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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과 분노
로런 그로프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4월
평점 :
미국 여류 작가 '로런 그로프'의 세 번째 장편소설이자 네 번째 책 <운명과 분노>.
이책은 두께가 상당하지만, 그 분량에 비해 빠른 속도로 읽을 수 있는 재밌는 장편소설이랍니다.
<운명>과 <분노>, 이 두 개의 작품이 한 편의 소설로 엮여 있는 흥미로운 구조인데요. <운명>은 남주인공 '로토'의 관점(시선)에서 시간의 경과에 따라 연대기순으로 서술돼 있고, <분노>는 여주인공 '마틸드'의 관점(시선)에서 자유롭게 시간을 넘나들며 그려집니다.
책을 읽으면서 제 머리속에 떠오르는 키워드는 다양했어요. 운명, 불평등, 결핍, 권력, 불안, 상처, 사랑, 결혼, 꿈, 연극, 거짓, 진실, 분노, 과거, 상처, 질투, 욕망, 비밀, 통제, 표출, 균형, 인식, 편견, 가면 등.
책의 전개방향이 '결국 모든 것은 관점의 문제!'라는 쪽으로 그 핵심이 명확해지면서, 홍상수 감독의 영화 <오! 수정>이 연상되기도 했고요.
이책에는 나름의 반전 요소도 있고, 개성 강한 등장인물들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니까
줄거리를 공개하지 않고, 저의 감상만 간략하게 전달하려고 합니다. ^^
제가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가, 소설 속에 등장하는 매력적인 주요인물에 한껏 몰입해서 깊이 공감할 수 있다는 점과 작가의 창의적이고 아름다운 표현이 담긴 문장을 발견하는 기쁨과 더불어 타자와 공유하는 즐거움에 있는데요.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작가의 시적인 표현으로 인해 존재를 새롭게 느끼게 하는 창의적인 문장들이 꽤 많이 발견되는 <운명>편이 저는 더 좋았습니다. 다만, 연극적인 요소와 셰익스피어 작품의 대사 인용의 잦은 등장과 신화적 요소는 제 개인적인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아쉬웠던 부분은, 책을 읽으면서 제가 점점 수동적 입장이 되고 있다고 느껴지는 점이었어요.
작가가 주도하는 방향대로 이끌리듯 읽히는 전개방식이랄까, 제공받은 정보와 의도대로 따라가야 하는 일종의 주입식 압박이 느껴지는 바람에 제 느낌이나 생각은 다소 배제되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소설 자체가 주는 어떤 여운, 그리고 독자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일종의 틈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고요.
강렬하게 다가왔던 것은, '우리의 삶이 희극이냐, 비극이냐?' 하는 문제 역시 우리가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다는 작가의 의견이 던져주는 메시지였어요. 그것은 삶, 사랑, 관계, 운명, 분노에 관점 차이의 문제를 적용시켜보는 계기를 제공해주었죠. 나, 나와 관계하고 있는 대상, 내가 믿는 사실, 무엇보다 감정에 대해 그 관점(시각)과 나의 인식에 대해 고민해보게 되고, 곰곰이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재밌게 읽을 수 있는, 흥미로운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