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학 - 제6판
앤서니 기든스 지음, 김미숙 외 옮김준·정성호 옮김 / 을유문화사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사회학 기초 서적이죠 어떤 방향성을 제시하는 느낌보단 정말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베이스들이 주로 나옵니다 사회학개론에 밇이 쓰이는 책이죠 저는 후배들하고 스터디하려고 6판을 재구매했습니다 가지고 있는 4판이 너무 낡았더군요 책이 이렇게 빨리 다시나올줄은 몰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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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팅컬처 - 거짓과 편법을 부추기는 문화
데이비드 캘러헌 지음, 강미경 옮김 / 서돌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1.

 항상 궁금했었다. 왜 열심히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은 마지막에 좋은 결실을 맺는 경우가 드물고, 남을 속이고, 음모를 꾸미고, 정도가 아닌 다른 길을 걷는 사람들은 결국에는 잘 사는 것일까. 평범함의 극치인 내 주변 사람들을 봐도 가장 약삭빠르고 자기 잇속 잘 챙기는 사람을 손가락질 하면서도 저런 애가 나중에는 제일 잘 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미래에 아이들에게 교육을 해야 하는 교대생들조차 속임수를 잘 쓰는 학생이 재수는 없지만 제일 성공할 학생이라고 믿는 생각의 이면에는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치팅컬처>>에는 우리가 속임수라고 생각하지 않는 문제 상황들이 모여서 이 사회를 어떻게 좀먹어 가는지를 설명한다. 사소하게 보이는 영화나 음악을 불법 다운로드하는 일에서부터 주식시장의 엄청난 사기들까지 일련의 사회 현상으로 볼 수 있는 미국의 속임수 문화는 바로 한국에 적용해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로 한국 현실과 유사성을 보인다. 해방 이후부터 줄기차게 'wanna be America'를 외쳐왔던 나라에서 결국에는 미국의 문제점까지 닮아가는 모습은 그저 답답해 보인다. 더 답답한 사실은 아직도 미국의 길이냐 유럽의 길이냐를 놓고 물으면 대다수의 서민들이 미국의 길을 원한다는 사실이다. 자유주의 시장에서 서민들이 지배계층보다 더 많은 파이를 가져갈 확률은 극도로 낮다.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의 발현이다. 50년에 걸친 지배층의 세뇌가 비로소 성과를 보고 있는 듯하다. 




 책은 전반적으로 미국 사회의 뿌리 깊은 자본주의 맹신을 비판한다. 미국 사회 내에서도 극단적인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고 국가의 개입과 윤리 교육의 확충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인데 반해 2009년 대한민국의 시계는 70년대 수출 10억불 달성과 토건국가로 회귀했다. 처음에는 7․4․7과 대운하 사업이었고 그게 여의치 않자 남은 건 이름만 바뀐 4대강 사업이다. 국가는 회사, 대통령은 CEO, 시민은 노동자로 보는 현 대통령의 태도와 수출 전시(戰時) 체제를 지향하며 대통령은 수출사령관 국민은 수출 전쟁터에 나가있는 군인으로 바라보는 70년대 대통령의 태도에서 일말의 차이도 느낄 수 없는 것은 비단 나뿐인가. 정권이 바뀐 미국 사회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10년 만에 정권을 잡은 한국 보수층은 잃어버린 10년을 운운하며 우향우 노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처럼 문제가 확실하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책에서는 8단원 걸친 속임수들의 사례 분석과 더불어 마지막 장에서 속임수 문화를 뒤집을 수 있는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 글에서는 책을 바탕으로 미국 사회의 속임수 문화와 한국 사회를 비교해볼 것이다. 이러한 작업이 유의미한 것은 책에서 미국 사회문제 해결책으로 제시한 방법들이 한국에서도 적용될 수 있을 거란 판단에서다. 저자는 미시적 현상에서 나타나는 문제의 원인을 거시적인 틀로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개개인의 상황이라는 나무를 살펴보는 것과 동시에 집단의식이라는 숲을 바라 봐야 한다. 문제의 해결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2.




