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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벽 - 상 ㅣ 민들레 왕조 연대기
켄 리우 지음, 황성연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12월
평점 :
한국에서 책 좀 읽는다는 사람 치고 삼국지, 초한지, 서유기 이런 책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그걸 전부 읽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야기들은 형태를 바꿔서 여러가지 형태로 살아남았다. 만화, 애니메이션, 소설, 또 소설, 영화와 드라마... 모든 미디어에서 이야기들은 다시 되살아난다. 이들은 왜 다시 살아날까? 재밌으니까. 그것도 정말 재미있으니까. 한 번 들으면 영웅들의 이야기가 영혼을 떨리게 하니까!
초한지의 영웅 항우와 유방의 이야기는 나도 어릴때부터 좋아하던 이야기다. 제대로 된 두꺼운 책으로 읽은 건 아니고 어릴 때 어린이 만화버전으로 읽었다. 항우와 그의 미인, 유방의 뛰어난 전략과 기개. 항우를 포위한 사면에서 한 나라의 노래를 부르는 유방의 군대와 영웅을 향해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 영웅의 죽음은 노랫소리와 함께 왔다. 눈 앞에 펼쳐진 책을 통해서라면 자신의 위대한 장수를 사랑한 여자의 죽음과 장수의 분노 이런 것들은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2025년이 된 지금, 나는 초한지를 다른 형태로 마주하게 되었다. <종이 동물원>으로 책 읽은지 10분만에 눈물을 줄줄 흘리게 했던 작가 켄 리우가 실버 펑크라는 야심찬 장르로 장편을 써온 것이다. 초한지를 SF/판타지로! 그것도 단편만 쓴다고 생각했던 켄 리우가! 초초초초 두꺼운 대하장편을! 벽돌책을!
모든 사람이 아는 중국 고전을 미국계 중국 작가가 다시 쓴다? 생각만해도 심장이 떨린다. 엄청난 비판 혹은 비난이 저절로 떠오른다.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런 야망 넘치는 일을 해낼만한 사람은 켄 리우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그의 작품에는 그가 아는 중국, 미국만이 아니라 동북아의 역사(일제강점기라든지)도 잔뜩 들어가있어서 중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완전본으로 출간되지 않았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완전본으로 나왔다고 함 땡큐!)그런 사람이 실버펑크라는 새 장르까지 만들어서 다시 써주는 고전? 너무 고마워..
고전은 불멸한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절대 죽지 않는다. 그런데 난 왜 안 읽었지? 재밌는 얘기라면 참지를 못하면서 이건 왜 원본으로 읽지 않았을까? 옛날 사람들의 옛날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가끔 편견에 가득찬 이야기를 억지로 잔뜩 읽게 되는 경우가 많다. 세계문학전집을 탐독하게 되면 여성들은 저절로 엄마 아니면 창녀 같은 역할이고 주인공의 각성을 위해 죽음을 맞이하며 언제나 제일 먼저 희생된다. 이 불쾌함의 정체를 알게 된 이후에는 굳이 고전을 읽는 것을 피해왔다.
그러나 요즘에는 최근의 작가들이 야심차게 옛 고전의 잼얘들을 자신의 스타일로 재해석해 보여주는 이런 일들도 있는 것이다. 크툴루라는 신화생물을 만들어낸 러브크래프트도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의 차별적이고 혐오적인 생각들을 비틀어 재미있게 다시 써내주고 있고 그런 작품들이 끊임없이 매년 새로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역사가 깊고 불멸하는 중국의 고전들이 다시 한 번 새롭게 쓰여지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너무 아깝잖아! 나도 초한지에서 우희의 아름다움 말고도 여성이 했을만한 다른 일들에 대해 알고 싶다. 초한지의 세계에서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여성들의 정치적 암투와 결단, 그리고 전쟁과 패권의 역사를 읽고 싶다. 그리고 내 마음 속 SF단편킹인 켄 리우가 실버펑크로 재빠르게 시작한다. 그것도 두껍고 장대하게. 마음이 웅장해진다.
가라 켄 리우! 너만 믿는다
중국의 역사는 깊고도 길다. 재미있는 이야기도 잔뜩 있다.
켄 리우가 다시 쓰는 실버 펑크의 역사도 길게 이어지기를
-서평이벤트에 참여하여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전 우리가 진실을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요." "우린 신이 아니야. 항상 진실과 오류를 구별할 수는 없어. 그러니 조심해야 한단다." -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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