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편지 - 제2회 네오픽션상 수상작
유현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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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산 作 '살인자의 편지'는 사회의 부조리와 법의 이중성을 이유로 하여 사적 처형을 하는 살인자와 그를 잡기 위한 경찰들의 추격을 그리고 있다.  

영흥시의 쇼핑 센터 창고에서 속옷만 입은 채 목이 졸려 숨진 어느 가출 소녀의 사체가 발견된다. 현장은 최초 발견자와 응급 요원에 의하여 이미 훼손된 상태이다. 그러나 경찰은 소녀 옆에 놓인 교수형 매듭으로 묶인 밧줄이 이전 발생한 두 건의 연쇄 살인 사건의 범행 수법과 동일하다고 파악하고 비공개 수사 본부를 설치한다. 그러나 세 명의 희생자들 사이에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을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범인의 지문이나 DNA 등의 증거는 하나도 발견되지 않아서 수사는 답보 상태이다. 이윽고 네 번째 살인이 일어나고 범인이 이전 희생자의 가족에게 자신의 범행 이유와 그 정당성을 설명하는 편지가 도착한다. 경찰은 공개 수사로 전환하고 사건을 기사화하여 범인을 잡기 위한 함정을 준비한다. 그러나 범인의 행동은 더욱 과격해지고 자제를 잃기 시작한다. 그리고 경찰은 뜻밖의 사실에 조우하게 된다. 

범인이 주장하는 사회적 부조리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적 처형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조화롭게 사회 생활을 하기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의 도덕인 법은 완전하지 않다. 그리고 법은 인간의 이성적 판단에 의하여 적용된다. 따라서 위법적 행위에 대한 법의 심판이 때로는 감정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할 경우뿐만 아니라 그릇될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를 바로잡겠다는 명분으로 누구나 폭력으로 사적 처형을 행한다면 사회는 공평해지기는커녕 붕괴될 것이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이 있듯이 잘못된 법이라도 일단 지키고 따라야 한다. 그 대신 그 법을 수정하거나 폐기하는 방법으로 사회를 변화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장난스럽고 다소 촌스러운 표지와 달리 치밀한 구성과 세밀한 묘사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교수형 매듭으로 묶인 밧줄 외에는 아무런 증거가 없는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범인으로부터 자백에 가까우나 경찰이나 희생자의 가족을 놀리는 듯한 편지가 도착한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또한 장면 하나 하나가 눈 앞에 펼쳐질 듯한 생동감과 사실감이 느껴졌다. (때문에 영상화된다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전 역시 치밀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초반부터 범인이 누군지 대충 짐작이 간 탓에 그리 놀라지는 않았다. 또한 범인이 살인을 저지른 동기가 어린 시절의 학대로부터 기인했다는 다소 진부한 설정 및 후반부의 급작스러운 상황 전개는 다소 아쉽다.   

한편 이 작품은 기묘한 연쇄 살인과 사이코패스 범인에 대해서만 다루는 것은 아니다. 거리를 방황하는 청소년과 금전 비리, 성폭력 등 우리 사회의 음습한 면을 사실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특히 가출 청소년들의 생활과 말투에서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때문에 앞으로의 사회가 걱정되고 우울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조금이나마 젊음의 희망을 느낄 수가 있었다. 

우리나라 추리소설은 재미는 있어도 다소 구성이 취약한 경우가 많은데 '살인자의 편지'는 꽤 박진감 넘치고 짜임도 좋은 작품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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