 일반적으로 속임수를 사용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핑계는 “나만 속임수를 사용하는 게 아니다”이다. 만약 경기에서 나만 반칙을 사용하지 않았는데 그것이 불이익과 직결된다면 반칙을 안 쓰는 사람이 바보라는 식의 태도이다. 체계가 썩었다고 보는 냉소주의적 시각과 반칙을 저지르고 나서 드는 죄책감을 동시에 털어버릴 수 있는 자기방어 기제이다. 재미있는 것은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윤리 기준이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정해져있다는 사실이다. 삶 전체에서 속임수를 사용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개인적으로는 훌륭한 인격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경제적인 문제에서는 비도덕적으로 변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사회적으로 정의감 넘치고 인정 많은 개인이 불법 p2p에서 자료를 다운받는 범죄자와 같은 사람일 확률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크다.




 왜 개인은 두 개의 윤리를 가지게 된 것일까? 신자유주의의 도래로 모든 것이 돈과 연관되고 돈으로 환산되는 물신주의 시대가 열렸다. 돈이라는 목적은 모든 수단을 정당화하고 모든 악행도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여파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엄청난 양극화는 기업 CEO와 말단 직원의 연봉 격차를 100배 이상으로 늘렸고, 1등이 모든 것을 가져가는 승자독식 사회와 함께 20이 80을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고 있다. 또 작은 정부를 표방함으로써 행정부의 역할이 약화되고 이에 따라 국가 감시도 덩달아 약화되었다. 규제 장치가 없으면 도덕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감시의 약화는 유혹의 증가와 직결되고 트라시마코스가 말한 “강자의 이익이 곧 정의”는 그리스시대를 뛰어넘어 현실에서도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과학 기술의 발전과 변화로 인해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는 알기 어렵게 되었다는 점도 남을 속이기 쉬운 상황을 만들고 있다.  


 

