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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탄력적이다 - 당신의 뇌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닐스 비르바우머 & 외르크 치틀라우 지음, 오공훈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과학에 문외한이라 읽기 버거운 부분이 있었다. 어려웠다. 하지만 책에 관심이 많고, 두뇌나 교육에 관해 호기심이 많아서 흥미롭기도 했다.


나는 두뇌를 발전시키고 깨닫는 걸 좋아한다. 똑똑해지기 위해 알아야 할 뇌과학이라길래, 안 읽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김대식 교수의 추천사가 띠지에 있길래.


TV에서 그의 강연을 들은적이 있는데, 인상 깊었다. 뭔가 형이상학적인 철학에 한창 매료돼 있었을 때, 그가 과학적 기술을 바탕으로 인문학을 설명하는 게 흥미로웠다. 형이상학적이라 생각했던 철학은 현대의 과학적 기술과도 다르지 않았지만. 그래서 고전이 위대하다는 것일까.


이 책을 읽고나서 이런 질문을 하게 되었다. "인간은 자유를 원하는가?"라는 의문. 원하는 것 같기도, 원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니까.


회사에서 시키는 일을 하다 보면, 자유를 갈망하고, 자유로워지면 소속을 갈망하니까.


어른이 되어 내 길을 스스로 개척하려니, 말도 안 되는 일이 수없이 있었던 군대를 왜 그리워하게 되는 걸까. 군대에서는 누군가가 시키는 일만 하면 밥도 주고 선택에 대한 고민 없이 같은 옷, 같은 행동 안에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으니까?


자유를 원한다고 하지만, 실상 대중은 자유를 원하지 않는다. 적당한 억압을 원한다. 자신의 힘만으로 살아간다는 건 많은 선택권을 자신 혼자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국에선 차라리 선택권이 좁은 게 행복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주관을 길러 전인(前人)이 되는 교육 제도가 아니며, 예속되게 만드는 교육이니까. 그래서 우리는 자유보다는 억압에 익숙하다. 한국인에게 자유는 오히려 불안이다.  


어려운 부분은 흘려 읽었고, 마음 가는 부분은 집중해서 몇 번을 읽었다. 그래서 전체 내용을 요약하기엔 느낀 게 빈약하고, 부수적인 이야기들로 글을 채운다.




밑줄

한편 서번트증후군을 앓는 사람 가운데 겨우 50퍼센트만 자폐증 환자다. 나머지 절반은 인격과 개성을 흠잡을 데 없이 지니고 있다. 이들은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나지만 한쪽으로 치우친 재능 때문에 특이한 행동을 한다. 물론 그 밖에는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생각한다. 여기서 당연히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원칙적으로 본다면 누구라도 약간은 서번트증후군 환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솔직히 말해 우리가 킴 픽처럼 무엇이든 쉽게 외워버리며, 계산도 마치 전자계산기처럼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쁘겠는가. 그리고 비범한 능력을 발휘해 동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으랴?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지닌 서번트증후군 환자라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죽음의 운명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렇게 말하면 황당무계하게 들리겠지만, 어쨌든 뇌는 적어도 누구에게나 평범한 죽음을 맞이할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다.




일본의 승려이자 선의 고수인 다쿠안 소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여러분이 나무 한 그루를 바라보고 거기에 단 하나 달려 있는 빨간 잎을 관찰하면, 다른 나뭇잎은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런데 두 눈이 잎을 응시하지 않은 채, 아무 의미를 두지 않고 나무를 관찰하면, 무수히 많은 나뭇잎이 보인다. 하지만 단 한 개의 나뭇잎만 두 눈에 포착된다면, 나머지 나뭇잎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 이렇듯 고착되지 않고 목적에 구애받지 않는 시선으로 나무를 바라보는 것은 전반적으로 서번트증후군 환자의 광범위하게 열린 인식의 창을 떠올리게 한다.




뉴로피드백으로 주의력을 높이는 방식의 원칙은 트레이닝을 하는 본인이 자기 뇌를 직접 관찰한다는 점이다. 훈련 당사자는 뇌파 측정 전극을 비롯한 뇌 활동 측정 기구 아래에서 컴퓨터에 나타나는 신호를 분석하고 모니터에 떠오르는 그래픽을 해석해야 한다.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훈련은 예상외로 간단하다. 컴퓨터 화면에 빨간색이 반짝거리면, 트레이닝 당사자는 이 빨간색을 녹색으로 바꾸는 과제를 수행한다. 그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시도한다. 가령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거나, 최근에 있었던 뜨거운 사랑의 밤을 떠올리거나, 가벼운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대학 입학 자격 시험에 떨어진 순간을 생생하게 떠올린다. 하지만 그는 0.05초 지속되는 전의식의 시간 안에서 인식을 관할하는 뇌 영역을 활성화시켜야만 색이 바뀐다는 점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언젠가는 우연히 색깔을 바꾸는 데 성공하며, 이후 그는 자신의 뇌를 예전에 했던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조작'하면서 다시 성공하려 애를 쓴다. 일반적으로 한 시간짜리 뉴로피드백 트레이닝을 두 차례 정도 받으면 해당 뇌 영역을 의도적으로 활성화시키는 방법을 습득할 수 있다.




