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가 하늘 높이 솟아 오르기 위해서는 순풍과 역풍이 필요합니다.
순풍은 앞으로는 나아갈 수 있지만
역풍은 위로 날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고통은 인생의 역풍이 됩니다.
고통의 십자가를 뛰어넘는 부활은 인생의 비상체험입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변화되었습니다.
막달라여자 마리아와 엠마오의 제자들은 가던 길을 바꾸고
사람들에게 달려가 기쁜 소식을 전했고,
사도 바오로는 일생동안 복음을 선포하는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성서 안에서 부활을 체험하고 변화된 제자들의 삶을 보지만
일상에서 내 자신이 부활을 체험는 것에는 어려움을 느낍니다. 

힘있고 즐겁게 서울에서의 생활과 부활의 삶을 살게 하소서. 아멘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야훼이레 2009-03-24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침 기도를 하면서 나는 어떤 부활을 맞아야 하나 순간 멈추어 생각을 했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오늘이 끝나기 전에 바로 왔다. 빈첸시오가 이제 막 시작하려는 일이 첨부터 삐그덕거린다. 처음에는 안좋은 비보를 아무 여과없이 내게 전달하는 그 사람이 짜증스럽고 유치하다고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반차를 내고 달려가서 면전에다 대고 마구 외치고 싶었다. 왜 그런식으로 일을 처리하느냐?(비난) 또는 네가 그러면 그렇지?(멸시) 지금이라도 빨리 손들자(포기) 아이구 내 팔자야(자의식) 이런 것들을 내뱉고 싶어서 안달이 났던것이다.
그러나 이젠 좀 차분해졌다. 특히 야훼이레 블로그를 찾아와 수년전에 남겼던 기록들이 내게 새로운 숙제와 맘의 여유를 준다. 부활숙제와 함께...지금이 윗글에서 이야기하는 역풍이고 난 고통의 십자가를 뛰어넘어야 하는 것인가? 위기가 기회라고 이야기 해줄수도 있겠다는 맘의 여유가 생겼다.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