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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 - 모든 이를 위한 책, 그러나 아무도 이해하지 않는 책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백석현 옮김 / 야그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번역자 백석현이 궁금하다. 그는 독학자로서 니체의 정수를 번역했기 때문이다. 대화 없는 독학자의 약점은 종종 객관성을 잃은 자의적인 깊이에 매몰되는 것이다. 그러나 백석현의 번역은 그런 오류의 수렁에서 자유로우며 어떤 의미에서는 최상의 번역을 일궈냈다. 왜 이런 평가가 가능할까.
그것은 오랜 시간 지속해온 니체 독자로서 가능한 판단일 것이다. 니체는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 사조를 거치면서 얼마나 많은 변용을 겪었던가. 숱한 에피고넨들이 기대었고 우파 이데올로그들이 활용했다. 그러나 니체는 난숙해지지 않았고 지금 읽어도 여전히 젊고 팔팔한 정신을 대할 수 있다. 이것은 갈수록 니체를 읽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로서 영롱하기도 하고 신비롭기도 하다. 그런데 니체의 정수는 무엇일까.
백석현이 이 대목에 대해 할 말이 많을 것이다. 그는 니체의 문체에서 단편이나 경구, 에세이보다 앞서는 것으로 시(詩)를 들고 있는 셈이다. 아닌게 아니라 니체는 디오니소스의 시인이기도 했고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통째로 시집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다채로운 문체를 사용했던 니체에게서 다른 면모를 봤다면 좋았을 것이지만, 학술 진영에게 니체는 여전히 철학자인 것이다. 백석현은 이것이 심히 못마땅한 것이다. '시인도 겸한 철학자가 아니라 철학자도 겸한 시인이다.' 시적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철학적 사유와도 상통하는 법이다.
이런 발상에서 백석현이 번역한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가 빛난다. 이 번역본은 아마도 니체 번역으로서는 매우 혁신적이며 동시에 이단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런 역설적인 면이야말로 니체의 정신에 보다 가까운 것이 아닐까. 관성적인 것과 공인된 것 사이에서 새롭게 생성되기를 바라는 번역이라면, 이런 형식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백석현의 번역은 나에게 많은 자극을 주었는데, 아마 다른 니체 독자들에게도 그러할 것이라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그만큼 백석현의 번역은 시적 리듬, 음악적 리듬이 가득하다. 즉 묵독되어야 했던 텍스트(철학서)에서 음독해야만 참맛을 느끼는 선언서(시집)으로 다가갈 것이다.
이런 감상을 과장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별난 취향에 따라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니체의 오리지널 독자라면, 동감할 것이다. 니체는 어쩌면 동기감응의 모델일 것이다. 즉 같은 기운은 감응한다.
세상에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여러 번역이 존재한다. 민음사의 정희창 번역본도 있지만, 문예출판사의 황문수 번역본과 청하출판사의 최승자 번역본이 차전놀이를 해왔다고 생각한다. 물론 책세상의 니체 번역이 나오기 이전의 선택이다. (실은 책세상의 번역본은 검토할 여력이 없었다. ) 개인적으로는 "그대, 충일하는 천체여!" 라는 식의 의고적이고 장엄한 황문수 번역본을 선호했었다. 젊은 날의 희랍 취향이라고 할까.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니체의 이 문제작을 좀더 생기발랄하게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의문이 찾아들었다.
직절적이면서도 역설적인 어조를 살리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원어와의 근사 관계에만 관심이 쏠린 학술 번역을 포기한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젊은 날 니체에게서 무엇인가를 나눠가진(혹은 나눠가졌다고 믿는) 이들에게 가끔 이런 질문들이 떠오르는 것이다. 백석현은 이런 질문들에 응답하는 대단히 독창적이고 참신한 번역본을 세상에 내놓았다. 왜 세상은 이 번역본을 읽지 않는 것인가.
"증오로 죽이는 법 말고도 웃겨서 죽이는 법도 있어.
자, <중력의 영>을 웃겨서 죽여 보자고!
걷는 법을 배우자마자 나는 줄곧 뛰면서 살았지.
나는 나는[飛] 법도 배웠어.
나는 법을 배우자마자 누가 나를 더 이상 떼밀 필요가 없어졌어.
나는 경쾌하게 움직여.
나는 날지.
나는 내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살지.
신이 하나, 내 속에서 춤추고 있거든.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 (106쪽)
"아, 시인들은 별별 것이 다 땅과 하늘 사이에 존재한다고 상상하지!"
아, 게다가 시인들은 별별 것이 다 하늘 위에 존재한다고 상상하지.
신들은 모두 시인이 만들어 낸 상징이고 궤변이야.
우리 시인의 상상은 계속 위로 올라간 거야. 구름 나라로.
거기에 알록달록한 옷을 입힌 인형들을 놓았지.
그리고 그것을 신이니 초인이니 부른 거야.
신이나 초인은 정말 한없이 가벼운 존재잖아?
구름 의자에도 앉을 수 있잖아?" (307쪽)
"인간은 모든 짐승의 장점을 빼앗아 죄다 자기 것으로 삼았지.
그 때문에 모든 짐승 중에 인간의 삶이 가장 고달픈 거야." (488쪽)
"한 번이라도 춤을 추지 않았던 날은 아예 없었던 날로 생각해야 돼!
웃음을 터뜨리게 하지 못했던 지혜는 모두 가짜 지혜!" (48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