뉴로피드백이 치료 면에서 커다란 성과를 거둠에도 불구하고, 나는 뉴로피드백이 기적을 실현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즉 뉴로피드백 트레이닝을 거쳤다고 해서 여태껏 특정 분야에서 재능도 없고 훈련을 받은 적도 없는 사람이 갑자기 두각을 나타내는 상황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피아노를 한 번도 쳐본 적이 없는데 단지 악기 연주를 관할하는 뇌 영역이 활성화되었다고 돌연 피아노 연주의 대가가 되는 일은 결코 없다. 뇌영역의 버튼만 눌러서 천재로 돌변하는 상황은 있을 수 없다. 재능과 관련된 연구에서 모차르트와 베토벤, 아울러 존 레넌과 마이클 잭슨 같은 위대한 음악가는 대략 스무 살이 될 때까지 1만 시간 이상 연습을 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천재는 오로지 수많은 시간을 끊임없이 훈련해 기량이 원숙해진 것이다. 또한 아무리 천재라도 어렸을 때부터 트레이닝에 집중해야 재능을 꽃피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천재가 지닌 '서번트 잠재력'을 일깨우고, 재능을 탄탄하게 구축하는 일이 중요하다. 누군가가 기타 연주를 비교적 잘한다면, 전의식 트레이닝을 통해 기량을 강화할 수 있다. 이 트레이닝에서는 자신이 의도적으로 연주한다는 생각 대신, 멜로디가 손가락에서 저절로 흘러나오는 것처럼 여기는 훈련을 해야 한다. 이 트레이닝은 특히 즉흥연주를 자주 하는 재즈나 블루스 같은 장르에서 커다란 장점을 발휘한다. 물론 단점도 있다. 서번트로 들어서는 창을 열면 자신만의 터널 안으로 가라앉으며 주변 세상과 완전히 괴리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대중이나 음악 동료와의 의사소통이 단절될 뿐만 아니라 '음악적 자폐증'에 몰두하는 돌연변이가 되는 것이다. 이는 오케스트라와의 콘서트나 밴드 공연에 큰 결점으로 작용한다.




'하등 생물은 더 이상 목표한 효과를 얻을 수 없을 때 활동을 중지한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에서 밝혀졌다. 이 경우 하등 생물에게 어떤 센 자극을 줘도 아무런 반응이 없을 것이다. 무언가를 하겠다는 의지가 꺼진 것이다. 비록 생리학적으로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에너지를 충분히 지니고 있음에도 말이다. 신경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뇌의 경우도 이와 다르지 않다. '얻을 것이 더 이상 없다면 에너지 자원을 낭비할 이유가 있는가?'라는 의문은 진화의 관점에서 매우 의미심장하다. 투자를 했으면 이익을 얻어야 한다는 법칙은 자연에서도 통용된다. 그리고 더 이상 이익을 성취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투자를 포기하고 힘을 아끼는 것이 낫다. 우리는 이러한 경향을 감금증후군 환자에게서도 발견했다. 우리는 비활동 상태에 있는 환자들을 깨워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다양한 '설득의 기술'과 책략을 활용해야 했다. 그렇다고 감금증후군 환자들이 불행을 느꼈을까?

우리는 감금증후군 환자의 뇌 활동이 의지를 거의 보이지 않는 사실을 발견했다. 반면 그들이 절망과 비참함을 느낀다는 암시도 발견하지 못했다. 환자는 정지 상태에 놓이면서 과거에는 전형적인 중독자였으며 매사에 열렬한 의지를 품은 사람이었다는 단서를 내보이지 않는다. 또한 자신의 행동에서 더 이상 의미를 찾지 못하고 항상 부정적인 것만 기대하는 바람에 고통에 시달린 우울증 환자의 뇌라는 것을 상기할 만한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 이유는 바로 감금증후군 환자가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더 이상 움직일 가능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것을 기대하는 마음도 잃었기에 고통 역시 못 느낀다.

우리가 감금증후군 환자와 접촉하는 데 성공했을 때, 그들은 평균적인 건강한 사람들보다 훨씬 만족스럽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하지만 그들과는 순간적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을 뿐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우리의 판정은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며, 완전히 고립 상태에 있는 환자의 메시지를 제대로 옮기지 못했다. 하지만 상당수 감금증후군 환자가 특별한 방식으로 자신은 의지가 없는 상태에 있다고 말한다. 이는 쇼펜하우어와 불교 교리가 삶의 번민과 고뇌로부터 해방된 것이라고 일컬은 상태이기도 하다. 즉 불안한 느낌에서 자유로우며, 정지되었다는 느낌으로부터도 자유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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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죽음 - 오래된 숲에서 펼쳐지는 소멸과 탄생의 위대한 드라마
차윤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죽어간다는 표현은 바뀌어야 한다


오래된 깊은 숲에는 우리가 만나보지 못한 생물종이 존재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오래된 숲은 생태학적으로 400년에서 500년 정도 된 숲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인간의 부정적인 간섭 때문에 우리는 오래된 숲에 익숙하지 않다. 인간들은 윤택한 삶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멀쩡한 숲을 파헤친다. 수백 년을 사는 나무는 그리 흔하지 않고 오래된 숲을 이루는 나무는 거의 정해져 있다. 봄의 정취를 가장 먼저 알려주는 산벚나무, 산사나무, 물박달나무, 팥배나무 등과 같이 햇빛을 좋아하는 나무들은 숲이 오래되어 그늘이 지면 사라지기 마련이다. 이처럼 숲의 나이가 많아짐에 따라 숲을 이루는 나무의 종류나 구조가 점차 단순해지고 기후나 지형 조건에 따라 비슷해진다. 오래된 숲은 평균 수령을 넘긴 늙은 나무들이 많다. 당연한 것 같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늙은 나무들이 있다 해도 어린나무의 수가 많다면 오래된 숲이 아니다. 오래된 숲은 죽어가는 나무의 비율이 높고 숲의 성장이 매우 느려 변화가 없는 숲이다. 오래된 숲에는 죽은 나무, 썩은 가지들, 두터운 낙엽들은 오랜 기간 숲 바닥의 지형과 기후를 변화시킨다. 오래된 숲이란 성장의 끝점과 소멸의 시작점이 서로 만나는 지점의 숲이다.


