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7월
구판절판


날마다 바뀌는 정식에 대해 하고 싶은 말도 여러모로 많지만, 쓰다보면 끝이 없을 것같으니 이 글에서는 화제를 크로켓에 한정하겠다. '토끼정'의 크로켓 맛을 글로 표현하기란 지극히 어렵다. 접시에 꽤 큼지막한 크로켓 두 개가 담겨 나오는데, 무수한 빵가루가 바깥쪽을 향해 튀어나갈듯이 박혀 있고, 자글자글 소리를 내며 안쪽으로 배어드는 기름이 눈에 보인다. 이건 뭐 거의 예술작품이라고 해도 무방하리라.-98쪽

그것을 삼나무 젓가락으로 꾹 누르듯이 잘라 입에 넣으면 튀김옷이 바삭 소리를 내고, 안에 든 감자와 쇠고기는 호르륵 녹을 것처럼 뜨겁다. 감자와 쇠고기 외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다. 나도 모르게 대지에 뺨을 맞추고 싶어질 만큼 향기로운 감자ㅡ이건 절대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ㅡ와 주인이 엄선해서 들여와 커다란 부엌칼로 자잘하게 다진 쇠고기다.-99쪽

가난은 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나는 때로 생각한다.
이런 말을 하면 정말 노인네 같다며 싫어할 테지만, 옛날(이십 년 전의) 여자들은 "가난한 건 절대 싫다"는 말을 당당하게 하지 못했다. 적어도 내 주위에 있는 여자들은 그랬다. 그녀들에게는 돈보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욕구가 앞섰던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사는 여자들이 있었다. (중략) 우리는 좀더 다른 것을 추구했다. 물론 아무도 제 발로 가난해지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떤 유의 통과의례가 아닌가 하고, 어느 정도는 포기한 상태에서 생각했던 것 같다.-1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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