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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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애란 작가가 2012~2017년 사이 발표한 단편 7편을 모아 놓은 소설집이다. 어쩌다보니 작가의 첫 소설집인 <달려라, 아비>를 읽고 바로 최신작을 읽게 되었는데, 글이 많이 성숙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려라, 아비>가 재능을 주체하지 못하는 신인 소설가의 작품이었다면, 이번 소설집 <바깥은 여름>은 작가가 보다 능숙하게 완급을 조절할 줄 알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달까.

 

 <바깥은 여름>이 당연히 표제작인 줄 알았는데, 제목을 따로 붙인 거였다. 보통 표제작을 선정하는 단편집에서 이렇게 따로 제목을 붙이는 데 신경을 많이 썼을텐데, 모든 작품을 다 어우르는 좋은 제목인 것 같다.

 

수록된 작품은 총 7,

입동 / 노찬성과 에반 / 건너편 / 침묵의 미래 / 풍경의 쓸모 / 가리는 손 /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어느 더운 여름날, 스노우볼을 상상해 본다. 구 바깥은 찌는 듯한 더위이지만 안은 여전히 서늘하다. 7편의 작품은 이렇게 풍경과, 계절과, 세상과 시차를 겪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매일 보는 8시 뉴스의 사건 사고 소식에서 들리는 한 줄의 기사가 어린이집 차량이 후진하다 아이를 치어 사망에 이르게 했다든가, 과속하던 고속도로 차량이 갓길에 있는 사람을 치어 숨지게 했다든가, 물에 빠진 학생을 구하려던 선생님이 사흘간 투병하다 끝내 숨졌다든가 하는 기사들이 사실은 누군가에게 사태事態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리하여 우리는 얼마나 상상력이 메마른 인간이며 또한 앞으로도 숙명적으로 사태 이후의 삶에 얼마나 무관심할 것인가를 조곤조곤 지적한다.

 

 얼마 전 <비정상회담>에 나온 김영하 작가가 '소설은 기본적으로 어두운 것'이라고 했었는데, 그 말이 와닿는 소설집이었다. 바깥은 온통 여름인데, 여전히 겨울을 나느라 애쓰는 이들의 삶을 어떻게 상상해야 하는지, 그 상상이 얼마나 어둡고 아픈 것인지 생각해본다.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


한번은 아내가 바퀴 달린 장바구니를 들고 나갔다 십 분 만에 돌아왔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아내는 사람들이 자길 본다고, 나는 안 그러냐고 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자 아내는 사람들이 자꾸 쳐다본다고, 아이 잃은 사람은 옷을 어떻게 입나, 자식 잃은 사람도 시식 코너에서 음식을 먹나, 무슨 반찬을 사고 어떤 흥정을 하나 훔쳐본다고 했다. (23p)

영우가 떠난 뒤 갑자기 어마어마하게 조용해진 이 집에서 아내와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 같은 도배지를 들고 있자니 결국 그렇게 도착한 곳이 ‘여기였나?‘하는 의문이 들었다. 절벽처럼 가파른 이 벽 아래였나 하는. 우리가 이십 년간 셋방을 부유하다 힘들게 뿌리내린 곳이, 비로소 정착했다고 안심한 곳이 허공이었구나 싶었다. (32-33p)

당시 찬성이 맡은 가장 중요한 일은 잘 크는 것도 노는 것도 아닌, 어른들의 잠을 깨우지 않는 거였다. (43p)

와사삭― 와삭― 청량하게 얼음 부서지는 소리가 찬성 귀까지 다 들렸다. 찬성이 자기 손바닥을 가만 내려다봤다. 얼음은 사라지고 손에 엷은 물자국만 남아 있었다. 동시에 찬성의 내면에도 묘한 자국이 생겼는데 찬성은 그게 뭔지 몰랐다. (48p)

무언가 제자리에 도로 갖고 오는 건 에반이 잘하는 일 중 하나였다. 찬성은 때로 에반이 자기에게 물어다주는 게 공이 아닌 다른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공인 동시에 공이 아닌 그 무언가가 자신을 변화시켰다는 걸 알았다. (52p)

당시 이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도화 혼자 어른이 돼가는 과정을 멀찍이서 지켜보는 일이었다. 도화의 말투와 표정, 화제가 변하는 걸, 도화의 세계가 점점 커져가는 걸, 그 확장의 힘이 자신을 밀어내는 걸 감내하는 거였다. (98-99p)

