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는 말에는 어떠한 것도 용서해야 한다. 여자가 저지른 잘못에 그렇게까지 놀라지 말지니.
여자의 거짓말, 여자의 변덕, 여자의 방종은 여자가 입은 기모노의 꽃과 새 무늬처럼 모두 여자의 아름다움이니 칭찬하며 바라보아야 하는 것.
훔치고 속여도 비난하지 말라. 남의 눈을 속여가며 여자들이 다른 남자를 몰래 만나도 질투하거나 체면 운운하지 말라. 언제 어떤 경우에도 관용을 베풀라. 마음을 너그러이 하라, 여자야말로 꽃 중의 꽃 하나, 사랑의 기술을 모르는 가짜 여자 그 여자는 경멸하라. 그들은 여자이며 여자가 아니니.
나는 가을꽃을 좋아한다. 가을꽃은 바람을 품고 있다. 억새도 오이풀도, 들판에서 횡횡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을 바라보면 자유로운 기분이 든다. 바짝 마른 느낌이 좋다. 색감이 빠진, 깊은 아름다움. 시들지 않았는데 시든 것처럼 보이는 정취도 좋아한다. 역시 자유로운 기분이 든다. 그 자유로움은 무엇일까. 마음을 활짝 연 사람의 자유로운. 투철한 마음과 맑은 눈, 나그네 같은 여유로움과 늘 거기에 어려 있는 고독. 가을꽃 같은 여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드넓은 곳에 피어있는 그 불안함이 찡하다. 우뚝, 가녀리지만 강하고 당차게 피어 있다. 가을꽃은 몸이 푸르르 떨릴 만큼 섹시하다.
남성 친구와 연인의 차이는 육체관계의 유무에 있지 않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육체관계는 도처에 존재하고, 그것까지 포함한 철벽 같은 우정도 존재한다. 연재의 관점에서 보면 그런 상황은 때로 절망적이지만, 우정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때로 멋진 일이다. 그러니 남성 친구와의 관계에서 금기시해야 할 것은 섹스가 아니다. 대게는 마음먹기 나름이니 금기는 애당초 각자의 마음속에만 있을 뿐이다. 세상에서는 잤느냐 안 잤느냐를 꽤나 중요시하는 것 같은데, 참 묘한 일이다.
인생에는 특별한 순간이 있다. 아주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그런 순간을 당시에는 모른다. 그래서 더욱 아름답고 슬픈 것이다. 가령 유명한 호텔의 바와 레스토랑에서, 카페에서, 거실에서, 침실에서 있었던 수많은 특별한 순간이 이 소설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하지만 일종의 애정 속에 그려져 있다.
모든 아이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권태로워한다. 아름다운 책과 마찬가지로 절망에 젖어 있는 것이다. 세계를 미쳐 상대화하지 못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이야기 하나하나가 마치 구슬처럼 투명하고 딱딱하고 고립되어 있다. 그런 이야기를 읽는 것은 더 없는 쾌락이다.
나무처럼 커다란 램프 갓 아래에서 밴더데켄 언니가 동생들에게 읽어준 이야기. 이야기가 끝나자 동생들은 말했어요. "또 읽어줘, 응? 언니." 그런데 처음 그 이야기를 들은 다이애나 혼자만 이렇게 말했지요. "둘이 다시 만나서 정말 잘됐다." ‘어린이의 정경’을 읽고 난 후, 자신이 행복한 다이애나가 되어 있다는 사실에 모두들 깜짝 놀랄 것이다.
여행이란 몸에 지닌 것으로 결판이 난다. 자신을 위해 마련한 것도 아니고, 있을 곳이 일정하지도 않은 장소에서, 가족도 없는, 자신의 과거나 미래와도 이어지지 않은 장소에서 그 며칠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머리와 마음과 몸과 가방 하나, 그 홀가분함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내 인생에 무언가 예정한 일은 없는데, 예정에 없던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은 종종 있어 우습다. 예정이 없는데, 예정에 없는 일은 있다니.
어떤 음악이 특정한 시간과 장소, 또는 사건과 연결되는 일도 있다. 기억이란 완강한 것이라서, 음악을 들을 때마다 단박에 밀려와 현재를 위태롭게 한다. … 음악은 늘 곁에 있었다. 비처럼 내려와 느끼고 생각하기 전에 내게 스며든다. 음악에서 힘을 얻기도 하고 동요하기도 하면서 마음이 움직인다. 그 결과 어떤 에너지가 생긴다. 내일도 또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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