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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도 퇴를레스의 혼란
로베르트 무질 지음, 박종대 옮김 / 울력 / 200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요새 갑자기 소설에 대한 구미가 돌아와서, 도서관을 헤집다가 제목이 눈에 들어와-저 시대에 뒤진 일본풍의 '생도'라는 단어 때문인지도 모르겠으나-뽑아보니 로베르트 무질의 소설이었군요. 그의 데뷔작이며, 국내에 두번째로 번역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읽으면서 참 글을 잘 썼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탄탄하게 잘 쓰여진 산문을 읽는 즐거움.
여성들의 글을 읽은 후에 읽는 남성들의 글은 참으로 직설적이고 참으로 솔직하였지요. 그것은 그러한 마음의 자유와 인격의 자유분방함과 자신감을 나타내주지요. 우리는 결코 방해받은 적도 반대를 받아본 적도 없고 자기가 가고 싶은 길은 아무 데로든 뻗어 나갈 수 있는 완전한 자유를 태어나서부터 누려온 이 잘 길러지고 잘 교육받은 자유로운 마음의 현존 속에서 육체적 안녕을 감지하게 됩니다.
-버지니어 울프 <자기만의 방> 중에서
하지만, 역시 공감이 가지 않더군요. 한두 부분을 빼놓고는. 섹스를 '음란''방탕''혐오스러움' 등등의 단어로 서술하는 문학에는, 아주 진절머리가 났으니까요. 이 소설에서의 여성상은, 19세기에 남성들이 쓴 소위 명작소설들에서의 부정적 상을 그대로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생물학적인 여성 대신 '여성적인' 음란한 몸을 가졌으며 비굴하고 도덕관념이 없는 소년이 여성을 대신하고 있긴 하지만. (비슷한 시기의 성장소설인 데미안에서 뉘앙스만 풍겼던 동성애가 여기서는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있군요. 단 낭만적인 분위기는 눈꼽만큼도 없고, 권력관계와 욕정만이 문제입니다.)
읽어가다 보면 19세기적 언어와 관념 속에, 20세기적 인식이 물고기의 비늘처럼 반짝 스쳐가곤 합니다. '모호한 명징함'이랄까요. 그것이 소설 전체에 생기와 불협화음, 묘한 혼란의 매력을 줍니다. 그러나 여성성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는, 그야말로 가장 19세기적인 소설이었습니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