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몸이었다 

서로 갈려

다른 몸 되었는데


주고 아프게

받고 모자라게

나뉘일 줄 

어이 알았으리


쓴 것만 알아

쓴 줄 모르는 어머니

단 것만 익혀

단 줄 모르는 자식


처음대로 

한몸으로 돌아가

서로 바꾸어

태어나면 어떠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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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소유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이 소설에는 내가 좋아해 마지않는 것들이 아주 많이 포함되었다. 쓰면서도 읽는 것이 더 즐거울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읽는 것보다 쓰는 것이 더 많은 자유가 있었고, 나는 그 자유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읽는 것보다 쓰는 것이 더 재미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느낌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다.(작가의 말 중에서)


박주영 씨의 『백수생활백서』 이 책은 책을 좋아하는 인물의 이야기인만큼 정말 수많은 다른 책들이 등장한다. 그 중에는 읽어본 책들도 있고 아닌 책들도 있다. 책 속의 책들을 소개해본다.


  인간은 살아 있기 때문에 집을 짓는다. 그러나 죽을 것을 알고 있기에 글을 쓴다. 인간은 무리를 짓는 습성이 있기에 모여서 산다. 그러나 혼자라는 것을 알기에 책을 읽는다. 독서는 인간에게 동반자가 되어준다. 하지만 그 자리는 다른 어떤 것을 대신하는 자리도, 그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는 자리도 아니다.

 (다니엘 페나크, 소설처럼)



 내 온 생애에 걸친 느릿한 작업, 그 침묵. 나는 마귀들인 아이들 앞에, 그들과 똑같이 신비에 넋을 잃고 서 있다. 나는 글을 쓰고 있다고 믿음으로써 단 한 번도 글을 쓰지 않았다. 사랑하고 있다고 믿음으로써 단 한 번도 사랑하지 않았다. 나는 닫힌 문 앞에서 기다리는 일 이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마르그리트 뒤라스, 연인)





 내 생애 처음으로, 나는 확신을 갖고 행동했다. 나의 소심함, 의심, 나의 아주 사소한 행동에 대해서도 변명하고, 나 스스로를 비방하고, 다른 사람들한테 나에게 불리한 구실을 제공하는 버릇, 이 모든 것이 각질이 되어 떨어져 나가듯 사라져버렸다. 나는 그전까지 위험과 고통에 직면하지만 미래를 예견할 줄 알고 그것이 불가항력이라고 느껴서 그때마다 그것들을 회피하는 그런 종류의 꿈을 꾸곤 했다.

나는 유리문을 밀고 들어갔다. 그는 신문에서 눈을 뗐다.

 (파트리크 모리아노, 서커스가 지나간다)


 이마에 커다란 상처 자국이 보인다. 어쩌면 시간의 흔적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삶에 대한 기억을 모두 상실하게 만든 저 우발적 사고 중 하나가 남겨놓은 흔적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오늘부터는 아무것도 기억하고 싶지 않다.(파트리크 모디아노, 잃어버린 거리)



 존 란체스터는 『아주 특별한 요리 이야기』에서 혐오는 진부한 애호가 도저히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자신을 세계와 분리시킨다고 했다. 그리고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굴복하겠다는 것, 다시 만족스럽게 죽겠다는 뜻이 되고, 혐오는 자신과 세계의 경계를 더 확실히 긋고, 분리된 사물을 명확히 해준다고 했다. 




 언젠가 책에서 읽었는데 너처럼 큰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사람이 묘한 정서 상태가 된다고 하더라. 그 책의 저자는 그것을 충만함의 우울이라고 표현했었지. 불행스럽게도 난 그것이 어떤 건지 잘 모르지만. 충만함의 우울. 아름답고, 어감이 좋은 말이다. 요셉이 말했던 '생기 부족증'보다는 인간적인 면이 더 느껴진다. (마르쿠스 베르너, 아버지의 연인)



난폭한 욕망은 멈출 줄 모른다. (와타야 리사,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







 그때 나를 구원해 준 것은 책이었어요. 도서관에 쌓인 수많은 책들. 그 책들은 내가 내 의지로 손에 들지 않으면 결코 문을 열어주지 않는 참된 친구였어요. 그들은 거짓말을 하는 법이 없거든요. 아니, 그 반대지요. 좋은 소설이란 완벽한 거짓말로 꾸며진 또 하나의 진실이니까요. 나는 책과의 만남을 통해 인생이 얼마나 멋진 것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외로움과 친해질 수 있었던 건 그 무렵이었죠. 

나는 책을 통해 혼자 노는 법을 익혀 나갔습니다. 그러자 점점 외로움이 즐거워졌어요. 도서관의 책들이 모두 완벽하지는 않다는 것도 알았지요. 도서관의 책을 거의 다 읽었을 즈음 깨달은 거예요. 그러나 그런 완벽하지 않은 소설들도 나름대로 재미있었습니다. 건방진 말인지 모르지만, 부족한 부분을 비평해 가며 읽으면 게임하는 것처럼 즐겁거든요.

 (츠지 히토나리, 사랑을 주세요)


그녀가 내 옆에서 책을 읽는다는 사실은 내가 그녀 곁에서 느끼는 기쁨을 맛볼 수 없게 했다. 책을 읽는 때의 그녀는 내 옆에 있는 것처럼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여기 있지 않았다. 이미 떠나고 없었다. 다른 곳에 있었다. 책을 읽는 동안 그녀가 머무르던 곳은 다른 왕국이었다. (파스칼 키냐르, 떠도는 그림자들)




 무언가를 하염없이 읽었나 보다. 2백 개가 넘는 문장에 밑줄을 그었는데 난 아직도 그 부분을 다시 읽지 않았다. 다시 읽다니. 아마 그럴 일은 앞으로도 다시 없을 것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소설 쓰기란 결국, 하찮은 것을 진지하게 새각하거나 진지한 것을 하찮게 생각하기 둘 중 하나다.' 소설을 위해 궁구하는 일 역시 마찬가지. 책을 읽으며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는 따위가 다 그렇다. 그렇다, 고 생각했다. (구효서,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


 지금 나는 발코니에서 우리 엄마가 나를 찾아오길 기다리고 있다. 엄마가 나를 찾으러 오실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나는 엄마를 생각한다. 가장 기억나는 것은 엄마가 커다란 갈색 눈을 지니고 있었고, 남자들을 울게 했던 여자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내게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으셨던 것도 기억한다. 그래서 여기 발코니에서 내 작은 가방과 함께 엄마를 기다린다. 이미 일주일이 지난 지 한참이 되었다.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날짜를 셀 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얗고 푸른 옷들이 더 이상 나에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마갈리 가르시아 라미스, 일주일은 칠일)


 소동파의 마음속의 대나무라는 책에 이런 얘기가 나와. 옛날에 글을 짓는 사람은 글에 능한 것을 '좋은 글'로 여긴 것이 아니라, 쓰지 않을 수 없어 쓴 글을 '좋은 글'로 생각했대. 산천의 구름과 안개, 초목의 꽃과 열매도 충만하고 울창하게 되어야 밖으로 드러나듯이, 마음속 생각이 충만하면 글은 저절로 써진다고.(2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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