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박물관의 지하 - 한 감정가의 일기에서 루브르 만화 컬렉션 2
마르크-앙투안 마티외 지음, 김세리 옮김 / 열화당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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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앙투안 마티외 저/김세리 역 | 열화당 | 68쪽 | 2007년 08월 10일 | 정가 : 16,000원


마르크-앙투안 마티외의 [신신]을 보고 감명을 받아서 작가 검색을 해보니, 이 작가의 책 중에 내가 안읽은 책은 이 책 뿐이었다. 과감하게 시도했고, 이 책이 『루브르 만화 컬렉션』의 두번째 권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루브르에 관한 이야기를 만화로 풀어내다니 도대체 어떤 모양일까 궁금해 하기 전에 읽어버린 이 만화 책 덕분에 다른 시리즈가 궁금해져버렸다.

 

화면은 여전히 흑백으로 표정없는 사람들로 채워져있다. 박물관의 감정평가를 하기 위해 감정가가 도착했고 그 조수와 함께 일을 시작한다. 그런데, 첫번째날로 시작한 이야기는, 세번째 날, 서른 세번째 날, 마흔여섯번째 날, 이백열두번째 날, 육백쉰한번째 날, 구백열여섯번째 날, 천사백열세번째 날, 삼천팔백쉰번째 날, 오천팔백아홉번째 날, 구천칠백스물일곱번째 날, 만번째 날, 만천팔백아흔네번째 날, 만사천오백일곱번째 날, 만육천육백열번째 날, 만팔천백서른네번째 날을 마지막으로 끝이 난다. 49년이 넘고 50년을 못채운 기간이다. 이 기간동안 이 감정평가사는 무엇을 발견했을까?

 

출발부터 이상했다. 기초공사로 보이는 기둥이 알고 보면 수백미터에 달하는 건물의 꼭대기일 수도 있다는 추측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엄청난 태피스트리 작업실을 만나고 이미 물에 잠긴 갤러리에서 크기를 짐작할 수 없는 수장된 작품을 만나기도 한다. 주형보관소에서는 기둥으로 쓰이는 주형들을 지나 흔적만 남아 있는 고대 유물을 만나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전체 크기를 알 수 없는 어마어마하게 큰 조각상의 부스러기들이 맞춰지는 파편의 방에 이르러서는 궁금해진다. 이 감정사가 찾아 내야할 것은 무엇인지.

복원실에서는 완벽하게 복원해야하는 것인지 복원을 했다는 사실이 눈에 띄도록 해야하는 것인지, 밝은 곳에서 보아야 하는 작품들은 왜 빛에 손상되는지, 아름다움을 즐기기 위해서 왜 사람들은 스스로 쇠약해져야 하는지.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늘 변하는 듯한 그 복원의 형식 이야기가 놀랍고도 재밌다. 그리고 복제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과연 원본과 복제, 원본보다 나은 복제, 원본과 똑같은 복제, 복제보다 더 훌륭한 복제, 그리고 작품들로 작품을 만들어내는 그림 보관소의 그림들을 보면서 예술이 예술인 이유가 뭘까라는 동그랗게 돌아가는 물음에 둥둥 떠도는 느낌만 든다.

 

시간이 지나 구천칠백스물일곱번째날 감정가는 늙은 감정가를 늙은 감정가의 삶, 그러니까 감정평가서를 넘겨받게 된다. 그리고, 늙은 감정사는 더 늙은 감정가의 임종 시 받았던 감정평가서를 감정사에게 양도하고 숨을 거둔다.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집중하지 않았던 액자에 관한 철학과 박물관 안에 박물관인 골동품부터 안내자들의 묘한 경고 "쯧쯧쯧!"까지 이어지고 나면 걸작에 대한 다양한 버전 그러니까 모두 진품이지만, 하나만 존재한다고 믿는 어떤 유명한 초상화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어지러워진다. 이제 감정가는 함께하던 조수를 세월에게 놓아주고 홀로 남는다. 그리고 이 감정가도 새로운 감정가에게 기록부를 넘기고 새로운 감정가는 다시 감정을 시작한다.

 

루브르 박물관'의 애너그램(anagram, 단어를 구성하는 철자의 순서를 바꾸고 재조합해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일종의 철자바꾸기 게임)이 이 책의 재미를 준다지만, 한글과 다르기에 그 맛을 느낄 수는 없었다. 본문에서 꾸준히 이야기하는 '그것이지만 아닐 수도 있는' 작품들 속에 정말 실체라는 것이 있을지에 의문을 갖으며 예술이 무엇일지에 대해서 다시한번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예술은 시간을 쌓아가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덮었다. 박물관 하나를 두고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데 놀라움과 감탄을 하며 이 시리즈에 욕심을 부려보게 되었다. 그리고 루브르 박물관도 언젠가는 한번 가보리라 꿈꿔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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