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회사에 있었던 것에는 분명한 의미가 있다. 그것을 확인하고 다시 납득하기 위해 무의식중에 만들어낸 장치, 그것이 모조 회사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저, 아니 우리는 그런 도구를 갖추지 않고 스스로 돌아볼 수 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애처롭기까지한 심정만은 세상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합니다. 그러니까....-246쪽
"왜 회사에 염증이 난 건가요?" "회사라는 것에는 인간의 이기심이 그대로 반영되는 법이거든요. 그 이기심에 구역질이 났기 때문이죠." 그 이상 구체적인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234쪽
그야 물론 감상에 젖어 있는 면도 없지는 않다. 솔직히 말해서 그런 정도의 기분으로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감상만 갖고는 사람들이 여기까지 할 수는 없는 법이야. 우리는 인생의 전부였던 회사라는 것을 다시금 시물레이션해나가는 과정에서 마침내 어떤 사실을 깨달은 거다. 지금 이렇게 하고 있는 일은 우리가 모든 인생을 걸고 해왔던 회사 일을 검증하는 작업이기도 한 거야. "컴퓨터 게임에서 말하는 롤풀레잉 게임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인간이 연기하는 극 형식의 심리요법 게임인데, 그것의 실체험적인 의미가 모조 회사에 있는 것이 아닐까요?"-123쪽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회사 외곬로 회사에 들러붙어 살아가는 사람일지 모르지만, 언제 제거될지 알 수 없는, 먹느냐 먹히느냐 하던 그 시절에는 찰싹 회사에 들러붙어 분투하고 노력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아니 살아나갈 수조차 없었다..... 그리고 그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이윽고 고도 경제성장의 물결이 밀려오자 회사도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덕뿐에 가정에서도 가전제품을 잇달아 사들이고, 꿈에 그리던 마이카를 마련하고, 사나이 평생의 숙원 사업인 내 집도 마련하는 등 탄복할 만한 개인의 고도 경제성장도 달성했다. "그 모든 것이 우리 같은 사람들이 회사에 찰싹 들러붙어 있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게 아니겠니? 만약 우리가 매일 곧이곧대로 정시에 출퇴근하고 주말에는 어김없이 쉬고, 추석이니 설이니 황금연휴니 공휴일이니 유급휴가니 경조사니 병가니 하는 것들을 꼬박꼬박 챙기면서 가정이 우선이라고 주장하며 놀았더라면 지금의 일본은 어떻게 됐을 것 같으냐?" 그런데 마침내 풍요로운 시절로 만들어 놓았더니 이왕이면 큰물에서 놀겠다는 듯 대거 입사한 놈들은 어땠을까?-183쪽
정말이지 멋대로 아닌가? 처음부터 여유와 안정이 보장된 상태에서 가족주의니 여유주의니 사생활주의를 내세우는 거다..... 그래도 여전히 회사밖에 모르는 인간들을 조롱하는 풍조는 남아 있지만 두고 부면 알 거다. 먹느냐 먹히느냐 하는 사태가 벌어지면 인간이 어떻게 행동할지는 뻔하다. 겐조들을 비웃던 놈들도 똑같은 일을 되풀이할 게 분명하다.-1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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