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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길 1 - 노몬한의 조선인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큰 파도가 오면 아빠가 건우를 어떻게 해주지?”
“번쩍 들어줘요.”
“그래. 큰 파도가 오면 아빠가 널 번쩍 들어줄 거야. 그러니 겁내지마.”『아버지의 길 中』
이 책을 덮고 난 지금도 아버지, 부모님의 사랑의 끝은 있기나 할까라는 생각에 가슴이 찌릿해 온다.
그리고 이재익 작가가 남겨 놓은 질문
‘인간은 왜 전쟁을 하는가?’에 대한 대답도 생각해본다.
지금도 끝나지 않은 전쟁 그리고 그 안에서 끊임없이 죽어가는 사람들
나는 부모님 곁에서 아무 탈 없이 행복 할 수 있는 지금에 정말 정말 감사하다.
『아버지의 길』의 길은 어느PD가 호스피스 병원(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병원)의 김건우 할아버지를 취재한 이야기이다.
역사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아마 이재익 작가가 진짜로 김건우라는 할아버지를 만나고 그분의 이야기를 토대로 소설화 한 듯하다.
『아버지의 길』은 일제 말 시대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일제 강점기는 정말 언제 들어도 어떻게 들어도 치가 떨리고 주먹이 불끈 불끈 쥐어지게 된다. 개인적으로 일본문화를 좋아하고 악 감정은 없지만, 제대로 역사를 인식하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화가나는 나도 어쩔 수 없는 대한민국 사람이다.
일제 말은 한참 아시아 점령에 부풀어있는 일본인들이 조선인 남자들은 강제 징용으로 끌고 가고 여자들은 정신대로 끌고 가며 집안에 모든 철을 긁어가던 말 그대로 사람구실을 할 수 없는 시기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김길수는 한때는 사랑하는 여자와 독립군으로 뛰었지만, 아들이 생긴 뒤 아들 건우를 위해 모든 걸 포기하고 평범한 부부로 살아간다. 하지만 부인 월화의 열정은 막을 수 없었다. 그녀는 다시 독립군으로 돌아가고 그는 홀로 아들을 키우지만 강제징용으로 아들과 생이별을 하게 된다.
그렇게 김길수의 길, 아버지의 길이 시작된다.
일본군으로 끌려가 만주에서 훈련을 받고 전쟁하는 모습은 처참하다.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훈련부터 배고플 수밖에 없는 밥, 그리고 추운 잠자리.
그곳이 정녕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인가 의심이 들뿐, 감히 상상할 수가 없었다.
어린아이부터 한 집안의 가장, 꿈을 키우는 학생 등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끌려 온 그곳
그곳에 있는 사람 누구하나 전쟁을 바라고 무엇 때문에 싸워야하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전쟁터의 칼날과 총알들이 그들의 희망과 꿈을 앗아갈 뿐이었다.
짧은 세계사지식과 단편적인 일제 강점기의 지식으로 인해 처음 ‘노몬한 전투’라고 했을 때는 이게 뭐지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노몬한 전투는’ 소련, 몽골간의 일본군과의 전투를 말한다고 한다. 우리가 많이 들어본 청일 전쟁 중에 일본과 소련사이의 국경에서 일어난 전쟁이다.
전쟁의 이름과 싸워야 할 인종만 바뀌었을 뿐 전쟁은 전쟁이었다.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내가 뭐라고 쓸 수 있을까?
아마 작가 본인도 차마다 표현하지 못했을 것이다.
“일본군으로 징집되어 노몬한으로 왔습니다. 거기서 소련군과 전투를 벌이다가 포로로 잡혔습니다. 굴락에 갇혀 있다가 소련군으로 끌려가서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참전했습니다. 거기서 독일군에게 잡혀 포로가 되었습니다. 나치 수용소에 있다가 동방부대로 차출이 되어 노르망디로 왔습니다. 그리고 연합군의 포로로 잡혔습니다.”『아버지의 길 中』
‘노몬한 전투’는 김길수의 고된 인생의 시작을 알리는 싸움이었다.
끝나지 않는 전쟁,
멀어져가는 고향,
보고 싶은 아들,
하나 둘씩 죽어가는 동료들
3번의 전투 3번의 포로.
총알과 폭탄이 날아다니는 전쟁 속에서 살아남은 그
믿어지지 않는 말 그대로 기적과 같은 인생사였다.
“아니요. 희망은 사치예요. 희망을 품고 있다간 매일 매일이 힘들어져요. 딱 한 가지 생각만 하세요. 내일을 맞이하겠다는 생각.”『아버지의 길 中』
한 아가씨가 길수에게 희망은 사치라고 말한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전쟁 통에서는 희망과 꿈은 사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길수는 아들을 만나야한다는 희망이 없었더라면 그는 아마 노몬한 전투에서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끝내 아들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했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 하늘나라 어디선가 두 부자가 꼭 끌어안고 웃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모든 아버지들은 김길수 같이 포화 속을 뚫고 모진 고통을 이겨내며 죽어가는 자기 몸보다 자식걱정을 할 것이다.
그게 우리 내 아버지이고 바로 내 옆에 있는 내 아버지 일 것이다.
『아버지의 길』은 일제 강점기의 우리 상황뿐만 아니라 2차 세계대전의 전반적인 모습을 한꺼번에 볼 수 있어서 참 괜찮은 책이었다.
(주인공 김길수의 인생은 세계사 안에 있는 산 증인이었던 셈이다.)
얼마나 내가 감사한 세상에서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는지 또 한 번 느끼게 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