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토의 주인 - 23일 폐쇄구역
지미준 지음 / 포춘쿠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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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 덕근이와 칠백이 있었으며, 지금도 우리를 쳐다보며 생각할까. 복종이냐 복수냐 사이에서. 지미준의 <게토의 주인>은 인간과 동물-개와 고양이-의 공존에 대해 이야기한다. 버림받은 유기견 덕근이와 상처입은 길냥이 칠백이는 조화로운 삶을 영위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꿈이나 본능은 아니다. 하긴 한자인 유기견과 우리말 신조어 길냥이의 차이에서 두 종간의 거리는 이미 드러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게토(Ghetto).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이 세운 유대인 강제거주구역이다. 소설 <게토의 주인>의 제목은 그만큼 인간과 동물의 거리를 표현하고자 한 게 아닐까. 1943년 4월 유대인들을 마지막으로 아우슈비츠로 강제 이송할 당시 바르샤바의 게토는 '인권'이라는 단어조차 어색할 잔혹한 본성만이 살아 움직인 공간이었다.



<게토의 주인>은 공원 벤치 아래 변을 참으며 엄마 아빠를 기다리고 있는 덕근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덕근이 엄마 아빠에게 가장 먼저 배운 말은 '기다려'였다. 기다릴 줄 알아야 상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먹이에 혀를 길들여야 했고, 주삿바늘의 따끔거림에도 익숙해져야 했다. 그런 엄마 아빠가 '믹스견'이라는 단어를 오르내리고부터 달라지더니 숫자 몇 개에 덕근이를 여기에 남겼다. '기다려'와 함께.


공원 벤치에서 엄마 아빠를 기다리던 덕근은 짧은 수일간 몸에 새로 생긴 상처만큼이나 엄청난 경험을 겪게 된다. 철없는 아이들로부터 이유없는 폭행을 당하고, 육포 몇 조각에 개 수용소로 끌려갔다 탈출하기까지. 다시 공원을 찾는 사이 일어난 모든 사건의 중심에는 '인간'이란 존재가 있었다. 그럼에도 수많은 냄새 속에서 엄마 아빠를 찾아 기억하는 덕근. 결국 물음이 떠오른다.'나는 버려진 것일까?'


이러한 덕근을 바라보던 또 하나의 시선. 귀 한쪽이 잘려나갔으며 생식능력을 잃어버린 고양이 칠백이다. 물론 인간에 의해서 저질러진 일이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분노로 변화하는 덕근,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순응으로 변화하는 칠백이 대화한다. <게토의 주인>이 주는 메시지가 여기에서 감지된다.



"왜 너를 사랑했을까?" 세상 풍파를 겪은 칠백이 혼란스러운 덕근에게 물어본다.

"사랑하는 데 이유가 있어?" 애완견의 삶에 익숙했던 덕근의 대답이다.


"이유가 없는 게 이상한 거야. 모든 행동에는 동기와 보상이 따른다고." 그렇다. 사람은 덕근을 통해 만족감, 우뤌감, 대리만족 등 보상을 원했다는 것이 칠백의 생각이다. 엄마 아빠가 아닌 그저 '개주인'일 뿐이라는 것. '믹스견'이라는 주위의 시선으로 인해 그 동기와 보상이 사라진 순간 덕근에 대한 '사랑'은 생명을 다한 것이다.


그런 덕근과 칠백, 유기견과 길냥이의 공원에서의 동거가 시작된다. 여기에 성대를 제거당한 암캐 매기가 합류하고, 칠백의 옛 동료-같은 무리가 맞겠다-마루와 호박이도 함께 하면서 개와 고양이 조합의 덩치는 점점 커져 간다. 서로 싸우지 않고 상생하는 버려진 동물의 집단이 모습을 갖춰 간다.


투견 암캐 타이슨이 이들과 조우하는 과정은 읽는이로 하여금 가슴 저리게 한다. 투견장에서 이유모를 목숨 건 사투를 이어왔던 타이슨. 스파링이 시작되면 개들은 영문도 모른 채 싸워야 했으며, 가끔 '우리가 왜 싸워야 하지?'라는 눈빛을 보내는 상대가 있었다면 그는 이미 죽은 목숨이 되는 곳.



타이슨을 덕근과 칠백 무리로 이끈 까마귀의 말에 <게토의 주인>이 이끌고 싶은 답이 있다.  "뭔가 좀 이상해. 개와 고양이잖아? 그런데 안 싸워! 오히려 서로 돕고 산단 말이지." 철창에 갇힌 자식마저 뒤로하고 탈출한 타이슨은 인간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 자유를 얻으려는 의지와 책임감이 가득하다.


그들의 평화는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동물의 본능이 발현될 때마다 인간의 경계와 처단은 분명해졌다. 복수냐 순응이냐를 놓고 덕근과 칠백의 갈등은 시작되고, 결국 '인간과의 공존'을 두고 둘을 선택의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인간이 정한 평화와 질서, 그 속에 숨은 이기적이고 잔인한 묵인은 '게토의 23일'이라는 비극을 인간과 동물 모두에게 현실로 다가온다. 



인간과 동물의 '상생과 공존'을 여러 각도에서 들여다 보게하는 <게토의 주인>. 특히나 인간의 시각이 아닌 덕근과 칠백의 눈높이에서의 전개가 신선하다. 책을 덮을 즈음 다시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덕근과 칠백의 안식처-공원 벤치=마저 인간에 의해 위협받게되는 시점 공원 관리소장의 고민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유기동물에 대한 '정리'를 통보받은 그는 관리소 창고 안 깊숙한 곳에서 개와 고양이 사료 봉투 앞에서 탄식한다.


"이놈들을 다 우짜면 좋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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