나무는 일생 동안 온갖 생명체의 공격으로 성할 날이 없다. 잎, 줄기, 눈, 꽃, 열매, 심지어 뿌리까지도 무수한 동물의 표적이 된다. 나무가 살아 있다는 것은 시련을 극복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성장기의 활력 높은 나무는 상처가 나더라도 곧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 보상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무와 적들 간의 힘의 균형이 깨지면서 나무가 극복하지 못한 상처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멀쩡하게 살아 있던 나무가 하루아침에 극적으로 죽는 일은 없다. 나무의 죽음은 급작스럽거나 극적이지 않다. 위로는 바람에 부러진 가지로부터, 멥시벌이 산란한 줄기 허리로부터, 수액에 달라붙은 곰팡이에 의해, 그리고 아래로는 곰이 발톱으로 할퀸 상처에 의해 큰 나무는 숲의 작은 생물들에게 자신을 내주는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나무의 상처는 치유의 한계를 넘어 더 이상 아물지 않겠지만 대신에 숲을 키울 것이다.


나무는 이제 죽어가는 나무로 불리게 된다. 그러나 죽어간다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다. 어차피 나무의 상당 부분은 이미 죽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제부터 나무의 몸속에 살아 움직이는 세포가 들어찬다. 단지 5퍼센트의 살아 있는 세포로 구성되었던 나무가 살아 있는, 온전하게 살아 있는 생명들로 다시 채워지는 것, 죽어간다는 표현은 그래서 바뀌어야 한다. 나무는 쓰러진 뒤에도 숲을 활발하게 유지 시킨다.


 

-숲은 역동적인 생태 드라마다


나무는 끝까지 희생을 멈추지 않는다. 죽어서도 지상 높은 곳에 둥지를 트는 새나 곤충들에게 좋은 주택을 제공하기도 하고, 목질을 먹이로 삼는 다양한 생물들에게 양분 저장고 역할을 하기도 한다. 직접적으로 동물들의 양식이 될 뿐 아니라 보유한 양분을 숲으로 흘려보냄으로써 나무는 숲의 전체적인 양분 상태를 개선한다. 나무는 오랫동안 죽은 채로 지낸다. 한겨울에는 죽은 나무가 그다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봄이 오면 살아 있는 나무는 생장을 더해가지만 죽은 나무는 더욱 초라해진다. 시간은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의 경계를 더욱 명확히 갈라놓는다.


수피는 나무가 완전히 죽고 난 후에도 한동안 그대로 유지된다. 나무가 속으로 와해되어가는 동안에도 수피는 아무런 내색 없이 나무의 외형을 유지시킨다. 그러나 아무리 완강한 수피라도 언젠가 나무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주인을 잃은 호위무사는 이제 주인의 모든 것을 정리해주는 늙은 집사가 된다. 늙은 집사는 주인의 모든 것이 드러날 때까지 최선을 다해 주인의 명예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수피가 떨어져나가기 전까지는 비록 죽은 나무라 해도 함부로 침입할 수 없다. 딱딱함도 장애고 두꺼움도 장애다. 설상가상으로 겨우 구멍을 뚫었다 할지라도 수피 조각이 떨어져버리면 같이 떨어진다. 자칫 비라도 오면 수피 속으로 스며들어 구멍은 부풀어 오르고 막힌다. 소나무나 굴참나무 같은 나무는 수피가 두꺼워 그 자체로 훌륭한 거처가 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나무의 경우 수피는 침략자들에게 쉽게 정복되고 마는 존재이다.


죽은 나무는 군류와 미생물에 의해 끊임없는 분해 작용이 일어나는 곳이다. 이때 죽은 나무로부터 방출된 분해열과 이산화탄소는 난기류 대에 상당 시간 잡힌다.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숲에서 보다 죽은 남에 붙은 이끼 층에는 10배가 넘는다. 풍부한 이산화탄소는 이끼의 중요한 자원이다. 붙잡힌 열과 습기와 이산화탄소는 이끼 층에 고스란히 이용된다. 그러나 이끼의 포자는 이미 다른 이끼 성체가 있는 곳에서는 발아를 하지 않는다. 이끼의 포자가 바람을 타고 이동을 할 수 있으려면 포자의 높이가 난기류대보다 높아야 하기 때문에 이끼의 포자 대는 항상 이끼의 전체적인 높이보다 훨씬 높이 자란다. 숲에서 나무에 이끼가 자라는 것은 단순히 풍경이 아닌 역동적인 생태 드라마이다.


