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공산당선언 고전의세계 리커버
칼 마르크스 &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이진우 옮김 / 책세상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 이 책은 정말 어렵다. 난해하고. 무슨 말인지... 배경 지식이 많아야 겨우 읽을 수 있는 책.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안 가서 임승수 작가의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과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까지 읽었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은 꽤 충격이어서 나름 재밌었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은 <공산당 선언> 내용과 작가의 설명으로 이루어진 책인데 작가의 설명 부분만 이해가 가고 같은 부분의 공산당 선언 내용은 이해가 안 가는 아이러니...


여기에 이런 글을 쓴다고 누가 봐줄 것도 아니고... 그냥 내 만족으로... 누가 봐줄 것 같으면 공산당 선언 같은 책을 읽었겠나........... 나도 내 의지로 읽은 게 아니고 독서모임에서 선정한 책이었기 때문에... 푸하핳...


글 쓰는 것에 이렇게 자유를 느껴보기 오랜만이다.. 엄청 검열하고.. 엄한 소리할까봐 내용 깊이 파고... 맞춤법 검사하고... 공산당 선언 리뷰?에 내용보다 이런 삽소리로 채우는 것도 허용되고... 


하여튼 뭐... 공산당 선언은 읽으면서... 국가가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국민의 안전을 지켜주는 것? 그렇지만 그렇지 못한 나라들이 많기도 하고... 하지만 기본적인 휴머니즘이랄까 그런 걸 지켜주는 게 국가가 아닐까.


자본주의의 업적은 인류 스스로! 지속적 발전을 하게 하는 것 아닐까. 효율성까지 겸비하면서. 마천루를 떠올리며 든 생각. 자본주의의 폐해라면 돈이 우선이기 때문에 비인간적이라는 것? 순수함이 탁해지는 것. 온전하게 사랑과 교육을 마냥 할 수 없다는 것.


이런 자본주의 폐해에 대해 도움 되는 공산주의적 요소는 무엇이 있을까. 벌 수 있는 만큼 일하는 것? 좀 더 기다림을 허용하는 것?


나는 착취 당하고 있는 걸까? 자본주의에 익숙해져서 열정 페이 아닌 이상 최저임금은 착취라고 생각되진 않지만 부당한 노동을 더 하게 되었을 때는 착취라고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맑스가 <자본론>에서 언급한 잉여가치론에 따르면 자본주의 임금노동자들은 전부 착취가 맞지만, 앞으로 사회가 나아지고 있으므로...


공산주의 이념과 제도 자체로는 그만큼 좋은 게 없다. 유토피아다. 역사적으로 제대로된 공산주의를 경험해 보지 못하고 들어보지 못했으니 대부분 부정적이다. 나도 그렇고. 모든 것은 장단점이 있으니 자본주의도 긍정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까지도 노동에 착취 당하던 시대 보다는 자본주의가 나아지고 있으니까. 많은 투쟁으로 수정이 된 것이니까. 굳이 나누어서 공산주의가 짠! 하고 나아가야 한다니보다 삶에 적응하면서 안 좋은 것은 고쳐나갔으면 좋겠다. 공산주의가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초기 자본주의처럼 폐해가 생길 테니까. 그걸 수정해 나가는 것은 너무나도 피곤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판본 노인과 바다 (양장) - 1952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베스트트랜스 옮김 / 더스토리 / 201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노인은 팔십사 일 내내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처음 사십 일까지는 한 소년이 함께 있었다. 그러나 사십 일이 지나도록 물고기를 잡지 못하자, 소년의 부모는 노인이 이제 정말 살라오(Salao, '운이 없는 사람'을 뜻하는 스페인어_옮긴이)에 빠지고 말았다고 했다. 노인의 운이 다할 대로 다했다는 것이다. 소년은 부모가 시키는 대로 다른 배로 옮겼고, 그 배는 바다로 나간 첫 주에 큼직한 물고기를 세 마리나 잡았다. -7P

나는 미용 실기 시험에 4번을 낙방했다. 5번째 시험을 봤는데 내일 결과가 나오지만 불확실하다. 중반까진 나름 능숙했는데 중반 이후 큰 실수들을 했기에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으니까. 운 좋게 붙으면 정말 감사한 거고, 떨어지면 다시 매진할 수밖에.

