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이 사라진 시대의 문학 - 1987년 이후 문학 20년, 종언인가 진화인가? 아우또노미아총서 13
조정환.정남영 외 지음 / 갈무리 / 200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은 "'문학으로 사회를 움직일 수 있는 것처럼 보이던 시대, 문학이 윤리적 지적인 과제를 짊어지기 때문에 영향력을 갖는 시대는 기본적으로 끝났다'고 단언하게 된다. 고진은 "이러한 상황의 원인을 네이션-스테이트가 세계각지에 이미 확립된 것에서 찾는다. 즉 문학이 더 이상 네이션으로서의 동일성을 상상적으로 만들어낼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진이 긍정하는 것은 "근대문학의 불가능성을 확인하면서 문학에 대한 절망과 절필로 나아가는 흐름이다."(93쪽)
 민중이 사라진 시대의 저자들은 이 지점에서 문제를 제기하면서 시작한다. 저자는(조정환)은 무엇이 근대문학의 종언을 가져오고 있는지, 그것이 문학자체의 종언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는것인지등의 물음을 탐구하기 위하여 사회의 재구성, 계급재구성에 주목하여 논의를 전개해나간다.  결론적으로 그것은 '민중의 소멸과 다중의 출현'이다.

그래서 저자(조정환)은 [1987년 이전 문학과 능동적 민중],[민중이 사라지는 징후들:1987~1997],[다중의 출현과 문학의 진화:1997~2007]으로 순서로 논의를 전개하면서 계급 재구성의 변화와 이에 상응하여  출현했던 문학의 역할과 위치를 조망한다. 그리고 현재의 사회의 주체성을 다중의 출현으로 보면서, 삶-정치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삶-문학론을 [문제와 전망]으로서 제시한다. 즉 저자의 결론은 근대문학의 종언은 문학자체의 종언이 아니라 오히려 삶-정치와 삶-문학으로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읽어야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외에도 정남영의 <비평이란 무엇인가>라는 글도 읽어봐야 될 것 같다. 그리고 6개의 비평글들, 그리고 마지막에 있는 조정환의 <민중이 사라진 시대의 문학>을 읽어봐야 될 듯하다. 1부의 좌담 <근대문학의 종언과 종언 이후의 문학>은 [문학은 더이상 불가능한가],[새로운 가능성의 징후들-상상력,서정, 감각, 익살], [카이로스 비평의 시간]의 순서로 좌담을 진행하고 있다.  산만하지 않게 자신의 문제의식들이 각각 좌담을 통해서 흘러나오고 있는 것 같고, 실제 이야기에 참여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아쉬운 것은 몇 개의 철학적 개념들, 가령. 잠재성(virtuality)와 초험적 장(transcendental field)과 같은 내용에 익숙하지 않다면, 좀 어려울 수도 있겠다. 이러한 개념들에 대한 설명이 주석에서 처리되었다면, 독자가 좀 더 사고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자극과 동기부여가 될 수 있었을 텐데, 그에 대한 설명이 없어서 좀 아쉬운감이 든다. 좌담에 참여한 저자들에게는 이러한 공통적인 논의기반이 있겠지만서도, 호기심과 막 떠오르는 문제의식으로 책을 집어든 독자에게는 저자들과 같은 논의의 공통기반이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한 좌담이라는 형식에 그러한 개념에 대한 설명을 요구한다는 것도 무리일테다. 관심있는 독자라면, 동기부여로 삼고 이에 대한 내용을 스스로 찾아가는 것도 재미있을 듯 싶다. 어쨋든 좌담에서는 각각의 주제에 대한 논의와 함께 2부에서 읽게 될 각각의 비평글에 대한 소개및 핵심을 전달하기도 해서 2부에 있는 5개의 비평글에 대한 내용을 좀 더 잘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처음부터 읽어도 상관없겠지만, 2부를 먼저 읽고 1부를 읽어도 좋을 듯싶다. 

읽어가는 중에 문제의식으로 드는 것은, 내가 문학에 문외한이라서 그런지 "문학이란 무엇일까"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전공자들에게는 상투적일 수 있어도 나에게는 참신한 것일테다. 나아가 '삶-문학은 여타의 철학이나 정치학, 사회학과 어떠한 차별지점을 갖을 수 있는지, 다중의 출현이라는 시대의 삶-문학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역할이 무엇인지'하는 문제의식을 갖게되었으며, 책에서는 좌담에서의 삶-문학의 가능성과 이에 비추어본 비평글들이 실려있는데, 그렇다면, 삶-문학에서 독자의 역할과 위치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또  트렌드 문학으로 빠지지 않기 위해서 삶-문학의 활동으로서 어떠한 구체적 양태가 있을 수 있는지 하는 문제의식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는 문학을 역시 계몽의 역할로 이해하고 있는 것인가?)