 

-물 위를 떠가는 아름다운 단풍은 단순한 풍경에 그치지 않는다


비버는 숲에서 새로운 지형을 창조해 역동적인 수생태계를 만들어낸다. 비버는 여러 해 동안 버드나무나 사시나무를 잘라 댐을 만들고 주변에 1~3ha의 땅이 물에 잠기게 만든다. 특히 10센티미터 이상 되는 비교적 큰 나무들을 잘라내므로 숲에 빈 공간을 만들어낸다. 이때 숲에는 빈 공간이 생겨 낙엽활엽수와 같은 양수 성 나무들이 지속적으로 자라나게 된다. 임업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비버가 반갑지 않겠지만 상당한 역할을 수행해낸다. 비버가 만든 댐에 의해 새로운 습지나 연못, 서식지, 어류 산란지, 침전지 등의 지형이 만들어진다. 단조로운 숲의 한가운데 가장 역동적인 생태계가 비버라는 동물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이 놀랍다. 이 위대한 환경의 재창조자가 모피로 사랑받게 되면서 그 수가 급속히 줄고 있다. 비버가 만들어 놓은 댐은 무너져 내리고 저습지는 메워져 초원에서 관목지로 변했다. 하천의 흐름이 빨라지면서 수로가 좁게 파이고 직선으로 변했다 비옥한 범람지를 따라 형성되었던 낙엽수림대도 사라지고 있다.


물속의 나무줄기에는 다양한 무척추동물들이 모여 있다. 자원 역할을 하는 죽은 나무가 생기면 부패를 담당하는 생물들이 모여들고 풍부한 영양분으로 인해 특히 무척추동물의 개체수가 급격히 증가한다. 이는 다양한 어류의 발생을 이끌어 결국 생물 서식지의 섬으로 작용한다. 때로 물고기는 물속으로 떨어진 가지의 잎이나 목질 표면에 붙은 미생물이 좋은 먹이 자원이 되기도 한다. 또한, 굵은 나무줄기는 물을 가두어 깊은 웅덩이를 만들고 포식자를 피해 숨을 수 있는 은신처도 만들어 준다. 


양서파충류는 물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생물들이다. 나무로 인해 생긴 웅덩이에 봄마다 개구리나 도롱뇽이 알을 낳는다. 개구리는 물살이 느리고 고여 있는 곳에 산란을 하는데 물풀이 주위를 막고 있거나 나뭇가지가 댐을 이루고 있는 곳이 가장 적합하다. 알에서 깨어난 올챙이들은 나뭇가지에 붙은 찌꺼기나 조류를 뜯어 먹고 자란다. 도롱뇽은 물에 잠긴 나무에 달린 가지로 알을 보호한다. 물속으로 떨어진 나무는 그 작은 가지들이 만들어내는 복잡성으로 인해 물속의 서식지 다양성을 높인다. 


목마른 새들은 직접 물속에 발을 담그지 않고 가느다란 가지를 짚고 서서 목을 축인다. 가끔 나뭇가지 댐에 열매들이 갇히면 이곳은 새들의 외식 장소가 된다. 가재는 완벽한 나뭇잎 색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장점을 활용해 아주 쉽게 자신이 좋아하는 옆새우를 사냥할 수가 있다. 또한 물속은 유충들의 천국인데, 물속의 돌에 핀 이끼를 뜯어 먹고 살아간다. 이런 곤충의 유충들은 물고기나 다른 육식성 유충의 좋은 먹잇감이 된다. 잠자리는 반드시 물과 관련된 장소에 산란을 하고 대부분의 유충들은 물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성충이 되기 위해 애벌레는 물가의 나무줄기를 타고 올라 우아한 날개를 펼쳐 보인다. 잠자리 유충들은 대부분 물속에서 아주 무시무시한 포식자들이다. 성충 시기가 되면 물 밖으로 대부분 나와야 하기 때문에 이때 물 위로 솟아 있는 나무는 곤충이 물 밖으로 탈출하는 통로가 된다. 나무가 없는 계곡은 상상할 수 없다. 물 위를 떠가는 아름다운 단풍은 단순한 풍경에 그치지 않는다. 계곡을 가로 지르는 쓰러진 나무는 육지 동물을 위한 다리가 아니다. 죽은 나무로 인해 탄생되는 생물 섬은 물속이라 해서 예외는 아니다. 결국 그것은 환경이자 자원이기 때문이다.


 

-나무에서 흙으로


죽어서도 천년을 산다는 주목나무는 축복 받은 나무가 아니다. 나무는 죽어 다양한 생물들에게 자신을 내어줄 때 더욱 행복할 것이다. 주목이 사는 고지대는 건조하고 추워서 자신을 쪼개 흙으로 돌려보낼 조력자들이 부족하다. 나무는 그저 세월에 풍화되어 하얀 백골로 버틸 뿐이다. 사막은 몹시 건조해 미생물의 활동이 또한 미약하다. 사막에 건초 더미가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것은 바로 이들을 붙잡을 물기가 없기 때문이다. 사막에서 죽은 나무는 그저 바람에 풍화되어 먼지로 날려갈 뿐이다.


사막의 모래도 흙이고 해안가의 모래도 흙이다. 단지 이들 흙에는 양분을 제공하는 유기물이 적어 생명력이 약할 뿐이다. 흙이 만들어지는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잡하게 작용한다. 가장 간단한 흙의 생성 과정은 지면으로 노출된 암석이 기후적 요인에 의해 풍화되어 무기 입자를 이루고 그 위에 생물 사체가 쌓여 썩으면서 유기입자가 무기입자와 섞이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자연계에서 그 과정은 상당히 오랜 시간에 걸쳐 복잡하게 이루어진다.


