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로서의 삶은 거친 모험이기도 합니다. 젊은 학자들이 교수 자격 취득을 위한 '하빌리타치온' 과정을 밟고자 조언을 구하러 왔을 때, 그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권유하는 것은 거의 무책임한 일입니다. 그가 유대인이라면 우리는 당연히 그에게 "모든 희망을 버리라"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유대인이 아닌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우리는 그들의 양심에 대고 이렇게 물어볼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은 해마다 평범한 사람들이 당신보다 먼저 승진하는 것을 보면서 내적으로 비통해하거나 망가지지 않고 꿋꿋이 견뎌낼 자신이 있다고 믿느냐?" 그러면 그때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대답을 듣게 됩니다. "물론입니다. 나는 그저 나의 소명을 따라 살아갈 뿐입니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그들 중에 오직 극소수만이 내면의 상처 없이 이 길을 견뎌낸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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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은 연구를 대신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열정이 영감을 대신할 수 없고 강제로 영감을 이끌어낼 수 없는 것처럼, 연구도 영감을 대신할 수 없고 강제로 영감을 이끌어낼 수 없습니다. 열정과 연구가 합쳐졌을 때 비로소 영감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영감은 우리가 원할 때가 아니라 자신이 원할 때 나타납니다.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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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다. 토하겠네. 
일이 정말 많은데, 와, 걍, 다 내가 벌인 일이야? 신자유주의 성과주체로 충실히 사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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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탐구에는 통틀어 두 가지 길만이 열려 있으니
곧 미학 그리고 정치경제학이다.
-말라르메 

변증법적 사고는 우리에게 가장 조야한 진실을, 상식 자체 만큼이나
불쾌하도록 진부한 사실을 급작스럽게 복원해주는 돌연한 찢음으로
매듭의 절단으로 나타난다.
-프레드릭 제임슨. 맑스주의와 형식

값싼 용이함에 맞서서
진정한 사고를 하려면 댓가를 치러야 한다. 

존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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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상실 이후에 우리가 느끼는 날카로운 슬픔이 사라질 것을 알고 있지만, 또한 그 슬픔이 결코 달래질 수 없으며 상실의 대체물을 결코 찾을 수 없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 빈자리를 무엇이 메우든지 간에, 심지어 빈자리가 완전히 메워진다 하더라도 무언가 다른 것이 남게 됩니다. 그리고 사실 그건 그렇게 되어야 마땅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가 단념하고 싶지 않은 우리의 사랑을 영원한 것으로 만드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중 프로이트 인용.


1인 출판을 하는 친구가 만든 책이 나왔다. 삶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발견하고 오랫동안 꾸준히 그것에 천착하기의 표본이랄까. 응원합니다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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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하하하. 끌어내림 완료. 오래 걸렸다. 

제발 좀 부탁인데
참하고 조신한 순수 문학도 코스프레 하면서 살 수 있게 좀 해줘라
앞으로도 화나게 하면 좌빨 인문학도로 바로 돌변할 거니까

반지성주의 극혐 우파 엘리트 극혐
현실 너머가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 고생 많았다. 푸히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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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다. 다 가진 것 같다.
내 취향으로 꾸민 서재. 나를 지켜주는 고양이. 
책장에 빨간 책 깔아두고 스트레스 풀기. 

원미산 진달래꽃 동산에 다녀오고 부천 구경했다.

이런 시국에 함께 행동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고
내 뜻대로 내 맘대로 살 수 있어서 감사하다.
기다림 끝에 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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