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실망이 있다.하지만 무엇에 대한 실망인지? 나 스스로는 조금도 자각하지 못했지만, 간신히 꾸며낸 질서를 견디기 힘들었던 건 아닐지? 아마도 실망은 더이상 시스템에 속하지 않는다는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마침내 실망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이전의 나는 나에게 이롭지 못했다. 그러나 그 이롭지 못함으로부터 나는 최고의 것을 거두었다. 그것은 희망이다. 스스로의 불행으로부터 미래를 위한 덕을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지금 두려움은, 새로운 존재 방식이 무의미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인가?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냥 매번 일어나는 일에 나를 맡겨두면 왜 안 되는가? 나는 우연이라는 성스러운 위험을 감수해야 하리라. 그리하여 운명을 개연성으로 대체하게 되리라.

<G.H에 따르는 수난>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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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쉽니다.

그저께는 용문산 사나사 계곡 가서 산 타고 물놀이 했다. 
산 친구들이랑 가끔 놀러다닌다. 넘 재밌었다.

어제는 결혼식 가 있는데 친구한테 연락와서 급만남.
재밌었다. 삼성역에 있다가 광화문 테라로사로 급히 이동. 

트락타트에서 카프카 티셔츠를 샀다.
암만 봐도 벤야민 떡칠이어서 알아봤더니(트락타트부터 이미)
예전에 5년? 정도 벤야민 세미나에서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이 만든 거였다.
책 읽는 사람들을 위한 옷이라고 한다. 응원합니다.

곧 우리 고양이 생일. 생일상 차려드려야.
고양이랑 투닥투닥 사는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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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연민은 존중이 아니다. 지고의 가치를 갖는 것은 무자비함,
그러나 존중으로 충만한 무자비함이다. 

연민은 왜곡한다. 연민은 가부장적이거나 모성적이고, 덧칠하고 덮어버린다. 

연민은 파괴적인 것이 아닌가? 잘못된 사랑은 파괴하고, 잘못된 이해는 소멸시킨다.
손을 내밀었다고 생각하는가? 실제로는 때리고 있는 것이다.


엘렌 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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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있느냐고 

너는 나에게 물었지


어쩌면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


그런 것도 희망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나에게도 희망은 있어


*

내가 나일 뿐이라면

나는 너를 만날 수 없지


너가 너일 뿐이라면

너는 나를 만날 수 없어


나는 결코 나로서만 살고 있지 않아

내가 느끼고 바라보는 모든 걸 나는 살아내니까


너는 결코 너로서만 살고 있지 않아

너가 생각하고 사랑하는 모든 걸 너는 살아내니까


이상하지 않아?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이 우리를 두껍게 만든다는 것


두렵지 않아?

결코 통과한 적 없는 시공간의 겹들이 우리를 무겁게 만든다는 것


우리는 우리 키와 체중에 갇혀 있지 않으니까


수십억의 겹으로

부풀어 오르니까


수십억의 겹이

응축돼 단단해지니까


*

희망이 있느냐고

나는 너에게 묻는다


살아 있는 한 어쩔 수 없이 희망을 상상하는 일


그런 것을 희망이라고 불러도 된다면 희망은 있어


우리는 우리 키와 체중에 갇혀 있지 않으니까

-


한강 '2성부' <빛과 실>


한강을 읽으면 한강 읽으면서 버텼던 때가 떠오른다.

한강 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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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진 유리를 녹여
다시 온전한 덩어리로 만드는
불길인 걸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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