 이와 더불어 경제의 변화가 개인의 도덕 윤리를 좌우하게 되는 상황이 도래했다. 자유 시장에서는 성과급 제도로 개인의 능력이 평가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호모 이코노믹스는 속임수를 강요받는다. 부정직하게라도 실적을 쌓아야 회사에서 퇴직당하지 않고 돈도 벌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하는 속임수는 다들 그렇게 한다는 자기 위안에 파묻힌다. 직업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 체계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오로지 손익 계산에 치중되어 있다. 경쟁과 수익에 대한 강박증세가 경제의 변화와 가치, 규범의 변화를 동시에 불러왔다. 의사들은 개인의 직업윤리를 떠나 다단계 약팔이로 전락했으며 변호사들은 자신의 근무 시간을 늘리기에 급급하다. 연공서열제가 사라짐으로써 근로자가 회사에 갖고 있던 소속감이나 연대감도 사라졌고 조직이 갖고 있던 문화와 미덕들도 성과주의에 묻혀 사라지고 있다. 보수주의자들은 신자유주의와 성과주의로 인해 미국 전체 GDP가 증가 했다고 말하지만 과연 각 항목별 지니계수가 0으로 수렴하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전체적 국가 부의 증대와 개인 행복과의 관계는 그 연결 고리를 찾기 어렵다.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여러 가지 산물 중에 가장 탁월하게 노동자를 착취하는 방법이 성과급 제도이다. 노동자들 간의 경쟁을 부추기면서 생산성도 향상되고 자본가의 이익도 증대된다. 이렇게만 보면 굉장히 좋은 제도 같지만 사실상 노동자와 자본가 입장 모두에서 제 살 깎아먹기가 된다. 성과급 제도는 결과로 말하기 때문에 과정은 필요 없다. 이전까지 환영받던 사람이 ‘열심히’ 일하던 인간상이었다면 성과급 제도에서는 ‘결과가 좋은’ 사람이 인정받는다. 개인의 능력과 열정이 높으면 성과급 제도에 알맞은 인간이지만 만에 하나 그렇지 못하다면 실적을 쌓기 위해 부정을 저질러야 된다. 이것은 노동자는 물론이고 자본가에게도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다. 효율성과 경쟁을 강조하는 사회분위기 속에서는 성과급 제도의 대안을 찾기는 어렵다. 먼저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를 다함께 공존하는 분위기를 전환해야 대안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더욱 심하게 경쟁하는 것을 장려하고 있다. 일단 성공하면 모든 것을 가져가는 승자독식 구조이니 모두들 승자가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승자독식사회에서는 돈으로 모든 가치를 매길 수 있다. 운동선수의 예를 들면 어떤 수단을 사용해서라도 1등을 한 선수는 늘어난 연봉으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cf나 기타 부수입으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자기 강화의 과정을 겪는다. 문제는 사회에서 승자는 한명 뿐이라는 사실이다. 미국 사회학자 베블런은 <<유한 계급론>>에서 ‘모든 행복은 상대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각 부문에서 승자가 된 사람들은 과시적 소비와 과시적 여가를 통해 사회 경향을 과시하는 방향으로 몰고 간다. 모든 것이 소비로 결정되는 사회에서 소비는 계층을 구분하는 지표로 작용한다. 승자는 자기 강화 과정을 소비로써 나타내고 그것이 곧 계층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 이는 부르디외가 말한 구별 짓기나 보드리야르의 사치품 개념과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자유 시장 이데올로기는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동 유연화를 부추기고 조세도 감세 정책으로 몰아간다. 2004년 미국 대선에서 조지 부시가 대선에서 승리한 이유 중에 하나로 꼽히는 것이 ‘세금 구제(tax relief)’라는 프레임을 적절히 사용했던 것인데 이는 지극히 신자유주의적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한국에서는 종부세 문제가 감세 정책의 화두로 떠올랐다가 1%의 이익을 지켜주는 방향으로 풀렸다. 한국 사회에서 토지공개념이나 사유재산의 공익성을 말할 길은 요원해 보인다. 그리고 경쟁은 필연적으로 계층의 분화를 낳고 계층이동이 발생하다가 고착화 되면 사회적 계급으로 발전한다. 사회학에서 계층이동은 주로 상승 이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중산층에서 상류층으로의 이동은 그나마 활발한 편이지만 하층계급에서 중산층 이상으로의 상승이동은 쉽지 않다. 자신의 부모의 직업 수준을 이어받는 경우가 많고 하층이동도 빈번하게 나타난다. 한 번 계급이 고착화 되면 벗어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개인 인격의 문제를 들여다보면 속임수를 쓰는 내면에는 여러 심리가 작동하지만 자신의 판단이 모두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합리화 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사회 구조의 변화가 개인을 변화시키는 경우도 있는데 책에서는 정직의 단계를 1, 2, 3단계로 나눠서 설명하고 있다. 먼저 사회 가치가 변하면서 개인주의가 이기주의로 변하고, 사랑대신 돈을 선택하는 물신주의가 나타나며, 마지막으로 경쟁이 심해지면서 배려심이 사라지는 완성단계에 접어든다. 미국에선 1960년대, 한국에서 1990년대 중반에 IMF가 터지고 나서야 개인주의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삶의 목표가 돈과 소비로 나타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된다. 편하게 살기 위해 돈을 더 벌고, 돈을 더 벌다 보면 지치기 때문에 더 편하게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돈을 더 벌어야 한다,는 식의 악순환이 반복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돈이 부족하면 빚을 내서라도 소비를 한다는 사고는 덜 벌고 덜 쓰자는 유럽식 사고와 정 반대에 서있다. 유럽에서 잡쉐어링 워크쉐어링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데 반해 미국에서는 욕망과 필요사이의 간극만 더 커져간다.




