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아는 남자 진구 시리즈 2
도진기 지음 / 시공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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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이 한국형 추리소설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1)시공간·문화적으로는 현대 서울을 배경으로 하고, 2)현재 대한민국의 법을 집행하는 판사가 전문적인 법적 지식을 뒷받침하여 썼기 때문이리라. (추리소설을 쓰는 판사는 일본에도 없다고 한다.)

  주인공인 진구라는 인물도 주변에서 한 명 있을 법한, 머리 좋은 백수 친구다. 딱히 정의감이 투철한 부류도 아니고 비루한 처지의 자신을 위해서만 스스로의 재능을 투입하는 개인주의적인 인물. 여기 등장하는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구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소위 빽없고 돈도 없고 가진 건 머리 밖에 없는 우리의 주인공은 자신의 합리적 이성을 총동원해서 용의선상의 올가미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경찰은 쟝발쟝을 쫒는 자베르 경감처럼 집요하게 진구를 노리며 공권력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목을 죄어온다. 요즘 대중매체에서 유행하는 포맷에 빗대보자면, 이 소설은 마치 개인과 공권력 사이의 한국 사법 서바이벌 프로그램 같다. 

  현대를 살아가는 입장에서 이성을 제대로 발휘하면서 살기보다는 어리석음과 욕망에 눈이 어두워 사리분별을 제대로 못할 때가 많다. 이런 소설을 많이 읽어서 잠시나마 경각심을 갖고 주변 사물이나 현상을 한 번쯤 음미하며 사고할 수 있으면 좋겠다. 덧붙여 진구가 활약하는 다른 사건들도 많이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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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돌아왔다 - 2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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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돌아왔다」 : 앙큼하고 잔망스러운 중학생 계집애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가정 내 권력구조의 서사. 그런데 중학생이라고는 볼 수 없는 어려운 어휘 선택이랄까. 뭐, 거기서 오는 위화감이 더 돋보인다고 할 수 밖에.


「이사」 : 김영하는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많이 이사를 다녔을 것이다. 그러한 생활체험이 이 소설에 지나가는 황사처럼 어느 정도 묻어있을까? 


「보물선」 : 몽상가의 어긋나는 인생.  


「그림자를 판 사나이」 : 혼자사는 소설가(글밥 먹는 이)의 그림자를 훔쳐본 듯한 느낌. 애잔하다. 


「너를 사랑하고도」

왜 하필 그때였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후로도 모욕을 받거나 궁지에 몰리면 여지없이 그 이미지가 집요하게 점멸하였다. 그러는 바람에 나는 모욕을 되갚아주거나 궁지를 탈출할 기력마저 잃어버리곤 하였다. 얼굴도 없이 오로지 몸통만으로 된 그 이미지는 마치 무슨 토르소 조각 같았다. 위기의 국면, 모멸의 순간마다 그 토르소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뭘 그 정도 가지고 그래? 힘내라구! 175


냉소를 고급 넥타이쯤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실제로는 아무것에도 냉소할 수 없는 사람이면서 입만 열면 찬바람이 쌩쌩이었다. 그게 한갓 포즈인 줄 뻔히 알면서도 나는 내색하지 않았다. 남자들은 어수룩하여 쉽게 모든 것을 들키고 만다. 영악한 여자들은 그걸 눈감아주는 대가로 많은 것을 얻는다. 175


남자들이 왜 기를 쓰고 성공하려고 하는지 알아?

몰라요.

거절당하지 않기 위해서야.

177


넌 이해 못 해.

노력해볼 테니 얘기해봐요.

187


야 인마, 냉소적인 인간이 함부로 진지해지면 큰일나. 갑자기 인생이 정색을 하고 달려들거든. 지금이라도 의원한테 가서 빌어. 따라가겠다고. 그리고 거기 가서 계속 냉소적으로 살아. 그게 좋아. 192


읽고 또 읽어도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어설픈 불가지론자가 되어 나는 토익 책을 펼쳐들었다. 역시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취업을 하면 뭔가 나아지겠지. 나는 애써 낙관적으로 생각하며 한 단어 한 단어에 집중하며 앞으로 전진했다. 어휘와 문장의 숲에서 벌이는 이 전투가 과연 언제 끝날지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다. 197


밑줄 그은 부분이 많았던 단편.



