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 홍신 엘리트 북스 64
에밀 졸라 지음 / 홍신문화사 / 1993년 11월
평점 :
절판


에밀졸라의 [목로주점]에서는 제르베즈의 흥망사가 펼쳐지고 그 죽음 끝에 남겨진 아이들의 이야기가 남는다.  제르베즈와 쿠포의 딸. 그러니까 제르베즈의 막내 '나나'다.  [목로주점]에서부터 이미 어른인 랑띠에가 보기에도 요살스러운 계집아이였다. 욕망과 호기심이 가득하고 응큼하며 욕심이 악의적이고 너무 투명하여 섬뜩하게 매력적인 아이가 '나나'였다. 뭐 좋은 이야기라고 이렇게 연달아 잃고 있나 싶지만, [목로주점]이 아니라도 [나나] 자체의 이야기 흡입력 덕분에 어미에 이은 딸의 흥망사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화려한 극장에서 출발하는 이야기는 주인공 없이 주인공을 상상하는 이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나나' 이름만 들어도 호기심이 발동하는 사람들.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에 대한 칭송이 이어진다. 정작 '나나'를 무대에 올리려 드는 자는 '나나'를 창녀라고 규정 지어 말한다. 맞다. '나나'는 창녀다. 돈을 갖지 않으면 소유할 수 없는 여자. 그녀의 매력에 빠진 남자들의 모든 것이 물거품 처럼 사라진다. 돈도 명예도 가족도 다 사라진다. 밑빠진 독처럼 '나나'는 남자들의 돈을 빨아들이고, 그런 사치는 '나나'의 수발을 드는 자들의 거짓으로 또 쉬이 사라진다. 귀족의 돈이 창녀에게로 창녀의 수발을 드는 하층민에게로 돈이 스며든다. 그렇다면 누구 하나의 주머니가 든든해 질 것도 같지만, 그렇게 흩어진 돈은 누구 하나를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 '나나'의 돈을 빼돌려 독립을 꽤 하는 하녀 '조에'가 과연 행복해 질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남자의 끊임 없는 사랑과 맹세도 목숨도 필요 없다.

 

"남자가 고집을 피우면 신통한 일은 없는 법이야"


모든 불행은 외로움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매력적인 육체를 타고 났지만, 돌봄을 받을 수 없었던 상처뿐인 부모에게 태어난 '나나'가 행복을 꾸미는 것이 과연 쉬울까? 어쩌면 행복이라는 것도 착각일 수 있는데 말이다. 스스로를 행복한 상황에 집어 넣는 일이 태초에 불행을 보고만 자란 이가 얼마나 노력을 해야 행복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나나'는 행복과 사랑을 위해 누군가에게 정착하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하지만, 상대가 행복이라는 것을 모르는 또 다른 '나나'일 경우에는 상대를 파괴할 뿐이다. 그 파괴에서 일어난 '나나'는 더욱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여신이 되어버린다. 그 외로움이라는 것은 화려함과 즐거운 파티 속에서도 극복되지 않는다. 결국 나나는 모든 것을 버리고 길을 떠나고 다시 돌아와, 자신의 아이가 돌봄을 받지 못하고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나나'의 고모 뻔뻔한 르라부인은 나나의 수입이 끊기자 아이에게 돈을 쓰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도 잃고 돈도 없는 '나나'는 천연두에 걸려 정작 자신을 사랑해주던 사람들의 돌봄을 받는 것이 아니라 물고 뜯고 싸우기만 했던 '로즈'의 간호를 받다가 떠난다. 전염성이 강한 그 질병에 남자들은 한걸음 물러난다. 그런 나나를 몇날 몇일 돌보는 '로즈'의 동정심은 어쩌면 자신과 동일시가 아니었나 싶다.


[나나]는 1880년 출판되었다. 이 당시의 시대상을 알지 못한다. 파리의 뒷골목의 흥청망청한 느낌과 퇴폐적인 모습들은 알 것 같다. 곧 폭발할 것 같이 빵빵해진 이 불쾌한 느낌을 역사와 함께 연관지어 읽어보아야겠다 생각한다. 그리고 이 당시 이 소설이 출판되었을 때는 얼마나 예리하게 날카로운 느낌으로 받아들여졌을지 짐작해보든 것도 흥미로왔다.

 

책은,

오래된 편집이다. 여백 없이 빽빽한 편집이어서 한권으로 묶여진 것은 감사한 일이나 최근에 줄간격이 넓은 책을 읽다보니 빽빽한 글 사이에서 약간의 혼란을 겪기도 했다. 이왕이면 제르베즈와 랑때에의 둘째 아들의 이야기로 추정되는 [제르미날]도 책으로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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