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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프라우
질 알렉산더 에스바움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들어가기 전에
1. 안나는 스위스에 정착한 미국인이다. 스위스는 독일어를 쓰는 나라이지만 표준독일어Hochdeutsch가 아닌, 일종의 지역 방언인 슈비처뒤치를 사용한다. 나는 오스트리아에 체류한 경험이 있는데, 오스트리아도 스위스처럼 독일어를 쓰는 나라이나 내가 살던 곳에서도 지역 색 짙은 방언을 사용했다. 나도 안나처럼 외국인들 틈에서 독일어를 배웠고, 이 유사한 경험이 책에 더 빠져들게 했다.
2. 그리하여 작가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놓은 영어-독일어(스위스어) 간 ‘의미심장한 설정’을 찾는 재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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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에도 등장했지만, 그 유명한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을 떠올려본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자의 방식으로 불행하다>
우연인지 아닌지, <하우스프라우>의 주인공 이름도 안나이다. 독일어로 가정주부, 혹은 기혼 여성을 뜻하는 ‘하우스프라우Hausfrau’는 ‘집Haus’과 ‘여성Frau’이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다. 안나는 스위스 은행에서 일하는 스위스 남자와 결혼하여 스위스의 어느 시골마을에 사는 가정주부이다.
안나가 자신의 자그마한 일상을 살아가는 자그마한 마을이었다. 그러므로 열차 시간표라는 평범한 사실이 안나의 일과를 조절했다. 디틀리콘의 버스는 시내까지 들어가지 않았다. 택시는 비싸고 실용적이지 못했다. 벤츠 가족에게 차가 한 대 있긴 했어도, 안나는 운전하지 않았다. 운전면허가 없었다. (11p)
수동성을 인간으로 만든다면 바로 안나의 모습일 것이다. 안나는 운전면허는 물론, 은행계좌조차 없다. 남편이 무려 스위스 은행 직원인데도.
이 책은 기본적으로 9월부터 11월까지 안나의 기록이지만, 소설의 서사는 과거와 현재를 복잡하게 넘나든다. 안나는 불면증과 우울증 등의 이유로 정기적으로 메설리 박사에게 상담을 받고 약을 처방받는다. 박사와의 정신 상담은 소설의 큰 축 하나를 이룬다.
박사의 권유로 안나는 외국인들을 위한 독일어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다. 안나는 그곳에서 불륜 상대인 아치나 친구 메리와 같은 인물들을 만난다. 학원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강의 내용, 학원을 다니면서 변화하는 안나의 일상은 서사의 또 다른 큰 줄기이다.
마지막으로 안나는 두서없이, 그리고 복잡하게 과거를 회상한다. 아주 어릴 적인 경우도 있고 2년 전의 일이기도 하다. 안나는 행복했던 일, 불행했던 일, 후회하는 일 등을 복잡하게 회상하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작가는 복잡하게 넘나드는 시간의 결을 능숙하고 노련하게 엮어냈다.
소설은 기차역에서 시작한다. 사람이 많지 않은 몇 개의 정류장은 그냥 지나치는 급행열차처럼, 목적지를 향해 따르게 내달린다.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마치 속도를 조절하지 못해 그대로 어딘가에 충돌하거나 탈선하고야 마는 열차 같다. 비유적으로도 그렇고, 실제로도 그렇다.
우리는 어디에 속해있는가
기차역은 출발의 공간이지만 도착의 공간이기도 하고, 떠남의 상징이지만 머묾의 상징이기도 하다. 기차역에서 시작하는 이 소설의 주인공 안나는 스위스인과 결혼한 미국인으로, 9년 간 스위스에 머물렀지만 제대로 된 독일어도 배우지 않은 채 스위스 어느 곳에도 정을 주지 않았다.
타지에서, 그것도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안나가 느끼는 고독감은 말로 쉽게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원래도 수동적인 여자였던 안나는, 그렇게 점점 더 수동성의 늪에 빠져들어갔다. 안나가 유일하게 주체적으로 내리는 결정은 섹스에 관한 것이었고, 남편 몰래 애인을 만나는 것이었다.
불륜이라는 식상한 소재가 고전에서부터 현대 소설에까지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이유는, 이런 수동성에 빠진 여성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은 어쩌면 육체적 선택(섹스) 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가 아닐까. 그러나 본질적으로, 수동성에 빠진 여성이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것에도 '누군가에게 원해진다'는 수동성이 내포되어있다는 아이러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유일한 주도적 선택이라 믿었던 지점마저도 실은 그렇지 않다는 잔인한 설정인 것이다.
