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수명
루하서 지음 / 델피노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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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겹이 쌓인 오해와 복수의 끝

제목만 보아서는 감이 잡히지 않는 이 소설은 자신의 수명을 알 수 있게 된 현대 사회의 모습과

수명 나눔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소설입니다

생각해 보면 영화 '인 타임'이 떠오를 수도 있는데요 결은 살짝 다르지만 닮은 점도 없지 않다고 생각은 합니다

사실 처음엔 책의 주제를 생각하면서 '인 타임'처럼 수명을 거래하고, 수명을 어떻게든 벌어가는 사람들의 기계적인 모습이 나오진 않을까 했는데

생각보다 수명 거래에 대한 기준도 체계적이었고, 방식도 체계적이라서 소설의 내용에 납득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일단 주인공이 수명 측정기라는 기계로 그날의 수명을 확인하는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됩니다

이름도 생소한 수명 측정기는 어느 날 갑자기 현대 사회에 도입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수명을 알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워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무서운 일이기도 하죠 이 수명 측정기는 그저 수명을 알려줄 뿐, 그게 몇 월 며칠 몇 시에 끝이 나는지까지 알려주진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기는 80세, 100세까지 거뜬하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자신이 단 며칠, 몇 년 밖에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로 인해서 공포와 혼란을 얻게 될 것임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여기도 하나의 방법은 있었죠 바로 수명 나눔입니다 수명 나눔 수술을 통해서 평생 단 한 명에게만 수명을 나누어 줄 수 있었는데요

사실 소설이 끝날 때까지 수명 나눔 수술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상상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주인공이 수명 측정기를 받으면서 받았던 수명 나눔에 대한 안내문을 통한 내용들을 보면

수명 나눔에서 수명을 빼고 장기 기증이라는 말을 넣으면 딱 맞을 법한 내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평생에 나눔은 단 한 번만 가능하며, 다른 가족들에게 3번 정도 받을 수 있다는 내용 역시도 보통 가족들끼리 이루어지는 신장 이식 수술을 생각하면

모든 내용이 얼추 비슷하게 맞아떨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이게 소설에서는 수명을 뜻하지만 실제로는 가족 간의 장기 기증에 대한 이야기로 생각하면

더 실제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내용이랑 비슷하게 흘러가서 공감을 할 수 있겠구나란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인 도훈의 친구였던 정우의 가족 이야기를 통해서 보았을 때도 실제 사회의 민낯이 보이는 듯했습니다

겉으로는 입양한 자식에게도 똑같이 동등한 듯, 사랑을 나누어주는 듯 보였던 그 모든 행동들이 사실은 가면 속의 모습이었다는 것이 무서웠죠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현대 사회 속에서 보이는 도덕적 딜레마에 대한 생각도 많아집니다

분명히 범죄지만 부모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것이 정말 마지막 남은 수단일 수밖에 없었겠구나란 생각이 듭니다

만약 내 아이가 지아나 은유처럼 아프다면 그래서 누군가의 수명을 받고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면

그때는 저 역시도 기꺼이 나의 모든 수명을 주거나,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방법을 찾게 되겠죠 세희나 도훈처럼요

실제로 수명을 알게 된다면 많은 사람들은 그 수명에 모든 기준을 맞추어 살게 될 겁니다

몇 년 남지 않은 삶이라면 모든 걸 포기하고 살게 될 것이고, 아직 수십 년이 남았다면 당연하게 생각하고 살게 되겠죠

그리고 1년, 2년이라도 수명을 늘리기 위해서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은 아마 애매한 수명 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사람들일 겁니다

수명 역시도 빈부 격차는 존재하겠죠 책 속에서 나오는 것처럼 수명 나눔에 대한 브로커가 존재한다면 돈이 많은 사람들은 3번에 걸쳐서

수십 년의 수명을 돈을 주고 사게 될 겁니다 그리고 자신이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순간 자신의 자식들 중에서 가장 사랑하는 자식에게

최대 30년의 수명을 나누어 주게 되겠죠 만약 그런 것이 반복된다면 부자들은 자신의 수명에 더해서 최대 90년의 수명을 더 가질 수 있습니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서 나누어 줄 수 있는 수명의 한계치도 높아지게 될 것이고 모든 게 더 발전하게 되겠죠

그러면 점점 돈 많은 사람들은 오래 살게 되고 돈이 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수명을 팔아서 삶을 살아가게 될 겁니다

이런 상상만으로도 얼마나 끔찍하고도 무서운 세상인가요?

만약에 '인 타임'처럼 노화가 멈추어 버린다면 모르겠지만 100년이 넘는 시간을 살아간다는 사실도 끔찍하기 그지없습니다

그저 평범한 수명을 가지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가장 큰 행복할 텐데 이 소설 속에는 그런 행복이 없는 것 같습니다

수명 측정기를 사용하여 수명을 알게 된 이유로 누군가는 삶의 마지막 믿었던 가족들에게 상처를 받게 되었고,

수명 측정기를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로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의 병을 늦게 알아 버렸기에 절망했고 전전긍긍했고,

도저히 수명 측정기를 사용하지 않을 수도 없고, 사용할 수도 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게 너무 암담했습니다

등장인물들 한 명 한 명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고, 심리 묘사도 훌륭했습니다 처음에 등장했던 정우의 모습에서 느껴졌던 것들이

실제 결말에서 그대로 이어져서 내가 잘못 느낀 게 아니었구나란 생각도 했고, 물론 뻔할 수 있는 결말이지만 정말 마음에 드는 결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과연 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의 수명을 포기하고 나누어줄 수 있을까라는 질문 역시도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네요

물론 사실 당장에 그럴 일이 없으니까 당연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의 생명을 나누어줄 수 있다고 대답할지도 모르겠지만요

하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저는 제 스스로가 너무 중요해서 아마도 쉽게 저의 수명을 나누어줄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요

그렇지만 그 대상이 만약 나의 아이들이라면 나는 기꺼이 나의 모든 수명을 주고 내 삶을 끝내더라도 아깝지 않을 것임을 그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복수와 오해, 도덕적 딜레마, 사람들의 이중성, 부모의 마음 등등을 엿볼 수 있는 정말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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