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비밀 코스 여행
최상희 지음 / 웅진리빙하우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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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시간을 두고 좀 더 길게 두루두루 다녀야 할 만한 곳인 것 만은 분명하다. 한 보름쯤?
그런데 지금 껏 나의 삶에서 항상 그런 긴 시간이 허락된 적이 없다.
서너번쯤 다녀왔지만 2박3일이상 머무른 적이 없다.
그래서 항상 제주도는 아쉬움이 남는 곳이다.

내게 관광지로만 여겨졌던 그 곳 제주도는 사진작가 故김영갑 선생님의 책을 읽은 뒤로는 끊임없이 방문을 해야할 미지의 세계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변화무쌍한 다양체인 바람 그 자체를 보고 느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날 별다른 준비없이 제주도를 향하게 됐다. 아무런 준비없이 이렇게 가도 되나 하는 심정으로 서점에 들렸다. 여행서 코너에 서자마자 한번에 집어든 책 <제주도 비밀 코스 여행>.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책을 사서 들고 나왔다. 그리고 다음날 제주도로 향했다.
고급 숙소에서 책이나 보면서 편히 쉬다올 생각이었지만, 이 책을 보고 있자니 가고 싶은 곳이 너무나 많았다. 그렇게 보석처럼 숨겨진 곳을 친한 친구에게 선물처럼 소개해 주는 양 고마운 정보들이 많았다. 하지만 모든 여행이 그렇듯이 준비 없이 욕심만 과하게 부리면 항상 탈이 나는 법.
스케쥴링 없이 무턱대고 왔다갔다 하면서 일정을 제대로 소화해 내지는 못했다.
그렇게 2박 3일이 훌쩍 지나고 역시나 아쉬움을 접어둔 채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이 책을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하는 생각이 더 없는 후회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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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숲을 거닐다 - 장영희 문학 에세이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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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의 서문을 읽으면서 책읽기를 시작하는 습관을 들인지 얼마되지 않는다.
책의 서문이 형식적일 때도 많았고, 바쁜와중에 그저 '다 읽어보았다'라는 식의 권수 채우기의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좀 더 천천히 저자와의 접속을 생각하면서 책읽기 자체의 즐거움에 접속하려는 시도와 함께 책을 꼼꼼히 읽으려는 습관이 생겨났다. 그래서 이 책도 서문에 속하는 '작가의 말' 부터 읽기 시작을 했다.

그런데  이 책이 <조선일보> '문학의 숲, 고전의 바다'라는 북 칼럼에 게재되었던 글을 모은 것이라는 저자의 말 때문에 무척이나 신경이 쓰였다. 게다가 장애인 대학교수였고, 지병을 앓다가 돌아가셨다는 '앎' 자체도 책을 읽는데 장애가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가  책의 중반까지 가도록 별다른 감응도 없었고, 그저 몇몇 문학들을 소개하는 글들과 '행복'이라는 근대적 망상들을 쫓는 모습이 비추어 지는 것이 조금 거북스러웠다. 하지만 책의 중반이 넘어가면서 따뜻한 '인간애'를 발견하게 되면서 그녀의 삶 자체에 감사를 느낀다. 다행이다. 그러고 보면 어느 책 하나 정말 보석처럼 빛나는 면이 없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책의 저자들이 어떤 '진정성'이나 '신실함' 등과 같은 소중한 가치들에 대한 생각을 놓치지 않고 있다면 말이다.
가끔 마감에 쫓겨 바쁘게 쓴 흔적들이 보이기도 한다. 짧은 지면에 실린 3년 동안의 그때 그때의 다른 모습들이 이 책 전반에 고루 펼쳐져 있다. 이렇게 여러 다른 모습을 만나는 것이 이 책의 묘미라면 묘미일 것 같다. 그러니 '차이'를 인정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녀 자신에게 조차 생겨나고 있는 그 '차이'들을 그녀의 입장이 되어 바라볼 만 하다. 이런 방법을 취하면 이 책에서 소개되는 수 많은 문학작품들을 더없는 나만의 보석으로 반짝 빛나게 할 수 있으리...

이 책에서 가장 큰 감응을 주었던 것은 어떻게 하늘을 팔 수 있습니까? (p.194-197) 에서, 19세기 중반, 미국 정부가 스쿼미시 인디언들이 살던 땅을 사려할 때 인디언 추장이 썼다는 글에 대한 요약에서 였다.

