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체크.당통의 죽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9
게오르그 뷔히너 지음, 홍성광 옮김 / 민음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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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다시피 우리같이 천한 사람에게는 덕이란 게 없어요. 그러니 그저 본능대로 행동할 뿐이죠. 하지만 제가 신사라면, 모자며 시계며 예복이 있고, 고상하게 말한다면, 그땐 저도 예의 바르게 행동하겠죠. 덕이란 참 멋지지요. 하지만 전 가난한 놈인걸요.-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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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제임스 단편집
헨리 제임스 지음, 한국 헨리 제임스 학회 엮음 / 우리책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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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쯤부터인지도 모를 정도로 긴 세월 동안, 그는 자기를 지극히 사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중략) 그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정중하게 귀를 기울였다. 다소 활기가 없다는 흠은 있을지 모르나 그가 지극히 예의바른 사람인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1쪽

당신아 아실 날이 오지 않기를 빕니다,라고 말한 그녀의 말을 떠올리자, 신음 소리가 입술 사이로 새어나왔다. 이 각성의 공포ㅡ이것이 안다는 일일 것이다. 그것에 닿으면 눈물도 얼어붙을 것만 같았다.-2쪽

그것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크게 우리를 도와주고 있는 거예요. 이미 끝나버린 거예요.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거예요. (중략) 전에는, 그것은 언제나 앞으로 찾아올 일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그것은 언제나 가까이에 존재하고 있던 거예요.-3쪽

바라보는 자신이 평범하니까 바라볼 수 있는 것들도 평범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지금 군중 속의 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남과는 다르다는 의식을 받쳐주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그는 먼지 날리는 허공에 떠 있었다.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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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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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쯤에서 이야기가 끝났더라면 한 편의 훈훈한 가족영화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법이다. 지루한 일상과 수많은 시행착오, 어리석은 욕망과 부주의한 선택... 인생은 단지 구십 분의 플롯을 멋지게 꾸미는 일이 아니라 곳곳에 널려 있는 함정을 피해 평생 동안 도망다녀야 하는 일이리라. 애초부터 불가능했던 해피엔딩을 꿈꾸면서 말이다. -45쪽

코는 어떻게 해요? 난 항상 코가 어디로 가는지 궁금했어요.
이것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스페인 처녀 마리아가 키스를 하려는 공화파의 요원 로버트 조던에게 하는 말이다. 지금은 다소 유치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당시엔 얼마나 가슴 설레는 대사였던지! -63쪽

ㅡ그럼 남자의 인생은요?
내가 웃으며 응대하자 그가 대답했다.
ㅡ그건 더 간단하지. 남자는 그냥 비위만 좋으면 돼. -75쪽

헤밍웨이의 전집을 처음 읽기 시작한 이후, 나에겐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그것은 대부분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인생이 늘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무언가에 발목이 잡혀 이리저리 한 세월 이끌려다니기도 하는게 세상살이일 터인데 때론 그렇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게 내버려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273쪽

나의이야기는 여기까지다. 하지만 삶은 멈추지 않게 계속되는 법이다. 내 앞에 어떤 함정이 기다리고 있을지 나는 짐작할 수 없다. 운좋게 피해갈 수도 있지만 자칫하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에 대해 미리 걱정하느라 인생을 낭비하고 싶진 않다.
나는 언제나 목표가 앞에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 이외의 모든 것은 다 과정이나 임시라고 여겼고 나의 진짜 삶은 언제나 미래에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 결과 나에게 남은 것은 부서진 희망의 흔적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헤밍웨이처럼 자살을 택하진 않을 것이다. 초라하면 초라한 대로 지질하면 지질한 대로 내게 허용된 삶을 살아갈 것이다. 내게 남겨진 상처를 지우려고 애쓰거나 과거를 잊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겠지만 그것이 곧 나의 삶이고 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286쪽