노인은 팔십사 일 내내 물고기를 잡지 못했고, 함께 한 소년마저도 배를 떠나 다른 배에서 큼직한 성과들을 올렸다. 나의 최근 상황을 대변하는 것 같다. 나는 미용 학원에 가장 오래 다녔고, 함께 했던, 더구나 나보다 늦게 시작했던 이들도 합격해서 떠났다. 그래서 이 부분이 누군가에겐 아무렇지 않게 느껴질 수 있지만 내겐 참 복잡한 감정이 들게 하는 구절이다.



  노인은 낚싯줄을 좀 더 당겨 보려고 애썼지만 줄은 물고기를 처음 낚았을 때부터 줄곧 팽팽한 상태 그대로였다. 조금만 당겨도 곧 끊어질 듯했다. 그래도 노인이 잡아끌려고 몸을 뒤로 젖히자, 곧바로 물고기의 거친 반응이 전해졌다. 순간, 더는 잡아당겨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렴, 홱 잡아당겨서는 안 되고말고. 왈칵 잡아당길 때마다 낚시에 찢긴 상처가 넓어져서 어느 순간 녀석이 뛰어오를 때 바늘이 빠져나갈지도 몰라. - 62P

삶의 강약. 밀당. 중용. 조화. 그런 걸 상상했다.



그때 마침 작은 새 한 마리가 북쪽에서부터 배를 향해 날아왔다. 휘파람새였다. 새는 해면 위를 얕게 날고 있었다. 노인이 보기에 그 새는 무척 지쳐 있었다. 잠시 후 새는 배의 뱃고물로 날아와 앉았다. 그러다가 노인의 주변을 빙빙 돌더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는지 좀 더 편한 낚싯줄 위에 앉았다.

  "너는 몇 살이지?"

  "노인은 새에게 물었다.

  "이번이 첫 여행이냐?"

노인은 고독하구나. 느끼게 해주는 부분이었다. 나도 동식물에게 말을 걸었던 적이 있다. 특히 식물들에게 말을 걸었을 때 내 마음 상태는 외로웠으나 그 외로움이 싫지 않았고, 흔들리는 식물들 보며 삶의 방식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내 일에 신념을 가져야지. 발뒤꿈치 뼈가 아픈 데도 끝까지 시합을 해 내는 위대한 '디마지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해야 한다. - 79P

디마지오는 뉴욕 양키스의 최고의 선수였다. 미국의 대공황 시절 활약을 해서 버거운 많은 이들에게 위로를 선사한. 노인은 조 디마디오를 떠올리며 자기도 일에 흔들리지 말고 신념을 가져야 한다고 다짐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또 새로운 방법을 하나 배우는구나. 어떻게든지 상황에 따라 써먹을 수 있는 방도가 생기게 마련이지. - 86P

노인은 상황이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해도 좌절하지 않는다.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한다. 나도 미용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여러 실패로 떠밀리고 나서 차선으로 선택한 게 미용이다. 외부의 영향이 있더라도 내가 결정했기에 책임을 지어야 한다. 지금을 받아들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가지고 신념을 가져야 한다. 나 또한 디마지오와 노인과 헤밍웨이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하지는 않지." - 122P 

태도의 중요성.



고기잡이는 내가 살아갈 수 있게 해 주는 일이면서 나를 죽이기도 하지. 아니, 나를 살게 해주는 건 그 아이야. 나 자신을 너무 속여서는 안 돼. - 126P

독서모임에서 바다란 무엇인지 질문을 했다. 나는 이 부분을 언급하며 결혼이라고 말했다. 자신을 죽이지만 책임감으로 인해 살아가게도 한다고. 이 말을 했더니 모두 빵터졌다. 결혼 해보셨냐고. 아니. 그냥 그런 것 같다고. 결혼은 개인의 독립성을 죽이지만, 책임감으로 인해 성장하게도 하니까.