숲 바닥으로 떨어지는 낙엽이나 작지는 매년 쌓여 유기물 층을 형성한다. 낙엽은 서서히 쪼개지고 쪼개져 흙의 일부로 돌아간다. 낙엽의 쪼개진 정도에 따라 유기물 층은 낙엽 층, 발효 층, 부식층으로 나뉜다. 아주 미세한 조각으로 쪼개진 부식층은 비로소 진정한 흙 입자와 섞이면서 가장 기름진 표토를 만들어낸다. 유기물 층의 진행 정도만으로 우리는 숲의 분해 특성을 짐작할 수 있다. 숲의 풍부한 유기물과 토양 생물들이 만들어내는 가장 경이로운 구조물인 입단의 생성은 숲의 토양에서 가장 중요한 현상의 하나이다. 이것이 바로 숲의 흙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성질이고 분해자들이 이룬 업적의 하나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주 많은 생물들이 땅을 기반으로 살아간다. 땅은 숲의 모든 유기물이 궁극적으로 모이는 곳이다. 죽은 나무 조각, 짐승의 사체, 숲에서 살다 간 모든 생명은 결국 땅으로 떨어지고 이들은 연쇄적으로 다른 생물들에게 먹잇감이 된다. 풍부한 생물 사체는 땅 위 생물 수가 아무리 많더라도 부족함이 없다. 오히려 이들의 활동이 활발할수록 생태계로 되돌려지는 물질의 순환이 활발하다. 생태계에서는 어떤 종도 결코 독립적일 수 없다.


우리에게 나무는 웅장한 줄기와 생물이 살아 있는 생명으로만 기억된다. 나무는 죽는 순간부터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 숲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만들었다. 죽은 나무는 절대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고 계속 희생을 이어 나간다. 나무와 숲, 생태계의 삶이 인간과 상당히 닮아 있고, 배울 점이 매우 많다. 숲은 작은 것 하나도 자신의 역할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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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어록 - 논술문 잘 쓰게 하는
임석래 지음 / 우와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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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입시제도는 '바칼로레아'라는 것으로, 아예 전과목이 논술 시험이라고 한다. 간단히 말하면 책을 읽고 요약하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쏟아붓는다는 말이다. 그만큼 개인적으로 부러운 건 우리나라 학생들보다는 프랑스 학생들이 독서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는 저엄...


한창 찌질하던 초딩 시절, 방학 숙제 중 제일 싫은 하나를 뽑자면 독후감을 쓰는 일이었다. 그 때 당시 내가 체감한 책 읽기의 고통은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심신이 괴로웠으며, 더구나 글쓰기까지 하라니.. 지옥은 안 가봤지만 내가 있는 지금 이 곳이 지옥 같았다. 그만큼 싫은 게 책 읽기와 글쓰기였다.




선생님과 어른들은 나에게 책 읽는 게 단순히 좋다고만 했지, 내 눈 높이에 맞는 얘기를 들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부모님은 책 보다는 텔레비전을 크게 틀어놓고 나에게 책 읽으라고 하면 이해도 안 될 뿐더러 참을성 없는 내가 행여나 봤을까. 본의 아니게 부모님 디스.


 그러다가 성인이 돼서야 책 읽기에 재미를 스스로 찾게 되면서, 조금씩 글을 쓰는 것도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마음을 바꿨다. 그러니 변화가 나타난 게 글쓰기에 대한 부담이 전보다 훨씬 줄고 글을 끄적이려는 행동이 재미로 다가왔다. 글쓰기라는 게 어렵게 생각할 필요도 없고 어려운 어휘를 사용한다고 좋은 글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글 속에 자신의 생각, 가치관, 성향, 진심이 담겨 있으면 어리숙한 글도 독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책은 222명의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인물들의 생각, 글, 말을 정리해서 논술을 쓸 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려는 책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드는 생각은 굳이 글쓰기를 위한 것만이 아니라, 좋은 명언들을 기억하고 자기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어 사색하기에도 괜찮은 책이라고 느꼈다.


 책을 읽으면서 공감하고 멋진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기억해 놓았다. 나만의 관점이니 타자는 공감하지 않을 수 있고 이 책 안의 내가 공감하지 못한 내용을 타자는 공감할 수 있다. 그러니 염두해서 내 가치관과 생각이 어떤지 파악하는 재미로 읽으면 지루한 글이 조금이나마 덜 졸릴 수 있지 않을까.




밑줄


"사내들은 모두가 거짓말쟁이며 바람둥이에 가면을 쓰고 허세를 부린다. 비겁하기도 하고 보잘것없는 것들이다. 정욕에 사로잡힌 노예이기도 하다. 여자들은 교활하며 잘난 체를 잘하며 쓸데없는 데에 관심이 많다. 또 근성도 썩어 있다. 그런데도 오직 세상에서 한 가지 신성하고 숭고한 것이 있는데 이렇듯 불완전한 두 남녀의 결합이다."

-뮈세 1810~1857 프랑스 시인 극작가




"시간의 대부분을 혼자 지내면서 보낸다는 것은 건전하다. 누군가와 어울린다고 해도 그가 훌륭한 사람일지라도 곧 싫증이 나며 마음이 산만해진다. 나는 고독을 즐긴다. 그런데 고독처럼 어울리기 좋은 사람을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 대개 사람은 혼자 있을 때보다 사람들 속에 있을 때 오히려 외롭다. 사색하며 일이 있는 사람에게는 어디에 있다고 해도 언제가 고독하지 않겠는가."

-도로우 1817~1862 미국 철학자 시인 비평가




"우리는 남이 겪는 불행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들을 위해서 최선으로 해야 할 일은 역시 자기 자신이 행복해지는 것이어야 한다. 이 사실을 사람들은 잘 말하지 않는다."

"가장 안전한 행복은 자기 자신의 정신과 육체 속에서 건져내는 행복을 말한다. 우연하게 찾아든 행복은 한 벌의 옷처럼 오래 가지 못한다."