 미국은 존경하는 인물이 경제인인 사회이다. 애석하게도 이건 한국도 마찬가지다. 경제인의 목표는 투입 대비 결과물을 좋게 만드는 사람이고 앞서 말했지만 목표는 수단을 정당화하고 성공하면 과정은 상관없다. 결과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속임수는 당한 사람들이 멍청하다는 식의 태도에선 윤리는 찾아볼 수 없고 적자생존 의식만이 남아있다. “주가 조작은 했지만 범죄는 저지르지 않았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회에서 올바른 경쟁이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반칙이 이루어지고 나서 규제가 제대로 이루어지면 어느 정도 속임수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행정부의 인원이 줄면서 감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화이트칼라 분야의 범죄는 전문가들이 사기를 치기 때문에 역시 전문가가 아닌 이상은 속임수를 잡아내기 어렵다. 재계와 정계가 밀착되어 있는 것도 하나의 문제이다. 정부는 부자의 이익을 대변한다.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사건이 터지고 나서 받은 형량은 전환사채 발행 자체는 무죄이고 일부 조세포탈 혐의만 인정되어 징역3년에 집행유예 5년과 벌금 1천100억 원이었다. 오히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삼성에게 떡값을 받은 검사 명단을 폭로한 죄로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형량을,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이것이 한국 사회 재계 No.1의 비리를 폭로한 결과이다. 남의 집에 들어가 몇 백만 원만 훔쳐도 감옥에서 2년은 족히 살아야 되는데 수조 원을 탈세해서 국가의 예산을 빼돌렸어도 돈이 있으면 감옥도 안 가고 폐장된 레이싱 경기장에서 홀로 황제 레이싱을 즐긴다. 가히 21세기 유전무죄 무전유죄이다.





 사회가 공정하다는 믿음은 깨졌다. 모두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체계를 바꾸려고 한다. 미국은 기독교 사회이고 기독교 문화는 기본적으로 죄책감 문화이다. 신 앞의 단독자로서 감시의 시선을 자신의 내면에 내면화한 주체는 누가 보지 않아도 이른바 양심의 가책이란 것을 느끼게 된다. 유일신교에 문자문화의 산물인 내면화가 겹쳐질 때 성립하는 것이 반성의 문화이다. 그런데 이런 죄책감 문화가 사회의 변화로 수치심 문화로 변해간다. 죄책감은 죄를 짓는 순간 발생하나 수치심은 그것이 드러나는 순간에 비로소 시작된다. 남들을 ‘조금’ 속이는 것은 괜찮다고 말하면서 스스로를 범죄자나 사기꾼으로 여기지 않는 소수의 탈세가 모이면 전체 탈세 액수의 절반을 차지한다. 국가의 규제가 상류층과 서민층에게 이중 잣대로 작용되는 것쯤은 일반 시민들도 알고 있다. 죄는 있지만 처벌이 없는 사회에서 누가 정직을 강요할 수 있단 말인가.


 


 출발선상에서의 속임수는 교육 현장에서의 속임수와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출세에 대한 강박증은 미국도 한국과 매한가지라서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속임수를 사용한다. 한 연구 결과는 지나치게 좋은 성적을 강요하는 부모 밑의 아이들이 속임수를 쓰는 경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적 성공과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지상목표인 나라에서 학교는 더 이상 배움의 장이 아니다.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속임수를 가볍게 넘어가는 경향도 커닝을 부추긴다. 대학은 출세의 발판이므로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성적을 잘 받아야 하는 학생들의 심정을 선생님들이 백번 이해했다 쳐도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이야기처럼 작은 속임수가 나중엔 큰 속임수로 변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도덕성은 한 순간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꾸준히 연마해야 키워나가야 한다.




 또한 학벌이 승자독식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실제 학벌로 사람을 채용하는 경우가 많다. 블라인드 채용을 한다고는 하지만 얼마 전 조선일보 인턴 채용 결과를 보면 정말 블라인드인지 알 수 없다. 정원 20명에 sky 대학이 10명, 외국계 대학이 7명, 서울 ․ 경기 4년제 대학이 2명, 지방 4년제 대학이 1명이었다. 인턴이 아닌 공채에선 다를까? 전혀 다르지 않다. 어떻게 해서든 좋은 대학에 가야 1차 서류심사에서 탈락하는 상황은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유명 인사나 연예인들이 굳이 필요하지 않은 학벌을 조작하는 이유도 출신 대학 하나로 사람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는 현실에 굴복한 것이다.