무거운 짐이 없으므로 배가 아주 가볍게 잘 달린다고 느낄 뿐이었다. 배는 아직 괜찮구나, 노인은 생각했다. 배는 온전해. 키 손잡이 말고는 아무 이상이 없다. 키 손잡이는 쉽게 바꿔 달 수 있지. -143~144P

노인은 85일째서야 청새치를 낚아 항구로 끌어 오는데 피 냄새를 맡은 상어 떼들이 번번히 다가온다. 노인은 한 두 차례 잘 방어하지만 그 이후로는 별 수 없어서 뼈만 남은 청새치 상태로 복귀한다. 하지만 노인은 일희일비 하지 않는다. 없음이 있어야 있음이 있듯이 있음을 위한 날이려니 받아들인다. 그 와중에도 배의 상태에 만족하는 노인. 이게 슬프지만 성숙한 어른의 행복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더그라운드 니체 - 고병권과 함께 니체의 <서광>을 읽다
고병권 지음, 노순택 사진 / 천년의상상 / 201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밑줄



"나는 잠수하는 모든 이를 사랑한다. 어떤 물고기도 표면에서는 헤엄을 칠 수 있다. 하지만 5마일도 넘게 내려가려면 고래 정도는 되어야 한다. …… 세계가 시작된 이래 사유의 잠수자들은 충혈된 눈을 하고서 표면으로 되돌아왔다." 멜빌이 '사유의 잠수자들'의 운명처럼 말했던 그 고래를 나는 이 책에서 느낀다. 삶과 죽음, 이성과 광기가 골려 있는 아슬아슬한 선 위에서 생존을 이어가는 사상가의 초상 말이다. - 38P


황금에는 도금할 필요가 없다. 한마디로 위대한 사건은 소란스럽지 않다. 분출하는 화염과 시커먼 연기는 사람들의 눈을 빼앗고 싶은 거짓 불개들에게나 필요한 것. 차라투스트라가 말하듯, "소란과 연기가 사라지고 나면 별로 일어난 일도 없지 않던가." 그 속에서는 고뇌하는 영웅조차 삼류 배우에 불과하다. 가장 큰 사건이 소박한 한 걸음에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은 왜 그렇게 어려운가. 사람들은 지하로 이어진 길 언저리에서 피어오른 화염과 연기, 그리고 기적을 행한 영웅의 이야기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그러나 정작 지하에 다녀온 이는 중저음을 낸다. 대지에 먹혀 대지의 목소리가 된 자는 나지막이 말한다. 소란이 사상을 죽인다. - 제 2장 수치스러운 기원 소개 글


그러나 어떤 곤충에게는 그것이 빨갛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즉 '빨간 사과'는 '사과'만이 아니라 우리 시신경과도 관계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사과'와 우리 '눈'이 '빛'을 매개로 맺는 관계를 사과라는 한 사물의 속성인 것처럼 생각한다. - 46~47P



  누군가 물에 빠졌을 때, 누군가 피를 토할 때, 우리가 그에게 뛰어가는 것은 과연 동정 때문일까? 우리가 '동정'이라고 말하는 다양한 사례는 언뜻 '우리 자신을 의식적으로는 생각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반대로 자신을 지극히 강하게 생각하기에(그것이 무의식적일 수 있지만) 우리는 그렇게 행동하는 것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의 불행한 우리에게 모욕감을 준다. 우리가 그를 이러한 불행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다면" 우리는 그 순간 "우리 자신의 무력함과 비겁함을 깨닫게 된다." "또 타인의 불행은 이미 그 자체로 타인에 대한 혹은 우리 자신에 대한 명예를 감소시키는 동기가 된다. 또는 타인의 불행과 고통은 우리도 겪을 수 있는 위험을 가리킨다. 또 인간의 위험한 처지와 연약함을 가리키는 징표만으로도 그것은 우리에게 고통을 느끼게 한다." 즉 우리는 타인이 우리 앞에서 겪게 되는 고통이 주는 우리 자신에 대한 무력감 내지 모욕에 대해 타인을 돕는 행위를 통해 복수하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타인의 고통은 우리 고통과 질적으로 다른 것이며 "그의 고통이 그에게 고유한 것처럼 우리 고통은 우리에게 고유한 것이다" (만약 우리가 타인과 똑같은 고통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는 아마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동정'이라고 부르는 행위로 (니체는 우리의 스관을 따라 불가피하게 이 말을 쓴다고 했다) 우리가 우리 자신한테서 제거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고통뿐이다.