안나는 섹스를 좋아하면서도 좋아하지 않았다. 필요하면서도 필요하지 않았다. 섹스와 그녀의 관계는 그녀의 수동성과 다른 데로 관심을 돌리고 싶다는 난공불락의 욕망에서 우러난 난해한 동반자 관계였다. 그리고 원해진다는 것에 대한 욕망. 그녀는 누군가에게 원해지고 싶었다. (62p)
인간은 끝없이 소속감을 찾아 헤맬 수밖에 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적당히 점잖은 스위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시골마을, 안나가 살아가는 장소가 얼마나 보수적인지 더 설명하지 않아도 상상이 가는 지점이다. 남편과 아이들이 함께 사는 집이지만, 안나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 집을 한 번도 ‘내 집’이라 부르지 않는다. 스위스는 안나에게 살아가는 공간일 뿐이지, 특별한 의미를 갖는 장소가 되지 못한 것이다.
미국에는 다시 돌아가고 싶을 만큼 그리워하는 게 없었다. 하지만 스위스는 결코 고향처럼 여겨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것이었다. (77p)
「안나,」 메리가 말을 꺼냈다. 「여기 속한다는 느낌이 들기까지 얼마나 걸렸어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안나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라고 대답해주기를 바라는 느낌이 어려있었다.
그건 안나의 대답이 아니었다. (83p)
그렇다고 그녀가 고향인 미국을 애절하게 그리워한 것은 아니다. 어디에도 정을 두지 못한 그녀 –를 비롯한 현대인들 – 에게 과연 ‘고향’이나 ‘집’은 어디인가를 질문해보게 된다.
원의 속성에 대해 생각해본다. 원형으로 빙 둘러앉으면, 우리는 구성원 모두를 볼 수 있다. 그래서 원형 구도는 구성원간의 공평하고 수평적인 관계를 만들어낸다. 소속감은 덤이다. 그러나 원 바깥의 세계는 철저히 배제된다는 양면성을 지닌다. 우리는 원 안에서 서로의 얼굴을 보지만, 원 밖의 인물에는 조금의 시선도 던지지 않는다.
스위스는 안나에게 원과 같은 공간이었고, 안나는 원 밖에 있는 존재였다. 그렇다고 그녀가 미국이라는 원 안에 들어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어디에도 없었다. 오로지 원 밖에 서서 원을 만들어낸 이들의 뒤통수만 바라볼 뿐이었다. 고독한 인간은 그 원을 두드릴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한 인간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도록 버스 노선으로 연결되는 편리한 상가드이 적절히 배치되어 있었다. 작은 필요와 사소한 바람을 담은 가깝고, 닫힌 원이었다.
원 안에 원, 그 안에 또다른 원. 안나는 자신이 사는 빡빡하고 제한된 세계를 넘어서 바라본다는 게 무엇을 함의하는 지 상상할 수 없었다. (58p)
언어유희를 찾아내는 재미
질 알렉산더 에스바움은 이 장편소설을 내기 전, 시집을 몇 권이나 펴낸 저명한 시인이었다고 한다. (옮긴이의 말에서 읽었음) 책을 읽으며 작가가 의도적으로 파놓은 ‘의미심장한 설정’을 찾아내는 재미가 있었는데, 대부분의 경우 ‘언어유희’에서 오는 설정들이었다.
롤란트는 계속했다. 「Ich fahre ein blaues Auto. Aber – ich fahre das blaue Auto. 차이를 알겠습니까?」
안나는 알고 있었다. 부정관사와 정관사의 차이였다.
<일반>과 <특수> 사이의 단절이었다.
<저것들 중 하나>와 <이 특정한 하나> 사이의 넓고 맥 빠진 틈. (68p)
그리고 das Gift도. 안나는 떠올렸다. 선물이 아니라 독일어로는 <독약>이라는 뜻이지.
안나는 메설리 박사에게 영어 단어 트라우마trauma와 독일어로 꿈der Traum이 관련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한 사람의 꿈과 한 사람의 상처 사이에는 언제나 연관이 있죠.」 (74p)
내가 독일어를 읽을 줄 알고, 책에 나오는 기초적인 수준의 독일어(원문에서 안나가 독일어로 생각한 것은 독일어로 그대로 기재하고 한국어 해석을 덧붙인 듯하다.)를 읽는 데에는 아무 어려움이 없었기에 소설을 더 재미있게 읽은 게 사실이다. 그리고 번역가는 어쩌면 소설을 처음부터 다시 쓰는 역할을 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는데, 과연 나라면 이러한 지점을 어떻게 번역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원어를 알면 쉬운 유희가, 언어의 종류를 바꾸니 어불성설이 되어버린다.