3.




 사회에 만연한 속임수 문화를 깨뜨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3가지를 제시하는데 새로운 사회계약의 필요성, 새로운 차원의 성과주의 마지막으로 윤리교육의 강조를 말한다.




 새로운 사회계약의 필요성은 지금 상황에서 가장 가시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해결책이다. 규칙을 지키기만 하면 누구나 공정하게 대우받을 수 있다는 믿음과 신뢰의 회복이 새로운 사회 계약의 골자이다. 사회의 경제적 불안을 제거하고 안정시켜 지금보다 덜 냉혹하고 더 공정한 미국인을 키워내는 것이다. 이러한 기반을 닦으려면 먼저 일한만큼 대가가 지불되어야 한다. 열심히 일한만큼 잘 살게 되는 것이다. 하루에 12시간을 일해도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는다면 속임수 문화에 편승할 수밖에 없다. 사회 복지 예산의 확충은 게으른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 부는 것이다. 두 번째는 고등고육의 확충이다. 한국으로 따지면 반값 대학 등록금의 실현이 되겠다. 대선 때 공약으로 걸었던 반 값 등록금 이야기는 이제 mb장학생 200명으로 대체되려 한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해결책이다. 대학 평준화라는 카드를 꺼내들지 못한다면 적어도 반값 등록금은 실현시켰으면 한다. 셋째는 사람들이 부를 쌓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고 마지막은 고용 불안을 줄이는 것이다. 비정규직 법안으로 오히려 정규직의 자리마저 위태로워졌다. 기륭노조, ktx노조, 이랜드노조, 쌍용 노조 등 모두 고용 불안으로 인해 일어난 노조 투쟁이다. 노동유연화는 단기간의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오히려 생산성을 저하시킨다. 눈앞의 이익만을 쫓지 말고 장기적인 안목과 사회 전체적인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




 새로운 차원의 성과주의는 기업에 정부의 압력과 내부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정부의 규제가 비효율적이라는 주장에도 일리는 있으나 지금까지 기업이 스스로 자정작용을 해오지 못한 것을 감안하면 얼마 동안의 정부의 제재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업 스스로도 윤리 가치를 일상 업무에 통합하는 수단을 만들어서 기업 윤리가 무용지물이 되지 않게 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은 기업이 스캔들에 휘말렸을 때 제대로 대처할 능력을 키워주고, 회사 내에 긍정적인 가치를 심어주며 여기서 나오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 또한 윤리적인 기업이라는 브랜드 가치를 얻을 수 있으며, 지역사회 내에서도 정부와의 관계를 원활하게 해주는 장점이 있다.




 마지막은 윤리 교육의 강조이다. 이는 가장 기초적이며 핵심적인 내용이다. 윤리교육은 학교 교육과 더불어 가정과 사회에서 이루어져야 할 내용이다. 우리는 흔히 도덕적인 사람이 손해를 본다는 생각을 하고 산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생각이다. 도덕적인 사람은 당장 닥친 결과에서는 손해를 볼 수 있으나 결과를 제외한 다른 모든 부분에서 긍정적인 사고를 발휘해서 결국에는 더 좋은 역량을 낼 수 있다. 도덕성이 자존감과 연결되어 있다는 이야기인데 한 연구에 따르면 도덕지수가 높은 사람은 시련이 닥쳤을 때 이겨낼 수 있는 자아 긍정형 마인드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았고 실제로도 문제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결 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속임수를 쓰는 사람들의 말년이 좋지 못한 경우가 많으므로 인과응보의 윤리교육도 필요하다.       




4.