-알랭 1868~1951 프랑스 철학자




"고민은 어떤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생기기보다는 일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데에서 더 많이 생긴다. 성공하고 못하고는 하늘에 맡겨두는 게 좋다. 모든 일은 망설이기보다는 불완전한 채로 시작하는 것이 한 걸음 앞서는 것이 된다. 재능 있는 사람이 이따금 무능하게 되는 성격이 우유부단하기 때문이다. 망설이기보다는 차라리 실패를 선택하라."

-러셀 1872~1970 영국 철학자 논리학자




"일에 몰두하는 것만이 장애를 극복한다."

-베토벤 1770~1827 독일 작곡가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도처에 있는 것이다. 그 아름다움이 눈 앞에 있는 데도 우리의 눈이 그것을 보지 못할 뿐이다."

-로뎅 1840~1917 프랑스 조각가




"나는 값 비싼 일류 호텔에 묵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어디에 묵든 나는 헨리 포드입니다. 가장 값싼 호텔에서도 나는 헨리 포드이며, 그런 것이 나를 다시 만들어 내지는 않습니다. 내가 어떤 옷을 입든 헨리 포드입니다. 또 내가 벌거벗고 서있다 해도 나는 헨리 포드입니다. 그건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포드 186~1947 미국 기술자 실업가




"태양을 바라보고 살아라. 너의 그림자를 못 보리라."

"자기 연민은 최대의 적이며, 거기에 굴복하면 이 세상에서 현명한 일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헬렌 켈러 1880~1968 미국 여류소설가 저술가




"진정으로 어리석은 자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분별 못하는 인간을 말한다. 나도 오랫동안 그러한 인간이었다. 그대 또한 오랜 세월을 그와 같은 인간이었다. 이제는 그러한 자신에서 발을 씻어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천박함이야말로 최고의 악덕이며 무슨 일이건 몸으로 이해한 것만이 진실이다."

-오스카 와일드 1854~1900 영국 시인 극작가




"청년 시절에 책을 읽는 것은 문틈으로 달을 바라보는 것과 같고, 중년 시절에 책을 읽는 것은 자기 집 뜰에서 달을 바라보는 것과 같고, 노경

(老境)에 이르러 책을 읽는 것은 창공 아래 노대에 서서 달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임어당 1895~1976 중국 소설가 문명비평가




"해와 달이 제아무리 밝더라도 엎어 놓은 항아리의 밑은 비추지 못하고, 칼날이 아무리 날카롭다 해도 죄없는 사람은 베지 못하며, 뜻밖의 재앙도 조심하는 집 문 안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입안에 피를 머금고 남의 얼굴에 내뿜는다면 먼저 내 입이 더러워 진다. 이처럼 남을 저울질할 때 먼저 내가 그 저울에 달릴 것을 조심하라. 남을 상하게 하는 자는 먼저 그 자신을 상하게 된다."

-강상 연대미상 중국 주나라 정치가




"과학서적은 시간이 흐르면 이론이 낡아지고, 오류로 검증된 내용이 발견된다. 과학은 발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신의 내용을 접해야 유익하다. 반면 문학서적은 다르다. 오래 세월을 거쳐서도 잊혀지지 않고 읽히는 책을 선택해야 한다."

-리턴 1803~1873 영국 작가 정치가




"길하고 흉한 것은 이렇다 저렇다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 생각이 그렇게 여길 따름이다."

-김유신 595~673 신라시대 장군




"참된 문장이라고 하면 가까이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고, 멀리로는 천지를 움직이는 것이며, 귀신을 감격하는 그런 글이어야 한다."

-정약용 1762~1836 조선조말 실학자




"남들이 성공적으로 이용한 진기하고 재미난 아이디어들을 그대로 보아넘기지 말아라. 자네가 안고 있는 문제를 풀기 위해 그것들을 응용할 때 그것은 이미 자네의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되는 것이다."

-에디슨 1847~1931 미국 발명가




"악한 생각은 머리 위에 날아가는 새와 같아서 머리 속에 스쳐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하지만 그 악한 생각이 머리 속에 자리 잡고 들어앉지 못하게 물리칠 힘은 있다."

-루터 1483~1546 독일 종교개혁자




"버림 받아 무관심당하고 있는 사람은 먹을 것이 없는 사람보다 더 가난한 사람이다. 마음의 상처와 고독은 결핵이나 암, 나병보다 더 큰 질병이다."

"오늘 당신이 사람들에게 착한 일을 행해도 사람들은 내일이면 그것을 곧잘 잊어버릴 것이다. 그래도 착한 일을 하라."

"사람들은 흔히 비이성적이며 논리적이지도 않고 그리고 이기적이다. 그래도 사람들에게 관대하게 대하라."

-테레사 1910~1997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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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이는 밤중에 무얼할까? 작은 책마을 14
노경실 지음, 이형진 그림 / 웅진주니어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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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수록 머리에 들은 게 많아서 탈이다. 지식과 경험이 좋게 쓰이면 좋은데 편견으로 대부분 변해가기에, 자신은 상대 입장을 생각한다고 한 것들이, 편견으로 가득 차서 도리어 자기중심적으로 흘러간다. 

 

어릴 때, 많은 걸 모를 때, 그저 사물을 사물 자체로 볼 수 있었을 때, 그 시선을 다시 찾고 싶었다. 왜 잃어버렸을까. 창의력은 아이처럼 그것만 그대로 볼 수 있는 시선에서 나오는 것 같다. 그 입장에서 문제 해결을 찾는 것. 아무 정보 없이 그저 바라보는 게 필요하다.

