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숲을 거닐다 - 장영희 문학 에세이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의 서문을 읽으면서 책읽기를 시작하는 습관을 들인지 얼마되지 않는다.
책의 서문이 형식적일 때도 많았고, 바쁜와중에 그저 '다 읽어보았다'라는 식의 권수 채우기의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좀 더 천천히 저자와의 접속을 생각하면서 책읽기 자체의 즐거움에 접속하려는 시도와 함께 책을 꼼꼼히 읽으려는 습관이 생겨났다. 그래서 이 책도 서문에 속하는 '작가의 말' 부터 읽기 시작을 했다.

그런데  이 책이 <조선일보> '문학의 숲, 고전의 바다'라는 북 칼럼에 게재되었던 글을 모은 것이라는 저자의 말 때문에 무척이나 신경이 쓰였다. 게다가 장애인 대학교수였고, 지병을 앓다가 돌아가셨다는 '앎' 자체도 책을 읽는데 장애가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가  책의 중반까지 가도록 별다른 감응도 없었고, 그저 몇몇 문학들을 소개하는 글들과 '행복'이라는 근대적 망상들을 쫓는 모습이 비추어 지는 것이 조금 거북스러웠다. 하지만 책의 중반이 넘어가면서 따뜻한 '인간애'를 발견하게 되면서 그녀의 삶 자체에 감사를 느낀다. 다행이다. 그러고 보면 어느 책 하나 정말 보석처럼 빛나는 면이 없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책의 저자들이 어떤 '진정성'이나 '신실함' 등과 같은 소중한 가치들에 대한 생각을 놓치지 않고 있다면 말이다.
가끔 마감에 쫓겨 바쁘게 쓴 흔적들이 보이기도 한다. 짧은 지면에 실린 3년 동안의 그때 그때의 다른 모습들이 이 책 전반에 고루 펼쳐져 있다. 이렇게 여러 다른 모습을 만나는 것이 이 책의 묘미라면 묘미일 것 같다. 그러니 '차이'를 인정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녀 자신에게 조차 생겨나고 있는 그 '차이'들을 그녀의 입장이 되어 바라볼 만 하다. 이런 방법을 취하면 이 책에서 소개되는 수 많은 문학작품들을 더없는 나만의 보석으로 반짝 빛나게 할 수 있으리...

이 책에서 가장 큰 감응을 주었던 것은 어떻게 하늘을 팔 수 있습니까? (p.194-197) 에서, 19세기 중반, 미국 정부가 스쿼미시 인디언들이 살던 땅을 사려할 때 인디언 추장이 썼다는 글에 대한 요약에서 였다.

   
  워싱턴에 있는 위대한 지도자가 우리 땅을 사고 싶다는 요청을 해 왔습니다. 우리는 그의 제의를 고려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총을 가지고 와서 우리의 땅을 빼앗아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하늘, 그리고 땅을 팔고 살 수가 있을까요? 우리에게는 아주 이상한 생각입니다. 신선한 공기와 반짝이는 무은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것을 팔 수 있겠습니까?
    땅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 거룩한 곳입니다. 아침 이슬에 반짝이는 솔잎 하나도, 해변의 모래톱도, 깊은 숲 속의 안개며 노래하는 온갖 벌레들도 모두 신성합니다. 나무줄기를 흐르는 수액은 바로 우리의 정맥을 흐르는 피입니다. 우리는 땅의 일부이고 땅은 우리의 일부입니다. (...) 만일 사람이 쏙독새의 아름다운 지저귐이나 밤의 연못가 개구리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인생에 남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백인들의 도시에는 조용한 곳이라곤 없습니다. 아무 데서도 봄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며 벌레들이 날아다니는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
    우리가 만약 당신들에게 땅을 판다면, 땅은 거룩하다는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이 땅을 목장의 꽃향기를 나르는 바람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 지켜 주십시오. 우리가 우리의 자손에게 가르친 것을 당신들도 당신들의 자손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땅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라고. 모든 것은 땅으로부터 나오고, 이땅의 운명이 곧 우리의 운명이라는 것을......
 
   
새만금 갯벌을 지키기 위해 삼보일배 순례단이 순례를 마쳤다는 소식을 듣고 이 인디언 추장의 글을 떠올려 쓴 글이다. 어떤 정치력을 행사할 만큼의 힘은 없었지만 어떤 마음과 어떤 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를 견지할 수 있는 감응을 주기에 충분한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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