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 심리학으로 말하다 1
얀-빌헬름 반 프로이엔 지음, 신영경 옮김 / 돌배나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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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택시 기사 제리 플레쳐는 많은 신문을 들여다보고 각각의 뉴스를 열심히 분석, 재구성해 자신만의 음모론을 만들어낸다. 손님들에게 자신의 이론을 이야기하고 그들이 믿게끔 만드는 일에 큰 재미를 느낀다. 그러던 어느날 제리의 추론 중 하나가 실제 음모와 맞아 떨어지면서 엄청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모튼 하켓(Morten Harket)의 'Can't Take My Eyes Off You'가 잘 어울렸던 영화 멜 깁슨 주연의 '컨스피러시(conspiracy)'다.


우리가 음모론에 끌리는 것은 '그럴듯하기 때문'이며, 그 이면에는 본질에 관한 부족한 정보와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가 자리잡고 있는 까닭일 것이다. 얀 빌헬름 반 프로이엔의 <음모론>은 하나의 사회현상으로서 음모론을 바라보고, 음모론을 대하는 사람들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분석했다. 음모론이 '진짜인가, 가짜인가'에 시선을 두기보다는 '누가 믿고 누가 믿지 않을까' 또는 '어떤 상황에서 더 믿을까',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라는 질문에 기초한다. 음모론 뒤에 숨겨진 심리학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는 <음모론>에서 '모든 음모론은 비슷하고 인식할 수 있고 예측 가능한 심리과정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을 주장한다. 개인 차원에서 음모론을 가정하는 유형-나에게 피해를 주기 위한 동료들의 모의, 나를 게임에서 지게 하려는 상대편과 심판의 공모 등 과학계에서 '피해 망상'으로 분류되는 경우-보다 사회집단 차원에서 풀이했다.


책은 '음모론과 심리학', '사람들은 언제 음모론을 믿는가', '믿음의 구조', '음모론의 사회적 뿌리', '음모론과 이념', '음모론 줄이기' 등 6개 장으로 구성됐다. 음모론의 정의, 음모론이 힘을 발휘하는 상황, 음모론과 다른 믿음의 차이와 공통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음모론의 근거, 정치적 배경의 음모론과 신뢰 성향, 그리고 음모론에 의한 폐해를 막기 위한 수단 등 저자의 연구가 담겨있다.


'비합법적이거나 악의적이라고 인식되는 숨겨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 행위자가 비밀리에 합의하여 협력하고 있다는 믿음'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툭 떨어진 개념이 아니라, 오랜 역사 속에서 존재해온 음모론에 대한 정의다. 


저자는 음모론을 더욱 명확히 정의하기 위해 패턴, 행위자, 연합, 적대감, 비밀 유지 등 다섯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가운데서도 다른 형태의 믿음과 구별되는 음모론이 가진 핵심 요소는 '적대적이고 비밀스러운 행위자 집단'의 존재 여부다. 이를테면 '세계를 지배하려는 한 집단이 비밀 연구소에서 한 나라와 결탁해 생화학 무기를 만들어 퍼뜨리는 것이 치즈'라는 식이 되겠다.


9.11 테러, 2020 도쿄올림픽 실패, 우한 코로나 발생 등을 예언하고 있다는 '일루미나티 카드'. '하나된 세상'을 꿈꾸며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프리메이슨' 등 저자가 말한 요소에 들어맞는 음모론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겠다. 저자는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생산한 무수한 루머, 9.11테러를 둘러싼 의혹, 영국의 브렉시트 탈퇴 등을 음모론의 대표적인 예로 들고 있다.



"음모론은 양극화된 정치적 분위기와 관련이 있으며, 이념이 다른 집단들은 반대 집단을 적으로 그려낸다."


강력한 통신 기반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과거에 비해 음모론에 쉽게 노출되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광우병 파동' 당시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뇌가 숭숭 뚫린다'는 명쾌한(?) 저주는 방송과 인터넷을 타고 전국민을 공포로 불어 넣었다. 물론 이 같은 주장을 했던 사람들이 자녀를 미국 유학 보냈다거나, 미국산 소고기가 주원료인 버거를 먹는 장면을 자랑하는 등 희한한 행태로 이어지는 경우를 보기도 했지만.


모바일 시대 이러한 불안은 더욱 크다. 특히 과거에 비해 엄청난 양의 정보를 더욱 빠르고 쉽게 접하고 있기에 '음모론'의 확산과 소비역시 같은 속도를 유지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저자는 <음모론>에서 전파되는 속도가 증가한다고 해서 음모론을 믿는 사람의 비율도 증가하는 것은 아니라고 단언한다. 어차피 퍼져나가야할 음모론은 속도와 무관하게 전파됐음을 역사 속에서 확인할 수 있고, 음모론에 대한 신뢰는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상태에 뿌리를 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정치적 의도를 가진 '음모론'에 대한 저자의 분석이 눈길을 끈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정치적 극단주의는 흔히 의회에서 포퓰리즘의 형태로 나타나며, 음모론이 극단주의나 포퓰리즘을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더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는 대목이다. 그만큼 미디어를 장악한 세력에서 생산된 음모론은 더 강력하며, 그만큼 더 위험하다.


포퓰리스트가 제시하는 '이것이 사실이다'는 주장은 복잡한 사회 문제에 대해 단순한 해결책처럼 비쳐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자는 명료함을 가장한 행태에 대해 경계해야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유대인에 대한 히틀러가 품어왔던 음모론까지 갈 것도 없이 우리 사회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취창업이 어려운 청년에게 현금을, 코로나로 힘든 소상공인에게도 현금을, 경제활동에서 은퇴한 노년층에게도 현금을!" 근원적이고 난해한 대책보다 간단 명료하며 뿌리치기 힘든 유혹은 음모론만큼이나 위험할 것이라고 <음모론>은 경고한다.(*)


* 컬처블룸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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