안나가 갖는 궁금증은 언어 배우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가져볼 법한 것들이다. 이 단어와 저 단어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이 말의 어원은 무엇일까, 왜 이럴 때에 이런 단어를 쓰게 되는 걸까. 작가는 시인이기도 하다는데, 이 궁금증을 소설 속에서 자연스레 녹였다. 이야기 여기저기서 작가가 의도적으로 설정해 놓은 것들을 찾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리고 안나의 목소리를 통해 작가가 던지는 언어(모국어와 외국어) 자체에 대한 철학적 질문도 고민해볼 지점이다.
「한사람이 말하는 언어는 그 사람을 정의하죠. 한 사람의 언어는 세계에 그 사람이 누군지 말해 줍니다.」 (268p)
한 사람의 모국어는 그를 그 사회 속에 자리 잡게 한다. 하지만 한 사람의 제2언어는 성격을 드러낸다. 실수를 봐, 안나는 혼잣말을 했다. 한 사람이 저지르는 실수는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말해 주지. (269p)
현대판 안나 카레리나의 고전적 결론 (스포주의)
마지막으로 짧게 덧붙이는 결론에 대한 생각. 우선 나는 실망스러웠다.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좀 다른 종류의 결론을 바랐다.
수동성은 안나의 기질이고, 인간의 기질이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녀가 이 수동성을 극복해내는 극적인 마지막을 바랐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여성의 삶’을 그리는 소설에서 주인공이 스스로를 구원할 길이 분명 있지 않았을까, ‘현대판’ <안나 카레리나>의 ‘현대적인’ 결말은 다른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기며 마지막 장을 덮었다.
안나는 언제나처럼 귀찮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할 가치가 있는 한마디만 했다. 「모르겠네요.」 다만, 물론 안나는 거의 언제나 알고 있었다. (13p)
이름은 연약한 것이다. 떨어뜨리면 깨질 수도 있다. (44p)
고독은 그녀의 닻이었다. 익숙한 비참함, 하지만 가장 안전하고, 가장 분별 있는 접근 방식이었다. (65p)
다시 한 번 안나는 자기 스웨터를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걸 망쳐 버렸어. 안나는 생각했다. 달리 바꿀 수 있는 것도 없는데. (66p)
후에 매점에서 안나는 아치와 메리, 남아프리카에서 온 낸시, 런던에서 온 에드와 함께 앉았다. 영어 사용자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유유상종이지. 우리는 익숙한 걸 찾기 마련이야. 박사가 말한 것처럼. 아시아인들도 마찬가지로 널찍이 떨어져서 그들 뒤에 앉았다. (68-69p)
그는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한 걸까? 하지만 그녀는 어떤 감정이 들긴 했다. 그게 뭔지는 아직 집어서 말할 수 없었다. (88p)
알렉시스는 가만히 앉아서 먹었다. 그 애는 멍하니 순종적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고분고분했지만, 냉담했다. 딱히 수동적이라고 할 순 없었지만, 아닌 것도 아니었다. 안나는 그 표정을 알아차렸고 충동적으로 공감을 느꼈다. 난 이 여자애를 알아, 안나는 생각했다. 나도 이런 여자애였으니까. (90p)
어떤 눈물은 위로받을 수 없다. 그저 흘려야 할 뿐이다. (99p)
생존하기 위해 나는 자기 파괴적이다. 하지만 심장의 논리는 자체적인 규칙을 따른다. 나는 그가 그립다. 그립다는 이유만으로. (111p)
비밀이 가장 안전하게 숨을 수 있는 곳은 탁 트인 장소다. 오이처럼 서늘한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해 보자. 그 비밀이 무엇이든, 모든 이들은 보이는 대로의 모습으로 당신을 받아들일 것이다. 남아메리카로 도망가서 조용한 순응 속에서 살아간 그 나치 간부를 생각해 보라. 그의 말년은 착실하고 흠 하나 없었다. 아침이면 깨어나고, 일어나서, 탁 트인 하루를 향해 걸어간다. 편지를 부치고, 버스를 타고, 시장에서 배를 산다. 야외 카페에서 점심을 먹는다. 그는 커피는 블랙으로 마시고 항상 스포츠 경기 결과부터 읽는다. 예쁜 여자가 지나가면, 모자를 들어 인사한다. 70년 전에 그가 군홧발로 바르샤바의 랍비 갈비뼈를 부러뜨린 적 있음을, 지금 찬 시곗줄은 트레블링카 강제수용소의 문 안에서 집시 마부의 덜커덕거리는 손으로부터 빼앗아 온 것임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17p)