너의 의미

오랜만에 도서관에 가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뇌 속에 숨어있던 작은 성기가 힘차게 발기하는 느낌을. 저 지중해 어딘가에 있다는 누드비치에 처음 당도한 관광객처럼 독자들은 도서관에 들어서자마자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 책은 밝게 웃으며 어서오라고 우리를 향해 손짓한다. 요염한 그 책들은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암시를 풍기면서 손만 대면 가랑이를 벌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르가슴이 멀지 않았다. 바야흐로 우리의 뇌는 팽창하여 부풀어오르는 중이다. 우리는허겁지겁 아무 책이나 뽑아 펼쳐댄다. 외설스런 장면이다. 그러나 이 누드비치의 풍경이 눈에 익으면 어느새 정신의 성기는늘어지고 광대무변해보였던 가능성의세계는 일 제곱미터 면적의 책상으로 한정된다. 졸음이 쏟아지거나 식욕이 생긴다. 햇빛을 오래 보지 못한 사람들의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퀴퀴한 냄새도 비로소 코를 간지럽힌다. 그때쯤 되면 사람들은 잡지 서가를 어슬렁거리기 시작한다. 아직 낡지 않은 것들이 주는 달콤함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201 202


도덕적으로 살면 걸리적거리는 게 없다. 주차위반 딱지도, 죄의식도, 전과도 없다. 도덕이라는 게 별건가. 행동방식을 규정하는 것이다. 그게 잘돼 있으면, 그리고 그게 그 사회의 도덕과 비슷하면 그것처럼 편리한 게 없다.


약간의 불편만 감수하면 더는 피곤한 게 없는 삶. 그런 사람에게 인생이란, 다소 예외가 있기는 해도, 경부고속도로 같은 것이다. 규정속도를 지키면서 꾸준히 가기만 하면 목적지에 다다르는 것이다. 


나는 도덕적인 삶만이 순탄한 인생의 동반자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예술가의 삶이 어찌 범인의 그것과 같으랴. 우리 예술가들은 위반을 통해서 배우고 고난을 딛고 성숙하는 존재들이다, 이거지.

210


처음 그녀를 만났던 도서관으로 돌아갔다. 이렇게 자주 오게 되면 도서관도 더이상 에로틱하지 않다. 들어서자마자 목표한 책으로 그대로 돌진하게 된다. 일체의 전희도 애무도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중년의 섹스처럼 되어버린다. 228 


도서관의 에로스를 이렇게 잘 표현한 작품이 있을까 싶다. (혹시 있다면 알려주시라.)



마지막 손님

243

모든것에 불투명한 태도를 보이면서 심지어 그것을 멋으로 생각하는 남자들


크리스마스 캐럴

사죄 같은 걸 받자고 하는 얘기 아니야. 너희가 사죄할 게 뭐 있어? 그때의 내가 나 자신을 걸레로 여기고 있었다는 게 사실 가장 큰 문제였어. 여자가 자기를 걸레로 여기고 있는데 누가 사람 대접을 해주겟어? 269


아마, 말들은 안 했지만 그날 진숙을 향해서, 태연히 그들의 치부를 드러냈던 진숙에 대해서 살의를 느끼지 않은 자는 없었을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은 진숙이 피살되었을 때, 모두 자기손을 찬찬히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내가, 나도 모르는 새에 칼질을 해댄 것은 아니었을까. 지난 밤에 나는 정말로 아무 일 없이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 것일까. 사실 그 동안 그들의 꿈속에서 진숙은 여러 번 살해되었다. 그녀의 피는 끝이 없었다. 속죄는 가능하지 않았다. 짓지 않은 죄는 참회할 수 없었다. 죽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참회할 수 있단 말인가. 

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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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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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싸움이나 하라고 서울로 온 줄 아냐?”

“싸움이 아니라 스포츠예요.”

“그래, 나도 예술이라고 생각하는데, 남들은 춤쟁이라고 하더라. 그게 세상이야!”

