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야멘타 하인학교
야콥 폰 군텐 이야기Jakob von Gunten
로베르트 발저 장편소설 | 홍길표 옮김 | 문학동네
‘가장 작은 존재, 가장 미미한 존재’가
되고 싶어하는 한 소년의 반反 영웅적 이야기!
로베르트 발저의 책을 수십만, 수백만의 사람이 읽었다면
세상은 보다 나은 곳이 되었을 것 _ 헤르만 헤세
프란츠 카프카가 사랑한 작가, 로베르트 발저의 대표작
어려서, 병결 조퇴는 가능해도 결석은 용납할 수 없는 부모님 밑에서 자란 탓인지
나도 모르게 자라면서 '학교 신성체설(?)'같은 의식을 키우며 성장했다.
학교라면 무릇, 그 안에서 '단순 지식'뿐만 아니라, 인간이 공동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행할 수 있는 모든 규범적 가치를 배울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기관이란 믿음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최근 들어, 빈번하게 보도되는 학교 내 왕따 문제,
자질이 의심되는 교사들이 빚어내는 사건, 사고를 보면서 나 혹은 우리 부모님이
어려서 겪고 믿었던 그런 '학교'는 더이상 존재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단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런 의심이 싹틀 무렵, 이 책을 만났다.
_ 의도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무언가를 행한다. 그러니까 말이다, 그게 훨씬 더 필요한 일이라는 말이다. 이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머리들이 쓸데없이 일하고 있다. 그것은 너무나,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다. 학술적으로 다루고, 이해하고, 지식을 갖게 되면서 인류는 삶에 대한 용기를 서서히 잃어버리고 있다. - 101쪽
(로베르트 발저 작가의 모습, 거 참 잘생겨서 글도 잘쓰고. 정말 부럽다.)
_ 로베르트 발저가 베를린에 체류하는 동안 출간한 세 번째 소설은 그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진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일기 형식으로 쓰인 이야기의 줄거리는 매우 단순하다. ‘폰 군텐’이라는 이름에서 이미 알 수 있듯 귀족 가문 태생의 한 젊은이가 하인을 양성하는 학교에 들어가 생활하다가 그곳이 문을 닫게 되자 원장 선생님과 함께 사막으로 떠난다는 이야기다.
하인이 되려는 야콥은 근대 교양 이념을 거부하는 반(反) 영웅의 전형이다. 모든 변화와 발전을 부인하는 그의 이야기는 반(反) 이야기(역사)이다. 야콥은 이야기(역사)의 끝에서 자아소멸이라는 자아실현을 위해서 유럽을 떠나 황야로 떠난다. 이것은 ‘주체’와 ‘역사’라는 서구 근대 담론의 두 축이 완전하게 해체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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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말하면 이 책은 '학교라는 교육 기관'에 대한 고발 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때가 때인지라, 내가 유사 문제를 보고 들으며 관련 생각을 했을 뿐이다.
시대의 담론이 요구하는 공통된 사상을 주입시켜주는 기관
혹은 '다수'라는 무리 안에서 한 개인이 가지는 '다른' 생각에 대한
무차별적인 묵살과 그 이상의 폭력이 묵인되는 기관
그런 존재로써 학교를 바라본다면, 이 소설의 무대에서 활용되었던 그 공간을 통해
궁극적으로 비평하고자 한 '서구 중심적으로 형성된 근대적 담론'에 대한 고민도
충분히 엮어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게 또 좋은 작품을 읽는 묘미일테고.
이제, 더는 '경쟁'과 '정복'이 우선적 가치가 아닌 시대에서,
새로운 헤게모니와 보다 더 나은 '상생'의 길을 추구하고자 하는 이 시기에
이보다 더 유익하고 통쾌한 교양소설이 또 있을까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