은 책이었다.
‘가을 여자’ 단편 소설 속 사람들은 이제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여자, 남자들이다.
이제 어느 정도 아이들을 다 키워놓고 삶의 허무함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주부
한 집에 같이 사는 가족이지만 커버린 아이들 속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아버지의 모습 등
나는 아직 마흔이라는 나이가 멀게 만 느껴지는 나이지만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쩜 내 얘기 같기도 했고
우리 엄마도, 우리 아빠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싶기도 했다.
그렇다고 아주 서정적이기만 한, 잔잔하기만 한 책이라 오해하진 마시길…
오정희에게 이런 면이? 싶을 만큼 아주 재미있고 반전이 있는 이야기도 제법 많다.
지 새끼 남에 집에 맡겨놓고 봉사활동 다니는 어이없는 엄마 얘기 등
아무 생각 없이 읽다가 한바탕 웃게 만드는 얘기들이 많다.
다양한 분위기의 단편들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단지 일회성으로 주어지는 우리네 생일진대 어떤 형태의, 누구의 삶인들 특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96p
가끔은 모두 다 같이 한번뿐인 삶인데, 어쩜 이렇게 까지 시시한 삶을 살아야 하는 건지
한탄스러울 때가 있었고 앞으로 많을 것 같은데
이 글이 참 위안이 되었다.
누구의 삶이든 특별하다는 그녀의 말이
이 가을 찬 바람이 휑하니 부는 내 마음을 토닥여주는 엄마의 손길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