“세상이 뭐라고 해도, 아버지는 춤추셨잖아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이 날 안 받아줬다. 춤은 그나마 다른 사람하고 함께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이었고. 사지 멀쩡한 놈이 뭐가 아쉬워서 그런 쌈질을 하겠다고······.”

“다른 사람하고 별로 잘 산 것 같지도 않은데요.”

짝!

아버지가 내 뺨을 내리쳤다.

“아버지가 제 몸 같았으면 춤······ 안 추셨겠네요.”

짝!

아버지는 다시 한 번 내 뺨을 내려쳤다. 예상했고 피하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가 그런 춤을 춰서, 세상이 더 받아주지 않은 것 같은데요.”

짝! 짝! 짝!

볼이 얼얼했다. 삼촌이 나 대신 울었다.
“그런 춤! 고얀 놈.”

아버지는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소설가. 내 꿈이 아니라 아버지의 꿈이었다. 그런데 알다시피 나는 소설의 ‘소’자도 모른다. 가끔은 만날 보는 글자가 생소해 보일 때도 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내 몸에 붙지 않는 소설가. 저 그거 관심 없습니다.

89-90쪽,「종이 한 장 차이」

 

 

“아닌 걸 아니라고 어떻게 보여줘? 지나가는 아저씨들 붙잡고 나랑 그런 사이 아니죠, 그래? 맞는 걸 증명하는 것보다 아닌 걸 증명하는 게 더 어렵더라.

94쪽,「종이 한 장 차이」

 

 

“한 번, 한 번이 쪽팔린 거야. 싸가지 없는 놈들이야 남의 약점 가지고 계속 놀려먹는다만, 그런 놈들은 상대 안 하면 돼. 니가 속에 숨겨놓으려니까, 너 대신 누가 그걸 들추면 상처가 되는 거야. 상처가 되기 싫으면 그냥 그렇다고 니 입으로 먼저 말해버려.

“뭐가요!”

“그 '뭐' 말이야, 새끼야. 니 나이 때는 그 뭐가 좆나게 쪽팔린데, 나중에 나이 먹으면 쪽팔려 한 게 더 쪽팔려져. 나가, 새끼야. 나 졸려.”

136-137쪽,「원 투 차차차, 쓰리 투 차차차」

 

 

이 세상이 나만 당당하면 돼, 해서 정말 당당해지는 세상인가? 남이 무슨 상관이냐고? 남이 바글바글한 세상이니까! 호킹 박사처럼 몇 안 되는 모델을 두고 그런 사람도 있다고 한다면, 나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다. 1등만이 특별한, 나머지는 1등의 언저리로 밀려나 있어야 하는······. 내 아버지는 호킹 박사 같은 1등 대접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높기만 한 지하철 손잡이를 마음 편하게 잡고 싶을 뿐이다. 떳떳한 요구조차 떳떳하게 하지 못하게 요구해야 하는 사람이 내 아버지다. 내 입으로 말하라고? 아버지는 이미 몸으로 말하고 있다. 그걸 굳이 아들인 내가 확인사살 해줘야 하나? 자기들은, 내 아버지는 비장애인입니다, 하고 다니나? 좆같다, 씨발. 내가 부러뜨린 갈비뼈만 아니었으면 문병 안 갔다. 똥주, 이 인간은 어쩌면 그렇게 한 대 패주고 싶은 말만 하는지. 138쪽,「원 투 차차차, 쓰리 투 차차차」

 

 

장애라는 말에 아버지 어깨가 잠시 흔들렸다.

사람한테는 죽을 때까지 적응 안 되는 말이 있다. 들을수록 더 듣기 싫고 미치도록 적응 안 되는 말 말이다. 한두 번 들어본 말도 아닌데, 하고 쉽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가슴을 치는 말은 한 번 두 번 세 번이 쌓여 뭉텅이로 가슴을 짓누른다.

196쪽,「T.K.O. 레퍼리 스톱」

 

 

“저도 아버지가 항상 신나게 추는 줄 알았어요.”

“내가 춤을 추면 사람들이 자꾸 웃어대니까, 신나지는 않았다······.”