  물론 '고통의 제거' 역시 동정이라 불리는 행위를 하게 만드는 하나의 작은 동기일 뿐이다. 동정적 행위에 개입하는 동기들, 그 배후 충동들은 훨씬 복잡할 수 있다. 우리는 고통이 아니라 어떤 쾌락의 충동에 의해 그런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우리는 저런 처지에 처해 있지 않다는 것을 느낄 때, 또 우리는 원하기만 하면 도와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때, 또 우리가 도와줄 경우 찬양과 감사를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할 때, 도와주는 행동이 성공을 거두어 돕는 사람에게 뿌듯함을 줄 때, 특히 우리 행동이 우리를 화나게 하는 어떤 불의를 누르거나 제거한다는 느낌이 들 대도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다. 이보다 "훨씬 더 정교한 것까지 포함해 이 모든 것이 '동정'이다. - 116~117P


철학자는 해결하려는 자보다는 삶의 촘촘함 사이를 경계하게 만드는 사람이 아닐까.




  니체는 말했다. 우리가 내리는 도덕적 판단의 근거는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그런데도 우리는 거기에 기초해 도덕적 판단을 하고 있다고. 그러나 도덕적 행위의 근거 없음 내지 오류를 지적했다 해도 니체가 부도덕한 행동을 우리에게 촉구한 것은 아니다. 그는 우리에게 다만 다른 감각, 다른 가치평가를 바라는 것이다. - 121P


고대나 중세적 인간들이 점성술만으로도 미래를 확신하고 대담한 모험을 전개할 수 있었던 반면, 훨씬 더 많은 지식으로 무장한 근대인들은, 그만큼 커진 불안과 회의 때문에 대담하게 행동할 수가 없다. - 132P


  근대인에게는 항상 시간이 없다. "현재 유럽인은 모든 중요한 문제를 반어적으로 취급한다. 그들은 그들의 일로 너무 바빠서 이러한 문제들을 진지하게 다룰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근대인들이 '위대한 일'을 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것을 "잉태할 수 있는 깊은 침묵"의 시간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저 사건에 쫓겨 다닌다. 자신이 익을 수 있는 '때'를 기다릴 수 없다는 것, 그것이 근대인의 문제이다. 근대의 젊은이들은 인격도 재능도 근면함도 갖추었지만 오직 하나, "스스로 방향을 부여할 수 있는 시간"을 허용받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주어진 방향에 길들여졌다. 그들은 이용되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박탈당했고, 매일 사용되어 닳아지는 것이 되도록 교육받았으며 그것을 의무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잠시 쉬는 것이 '휴가'의 이름으로 허용되었지만. 어떻든 이 시스템에서는 바퀴가 되어 돌지 않으면 바퀴에 깔려 죽게 된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연고를 찾고', '추천을 받고', '철저히 순응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사람들은 그것이 스스로를 "그다지 책임을 느끼지 않고도 남용하고 파괴할 수 있는 자연의 싸구려 도자기"로 만드는 것임을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나 같은 유형의 사람들은 너무나 많이 널려 있다. 나를 가져가라! 거리낌 없이! 한마디로 근대인들의 세기는 '과도한 노동의' 세기이며 그렇게 해서 '닳아 없어지는' 세기이다. -136~137P


니체의 말에 공감하기도 하지만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과도한 노동의 세기라. 조직 시스템에 의해 과도한 노동을 하는 이들도 있지만, 받아들이거나 그 일이 좋아서 몰두하는 이들도 있기 마련이다. 싸구려 도자기라도 각자의 의미가 있다. 물론 눈 앞만 보기보다 멀리 삶을 관망할 수도 있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해서 각자에게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아쉬운 마음에서 지적할 수는 있으나 절대적일 수는 없다.

익을 수 있는 때란 무엇일까. 여러 경험으로 자신이 익어간다고 생각이 들 때면 서른은 넘지 않을까? 서른이라고 해서 못할 일은 없지만 나이 제한이 있는 일도 많다. 그 때. 익을 수 있는 시간을 조금이나마 허용하는 사회 구조가 되었으면.