 

그래서 요즘 동화책을 많이 읽는다. 작가는 어른이지만,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는 사람이기에 표현이 새롭다. 이 닦으라는 엄마의 잔소리 가득한 입을 보고는 밥공기처럼 크게 벌어졌다느니, 소리 지르는 입안의 치아들은 밥알이 튀어나오는 것 같다느니, 놀라운 시선들.  

 

이 동화는 어린 남자아이가 엄마의 간섭이 싫어 '이'가 되고 싶다는 데서 시작한다. 치아가 아닌 털에 기생하는 해충. 자기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 바둑이의 이가 되고 싶다며. 바둑이는 학교도 안 가도 되고 숙제도 안 해도 되고 엄마의 잔소리가 없으니까. 바둑이의 삶에 감정 이입돼서 조금 울컥했다. 


초등학교 2학년 남자 아이인 '나'는 밤이 되어 졸다가 뒤척여 잠에서 깬다. 그때 소원대로 바둑이의 '이'가 되어 있었다. 바둑이는 목공소 앞에 모여 동네 개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한다. 친구 개가 트럭에 치여 다리가 부러졌다고, 차들 조심하라며 얘기를 나눈다. 주인 욕도 하면서.


바둑이의 털에 매달려 '이'의 시선에서 주인 뒷담을 하는 바둑이가 괘씸하지만, 엄마에게 혼나면 자기를 찬다는 말에 찔리기도 한다. 


개들은 버려지지 않기 위해 주인 거슬리는 짓을 하지 말자는 얘기도 한다. 새벽이 되자 도둑 고양이들과 대면을 한다. 단판을 지어야 한다. 도둑 고양이들은 가정 집에 몰래 들어와 생선을 훔쳐 가니까. 그래서 개들은 자신이 대신 혼난다며.


개들은 사나운 도둑 고양이 들에게 적수가 안 되어서 도망친다. 바둑이는 남죽 엎드린 채 혀로 얼굴과 몸 구석을 핥으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바둑이의 '이'가 되어 하루 종일 지켜보고선 바둑이의 삶도 버겁겠구나를 느낀다.  



*기도나 십자가나 헌금 얘기 같은 게 나와서 조금 거슬리긴 하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좋아서 개인적으로 큰 불편함은 없었다. 



밑줄


나는 며칠 동안 끙끙대다가 기도를 했어요.


"하나님, 나를 이로 만들어 주세요. 그러면 바둑이 털 속에 꽉 붙어 있다가 살펴볼 수 있잖아요. 너무 궁금해서 숙제도 잘 할 수 없어요. 우리 바둑이가 밤중에 뭘 하나 하고 자꾸자꾸 생각했더니 변비에 걸렸단 말이에요.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고 나보고 운동 부족이라면서 수영장에 다니래요. 하지만 나는 세수하는 것도 귀찮은데 수영장을 어떻게 매일매일 다니죠? 그러니까 하나님이 도와주세요. 이 문제만 풀어지면 나는 정말 행복할 거예요. 숙제도 그전처럼 잘 할 거예요. 친구랑 싸우지도 않고, 누나 방을 어질러 놓지도 않을 거예요.




"누나는 벌써 다 하고 자리에 누웠단 말이야. 넌 이 학년이 되어서도 만날 그 모양이니!"


엄마의 입이 이제는 밥공기처럼 커졌습니다.


"쯧쯧, 이도 제대로 안 닦으면서 밤중에 거울 앞에서 모양은 내긴! 넌 아빠를 닮아도 어떻게 나쁜 것만 닮았니?"


국그릇처럼 커진 엄마의 입.


"아빠도 씻고, 닦는 거라면 설거지하는 것보다 더 싫어하시는데...... 빨리 양치질해!"


밥솥이 되어 버린 엄마의 입. 엄마의 입에서 하얀 밥알이 막 튀어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바둑이가 울고 있는 거예요. 나는 개장사에게 팔려 가는 강아지들이 우는 걸 정말 본 적이 있어요. 또 못된 주인한테 마구 맞으면서도 도망치지 못하고 우는 개도 봤었죠.


그런데 무얼 깊이 생각하며 우는 개를 보는 건 처음이에요. 바둑이는 눈을 껌뻑이며 중얼거렸어요. 아니, 기도했지요.


"멍! 내가 죽을 때까지 현호네 집에서만 살게 해 주세요. 이 집 저 집 떠돌아다니는 거는 싫어요. 그리고 봉실이가 어디에 사는지


모르지만 건강하게 살도록 지켜 주세요. 그리고...... 현호가 나를 발로 차지 않게 해 주세요. 현호는 부모님께 야단맞거나, 누나와 싸우거나, 시험을 못 보면 괜히 나를 발로 뻥뻥 차요.


저번에는 배가 너무 아파서 죽을 뻔했어요. 멍멍!"


나는 얼굴이 빨개지다 못해 뜨끈뜨끈해졌습니다.


"미, 미안해 바둑아...... 내가 또 너를 발로 차면 내가 내 발을 똥뎅이라고 부를 거야! 다시는 발로 차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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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거창고 아이들의 직업을 찾는 위대한 질문 - 보통 엄마의 거창고 직업십계명 3년 체험기
강현정.전성은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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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SNS에서 거창고의 직업 십계명이 회자됐던 적이 있었다. 그 십계명을 보고 가슴이 뛰었고 콧등은 시큰해졌는데, 이유는 모르겠다.


