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과 에블린 민음사 모던 클래식 57
잉고 슐체 지음, 노선정 옮김 / 민음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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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갑자기 모든 게 현실적으로 보이기 시작하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제 어떻게 될까 문득 자문해 보면..."
"그럼 그떄부터 불안해지지. 난 심지어 이런저런 의무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해. 우린 인생이 뭘 뜻하는지 사실 아직 잘 모르잖아."
"아담은 늘 만족해. 저녁에 맥주를 마시고, 정원에 앉아 시가나 피우고, 그럼 이웃들이 울타리로 와서 말을 걸고.. 그는 심지어 이웃들과도 잘 통한다니까. 난 그런 점에 끌렸어. 그는 아무것에도 메이지 않았어. 그거 알아? 아담은 독특했어. 대학교에서 사귄 친구들은 죄다 조심성 많고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 사람들이었지. 하지만 아담은 완전 해방이었어. 그는 의견을 거리낌 없이 말했어. 하지만 이젠 늘 정원에만 앉아 있으니.."

"넌 모를 거야, 내가 여기 이 모든 것을 얼마나 만끽하고 있는지."라고 에블린이 말했다.
"다른 데서 살아 본 적은 한 반도 없었던 느낌이야."
몇 모금 빤 후 그녀는 담배를 눌러 껐다.



처음에 그녀는 그가 쓴 자신의 밀짚모자를 보았다.
아담은 펼쳐진 앨범을 악보처럼 들고서 거기 붙은 커다란 여자 사진들을 찢어내 불꽃 속으로 던져 넣었다.
서두르는 기색이라곤 없었다.
그는 페이지를 넘겨 다음 사진을 꺼내 불 속으로 던졌다.
사진 한 장이 다 타지 않고 펄럭거리며 위쪽으로 날아오르다가 이내 오그라들며 열기 속으로 사라졌다.
에블린을 가장 무섭게 한 건 그의 행동이 보여주는 규칙성과 차분함이었다.
...
갑자기 아담은 마치 그녀가 거기 서 있다는 것을 내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들어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다음 모자를 도로 썼다.
에블린의 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
에블린은 자기 자신과 주위의 방을 보았다.
방은 실제 크기보다도 훨씬 더 커 보였다.
실로 거대해 보였다.
그녀는 방 한가운데 선 작고 알록달록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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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의 몸값 2 오늘의 일본문학 9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2월
구판절판


"설명은 잘 못하겠어. 그냥 직감이야. 자네는 저 데모하는 친구들하고는 질이 달라. 데모하는 학생들은 목슴을 걸고 하는 게 아냐. 아직도 부모 밑에서 어리광이나 피우는 주제에 무슨 혁명이고 나발이고 있겠어?"
"너 어째 어린애 같이 구냐? 하나하나 다 물어보네. 아무튼 이 세상에는 뒤로 뭐든 다 해주는 브로커라는 게 있다는 것만 알아둬."
"진짜 전쟁을 모르는 사람들은 패거리 짜는 게 좋아서 전쟁을 하는구먼."
"너는 걸핏하면 그런 소리를 하는데, 그래도 도쿄가 없으면 일본인은 기운이 쪽 빠져버려. 다소 불공평하긴 해도 지금은 일단 탑을 높직이 쌓아올릴 시기가 아니겠어? 옆으로 쌓는 건 나중에 해야지."
"내가 아들도 손자도 없잖아. 그러니 자네 아들이라도 안아보고 싶어. 혹시라도 잡힌다면 자네는 아무것도 안 했고 내가 다 했다고 할 거야. 그러니 권총 뽑은 경찰한테는 덤비지 마."

'남의 위에 선다는 것은 가장 겸허해야 할 일이지만, 지금 한껏 들뜬 일본에서 그런 것을 자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자본주의를 맹신하며 아지랑이처럼 바탕 없는 번영에 집단적으로 도취되어 있다.'
'400년 전에 지배자가 휘두르는 칼날에 순순히 굴복해버린 이 나라의 민족성은 참된 자유를 알지 못한 채 근대로 돌입해버렸다. 그래서 사회주의 운동도 탁상공론에만 그쳐버리곤 한다. 학생의 봉기도 어딘가 혁명놀이처럼 유치한 면이 있다.'
"도쿄 올림픽이 그저 보여주기 위한 급조된 번영을 바탕으로 거행되려 하기 때문이에요. 이 나라 프로레타리아는 완전히 짓밟혀 발판처럼 취급되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그대로에요. 기걸 용서한다면 국가는 점점 더 자본가를 우대하겠지요. 누군가 반기를 들지 않으면 민중은 앞으로도 계속 권리를 받탈당한 채 살아야 합니다."

'권력의 편에 서게 되면 사적인 욕구에 따라 움직이는 민간인은 거치적거리고 열등한 생물로 보인다. 권력을 일단 손에 넣으면 그리 쉽게는 놓지 못하겠구나. 요컨대 세상은 윗분과 그렇지 않은 쪽으로 나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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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의 몸값 1 오늘의 일본문학 8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2월
구판절판


‘천황제는 이런 때 참 편리하구나.. 완전하신 공인이 정점에 있어주는 덕분에 이 나라 지배층은 언제라도 봉공인이라는 입장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민주주의의 가혹함과 맞서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다. 천황제는 일본인의 영원한 모라토리엄인 것이다."