“······.”

“그 영감이 ‘네 몸땡이는 멀쩡한데, 네 정신 상태가 문제야.’ 했을 대는 처음으로 대들었다. 당신이 내 몸 같았으면 그렇게 말했겠냐고. 그랬더니 내가 숙소에서도 안 나오고, 남하고 어울리지도 않으니까 내 모습도 볼 수 없다고 혀를 차더라.”

“예?”

“너도 잘 모르겠지? 그 영감이 그렇게 말을 어렵게 한다니까. 끼리끼리 만난다고 하잖아.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도 있고. ‘친구도 없는 인간이, 제 모습이 어떤지 알기나 하겠어.’ 그러는데, 그때 좀 알겠더라.”

“아······.”

확 와 닿지는 않았지만 그 의미는 알 것도 같았다.

“너, 친구 없다면서?”

“있어요······.”

“누구?”

“······.”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같은 반이었던 애들은 많은데, 이름을 댈 수 있는 애는 왜 없지? 처음에는 그 애들이 나를 피했던 것 같고, 나중에는 내가 피했던 것 같다. 기분 좀 그러네. 이름을 댈 수 있는 친구라. 혁주? 이 똘아이 새끼는 왜 갑자기 생각나는 거야.

“그 영감 덕에 민구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하고도 좀 어울렸다. 죽었는데 어떨 때는 살아 있는 사람처럼 목소리가 들려. 만날 나만 보면 ‘너 그렇게 살지마.’ 했는데, 지금도 가끔 그 목소리가 들린다니까. 산 사람이면 시끄럽다고 뭐라고나 하지. 죽은 영감이 내 속에 척 들어앉아서 자꾸 나를 혼낸다. 하하하.”

“그런 게 어디있어요?”

“근데, 그런 게······ 있더라. 나 죽으면, 너도 나 원망할래?”

“아버지는 그 할아버지 원망해요?”

“가끔. 내 정곡을 얼마나 꾹꾹 찔렀나 몰라. 그래도 좋은 영감이었지.”

“그럼 됐지 뭘요.”

“완득아.”

“네.”

“우리 서로 인정하고 살자.”

“뭘 인정해요?”

“너는 내 춤을 인정해주고, 나는 네 운동을 인정해주고. 우리 몸이 그것밖에는 못 하는 모양이다.”

아버지는 더 이상 킥복싱을 반대하지 않겠다는 말을 이렇게 했다. 저 얘기를 하려고 죽은 영감까지 들먹이며 폼을 잡았나. 하긴 그렇게 반대를 했으니······.

“흠, 저 아버지 춤추는 거 별로 안 싫어했어요. 어렸을 때 삼촌 따라 자이브 추다가 아버지한테 맞아서 그랬지.”

“춤춘다고 때렸냐? 하도 틀리니까 때렸지. 누굴 닮아서 그렇게 몸치냐?”

나는 안다. 내가 춤을 춰서 때렸다는 걸. 아버지는 자신의 몸도 춤도 내게 물려주기 싫어했다. 누가 나를 보며 웃는 것조차도.

“아버지 닮았나 보죠.”

“하긴, 내가 춤을 안 췄으면, 복싱 좀 했을 거다. 리듬감이라는 게 꼭 춤출 때만 필요한 게 아니야. 운동도 다 리듬감이 있어야 돼.”

아버지가 똥주하고 너무 어울린 모양이다. 아버지한테 슬슬 똥주가 보이기 시작한다. 난감하다.

“녀석······ 다리 긴 것 좀 봐. 근사하게 컸네······.”

아버지가 내 허벅지를 툭툭 친다. 근사하게 컸다는데 왜 가슴이 울렁거리는 거야. 아버지 눈이 갑자기 빨갛게 되는 바람에 괜히 나까지 눈이 아팠다.