 이 글에서 ‘신자유주의’라는 단어는 모두 8번 사용되었다. <<치팅컬처>>는 미국 신자유주의의 망령을 비판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neoliberalism은 결코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 수 없다. 인간의 영혼마저 사고파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윤리를 가질 것인가. 책을 읽으며 먼저는 속임수가 넘쳐나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 떠올랐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현 시대에 맞는 윤리의 제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나와 있는 윤리의 교육도 중요하지만 시대에 맞지 않는 윤리를 계속해서 교육하는 것은 속임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이 모든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체제가 등장하는 것이다. 한 체제가 꾸준히 지속된 경우는 없다. 시간이 지나면 인간 중심의 사회 체제가 등장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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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시대 - 미니앨범 1집 : 지 (Gee) - 44페이지 미니화보집 형태 부클릿
소녀시대 노래 / SM 엔터테인먼트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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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사랑해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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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쇼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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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1세기 대한민국의 20대다. 한국의 평균 대학생임을 자처하는 나는 앞으로 뭘 먹고 살아야 할 지 막막하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꾸준히 놀았고 대학교에 들어와서 공부 같지 않은 공부를 하고 있지만, 이런 공부를 계속 한다고 해서 불투명한 미래가 맑아질 것 같지는 않다. 지금 하는 비정규직 알바로 평생 연명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경쟁률이 몇 백대 일까지 올라가 있다. 만약 내일이라도 부모님이 실직하시거나 알바가 끊기면 한가롭게 앉아 타자를 치는 것도 어려워진다. 평온해 보이는 일상이지만 이런 잔잔함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겠다. 마음 한편에 불안감이 똬리를 틀고 있다. 내가 느끼기에 지하철에서 노숙을 하는 사람들과 나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밖에 안 된다.



<<퀴즈쇼>>의 민수는 평균적인 20대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일반적인 20대가 취직하기 전까지 부모세대에 의존하는 것에 비해 민수는 비빌 언덕이 존재하지 않는다. 배경도 능력의 일부라고 말하는 사회에서 부모의 부재는 치명적이다. 기반이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맨몸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한 가지 재밌었던 건 당장 내일 끼니를 걱정하는 민수가 사채를 생각하지 않은 것은 주인공을 막장으로 끌고 가지 않으려는 작가의 배려인 것 같다. 내 경우나 주변 친구들의 경우를 생각해 볼 때 저 정도로 궁지에 몰리면 가장 먼저 '사채'가 생각난다. 쓰고 나서 갚지 못하면 인생을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아니까 '자제'하는 것뿐이다. 민수 같은 상황을 겪어봐서 그런지 고시원 옆 방 사람에게 돈을 빌린다는 설정이 현실성 없게 느껴졌다. 아는 것이 이름과 얼굴뿐인 남에게 선뜻 몇 십만 원을 빌려줄 천사가 있기는 할까.



그래도 퀴즈쇼에 나오는 20대에 대한 성찰만큼은 다른 어떤 소설에 비할 바가 아니다. 민수의 이야기는 상황만 약간 변형시킨 내 이야기이다. 읽으면서 공감 가는 구절이 정말 많았는데 20대를 정말 탁월하게 설명한 부분이 있다.

"우리는 단군 이래 가장 많이 공부하고, 제일 똑똑하고, 외국어에도 능통하고, 첨단 전자제품을 레고블록 만지듯 다루는 세대야. 안 그래? 거의 모두 대학을 나왔고 토익점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고 자막 없이도 할리우드 액션영화 정도는 볼 수 있고 타이핑도 분당 삼백 타는 우습고 평균 신장도 크지.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알고, 맞아, 너도 피아노 치지 않아? 독서량도 우리 윗세대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아. 우리 부모 세대는 그중에서 단 하나만 잘해도, 아니 비슷하게 하기만 해도 평생을 먹고살 수 있었어. 그런데 왜 지금 우리는 다 놀고 있는 거야? 왜 모두 실업자인 거야?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한 거지?" p.193

단 한 문장 <독서량도 우리 윗세대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아> 이 부분을 빼고 나머지 구절에 구구절절히 동의한다. 도대체 우리는 뭘 잘못했기에 실업자인 것일까. 주변을 둘러보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교대를 나와서 임용을 쳤거나 간호대를 나와서 국시를 쳤거나 4년 내내 도서관에 짱박혀있다가 사시/공시/임용을 한 방에 붙은 소수의 사람들뿐이다. 아직은 주변에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많지 않지만 졸업한 사람들은 모두 취업준비생이 되어버렸다. 아니면 이직을 밥 먹듯이 하는 직딩이 되었거나.