여기서 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헤밍웨이가 아기였을 때, 완벽한 문장으로 처음 한 말은 '나는 버팔로 빌을 몰라요'였다고 한다. 작가 그레이엄 그린이 처음 한 말은 '개가 불쌍해'였다고 알려져 있다. 역시 비범한 작가들은 뭔가 달라도 처음부터 다른 모양이다. 그렇다면 내가 완벽한 문장으로 처음 한 말은 뭐였을까? 그것을 말해줄 사람은 이제 세상에 없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나도 알고 당신도 알고 우리 모두가 안다. 그것은 틀림없이 다음과 같은 말이었을 것이다.
맘마.-287쪽

엄마 집으로 들어와 살게 되면서 새삼 깨닫게 된 것은 엄마에 대해 내가 아는 바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었다. -2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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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생활백서 - 2006 제30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민음사 / 2006년 6월
절판


인간은 살아 있기 때문에 집을 짓는다. 그러나 죽을 것을 알고 있기에 글을 쓴다. 인간은 무리를 짓는 습성이 있기에 모여서 산다. 그러나 혼자라는 것을 알기에 책을 읽는다. 독서는 인간에게 동반자가 되어준다. 하지만 그 자리는 다른 어떤 것을 대신하는 자리도, 그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는 자리도 아니다. ― 다니엘 페낙, 『소설처럼』중에서-간지쪽

오늘 서점에 간 나는 딱 두 권의 책을 샀다. 그 책 중의 한 권은 오늘이 가기 전에 다 읽게 되겠지만 또 다른 한 권은 읽지 않은 채 둘 것이다. 그러고는 가끔 페이지를 들춰보면서 상상할 것이다. 내가 아직 가보지 못한 세상을, 그 안에서 숨 쉬는 인간들의 욕망을.-10쪽

모든 것이 이미 결정되어 있겠지만 내가 읽지 않는 한 그 세상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 세상의 존재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채 내 손안에 있다.-10쪽

여전히 살아 있음에 유효한 희망 사항이 있다.-10쪽

내가 산다고 하지 않고, 구한다고 표현하는 책은 오래 전에 절판된 책이다. 뭐 그렇다고 희귀본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다. 다만 이제는 서점에서 반질반질한 모습으로 만나볼 수 없는 책일 뿐이다.-13쪽

지금 이 상태가 최상은 아니지만 나빠질 가능성보다는 나아질 가능성이 많다. 시간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아주 많은 문제는 지나고 나면 늘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그러므로 나는 기다리지도 소원하지도 노력하지도 않는다. 다만 책을 읽고 또 읽을 뿐이다. 이것이 내 방식이다.-22쪽

나는 단 한 번도 젊음을 부러워해 본 적 없다. 나에게 젊음은 어리석음이나 무모함과 동일하다. 어서 나이를 먹어서 최소한 서른 살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꿈꿀 수 있는 일도 아주 줄어들 것이고, 더 많은 책을 읽었을 것이며, 세상은 더 만만해져 있을 것이다.-33쪽

나는 영화광은 아니지만 극장은 좋아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영화가 막 시작됙 직전 손님들이 자리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비춘 엷은 불빛이 완전히 사라지고 대형 스크린과 비상구의 등만이 보이는 그 순간이 좋다. -57쪽

막연한 것,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되는 것. 그것이 스물을 향해 가는 이들과 서른을 향해 가는 이들의 차이인지도 모른다. 서른을 향해 가면서도 나는 아직 막연한 것,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61쪽

나는 내가 제대로 하지 못할 일은 시작하지도 않는다. 즐겁고 행복한 일이 아니라면 집착하고 싶지 않다. 좋아하지도 않는 것에 열광하는 척하면서 인생을 낭비할 수는 없다.-63쪽

나는 그냥 좋아하는 책을 읽을 뿐이다. 막연하긴 하지만 책을 읽고 있는 순간만은 적어도 내 삶이 허무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현재로서는 책이 나를 계속 살아갈 수 있게 하고 살고 싶게 만든다는 것밖에는 알지 못한다.-79쪽

오직 나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듯한 사람이 세상에 있다면 아마도 오직 나만을 위해서 쓰인 듯한 책도 있지 않을까. 나는 어쩌면 그런 책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95쪽