"진심으로 혁명을 일으킬 마음이 있다면 천황을 죽여"

‘형사가 된 지 6년째가 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인간은 정말 알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만 쌓여갔다. 그럴싸하게 밝혀낸 범행 동기라는 건 공술 조서와 공판을 위해 종이쪽에 적어놓은 것일 뿐, 애당초 인간의 마음속이라는 건 문자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응, 세상 돌아가는 속도가 너무 빠르니까 다들 금세 잊어버리는데, 그 범인은 아직 살아 있어."

"참말로 도쿄에서 복이란 복은 죄다 독차지한 것 같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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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어른 - 울지 않는 아이가 우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울지 않는 아이가 우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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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리의 팬이라면 2번째 테마 남성친구의 방이 흥미로울 것 같아요^^ 본의는 아니고 본의는 아니나 득을 보는 가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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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어른 - 울지 않는 아이가 우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울지 않는 아이가 우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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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는 말에는
어떠한 것도 용서해야 한다.
여자가 저지른 잘못에
그렇게까지 놀라지 말지니.

여자의 거짓말, 여자의 변덕, 여자의 방종은
여자가 입은 기모노의 꽃과 새 무늬처럼
모두 여자의 아름다움이니
칭찬하며 바라보아야 하는 것.

훔치고 속여도 비난하지 말라.
남의 눈을 속여가며 여자들이
다른 남자를 몰래 만나도
질투하거나 체면 운운하지 말라.
언제 어떤 경우에도 관용을 베풀라.
마음을 너그러이 하라, 여자야말로 꽃 중의 꽃
하나, 사랑의 기술을 모르는 가짜 여자
그 여자는 경멸하라.
그들은 여자이며 여자가 아니니.

나는 가을꽃을 좋아한다.
가을꽃은 바람을 품고 있다.
억새도 오이풀도, 들판에서 횡횡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을 바라보면 자유로운 기분이 든다.
바짝 마른 느낌이 좋다.
색감이 빠진, 깊은 아름다움.
시들지 않았는데 시든 것처럼 보이는 정취도 좋아한다.
역시 자유로운 기분이 든다.
그 자유로움은 무엇일까. 마음을 활짝 연 사람의 자유로운. 투철한 마음과 맑은 눈, 나그네 같은 여유로움과 늘 거기에 어려 있는 고독.
가을꽃 같은 여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드넓은 곳에 피어있는 그 불안함이 찡하다.
우뚝, 가녀리지만 강하고 당차게 피어 있다.
가을꽃은 몸이 푸르르 떨릴 만큼 섹시하다.

남성 친구와 연인의 차이는 육체관계의 유무에 있지 않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육체관계는 도처에 존재하고, 그것까지 포함한 철벽 같은 우정도 존재한다.
연재의 관점에서 보면 그런 상황은 때로 절망적이지만, 우정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때로 멋진 일이다.
그러니 남성 친구와의 관계에서 금기시해야 할 것은 섹스가 아니다.
대게는 마음먹기 나름이니 금기는 애당초 각자의 마음속에만 있을 뿐이다.
세상에서는 잤느냐 안 잤느냐를 꽤나 중요시하는 것 같은데, 참 묘한 일이다.

인생에는 특별한 순간이 있다.
아주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그런 순간을 당시에는 모른다.
그래서 더욱 아름답고 슬픈 것이다.
가령 유명한 호텔의 바와 레스토랑에서, 카페에서, 거실에서, 침실에서 있었던 수많은 특별한 순간이 이 소설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하지만 일종의 애정 속에 그려져 있다.

모든 아이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권태로워한다.
아름다운 책과 마찬가지로 절망에 젖어 있는 것이다.
세계를 미쳐 상대화하지 못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이야기 하나하나가 마치 구슬처럼 투명하고 딱딱하고 고립되어 있다.
그런 이야기를 읽는 것은 더 없는 쾌락이다.

나무처럼 커다란 램프 갓 아래에서 밴더데켄 언니가 동생들에게 읽어준 이야기. 이야기가 끝나자 동생들은 말했어요.
"또 읽어줘, 응? 언니."
그런데 처음 그 이야기를 들은 다이애나 혼자만 이렇게 말했지요.
"둘이 다시 만나서 정말 잘됐다."
‘어린이의 정경’을 읽고 난 후, 자신이 행복한 다이애나가 되어 있다는 사실에 모두들 깜짝 놀랄 것이다.

여행이란 몸에 지닌 것으로 결판이 난다.
자신을 위해 마련한 것도 아니고, 있을 곳이 일정하지도 않은 장소에서, 가족도 없는, 자신의 과거나 미래와도 이어지지 않은 장소에서 그 며칠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머리와 마음과 몸과 가방 하나, 그 홀가분함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내 인생에 무언가 예정한 일은 없는데, 예정에 없던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은 종종 있어 우습다.
예정이 없는데, 예정에 없는 일은 있다니.

어떤 음악이 특정한 시간과 장소, 또는 사건과 연결되는 일도 있다.
기억이란 완강한 것이라서, 음악을 들을 때마다 단박에 밀려와 현재를 위태롭게 한다.

음악은 늘 곁에 있었다.
비처럼 내려와 느끼고 생각하기 전에 내게 스며든다.
음악에서 힘을 얻기도 하고 동요하기도 하면서 마음이 움직인다.
그 결과 어떤 에너지가 생긴다.
내일도 또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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