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긴 매듭
배미주 외 지음 / 사계절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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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긴 매듭

모계 전승이 이렇게 화끈한 이야기일 줄 알았던 사람 있나? 질긴 매듭이라는 단편집을 꽉 채운 이야기들의 세계는 보이는 것보다 더 넓고 깊다.

배미주의 <이삭은 바람을 안고 걷는다>는 노동현장에 잘 적응하기 어려운 병을 가지고 있지만 마트에서 일하고 있는 이삭과 대형마트 현장관리자 도도의 이야기다. 이 세계는 삭막하다. 이들을 둘러싼 정치적 경제적 불안, 노동과 안정 사이에 간신히 유지되는 불균형한 삶의 지속, 사고로 인해 언제든 잃을 수 있는 지위와 안정된 집에 대한 이야기로 세계는 점점 더 덩치를 키워간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 균형을 어떻게든 맞추며 미래와 연결되려고 하는 이삭의 발버둥은 이야기 바깥에서 파삭파삭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연결되는 듯하다. 마치 큰 이야기의 시작처럼 커다란 세계가 느껴져서 연결되는 다른 세계도 기대하고 싶다.

정보라의 <엄마의 마음>은 읽는 내내 비명을 지르고 싶을 정도로 무서웠다. 첫딸이 딸을 낳지 않으면 그 어머니가 죽는다. 첫딸은 딸을 낳아 어머니에게 삶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이 저주 같은 이야기는 완의 삶을 통째로 먹어치운다. 어머니는 잔혹하고 할머니는 외면한다. 그러나 완은 이 삶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초경을 맞이하면 인간이 아니라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성으로 취급받는 세상에서 아동기를 보장받지 못하는 주인공은 아동기를 잃게 된다. 작가는 여성에게 안전한 삶이 보장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어린이들이 겪을 수 있는 삶의 폭력과 잔혹할 정도로 대면시킴으로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길상효의 <행성의 한때>는 종의 진화에서 떨어져 나간 개체들에 주목한다. 종들이 다 같이 변화를 겪고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고 할 때, 어떤 개체들은 자기자신으로 남는 것을 선택한다. 유전자가 온전하게 전승되는 모계 전승이라는 모티브에서 길상효의 전략은 진화의 반대방향으로 전력질주하게 되는 인간들의 이야기와 사랑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우리는 무엇이 되려고 하고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종 단위가 아니라 개체 단위로. 전체가 아니라 개인으로 남기로 하면서 우리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구한나리의 <거짓말쟁이의 새벽>은 고통을 겪는 어떤 여자아이에 대해 말한다. 그 고통에는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점차 누적된 기록과 추적을 통해, 그리고 모계전승이라는 힌트를 통해 의미를 찾아낸다. 고통을 겪는다면 겪을 수밖에 없지만 고통을 통해 나아지는 것도 있다고 믿고 싶은 여자아이의 강함에 독자가 힘을 얻게 되는 이야기이다. 기록의 강함, 의지의 강함, 그리고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받아들임으로서 강해지는 이야기는 언제나 강력하다.

오정연의 <오랜 일>에서는 뉴스에서 흔히 만나는 여성살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여성들은 cctv가 없는 곳에서, 행정이 부족한 곳에서, 자본이나 화풀이 등 여러가지 이유로 살해당하고 있다. 미디어를 다루는 여성이어도 그 사회적 사각지대에 소중한 것을 빼앗길 수 있는 시대다. 그런 시대에 여성들은 어떤 전략을 취할 수 있을까. 어떻게 자신의 힘을 되찾고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슬픔을 애도하는 것부터 사회적 메시지를 갖고 세상에 나아갈 메시지로 사람들을 변화시킬 때까지 한 여성이 사회 복지와 행정의 사각지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이야기에는 사람의 마음에 불꽃을 지피는 부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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