자극과 궁금증을 가져다 주는 책이 좋은 책이라 했던가? 그렇다면, 이 책은 나에게 '문학이란 무엇일까?', "삶-문학은 무엇일까?'하는 문제의식을 심어준 것에 대하여 고마움을 받아야 될런지 모르겠다.

 아마도 삶-문학의 가능성, 그것은 이 책 자체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좌담 진행을 위한 저자들의 모임과 논의들, 그리고 각 비평에 대한 논의들, 그러한 활동들이, 저자들의 삶에서 나온 삶-문학이라고 볼 수는 있지 않을까?
 

아직 조정환의 <카이로스의 문학>을 사놓고 읽지는 못했지만, 꼭 읽어봐야 겠다. (과연 그럴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그리고 책에 나왔던 여러 저자들, 여러 소설들, 특히 박민규의 소설들을(ㅎㅎ)...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근대문학의 종언
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 / 비(도서출판b) / 2006년 4월
20,000원 → 18,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00원(5% 적립)
2007년 07월 08일에 저장
품절
민중이 사라진 시대의 문학- 1987년 이후 문학 20년, 종언인가 진화인가?
조정환.정남영 외 지음 / 갈무리 / 2004년 6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2월 24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07년 07월 08일에 저장



2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장 2장 요약 노트]

 개방성, 철저하고 꼼꼼하게 토론의 과정을 거쳐야함, 그것은 진리에 다가가는 과정이며 유용함은 이로부터 시작됨

“전체 인류 가운데 단 한 사람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일은 옳지 못하다. 이것은 어떤 한 사람이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일은 옳지 못하다. 이것은 어떤 한 사람이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고 나머지 사람 전부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일만큼이나 용납될 수 없는 것”

1장 머리말

 이 책은 자유의지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자유 또는 사회적 자유를 다루고 있다. 즉 사회가 개인을 상대로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문제를 다룬다고 밝히고 있음

정치적 독재의 방지
인간다운 삶을 유지

곧 개인의 독립성과 사회의 통제 사이에서 적절한 접점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누구가에게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제약을 가할 힘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서 행동의 규칙은 법에 따라 정해져야 한다. 그리고 법이 정하기 어려운 세세한 부분들은 다수의 의견에 따라야 한다.

사회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 또는 사회를 움직이는 중요한 세력이 실질적으로 규칙을 만든다.

 “자기식대로 인생을 살아가다 일이 잘못돼 고통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설령 그런 결과를 맞이하더라도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게 되면 다른 사람이 좋다고 생각하는 길로 억지로 끌려가는 것보다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 인간은 바로 그런 존재이다.”  

2장 생각과 토론의 자유

 1/오류(실수) 가능성
 인간의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고 상대방 생각 및 의견을 보장해야 한다. 만약 전체 인류 중에 한 사람이 의견이 다르다고 무시하고 억압하는 것은 한 사람이 전체 인류의 의견을 무시하는 것과 같다. 인류가 발전했던 것은 인간의 지성의 어떤 ‘힘’ 때문에 비롯된 것은 아니다. 인류가 발전했던 것은 자신의 잘못을 시정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이다. 이것은 토론과 경험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다. 경험을 가지고 토론을 하면서 과오는 시정될 수 있음

 토론은 보다 생각, 그 생각에 대한 자신감을 갖기 위한 수단이다. 즉 검증의 과정이다. “검증의 문이 열려 있으면 언젠가 우리가 이성을 통해 더 높은 진리에 이르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어도 좋다”

 2/진리와 효용
 훌륭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진리는 유용할 수 밖에 없는 것, 효용의 문제는 진리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비판적 주장이 전체 이익에 위배되는 경우, 즉 그것이 유용하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토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정당화 되서는 안 된다. 전체 이익의 문제로 억압하는 것이 정당화 되서는 안 된다. 오히려 유용성을 위해서는 토론이 진행되어야 한다. 사례-소크라테스, 예수, 아우랠리우스