책에는 친절하게 해결책도 제시되어 있다. "우리가 왜 이렇게 사는지 알아? 내 생각엔 우리가 너무 얌전해서 그래. 노땅들이 무서워하질 않잖아. 생각해봐 386들은 손에 화염병을 들고 있었다구. 겁 많은 노땅들이 얼마나 무서웠겠어. 우리를 무서워해야 일자리도 주고 월급도 올려주고 그러는 건데, 이놈의 대기업들은 채용은 안 하고 대학에 건물만 지어주고 앉아 있잖아. 누가 건물 필요하대?" p.194

<<88만원 세대>>에서 줄창 이야기하던 해결책과 같은 맥락이다. 20대여, 토플책을 덮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 사실 상황이 이 지경이면 폭동이 일어나도 여러 번 일어났어야 했다. 국가를 마비시켜서라도 권리를 찾아야 하는데 우리는 참 착하다. 착하게 앉아 토익책을 공부하고 학점에 신경 쓰고 마음에도 없는 사회 활동에 참여하며 스펙을 쌓는다. 천신만고 끝에 회사나 공기업에 취직을 해도 상황은 개떡 같다. 세대 내 경쟁-이건 양반이다-, 세대 간 경쟁, 승자 독식 같은 체제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88만원세대 리뷰에서.. 지금의 20대는 '될 놈은 된다'라는 사고가 머릿속에 박혀있다. 가스실에서 바늘구멍만 쳐다보고 있는 겪이다.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0.01%의 사례를 보고 나도 저렇게 될 거야 같은 희망을 꿈꾼다. 가스실을 박살내려는 사고의 발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과연 우리가 윗세대보다 책을 많이 읽고 생각하는 세대일까.



민수가 마당이 있는 주택에서 살다가 처음 고시원에 입성했을 때 묘사는 내가 처음 고시원 방을 보고 느꼈던 문화적 충격과 유사하다. '고시원에는 단지 한 인간이 다리를 뻗고 잘 수 있을 정도의 최소한의 공간만이 허용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착륙용 캡슐에 올라탄 우주인 같은 기분이었는데 며칠이 지나자 주인의 공언대로 방이 넓어 보이기 시작했다.'p.63

처음 고시원에 갔을 때의 놀라움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유아용으로 보이는 침대 하나와 한 사람이 누워있으면 꽉 차는 공간, 초소형 옷장하나. 책상도 미니였다. 유일하게 좋았던 건 인터넷 속도 하나였다. 광랜이었던 그곳에서 게임 중독에 빠져 3일 내내 잠 안자고 게임하는 날들이 지속되었다. 처음에는 집에서 밉보이던 터라 그런 공간이나마 있는 게 다행이라 여겼지만 한 달 정도 지나자 심각한 우울증에 빠져 인생의 목표가 '고시원을 탈출하는 것'으로 설정되었다. 그 후로도 대략 1년 동안 고시원에 살았는데 그때가 내 인생 최고의 암흑기였다.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 오기 전에 2달 정도 고시원에 머물렀는데 그 때도 여지없이 우울증이 도졌었다. 2평이 안 되는 공간에서 인간이 살아야 한다는 건 그 자체로 인권침해다. 고시원에서 계속 머물렀다면 게임 중독으로 사망했거나 사이코패스로 거듭났을 것이다. 차라리 노숙을 하는 게 정신 건강에는 이로울지도.



