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7월
구판절판


날마다 바뀌는 정식에 대해 하고 싶은 말도 여러모로 많지만, 쓰다보면 끝이 없을 것같으니 이 글에서는 화제를 크로켓에 한정하겠다. '토끼정'의 크로켓 맛을 글로 표현하기란 지극히 어렵다. 접시에 꽤 큼지막한 크로켓 두 개가 담겨 나오는데, 무수한 빵가루가 바깥쪽을 향해 튀어나갈듯이 박혀 있고, 자글자글 소리를 내며 안쪽으로 배어드는 기름이 눈에 보인다. 이건 뭐 거의 예술작품이라고 해도 무방하리라.-98쪽

그것을 삼나무 젓가락으로 꾹 누르듯이 잘라 입에 넣으면 튀김옷이 바삭 소리를 내고, 안에 든 감자와 쇠고기는 호르륵 녹을 것처럼 뜨겁다. 감자와 쇠고기 외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다. 나도 모르게 대지에 뺨을 맞추고 싶어질 만큼 향기로운 감자ㅡ이건 절대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ㅡ와 주인이 엄선해서 들여와 커다란 부엌칼로 자잘하게 다진 쇠고기다.-99쪽

가난은 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나는 때로 생각한다.
이런 말을 하면 정말 노인네 같다며 싫어할 테지만, 옛날(이십 년 전의) 여자들은 "가난한 건 절대 싫다"는 말을 당당하게 하지 못했다. 적어도 내 주위에 있는 여자들은 그랬다. 그녀들에게는 돈보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욕구가 앞섰던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사는 여자들이 있었다. (중략) 우리는 좀더 다른 것을 추구했다. 물론 아무도 제 발로 가난해지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떤 유의 통과의례가 아닌가 하고, 어느 정도는 포기한 상태에서 생각했던 것 같다.-19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버지의 일기장 - 만화가 박재동, 아버지의 오래된 일기장에서 부정父情을 읽다
박일호 일기, 박재동 엮음 / 돌베개 / 201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 봤을 때는 묵직하고 오래된 느낌.
그냥 얼핏 보기에는 지루해보였다.
짧은 일기가 단순하게 나열된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 읽고 나면 마음이 굉장히 따뜻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록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한다. 이 사실만으로 별 5개를 줄 만하다.
한 아버지의 꾸준한 일기, 어떻게 보면 짧고 단순한 기록과 같은 글이 모여 한 가정의 역사를 말해준다.

꾸준한 기록이 한 사람의 삶으로 다가온다.
 
특히 내 마음에 와닿았던 것들은
자식들을 향한 서운한 마음이나 자식 둔 보람을 느낀다는 날들의 기록,
며느리와 사위를 잘 두었다며 칭찬하고 기뻐하고 행복해하는 기록,
그리고 무엇보다 아내를 향한 애틋한 마음. 가득 담긴 사랑과 미안함 등이다.
 
이런 내용들이 맘을 울린다.
한편으로 나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더 잘 해야지 싶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년 동안 백만 마일 - 위대한 모험으로 떠나는 여정 천년 동안 백만 마일
도널드 밀러 지음, 윤종석 옮김 / IVP / 2010년 10월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삶의 찬란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에 따르는 책임이 싫어서가아닐까. 등장인물은 움직이고 호흡하고 갈등에 용감히 맞서야 하므로 우리는 이야기 속의 인물이 되는 게 싫다. 삶이 대단하지 않으면 그런 걸 하나도 하지 않아도 되고, 감사해야하는 참여자보다 마지못한 피해자가 되어도 된다.
하지만 내가 깨달은 게 있다. 나는 무의미한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모든 영화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지금 본 그 영화를 무의미하게 여겼을 뿐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삶이 무의미하다고 말할 때, 그 속뜻은 자신의 삶이 무의미하다는 게 아닐까. 자신의 존재를 온통 시시하다고 믿기로 해 놓고는, 그 칙칙한 삶을 나머지 우리 모두에게 투사하는 게 아닐까.-75쪽

당신의 삶으로 이야기를 할 때, 그 실상은 이렇다. 그 일은 아주 멋있어 보일 것이고 당신은 마음이 설렐 것이다. 그러나 막상 작업할 때가 되면 하기 싫을 것이다. 책을 쓰는 일과 똑같고, 삶과도 똑같다. 사람들은 저마다 멋진 이야기를 살았으면 하지만, 정작 그 삶에 따르는 노력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기쁨에는 고통의 대가가 따른다.-115쪽

사실, 이 광고를 제대로 분석하여 속뜻을 솔직히 들여다보면, 이런 노골적인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설거지 세제를 쓰면 사람들이 너에게 성욕을 느낄 것이다."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나는 확실히 안다. 우리 집에 그 세제가 세 통이나 있다.
나는 이런 것에 잘 속는다. 아마 당신도 그럴 것이다.
우리의 야망이 곧 우리가 사는 이야기가 된다. 어떤 사람의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려면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만 물어보면 된다. 원하는 게 없다면 우리는 지루한 이야기를 살고 있는 것이다. 로봇 청소기를 원한다면 시시한 이야기를 살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에서 통하지 않는 것은 삶에서도 통하지 않는다.-142쪽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들에 저항하는 세력이 있고, 우리 중에는 거기에 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세상은 우리의 용기를 필요로 한다고 로버트 맥키는 책 말미에 썼다. 세상에 필요한 것은 더 나은 이야기를 쓰는 우리다.-135쪽