「독일어에서는 <……해지다>라는 뜻의 동사 werden으로 수동태를 만들 수 있죠. 그래서 자전거는 훔쳐진다고 표현할 수 있죠. 아니면 여자가 슬퍼진다처럼.」 아니면, 몸이 황폐해질 수도 있겠지. 그리고 심장이 부서질 수도 있고. 어쨌든 이런 식이 안나에겐 이해가 더 쉬웠다. <……이다>는 정적이었다. <……해지다>는 동작을 내포했다. 무기력한 항복으로 향하는 모순적인 움직임. 그게 무엇이든 간에, 내가 그 일을 하는 게 아니다. 그 일이 내게 행해지는 것이다. 수동성passivity과 정열passion은 시작은 비슷하다. 다른 것은 어떻게 끝나는가일 뿐이다. (129p)
9월의 끝이 불확실했던 것만큼, 10월의 시작은 편안했다. 그런 일은 종종 있었다. 모든 달은 자기 나름의 시작으로 시작한다. (149p)
그 누구도 항상 차분할 수만은 없다는 것을, 안나는 알았다. 그래도 안나는 드러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고 해도 나눠 주어서는 안 되는 짐이 있는 거야. 그런 식으로 안나는 전보다 더 외로워졌다. (152p)
「브루노.」 그녀는 속삭였다. 「고통의 목적이 뭐지?」 「이거 무슨 베갯머리 잡담이야?」 브루노는 하품했다. 「잠이나 자, 안나.」 안나는 그에게 다시 물었다. 그녀는 알고 싶었다. 브루노는 몇 번 숨을 들이마시더니 대답했다. 안나는 남편이 잠에 빠져들고 있다고 생각했다. 「고통은 살아 있다는 증거지.」 그의 목소리에는 경계심이 사라져 있었다. 「그게 바로 고통의 목적이야.」 메설리 박사가 준 대답보다 더 만족스러운 답이었다. 「브루노.」 안나는 밀어붙였다. 「나를 사랑해?」 그는 안나의 질문에 코 고는 소리로 대답했다. (188p)
하지만 하찮은 멍이라도 손가락으로 찌르면 아픈 건 매한가지였다. (199p)
그들은 탁 트인 공기 속에서 자기들만의 세계를 자유롭게 누빌 수 있어. 우리는 타자성이라는 상자 속에 갇혀 있지. 거기엔 구분선이 있어. 그들은 우리의 존재를 참아 주지만, 결코 환영하지 않아. (221p)
안나는 원래 탐험심이 넘치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모든 일이 무척 원할히 진행되고 있었고, 행복은 그럴듯해 보이진 않는다고 해도 존재할 것 같기는 했다. 한 사람이 자기 한계를 넘어선 때가 있다면, 말 그대로 그 사람이 어떤 경계를 넘어서 이동한 때가 아니겠는가. (234p)
가장 자주 사용되는 독일어 동사 다섯 개는 모두 불규칙 동사이다. 동사 활용이 일정한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 가지다, 해야 한다, 원하다, 가다, 있다. 소유, 의무, 갈망, 도주, 존재. 모두 개념이다. 그리고 불규칙적이다. 이 동사들은 불충분의 총합이다. 삶은 상실이다. 잦은, 일상적인 상실. 상실 또한 일정한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 오로지 암기함으로써만 살아 남을 수 있다. (255p)
주위에 벽을 치면, 두 사람 사이의 진정한 친밀감이라는 위험과 사랑에는 늘 결국 따라오고 마는 피할 수 없는 상실감을 돌아서 갈 수 있었다.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의 걱정으로부터 해방시키려고 한 일이었지만 그와 함께 해로운 목적도 있었다. 안나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거짓말하고 들키지 않는 것이 제일 쉬운 방법이었다. 누구에게도 중요한 사람이 되지 않는 것. (393p)
전구가 다시 분홍색으로 요동치더니 하얀색, 더 하얀색, 제일 하얀색이 되었다. 안나는 정말로 혼자였다. 그렇게 되도록 조율하고 배치한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하지만 거짓말 중에서도 최악의 거짓말은 그녀의 고독이 필연적이라는 것이었다. 의무적이라는 것이었다. 예정되었다는 것이었다. 다른 거짓들은 그저 불가사리의 팔일뿐이었다. (393-39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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