첫 번째 논점: 기존의 생각이 옳고 다른 의견이 틀린 것이라 가정 
두 번째 논점: 기존의 생각이 틀리지 않고 옳은 것이라고 가정(89p까지)
세 번째 논점: 각각 어느 정도씩 진리를 담고 있다고 가정, 즉 통설이 완전히 채우지 못하는 진리를  다른 내용인 이설이 반드시 필요하다. 대립하는 것들을 화해시키고 결합시켜 가야함(89~ )

 자유토론을 하지 않아서 생기는 부작용은 어떤 주장에 대하여 근거가 없는 지적 측면  뿐만이 아니라 도덕적 측면에서도 나타난다. 자유토론이 없다면 주장의 근거뿐만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의미도 모를 것이기 때문

그리스도교의 토론부재 비판? 그리스도교의 교리에서 완전무결한 규칙을 찾으려는 시도는 무모하다. 그리스도교 교리 못지 않게 다른 모습의 윤리체계도 공존해야 한다.    

확정된 결론은 깊은 잠에 빠진다.-> 대부분의 실수가 의심할 여지없이 확실하다고 간주하는데서 비롯된다.

네 가지의 논의로부터 다른 의견을 가질 자유와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인간의 정신적 복리를 위해 중요하다는 사실

 첫째, 침묵을 강요당하는 모든 의견은 그것이 어떤 의견인지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없다 하더라도 진리일 가능성이 존재한다.

 둘째, 침묵을 강요당하는 의견이 틀린 의견일지라도 일정부분 진리를 담고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대립하는 의견을 마주하게 해야 한다.

 셋째, 통설이 전적으로 옳은 것이라고 가정해도 토론을 통하여 그 의미를 이해하고 합리적 근거도 면밀하게 해야 한다.

 넷째, 토론은 통한 합리적 근거와 이해가 없으면 아무런 영향력을 갖지 못하게 된다.

 기타, 공정한 토론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논의에 관하여, 이런 틀의 한계설정을 설정하기 어려움 존재, 또한 이런 틀은 상대적으로 소수자들에게 불리하다.

 즉 자신과 반대되는 사람들의 의견을 진지하게 듣고 정직하게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도덕률위에서 토론은 진행되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의 단상 동문선 현대신서 178
롤랑 바르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동문선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부재

사랑의 부재는 일방통행이다.

그것은 남아있는 사람으로부터 말해질 수 있는 것이지,

떠나는 사람으로부터 말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항상 현존하는 나는 끊임없이 부재하는 너 앞에서만 성립된다.

다시 말하면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을....."

<롤랑바르트의 '사랑의 단상' 中>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 priori], [transcendental(tranzcendental)], [transcendent(trazcendent)]의 한글번역은 번역자마다 상이하여 혼란스러운데, 주요 한글 번역본의 번역어 선택을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번역자(출판사)


 a priori


transcendental(tranzcendental)


transcendent(tranzcendent)


최재희(박영사)


선천적


선험적


초험적(초월적)


김석수(책세상)


선험적


초월적


초재적


백종현(아카넷)


선험적


초월적(아주 드물게 ‘초험적’, ‘초월론적’)


초험적

 
 여기에서 김석수 번역본(순수이성비판 서문)과 백종현 번역본은 번역어 사용을 밝히고 있다.

*김석수 판본은174쪽 옭긴이주 5번을 참조

*백종현 번역본은 137~148쪽 ‘번역어 표’를 참조.

그러나 최재희 번역본은 번역어 사용을 밝히고 있지 않아 몇 구절만 가지고 확인한 것이다. 최재희 번역본에 주목해봐야 할 것은 transzendent의 번역어 문제이다.  박영사 263쪽(B352)에서는 <초험적>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는데, 모두 transzendent의 번역어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가능한 경험의 울타리 내에서만 적용되는 원칙을 내재적(immanent)인 원칙이라 하고, 반대로 가능한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는 원칙을 초험적(transzendent)인 원칙이라고 말하고자 한다."

그런데 263쪽에서 <초월적>이라는 용어도 등장한다. 그러나 이것도 또한 ‘transzendent’의 번역어이다. 예를 들면,

"그러므로 선험적과 초월적은 동일하지 않다."  (Daher sind transzendental und transzendent nicht einerlei")

  박영사 번역본에서의 [transzendent]  번역어 사용은 좀 더 알아봐야 될 듯하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ahsh 2010-05-26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유익한 작업을 하셨습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