이토록 고통과 희생으로 점철된 종교가 어쩌다 이 땅의 행복을 약속하는 종교로 탈바꿈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예수님이 상황을 더 좋아지게 해주실 수는 있지만, 완전히 해결해 주실 거라고는 보지 않는다. 여기서는 아니다. 지금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예수님의 참 복음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이 주는 희망 때문이다. 바울에겐 우리 영혼이 온전해질 거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것은 천국에서 이루어질 일이며, 거기에 결혼식과 잔치가 있을 것이다.
바울은 예수님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 희망이라고 했다. 나는 그게 위로가 된다. 솔직히, 그 힘으로 하루를 살아간다. 왠지 자족감마저 들게 한다.-218쪽

우리는 나쁜 이야기들을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삶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인간에게 위대한 목적이 없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더 나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고귀한 소명이다. 더 나은 이야기는 얼마나 밝게 빛나는가. 세상은 얼마나 금세 경탄하며 그것을 바라보는가. 그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 우리는 얼마나 감사하며, 다시 되풀이할 때 얼마나 행복한가-26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년 동안 백만 마일 - 위대한 모험으로 떠나는 여정 천년 동안 백만 마일
도널드 밀러 지음, 윤종석 옮김 / IVP / 201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0년 가을에 처음 읽은 뒤로 네 번째 다시 읽음.


이번에는 메시지 하나하나를 조금씩 꼭꼭 씹어 담으려고 노력했다.

읽는 날이면 독서 다이어리에 받아 적었고, 페이지의 사진을 찍었다.

 

나를 더 큰 이야기로 부르는 책. 

내가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뛰어들었던 그 때를 떠올리게 하는 책.

나의 사랑하는 책, 천년 동안 백만 마일.

도널드 밀러의 전작들도 여전히 매우 아끼지만 이 책에서는 더욱 성숙한 그를 만날 수 있다.

이번 이야기는 마음의 위로와 감동을 넘어서 실제적으로 걸어가는 힘을 준다.

 

버릴 게 없다.

읽으면 읽을 수록

몇 번이고 다시 읽어도

'아, 다시 살아나야지. 아, 이렇게 살아내야지!'싶게 하는 책.

그리고 삶. 수많은 이야기들.

 

나도 더 좋은 이야기를 살고 싶다. 내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더 나은 이야기를 선물하는 좋은 이야기가 되면 좋겠다.

삶으로 이야기하는 좋은 이야기꾼이 되고 싶다. 그것이 내 소명이고 어디서든 그 자리에 있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도널드 밀러에게, 

그리고 그를 만드시고 그를 통해 내 영혼에 사랑을 이야기하시는 그분께 감사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 두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2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2년 6월
장바구니담기


나의 본업은 소설가요, 내가 쓰는 에세이는 기본적으로 '맥주 회사가 만드는 우롱차'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세상에는 "나는 맥주를 못 마셔서 우롱차밖에 안 마셔" 하는 사람도 많으니 물론 적당히 쓸 수는 없죠. 일단 우롱차를 만들려면 일본에서 제일 맛있는 우롱차를 목표로 만들겠다는 것은 글쓰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마음가짐입니다. 그러나 뭐,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나는 어깨 힘 빼고 비교적 편안하게 이 일련의 글을 썼습니다. 어깨 힘 빼고 편안하게 읽어주신다면 더 바랄게 없겠습니다.-6쪽

비틀스 팬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겠지만(나는 몰랐으나), 무명시절 네 명은 데모 녹음을 갖고 레코드사를 이곳저곳 찾아다녔다. 그러나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아 '이제 음악 따위 그만둬버릴까' 하고 자포자기하게 되었다. (중략) 만약 마틴 씨가 머뭇거리고 주저했더라면, 어쩌면 존도 폴도 그대로 음악에 마침표를 찍고 뭔가 건실한 일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우체국 직원이라든가.
인생, 앞 날은 알 수 없다.-102쪽

지금까지 인생에서 정말로 슬펐던 적이 몇 번 있다. 겪으면서 여기저기 몸의 구조가 변할 정도로 힘든 일이었다.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상처 없이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때마다 거기에 뭔가 특별한 음악이 있었다, 라고 할까, 그때마다 그 장소에서 나는 뭔가 특별한 음악을 필요로 했다.-218쪽

사람은 때로 안고 있는 슬픔과 고통을 음악에 실어 그것의 무게로 제 자신이 낱낱이 흩어지는 것을 막으려 한다. 음악에는 그런 실용적인 기능이 있다.
소설에도 역시 같은 기능이 있다. 마음속 고통이나 슬픔은 개인적이고 고립된 것이긴 하지만 동시에 더욱 깊은 곳에서 누군가와 서로 공유할 수도 있고, 공통의 넓은 풍경 속에 슬며시 끼워넣을 수도 있는 것이라고 소설은 가르쳐준다.
내가 쓴 글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그런 역할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21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