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사신 치바

사신 치바 ㅣ 이사카 코타로 사신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5월

이사카 코타로 作 '사신 치바'는 치바라는 이름의 사신이 사고로 죽음을 맞이할 인간을 일주일 동안 관찰하면서 그들의 삶을 조사하는 내용을 담은 6편의 연작 단편집이다. 6편의 독립된 이야기가 마치 강이 흐르듯이 잔잔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강줄기가 모여 바다를 이루듯이 모든 이야기가 하나로 연결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전화로 불만 고객을 응대하는 일을 하는 음울한 여자, 의리와 의협심으로 똘똘 뭉친 야쿠자, 눈보라 속에 갇힌 별장 에서 벌어진 3건의 살인 사건, 좋아하는 여자를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바친 청년, 어머니를 칼로 찌른 후 길 가던 행인을 홧김에 죽이고 도주하게 된 소년, 죽음을 예감하고 있는 노인에 이르기까지... 치바는 오랜 세월 동안 다양한 인간을 만나서 그들의 죽음을 지켜본다. 치바는 자신이 담당하게 된 인간에 대하여 연민이나 동정을 느끼기보다는 지극히 객관적인 시각으로 그 인간의 삶을 바라본다. 치바에게 있어서 인간의 죽음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으며 관심 또한 없다. 그저 일이기 때문에 인간의 죽음을 조사하고 지켜보는 것뿐이다. 하지만 자신의 일에 충실하다보니 인간의 과거 또는 현재의 삶에 깊숙히 관여하게 된다. 이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무덤덤한 행동이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지 않으며 시기가 다를 뿐 누구나 반드시 죽는다. 그러나 인간의 사고사가 사신에 의해서 결정되고 사신의 판단으로 죽음이 결정된다는 것은 다소 억울하며 도대체 누가 어떤 기준으로 선택이 되는 것인지 의문이고 두렵기도 하다. 솔직히 치바와 같은 성실한 사신이 자신의 삶을 조사하고 아주 적은 확률로 삶을 연장시켜준다면 고맙긴 해도 그다지 큰 위로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이 책을 읽으면서 내게 주어진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낄 수 있었으며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고 후회가 없도록 열심히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삶과 죽음을 같은 무게로 보고 때로는 바쁜 일상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자신을 비롯한 인간에 대해서 관조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잔잔하고 고요한 느낌이 든다. 큰 재미는 없지만 이사카 코타로만의 재치가 묻어난 대사가 많아서 피식 웃게 되는 부분이 많다. 특히 인간의 행동이나 말을 따라하려고 노력하지만 번번이 오해가 괜한 웃음을 사는 치바의 모습이 재미있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여자를 스토커로부터 지키다가 목숨을 잃게 되는 청년의 로맨스가 인상적이었다. 마음 한 켠이 먹먹해져왔다. 그리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던 노부인의 에피소드에서는 정말 작가의 센스에 감탄했다. 이렇게 이야기가 연결될 줄이야...! 덕분에 쓸쓸함이나 슬픔보다는 소소한 감동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신은 죽는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치바의 질문이 다시 한 번 곱씹어보면서 책장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