누군가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나는 늘 안도한다. 뭔가가 빠져 있는 듯한 삶이지만 그걸 굳이 채우려고 발버둥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럴듯한 애인도 없이 자랑할 만한 직업도 없이 살고 있지만 나에게는 책이 있다. 추운 방에서 홀로 책을 읽으면서 지내도 누구보다 행복할 자신이 있다. 이 세상 어떤 누구보다도 행복한 표정으로 지낼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115쪽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걸 알고 있으므로 나머지는 의미없다고 여긴다. 가질 수 있을 때까지 미루거나 참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들은 내게 없어도 되는 것이다.-115쪽

더 이상은 추락할 곳도 없다. 왜냐하면 나는 올라간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실패도 모른다. 무얼 바라고 희망해야 실패란 것도 있는데 그런 적이 없다. 그런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너무 오래되어 기억도 나지 않으니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131쪽

그때나 지금이나 내 유일에 가까운 희망은 편안하게 책이나 마음껏 읽으며 사는 것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점점 유토피아가 되어가고 있다. 불가능하다는 뜻의 유토피아. 뭔가 해야 한다.-138쪽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게 하기 위해 변해야 한다. 이것은 쉽고, 불가능하고, 어렵고 해볼 만하다. (쉼보르스카, 여인의 초상)-168쪽

붉은 해파리들이 떠난 바다는 아주 멀고 넓을 것이다. 내가 떠날 수 있는 가장 먼 곳은 어디일까.-171쪽

영화에서처럼 인생에서 멈추어 기다려야 하는 때와 움직여 가야 하는 때가 있을 것이다. 가라는 지시는 오래전에 내려졌는데 지금 여기서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주인공의 말처럼 나도 내가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사실은 지금이 기다려야 할 때인지 가야할 때인지조차도 모르겠다.-171쪽

책을 이해하는 것은 쉽다. 책은 이미 한 사람을 완전히 통과해서 정리된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작가처럼 일관된 어조로 자신을 설명할 수도 없고 상황을 묘사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마음일지 다만 짐작할 뿐이다.-177쪽

어떤 사람들은 처세술에 관한 책을 읽기 좋아하는데, 정말 현명해지려면 소설을 읽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처세술에 관한 책은 결론을 가르쳐주지만 소설은 결론으로 나아가도록 생각하는 법을 몸에 배게 해준다. 스스로 생각하여 얻은 결론만이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189쪽

좋아하는 책을 함께 이야기하는 것은 즐겁다. 싫어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런 부류는 아니다. 그리고 책에 관해서라면 내가 싫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 싫어서가 아니다. 그것은 완곡한 표현으로 예전보다 좋지 않다는 뜻이다. 내가 끝까지 다 읽은 책에 대한 내 태도는 그렇다. 싫으면 나쁘면 마음에 안 들면 더 이상 읽지 않는다. 세상에 책은 많다. 책은 사람처럼 죽지도 않고, 한 사람이 아주 여러 권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러므로 마음에 들지도 않는 것을 가지고 버티는 끈기는 무모하고 무가치하다.-192쪽

저런 건 저 나이에 제일 잘 쓸 수 있는 얘기잖아. 너도 네 나이에 잘 쓸 수 있는 이야기, 아니 네가 잘 쓸 수 있는 게 있을 거야.-197쪽

내게 가능성은 언제나 둘이었다. 죽음 혹은 책 읽기. 그 가능성 가운데 늘 책 읽기를 선택해 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281쪽

책을 소유하는 가장 바람직한 방식은 그것을 쓰는 것이라고 발터 베냐민은 썼다. 나는 책을 소유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이 소설에는 내가 좋아해 마지않는 것들이 아주 많이 포함되었다. 쓰면서도 읽는 것이 더 즐거울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읽는 것보다 쓰는 것에는 더 많은 자유가 있었고, 나는 그 자유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읽는 것보다 쓰는 것이 더 재미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느낌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다.-3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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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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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를 닦아내는 일이야. (중략) ‘죽음이란 건 별게 아니라 그저 먼지가 샇이는 것과 같은 일일 뿐’-10-11쪽

그러나 물화(物貨)의 덧없음이여! 생선장수가 그 모든 것이 한낱 허상임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시간은 모든 것을 바꾸어놓게 마련이다.-60쪽

나는, 이번에도 내가, 그걸, 다시, 막아낼 수 있을 줄, 알았어.