지난봄, 똥주를 만났다. 그리고 똥주가 죽이고 싶을 만큼 싫었다. 그때 즈음 나는 킥복싱을 시작했다. 킥복싱은 미치도록 좋았다. 싫다와 좋다가 한꺼번에 내게 왔다. 싫어하는 사람을 하나님한테 고자질하러 교회를 찾았고, 좋아하는 운동을 하기 위해 체육관을 찾았다.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어, 누구와 대화해본 적이 없어 혼자 떠들 수 있는 교회를 찾았다. 내 몸을 언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몰라, 내 몸을 잘 움직여줄 수 있는 체육관을 찾았다. 어쩐지 아버지와 어머니도 새로 찾은 기분이다.199-203쪽,「T.K.O. 레퍼리 스톱」

 

 

아버지와 내가 가지고 있던 열등감. 이 열등감이 아버지를 키웠을 테고 이제 나도 키울 것이다. 열등감 이 녀석, 은근히 사람 노력하게 만든다.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영 나쁜 것 같지도 않은 게 딱 똥주다.

204쪽,「T.K.O. 레퍼리 스톱」

 

“그래서 죽도록 공부하는 거야?”

“너도 만날 맞으면서 또 운동하잖아, 네 꿈을 위해서. 나도 그래. 내 꿈을 위해서 죽어라고 공부하는 거야. 내가 나중에 편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미리 배워두는 거라고.

“그걸 꼭 대학 가서 배워야 하냐?”

“넌 꼭 체육관에 가서 운동해야 하니?”

“뭐?”

“자기가 배우고 싶은 게 있는 곳에서, 공부를 하든 운동을 하든 하는 거 아냐. 너 태권도장 가서 킥복싱 하겠다고 하면 누가 가르쳐줘? 아무 지식도 자격도 없이, 카메라 한 대 들고 전쟁터 누비면 다 취재할 수 있대?”

“하여간 말은 되게 잘해.”

“배울 거 다 배우고, 세상이 나한테 뭐라고 못 하게 만든 뒤에, 뛰어다닐 거야. 내 이름을 걸고 취재하러 다닐 거라고.” 211-212쪽,「첫 키스는 달콤하지 않았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니. 니가 나비처럼 우아하게 날 때 상대가 벌처럼 쏘면 어떡할래? 우아하게 날갯짓하게 누가 그냥 둔대? 잊지 마라. 침착하게 끊임없이 움직이는 거야. 방어하기 위해. 공격하기 위해. 힘껏 당긴 고무줄을 탁! 놓은 것처럼 빠르고 깊게.”

222-223쪽,「첫 키스는 달콤하지 않았다」

 

하―. 이 동네 집들 진짜 따닥따닥 붙어 있다. 내가 세상으로부터 숨어 있기에 딱 좋은 동네였다. 왜 숨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고, 사실은 너무 오래 숨어 있어서 두렵기 시작했는데, 그저 숨는 것밖에 몰라 계속 숨어 있었다. 그런 나를 똥주가 찾아냈다. 어떤 때는 아직 숨지도 못했는데 “거기, 도완득!” 하고 외쳤다. 술래에 재미를 붙였는지 오밤중에도 찾아댔다. 그래도 똥주가 순진하기는 하다······. 나를 찾았으면 자기가 숨을 차례인데, 내가 또 숨어도 꼬박꼬박 찾아줬다. 좋다. 숨었다 걸렸으니 이제는 내가 술래다. 그렇다고 무리해서 찾을 생각은 없다. 그것이 무엇이든 찾다 힘들면 ‘못 찾겠다, 꾀꼬리’를 외쳐 쉬엄쉬엄 찾고 싶다. 흘려보낸 내 하루들. 대단한 거 하나 없는 내 인생, 그렇게 대충 살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거창하고 대단하지 않아도 좋다. 작은 하루가 모여 큰 하루가 된다. 평범하지만 단단하고 꽉 찬 하루하루를 꿰어 훗날 근사한 인생 목걸이로 완성할 것이다. 233쪽,「못 찾겠다, 꾀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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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테리오스 폴립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데이비드 마추켈리 지음, 박중서 옮김 / 미메시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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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좋아하는 책이라 한 권 더 샀다. 이로써 아스테리오스&이그나지오 쌍둥이 세트가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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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유교수의 생활 애장판 1
야마시타 카즈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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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야마시타 카즈미가 어떻게 만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는지 뒷장에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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