김영하씨가 말하고 싶었던 건 인터넷 세대의 성장과정과 연애였다고 한다.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개인적 심정보다 사회적 묘사가 더 눈에 들어오는 건 뭐 눈에는 뭐만 보이는 탓인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소설처럼 내 20대도 해피해 지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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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 공지영 에세이
공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소설가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은 흥미롭다. 그들은 일상의 한조각 하나도 허투루 여기지 않으며 생의 순간마다 놀랄만한 통찰의 보여준다. 소설가의 삶과 우리네 삶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삶에 대한 성찰의 유무가 그들과 우리를 다르게 만든다. 하긴, 소설가의 삶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은 언제고 흥미롭다. 역시 인간 본성에는 관음증이 숨어있는 것인가. 관음증의 발현으로 에세이를 뚝딱 읽어냈다. 시험이 끝나고 공부 말고 뭘 해야 좋을지 몰라 괴롭던 찰나였다.


공지영씨가 까이는 이유를 나는 알지 못한다. '진보 장사꾼'이란 호칭도 대략난감이다. 이 사람에게서 그런 의도를 읽어내지 못하는 건 비단 나뿐인가. 책 곳곳에서 본인 스스로 안티팬이 많음을 인정하는 작가가 안쓰러웠다. 공지영씨의 책을 읽고 지하철에서 울 뻔한 독자는, 장사꾼에 농락당한 나이브한 인간인가. 아니면- 이문열을 옹호하던 나름 진보적이라는 학생의 말처럼, 작가는 작품과 별개로 평가해야 하는 것인가. 공지영 이름만 나와도 개떼처럼 달려들던 악플러들이 생각났다. 또 다른 누군가의 말처럼 그녀의 미모가 그녀 작품을 평가하는데도 영향을 주는 것일지도.-이 말은 그녀가 못 생겼더라면 까이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말로 들렸다- 작가의 감수성이 얼마나 예민한 것인지, 일반인의 그것과는 비교하기조차 어려운 것임을 알기에- 새삼스레 마음이 쓰렸다.


에세이 안에는 그녀가 공언했던 것처럼 가벼운 이야기들이 가득차 있었다. 그렇지만 흔히 말하는 칙릿류의 책을 기대하면 곤란하다. 주제만 가벼워지고 특유의 시선이나 문체는 그대로 살아있었다. 가장 좋았던 주제는 '소중함'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보며 스터디 하던 인간들이 떠올랐다. 분명 여자 셋에 남자 셋은 사랑의 기류가 흐르기 딱 좋은 구성원인데 우리가 서로를 너무 '소중히' 여기는 바람에 그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20년 후쯤 웃으면서 그 때 우리가 서로를 너무 소중히 여겼다고 한탄하려나.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는 '아주 사소한 것들이 우리를 살게 만든다'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이런 사소함 들이 모여 개인의 인생 역정이 되고 그런 인생들이 모여 세계를 만든다. 그러니 우리는 이런 사소함 들을 사소하게 여기지 않을 마음의 준비만 하면 된다. 내가 오늘 룸메와 짬뽕 하나를 시켜 나눠먹은 것도- 시험이 끝나고 학원에 가기 싫어 무단으로 4번째 빠지고 있는 것도-문제는 내일은 진짜 일이 있어서 빠져야 된다는 사실- 전부 나를 살게 만들고 있는 것들이다. 오늘도 생의 평범한 진리를 책 한권을 통해 깨달았다. 이래서 책을 놓을 수가 없다.


사족1 아이들 이름 중 위녕과 제제를 알았다. 둘째 이름은 뭐지? 둘 다 이름이 무지 예쁘고나.

사족2 문인들의 시국선언에 공지영씨 이름이 빠진 게 아쉬웠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 이름은 죄다 들어가 있었는데 딱 두 사람이 빠져있었다. 한 마디 코멘트 하고 싶지만 작가의 사상마저 내 입맛에 맞춰 비난 한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아쉬운 걸로 끝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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