   
  워싱턴에 있는 위대한 지도자가 우리 땅을 사고 싶다는 요청을 해 왔습니다. 우리는 그의 제의를 고려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총을 가지고 와서 우리의 땅을 빼앗아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하늘, 그리고 땅을 팔고 살 수가 있을까요? 우리에게는 아주 이상한 생각입니다. 신선한 공기와 반짝이는 무은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것을 팔 수 있겠습니까?
    땅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 거룩한 곳입니다. 아침 이슬에 반짝이는 솔잎 하나도, 해변의 모래톱도, 깊은 숲 속의 안개며 노래하는 온갖 벌레들도 모두 신성합니다. 나무줄기를 흐르는 수액은 바로 우리의 정맥을 흐르는 피입니다. 우리는 땅의 일부이고 땅은 우리의 일부입니다. (...) 만일 사람이 쏙독새의 아름다운 지저귐이나 밤의 연못가 개구리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인생에 남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백인들의 도시에는 조용한 곳이라곤 없습니다. 아무 데서도 봄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며 벌레들이 날아다니는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
    우리가 만약 당신들에게 땅을 판다면, 땅은 거룩하다는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이 땅을 목장의 꽃향기를 나르는 바람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 지켜 주십시오. 우리가 우리의 자손에게 가르친 것을 당신들도 당신들의 자손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땅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라고. 모든 것은 땅으로부터 나오고, 이땅의 운명이 곧 우리의 운명이라는 것을......
 
   
새만금 갯벌을 지키기 위해 삼보일배 순례단이 순례를 마쳤다는 소식을 듣고 이 인디언 추장의 글을 떠올려 쓴 글이다. 어떤 정치력을 행사할 만큼의 힘은 없었지만 어떤 마음과 어떤 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를 견지할 수 있는 감응을 주기에 충분한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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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날개 > [연극] 그 놈이 그 놈 - 학전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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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몇년 동안 연극 볼 일이 거의 없었는데, 유난히 올 여름들어 연극을 자주보게 된다.
전쟁,사랑,예술을 이야기하던 <환상동화>, 영화 왕의 남자 원작극 <이(爾)>에 이어 풍자음악극 <그 놈이 그 놈> 까지 한달 동안 세 작품. 아마도 <차이와 반복>을 공부한 후로 예술을 접하는 어떤 다른 느낌들을 필요로 해서 그렇게 된건가 싶다. 어쨎든 내가 보고 싶어 하여 본 연극들 이니까...

알라딘 문화초대 이벤트에 당첨이 되었다는 문자메세지를 받았다. 9일 <그 놈이 그 놈> 관람 이벤트에 응모한 것이 된 모양이다. 첫 당첨이라 기뻐서 꼭 가겠다고 다짐했지만, 막상 당일이 되자 비가 너무 많이 쏟아져서 갈까 말까 한참을 망설였다.
그러고 있는 사이 비가 개었고, 비록 혼자지만 룰루랄라 대학로로 향했다.
풍자 음악극이라 하여 음악적 요소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 줄 알았지만 그런 건 없었고, 극에 사용되는 연주음악과 노래반주, 그리고 효과음을 라이브로 한다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라이브 음악이 있으니 현장감이 살아있어서 좋기는 했다.

배우 6명이 19인의 역할들을 '퀵 체인지'라 이름지어진 테크닉으로 재빠른 역할 전환을 하면서 놀라움과 재미를 주기도 하고, 뛰어난 연기력으로 요소요소에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장면들을 보여주었다.
크게 박수를 보내주고 싶은 것은 이렇게 재빠르게 역할을 바꿔가면서도 각각의 캐릭터들이 나름대로 살아있도록 해야하기 때문에 엄청난 연습에 따른 빼어난 연기력이 돋보인 다는 점이다.
연기력에 노래 실력까지 완벽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약간 무리였을까? 배우들이 노래를 통해 감동까지 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첫 회 공연을 봐서 그럴지도 모르니 이 부분은 얼마나 더 좋아질 지 좀 더 지켜보고 싶다.