그것은 무지의 법칙이었다.-85쪽

살다보면 누구나 부지불식간에 엉뚱한 미망이나 부조리한 집착에 사로잡힐 때가 있게 마련이다.-106쪽

올 것은 결국 오고야 만다. 아무런 전조가 없어도. 그것은 운명의 법칙이었다. -113쪽

과연 객관적 진실이란 게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사람들의 입을 통해 세상에 떠도는 이야기란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 것일까? 칼자국이 죽어가면서 금복에게 한 말은 과연 진실일까?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조차도 인간의 교활함은 여전히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일까? 여기서도 마찬가지, 우리는 아무런 해답을 찾을 수가 없다. 이야기란 본시 전하는 자의 입장에 따라, 듣는 사람의 편의에 따라, 이야기꾼의 솜씨에 따라 가감과 변형이 있게 마련이다. 독자 여러분은 그저 믿고 싶은 것을 믿으면 된다. 그뿐이다.-117쪽

망아의 상태에서 허랑한 시간들이 흘러갔다.-127쪽

우리는 우리가 하는 행동에 의해 우리가 된다.-188쪽

생각에도 이름이 있나요? -261쪽

그날 이후, 소녀를 지배한 건 죽음에 대한 공포였다. 그리고 인생의 절대 목표는 바로 그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는 거였다. (중략) 그녀가 고래에게 매료된 것은 단지 그 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언젠가 바닷가에서 물을 뿜는 푸른 고래를 만났을 때 그녀는 죽음을 이긴 영원한 생명의 이미지를 보았던 것이다. 이때부터 두려움 많았던 산골의 한 소녀는 끝없이 거대함에 매료되었으며, 큰 것을 빌려 작은 것을 이기려 했고, 빛나는 것을 통해 누추함을 극복하려 했으며, 광대한 바다에 뛰어듦으로써 답답한 산골마을을 잊고자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바라던 궁극, 즉 스스로 남자가 됨으로써 여자를 넘어서고자 했던 것이다.-271쪽

춘희는 자신의 인생을 둘러싼 비극을 얼마나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을까? 그녀의 육체는 영원히 벗어던질 수 없는 천형의 유니폼처럼 단지 고통의 뿌리에 지나지 않았을까? 그 거대한 육체 안에 갇힌 그녀의 영혼은 어떤 것이었을까? 사람들이 그녀에게 보여줬던 불평등과 무관심, 적대감과 혐오를 그녀는 얼마만큼 이해하고 있었을까? 혹, 이런 점들에 대해 궁금증을 가진 독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모두 이야기꾼이 될 충분한 자질이 있다. 왜냐하면 이야기란 바로 부조리한 인생에 대한 탐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을 설명한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뭔가 불순한 의도를 가진 자들만이 세상을 쉽게 설명하려고 한다. 그들은 한 줄 또는 두 줄로 세상을 정의하고자 한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명제가 그런 것이다.

법 앞에서 만인은 평등하다.-310쪽

지식인이란 부류는 대개 음험한 속셈을 감추고 있어 좀처럼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는데, 그것은 한편으론 자신의 약점이 드러날까봐 두려워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론 아무하고도 적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보니 대화는 언제나 수박 겉핥기 식일 수밖에 없었으며 약장수는 그 점을 누구보다도 정혹하게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343쪽

그는 결국 세상에는 비밀을 함께 나눌 사람이 아무도 없으며 비밀은 오직 혼자만이 간직하고 있을 때에라야 비로소 비밀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348쪽

고통은 그저 고통일 뿐 다른 어떤 것으로도 환치되지 않았다. 상처는 지워지지 않았고 그녀의 가슴 한가운데엔 고통이 화석처럼 굳게 자리를 잡았다.-3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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