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소리 - Old Partne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영화를 다시 본 다음에 리뷰를 써야겠다 생각했던 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시작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대략 70분 동안 계속 눈물이 나서 영화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기 때문에. 왜 눈물이 났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소가 죽었다는 사실이 마음을 아프게 했을까. 농군인 할아버지의 손을 보고 마음이 동했을까. 리뷰를 쓰기 위해 영화를 복기하다보니 첫 장면이 떠오르며 다시 마음이 뜨거워진다. 평소에 잘 울지 않는데 영화의 첫 장면을 보고 울컥했다. 야트막한 산 정상에 오르는 노부부의 이미지는 할아버지의 "아이 아파"란 대사가 없어도 충분히 가슴을 저린다. 영화를 보며 머릿속에선 누군가가 끊임없이 떠올랐다. 돌아가신 외할머니도 생각났고, 고생하고 있는 엄마도 보였다. 다시 볼 땐 꼭 엄마랑 봐야지- 두 번째 볼 땐 엄마와 같이 봤다. 엄마도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자꾸 생각난다고 했다.


영화는 다큐이면서 영화를 지향한다. 보통의 다큐 영화와 달리 자막을 쓴 이유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투리를 관객들에게 제대로 설명하기 위한 배려이기도 했고, KBS다큐 '인간 극장'이-시청자가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자막을 쓰는 목적과 동일하다. 다큐의 본질은 사실성이다. 영화는 tv에 방송되는 다큐와는 달리 충분한 경제적 계산이 들어간다. 극장에서 다큐영화가 성공하기 어려운 건 사실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관객을 끌어들일 만큼의 재미도 있어야하는데 일상이 언제나 버라이어티 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는 원래 심심하다. 다큐가 심심하지 않으려면 소재가 특이하거나 상황이 특별하거나 뭔가 특별해야한다. 거기에 감독의 역량이 플러스 된다. 워낭소리에서 특별한 점은 소가 지나치게 오래 살았다는 사실 하나. 다른 부분은 눈 씻고 찾아봐도 특이점이 없다. 보통 20년인 소의 평균수명보다 2배 많은 40년을 넘게 살았다니 특이하긴 특이하다. 그런데 소가 나이 많은 건 '세상에 이런 일이'에 1회로 나올 수 있는 대략 10분짜리 꼭지다. 10분짜리 꼭지에서 한 편의 영화가 되기까지 할머니의 공이 컸다. 할아버지도 소도 워낙에 말이 없다. 가끔 "안 팔아"라고 외치는 할아버지가 웃음을 주기도 했지만 대부분 웃음소스는 할머니에게서 나왔다. 할머니의 혼잣말과 표정이 압권이었다. 할머니의 팔자타령은 극에서 가장 중요한 웃음코드다. 영화에서 할머니가 없었다면 무성영화가 되었을 듯.


워낭소리는 느릿느릿 하다. 감독이 촬영하며 힘들었던 점을 토로했을 때, 할아버지와 소가 너무 느려서 촬영하기 힘들었다는 점을 꼽았다. 소와 할아버지의 속도는 촬영팀도 힘들게 했지만 자칫하면 영화를 지루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갈 정도의 사람들은 현실의 초고속 문명을 제대로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워낭소리의 속도를 늘어지는 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건 정말 '편집의 승리'다. 편집은 지루한 소재를 재밌는 이야기로, 안단테의 템포를 모데라토로 느끼게 만들었다. 보통 사람들이 편집을 말할 때 사실을 왜곡하는데 사용하거나 '발 편집'이라고 비난할 때 사용한다. 애초에 영상이 매끄럽다면 편집이 생각나지도 않았겠지. 워낭소리에서도 감동을 배가시키기 위해 약간의 편집이 들어갔음직한 부분이 보였지만 크게 거슬리지 않았다. 작정하고 영화를 보는 사람 눈에나 보일 법한 장면들이었다. - 작정하고 영화를 본 내눈에는 몇 몇 장면이 작위적으로 보였다.



할아버지네 논과 밭은 청정지역이다. 기계를 쓰고 농약을 치는 옆 논과 대비되는 화면으로 할머니의 인상 쓰는 표정이 나왔지만, 할아버지네 논에 사는 우렁이와 각종 수중생물들은 탄성을 자아냈다. 할아버지는 소에게 먹일 꼴을 베기 위해 논밭에 농약을 안친다고 말한다. "소가 없으면 나도 죽어."라는 대사도 나온다. 소와 할아버지의 관계는 동물과 주인이 아닌 자식과 부모 관계였다. 우스갯소리로 영식이[둘째 아들]보다 소가 나아,라고 하는데 어쩌면 일리 있는 말 일지도. 할아버지가 소를 팔러 우시장에 갔을 때 '이 소가 차가 오면 저절로 피해요.' '내가 자는 사이에 나를 우리 집까지 데려다 놨어요.' 그러니까 5백만 원 아니면 안 팔아! 라고 하지만 사람들의 비웃음을 산다. "할아버지 이 소는 질겨서 먹지도 못해요." 할아버지와 소 판매상들 간의 인식 차이다. 할아버지에게 소는 자신의 다리이며 일하는 농기구이며 자동차의 역할도 한다. 판매상들에게 소는 단지 먹기 위해 사육하는 고깃덩어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결국 할아버지는 소를 팔지 못한다.



소와 할아버지는 참 많이도 닮았다. 어렸을 때 침을 잘 못 맞아 힘줄이 오그라든 할아버지의 왼쪽 다리와 소의 비쩍 마른 몸. 지독할 정도로 우직한 성격. "거 힘들다고 안 하면 되겠는 겨?" 할아버지는 대사로 소는 눈빛으로 말한다. 소머리 클로즈업 장면에선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눈이 충혈된 할아버지와 소. '아파'를 연발하는 할아버지와 헥헥대는 소. 정말 많이 닮았다. 한 줄로 영화를 요약한다면 이 문구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유년의 우리를 키우기 위해 헌신했던 이 땅의 모든 소와 아버지들에게 이 영화를 바칩니다." 
 




사족


원래는 6개월을 잡고 촬영을 시작했는데 소가 3년을 살아서 촬영도 3년으로 길어졌댄다. 소가 10년을 더 살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웃음이 났다. 촬영을 마치고 공중파 3사와 (아마도)ebs에 판권을 팔려고 돌아다녔는데 팔리지 않아서 인디 영화로 지원을 받았다고 한다. 영화가 성공할 줄은 감독도 방송사도 관객도 몰랐을 거다. 우리나라에서 독립피디로 활동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스레 현실이 아득해졌다. <개봉하기 전에 친구가 워낭소리 언론 시사에 초대해 줬는데 가지 않았다. 그저 그런 인디영화인 줄 알았다. 제목이 워낭소리라 판소리와 관련된 이야기인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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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 2009-03-04 0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여운이 남네요...벌써 일주일도 더 지났는데...좋은 영화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