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머큐리 테일
김달리 지음 / 팩토리나인 / 2025년 1월
평점 :

이 도서는 출판사의 서평이벤트를 통해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무서운 얘기 해 줘.
일상적인 공간에서 사람을 순식간에 어둠으로 끌고가는 무서운 이야기처럼 재미있는 게 또 있을까?
김달리 작가의 소설집 머큐리 테일은 단순하고 자극적인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거 사랑과 전쟁? 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쉽고 단순하고 충격적인 이야기들은
김달리 작가의 이야기 흐름에 맞춰 순식간에 어두운 곳으로 사람을 끌어들인다.
- 욕심많고 거침없고 무례한 부자 아줌마와 가정부
- 결혼을 약속한 애인과 잘 때마다 나타나는 얼굴 없는 귀신(알고보니 그 귀신은 매우 미인이었다)
- 늙은 교수 아버지가 젊고 아름다운 20대 여자와 바람을 피우고 동반자살했는데 사실 그 여자가...
- 이미 멸종된 생물의 유전자를 되살려서 키우는 중인데 걔가 나를 아빠라고 부름
- 매일매일 자살소동을 벌이는 여자애가 SNS에서 이상한 사람을 만남
이렇게 늘어놓고 보니 사회면이나 SNS에서 떠도는 썰 같아 보인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자극적인 이야기 같아보였던 것은 완전히 착각이다. 뻔해보이는 이야기의 다음 문장을 읽으려고 나아간 순간 다음 순간 이야기는 바닥이 꺼져서 추락하는 종류의 재난과 같은 괴담으로 변한다. 이 괴담에 걸려든 순간 어떤 인물도, 심지어 독자들도 빠져나가기 어려워보인다. 이 이야기라면 당연히 이렇게 흘러가겠지 라고 생각하는 도식들은 뒤집히고 배반당한다.
아니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간다고? 그런데 그게 정말 재미있다.
우선 문장들이 뚜렷하고 선명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여기에서 저기로 카메라와 화면이 이동하는 모습이 보이고 TV나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렬하게 느껴진다. 보여주고자 하는 이미지가 산만하지 않고 정확한 탓에 이 괴담이 인터넷에서 돌고 있는 인기많은 괴담(각종 커뮤니티에서 너무 유행을 많이 한 나머지 디지털풍화가 일어난 괴담이미지조각)이 아니라 작가가 공을 들여 만들어낸 작품이라는 게 느껴진다. 그만큼 쾌적하고 유려한 추락과 두려움과 공포를 느낄 수 있다.
이야기의 전개도 빠르고 경쾌하다. 순식간에 어둡고 기이하고 이상한 모습으로 변해 이야기 속 인물들을 제 욕망의 감옥속으로 거칠게 밀어넣고 문을 쾅 닫아버린다. 적어도 앞의 세 편의 단편에서 욕망과 괴담의 감옥은 인물들도 독자도 놔주지 않는다. 사람들이 자기 욕망에 낚여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야기는 꽤 있지만 이렇게 뒤가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괴담의 성격으로 보게 되니 생각보다 더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