십계명을 포스팅하고 공유하는 사람들조차도 한국의 현실(?)과는 괴리감에 자세히 설명해내지 못 했다. 


읽어보면 착한 말이긴 한데, 도대체 의도를 알 수가 없어서 답답해 기억에서 지워져갔다.


그렇게 잊고 있다가, 무슨 책을 읽을까, 찾고 있는데 <거창고 아이들의 직업을 찾는 위대한 질문>이란 책을 발견했다. 무려 부제는 '보통 엄마의 거창고 직업십계명 3년 체험기' 


아. 빛과 같았다. 드디어 그때의 못다 푼 의문을 풀게 되는 건가. 설렘에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읽다 보면 공감하는 부분도 있지만, 현실적이지 못하다며 혀를 찰 수도 있다. 지금 한국은 그런 나라가 아니니까. 하지만 그런 의문까지도 생각해볼 수 있게 저자의 생각이 들어있다.


그럼 다들 스님이 되라는 건가, 생각할 수도 있다. 타인이 바라보는 성공보다, 자기가 좋아하고 원하는 게 무엇인지 스스로 찾아서 꿈을 이뤄온 어른이라면, 이 책이 말하는 숨은 의도가 무엇인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밑줄

직업선택의 십계



하나,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둘,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셋, 승진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넷,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다섯,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여섯,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일곱, 사회적 존경 같은 건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여덟,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아홉,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이 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열,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내가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점, 그것은 충분히 고민하지 않은 20대와 30대를 보냈다는 것이다. 내 마음이 불편해질까 봐 싫어 굳이 외면한 채 청년기를 보냈다는 모종의 부채 의식. 나는 그런 부담을 갖고 있었다. 고민을 생략한 덕분에 몸은 편했는지 모르지만 외면한 순간부터 성장을 멈춘 어른이 되었다. 그걸 이제야 돌아보게 되었다.



인간의 참된 힘과 참된 행복과 참된 성공은 무엇인가. 직업십계명이 말하기를, 그것은 월급이 많은 쪽에 있지 않다. 왕관이 있는 쪽에 있는 것이 아니다. 단두대가 있는 쪽이라는 말이다. 옳은 일을 위해 살다 보면 부조리한 사회로부터 박해를 받을 수도 있지만 그런 삶의 길이 오히려 참된 인간의 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월급이 많은 쪽, 남들이 앞다투어 모이는 곳을 추구하면 너희만의 고유한 색깔을 잊을 수 있으니 그런 곳으로는 가지 않으면 좋겠다는 아버지 같은 선생님의 당부. 참으로 행복하고 참으로 건강하고 비로소 평화가 오는 길. 이 길의 관점에서 너희가 직업을 갖고 그런 관점에서 일했으면 좋겠다는 가르침. 학교에서 이런 걸 만들어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거창고 졸업생 너희만은 제발 힘의 논리에서 강자가 되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의 힘이 모이는 곳에 가서 그 힘을 모으는 일에 너희가 기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직업을 가지고 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간곡한 가르침이다.




거고인 건축가가 세운 다리는 무너지지 않고


거고인 농부가 키운 작물은 안심하고 먹을 수 있으며


거고인 의사는 사람의 목숨을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긴다.


거고인 판사가 내린 판결은 믿을 수 있고


거고인 직공이 만든 옷은 단추가 잘 떨어지지 않으며


거고인 선생님에게는 안심하고 자녀를 맡길 수 있다.


거고인 관리는 뇌물을 받지 않고


거고인 기자는 거짓을 전하지 않으며


거고인 역사자는 그 무엇보다 진실을 목말라한다.


그래서 세상은 거고를 빛이요 소금이라고 한다.



2003년 2월 거창고 졸업식에서 졸업생 대표로 50회 최지헌이 발표한 답사문 중 일부다.



"자식을 잘 키우려고 하지 마라. 너나 잘 살아라. 아이들을 망치고 싶은가? 부부 싸움을 해라. 아이들을 더 망치고 싶은가? 그렇다면 서로를 비하하라. 무조건 아이에 대해서는 욕심을 버려라. 부모는 그저 이 아이를 열심히 도와주라고 위탁받은 존재에 불과하다."




부모는 아이 속에 신의 형상이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런 믿음이 없기 때문에 부모는 늘 불안하다. 하지만 불안해도 아이에게 믿음을 주면 통제 속에서 큰 아이보다 훨씬 더 성숙할 수 있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믿고 기다려주는 것. 그것이 믿어주는 부모 되기의 첫걸음이다. 아이들은 스스로 무언가를 하면서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자율이 있는 곳에 성숙도 따라온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좋은 대학 나와 돈 많이 버는 직장에 취직하는 게 목표라는 전제가 달라지지 않은 한 성적으로 인한 혹은 내가 쫓기는 그 무엇으로 인한 두려움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용기를 내야 한다. 그러려면 성공의 기준에 매달라지 말자. 남의 시선으로부터 서서히 자유로워지는 선택을 하자. 그래야만 나는 용기를 낼 수 있고 내 아이는 행복해질 수 있다. 나보다 생각이 자유로운 아이, 몇십 년 더 많이 산 엄마보다 앞뒤 재는 계산을 덜 하는 아이, 그 아이에게 결정권을 주고 반대하지 않는 엄마가 되어보자고 다짐한다. 그 결과로 지금보다 성적이 더 떨어질 수도 있고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가 바라는 그 조건에서 멀어질지 모르지만 그래도 시도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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