개인적으로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 점은, 세태 풍자가 있다니 뭔가 신랄한 비판을 기대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코믹한 버전으로 웃으면서 조롱할 수 있게...
그런데 우리가 웃음꺼리로 삼으려한 인물들이 연인관계의 연쇄살인범, 국회의원, 유명여자연예인, 춤교습제비, 돈밝히는 복부인 등등 이라니... 너무 일반적이지 않나... 그래서 애초에 기대했던 세태 비판에 대한 기대는 접어야 했다. 하지만 한가지 눈여겨 볼 점은 비판받아 마땅한 그 캐릭터들을 심판하여 벌을 내리는데, 그 벌은 바로 여러가지 가면을 쓰고 살지 말고 하나의 가면만 쓰고, 한가지 모습으로 살라는 판결이다.
이 것이 이 연극이 던져주는 강렬한 메세지일 것이다. 우리는 어떤 자기동일성에 따른 동일한 자아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자기 삶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되도록 유지하면서 살려고 하는 의지는 있지만 삶 속에서 그리 쉽게 유지되지는 않는다. 그런 비인칭적자아를 가진 우리들에게 조금도 어긋남이 없는 자기동일성의 모습을 가지고 살라니 감옥없는 감옥에 갇혀 사는 것과 다름 없는 일이다. 어찌보면 가혹하고도 가혹한 형벌이 아닐까? 그런데 우리는 그런 감옥에 알아서 들어가서 감옥살이처럼 준수하게 살려고 하고 있지는 않은가?
연극 <그 놈이 그 놈>은 이런 생각들을 목구멍에 걸린 생선 가시 처럼 남겨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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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전
김규항 지음 / 돌베개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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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까지 나는 철저한 기독교 비판주의자였다.
딱히 다른 종교나 다른 믿음이 있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어려서 부터 성당을 다니긴 했다. 그렇다고 신앙이 있는 삶을 살진 않았다.
그러니 무늬만 가톨릭 신자였던 셈이다.
그런데 기독교를 비판하는 것과 신앙과는 별개였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이것은 4년이 넘게 한 교회에 출석하면서 말씀을 듣고, 성경을 묵상하고, 한 때는 새벽기도에 열심히 나가면서 몸으로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진정으로 힘없고 가난하고 병들고 나약한 사람들을 '사랑으로' 치유하고 해방시키려했던 예수님의 삶을 닮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미약하게나마 몇 가지 사랑의 실천의 방법을 삶에서 실천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 나는 종교인 이라면 무언가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2009년. 이 책을 만났다.
내가 쓰고 남는 것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내게도 부족하지만 그 것 조차 함께 나눌 수 있는 마음. 
이 책에서 나는 이런 마음을 배운다. 천국이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에 있어서 그곳으로 가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여기에서 천국이 펼쳐지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실천을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인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배움'과 '깨우침'을 주기에 더욱 소중히 읽혀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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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달인, 호모 로퀜스 - 언어가 춤을 춘다 세상을 다 말하라!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3
윤세진 지음 / 그린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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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글을 잘 쓰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는 것 같다.
무언가 강렬한 것이 내면에서 가득히 차오름에도 불구하고, 망설임의 추를 매달아 끝없는 끝으로 침잠시켜 버리거나, 게으름의 날개를 달아 잡히지 않는 시야 밖 높은 곳으로 너무나 쉽게 날려 보낸 적이 많은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글을 쓰겠다는 욕망은 여전하다.
그러한 욕망을 현실화시키는데 이 책은 참으로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이야기의 대상이 비록 청소년들에게 인 것 처럼 되어 있지만, 내 수준이 받아들이기에는 조금도 거부감이 없다.
이 책이 재미있는 것은 문학작품들 뿐만이 아니라 미술작품들을 가지고서도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같은 시리즈의 책 <예술의 달인, 호모 아르텍스>와 마찬가지로 이야기 가득한 풍부한 예들과 거침없는 리드에 쉽사리 이끌려 간다. 부담과 두려움 보다는 가득한 열정을 품을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더없이 좋은 책이다.

[밑줄긋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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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단지 언어의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발화되는 상황에서 언제나 우리의 행위를 문제 삼는다. ... 언어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행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기도하다. ... 말들의 용법을 무한히 확대시키면서 새로운 언어게임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은 새로운 것을 행하는 것이고, 새로운 신체를 갖게 되는 것이며, 새로운 세계, 새로운 삶으로 진입하는 것이다.(p.36-37)

내 말은 내 것이 아니다. 그 안엔 이미 우리가 만난 여러 사람들이, 우리가 경험한 세계가 담겨 있다. 따라서 여러 가지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은 여러 개의 목소리를 배우고 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신(神)이란 가장 큰 소리로 말하는 존재가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의 목소리를 지닌 존재가 아닐까.(p.54) 

실제 언어생활에서 의미와 정의가 일치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정의'는 단어에 경계를 부여하는 것이지만, 의미는 경계 밖에서 매번 다른 방식으로 불쑥 솟아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의미는 '보편적'이거나 '객관적'인 것이 아니다. 의미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전혀 다른 곳에서 출발해야만 한다.(p.64)

하나의 얼굴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의미다. ... 때론 얼굴이 말보다도 더 많은 의미를 전달해 주기도 한다. ... 언어활동은 이런식으로 항상 하나의 얼굴을 수반한다. 언어게임에서 얼굴은 의미를 파생시키고, 언어를 굴절시키는 필수 요소다.(p.85) 


글쓰기의 목적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하는 고전 속의 이런 글도 인용되어 있다.

"나는 알고 있다. 사람들이 어떻게 공리니 정의니 하는 미명으로, 성인군자란 간판으로, 점잖고 성실한 체하는 가면으로, 유언비어와 여론이란 무기로, 구렁이 담 넘어 가는 식의 글로 사리사욕을 채우면서 칼도 없고 붓도 없는 약자들을 숨도 못 쉬게 하는지를. 나에게 이 붓이 없었다면 수모를 받고도 어디가서 하소연할 길조차 없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깨어났다. 그러기에 늘 이 붓을 들어 기린의 피부 속에 감춰진 마각(馬脚)을 드러내고 있다." (루쉰, 『화개집 속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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