명학이 그때서야 ‘누구?‘ 하는 얼굴로 도화를 슬쩍 바라봤다. 명학의 서글서글한 눈에 선의와 호기심이 가득했다. 도화는 속으로 ‘아직 덜 실패한 눈……‘이라 중얼거렸다. 오래전 저 눈과 비슷한 눈을 가진 사람을 본 적 있다고. 자신도 가져본 적 있는 눈이라고 생각했다. (114p)

― 나는 네가 돈이 없어서, 공무원이 못 돼서, 전세금을 빼가서 너랑 헤어지려는 게 아니야.
― ……
― 그냥 내 안에 있던 어떤 게 사라졌어. 그리고 그걸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거 같아. (115p)

그때서야 도화는 어제 오후, 주인아주머니를 만난 뒤 자신이 느낀 게 배신감이 아니라 안도감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수 쪽에서 먼저 큰 잘못을 저질러주길 바라왔던 것마냥. (118p)

태어나 내가 처음으로 터뜨린 울음, 어쩌면 그게 내 이름이었을지 모른다. 죽기 전, 허공을 향해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은 어떤 이의 절망, 그것이 내 얼굴이었을지 모른다. 복잡한 문법 안에 담긴 단순한 사랑, 그것이 내 표정이었는지 모른다. 범람 직전의 댐처럼 말로 가득차 출렁이는 슬픔, 그것이 내 성정이었는지 모른다. 나는 내 이름을 못 왼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지 설명할 순 있다. 당신이 누구든 내 말은 당신네 말로 들릴 것이다. (124p)

이곳 사람들은 ‘혼자‘라는 단어를 닳아 없어질 때까지 만지고 또 만졌다. 몸에 좋은 독이라도 먹듯 날마다 조금씩 비관을 맞봤다. (128p)

그들은 잊어버리기 위해 애도했다. 멸시하기 위해 치켜세웠고, 죽여버리기 위해 기념했다. (132p)

그에게 모어란 호흡이고, 생각이고, 문신이라 갑자기 그걸 ‘안 하고 싶어졌다‘ 해서 쉽게 지우거나 그만둘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말과 헤어지는 데 실패했다. 그렇다고 말과 잘 사귄 것도 아니었다. 말을 안 해도 외롭고, 말을 하면 더 외로운 날들이 이어졌다. (142p)

나는 그 광경이 늘 아름답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악몽 같은 아름다움이었을까. 앞으로도 지구가 꾸는 이 예쁜 꿈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아, 죽은 뒤 한번 더 죽으면서도 나는, 그 눈부신 장면으로부터 쉽게 눈을 떼지 못한다. (146p)

사진 찍을 때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걸 알려준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무척 평범한 사람, 좋은 일은 금방 지나가고, 그런 날은 자주 오지 않으며, 온다 해도 지나치기 십상임을 아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니까 그런 순간과 만났을 땐 잘 알아보고, 한곳에 붙박아둬야 한다는 걸 알 정도로…… 나이든 사람 말이다. (중략) 과거가 될 만반의 자세, 만반의 준비를 하고. 그러곤 마음속으로 숫자를 센 뒤 사진기를 보고 웃었다. (150p)

일상 위에 가짜 크리스털처럼 박힌 비일상성과 만나 반갑게 손 흔든 뒤, 돈 쓰고 헤어지는. (169p)

나는 늘 당신의 그런 영민함이랄까 재치에 반했지만 한편으론 당신이 무언가 가뿐하게 요약하고 판정할 때마다 묘한 반발심을 느꼈다. 어느 땐 그게 타인을 가장 쉬운 방식으로 이해하는, 한 개인의 역사와 무게, 맥락과 분투를 생략하는 너무 예쁜 합리성처럼 보여서. 이 답답하고 지루한 소도시에서 나부터가 그 합리성에 꽤 목말라 있으면서 그랬다. (200p)

그래서인지 나는 내 앞의 ‘청명‘이 남의 집에서 떼다 붙인 커튼처럼 느껴졌다. 눈앞에서 아름답게 펄럭이는 ‘현재‘가 좋았던 과거 같고, 다가올 미래 같기도 한데, 뭐가 됐든 내 것 같진 않았다. (22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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