  니체가 272절에서 '종족'〔인종Rasse〕이라는 말을 썼을 때 그것은 어떤 '본래성'을 가리키지 않는다. "순수한 종족은 없고 순수하게 된 종족만이 존재할 것"이라는 말이 그것을 말해준다. '순수한 인종'이란 주어진 존재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순수성은 끊임없는 시도의 결과("수많은 적응과 흡수 그리고 분리의 최종 결과")이다. 나는 여기서 '순수성'을, 앞서 니체가 근대인을 가리켜 비판했던 '잡식성' (특이성 없음, 취향 없음)과 대비해서 이해한다. 기묘하게도 여기서 니체가 말한 '순수성'은 이질적인 것들을 솎아내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엮어낼 수 있을 때(처음에는 조화되지 않은 성질들, 그래서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 그런 투쟁들이 조화를 이루며 통일성을 갖게 되었을 때) 달성되는 특이적(유일무이한singular) 아름다움이다. 이를테면 자기 자신을 조각했던 그리스인들의 예술적 역량〔능력〕은 그렇게 '그리스적인 것'이라는 순수 특이성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스인은 이를 통해 다른 누구와도 혼동될 수 없는 그리스인이 될 수 있었다.

  니체는 272절의 마지막에 "순수하게 유럽적인 종족〔인종〕과 문화 역시 언젠가를 성취되기를 희망한다"고 썼다. '그리스적인 것'의 생성이 '그리스 인종주의'를 말하는 게 아니듯, '순수하게 유럽적인 종족〔인종〕과 문화'도 배타적 유럽(중심)주의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가 방금 전에 보았던, 니체가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에서 언급했던, 오히려 독일의 인종주의가 그 조건을 악화시켰던, '유럽의 여러 민족을 엮는 과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어떻게 하면 예술적 역량을 발휘해 여러 민족을 질료로 특이적 유럽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 니체는 그것을 '위대한 정치'라고 불렀다. 이것은 니체의 일관된 주장이다. 그는 '너는 네 자신이 되어야 한다'Du sollst die werden, die du bist고 했던 사람이다.■ 우리는 이것이 또한 '그리스인은 그리스인이 되어야 한다' , 그리고 '유럽은 유럽이 되어야 한다'는 식의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우리 자신이 된다는 것은 우리에게 부여된 가장 위대한 예술적 사명이다.


■ 니체는 '너는 네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표현을 곧잘 사용했다. 《차라투스트라》에서는 스스로를 '일찍이 적절하게도 '네 자신이 되어라'Werde, der du bist라고 말한 바 있는 인도자이자 양육자, 훈계자"로 칭했고,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는 '저마다 타고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소수만이 실제로 하나의 재능 있는 사람' , 즉 "그 자신이 되는 것"er wird, was er ist이라고 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Ⅱ권 서문에서는 니체 자신의 저서가 곧 "자신이 극복해온 것"들이며, 거기서 바로 "가장 독자적인 '나'"를 볼 수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니체는 《이 사람을 보라》의 부제를, '사람은 어떻게 그 자신이 되는가'Wie Man wird, was Man ist로 달았다. 니체의 철학은 결국 가장 독특한 존재로서 자신에 대한 예술적 '생성'이자 그것에 대한 인식이라 할 수 있다. -189~190P



  우리가 고독을 '떠남'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무엇으로부터의 '떠남'일까. 일단 고독은 현재로부터, 자기 시대로부터의 떠남이다. 506절에서 니체는 '좋은 작품'이란 그것을 산출한 시대로부터 떠나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그는 그것을 '시대의 축축한 공기'를 말리는 일에 빗대어 이렇게 말했다. "그대들은 새롭고 좋은 어떤 작품이라도 그것이 그 시대의 축축한 공기 속에 존재하는 한, 그것에 시장과 적대 세력, 최신의 의견 그리고 내일은 생각할 수도 없는 모든 무상한 것의 냄새가 너무나 많이 배어들어 있기 때문에 가장 적은 가치를 소유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는가? 나중에 작품은 건조해지고 '시대성'은 사멸한다. 그때에야 비로소 그것은 시원한 빛과 좋은 냄새뿐만 아니라, 만일 그것이 영원의 조용한 눈을 추구하고 있었다면 그 눈 역시 얻게 된다."

  시대의 습기를 말리는 일을 우리는 니체의 표현을 따라 현재의 '색이 바래는' 일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시선이 미치는 시간과 공간이 넓어질수록 "지금 현재에 존재하는 것은 더욱 색이 바래고" , 우리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우리로부터 멀어질 것이다. 우리는 사상의 성장을 가로막는 '담쟁이와 포도덩굴'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가 고독해진다는 것은 현재로부터 떠나면서 또한 이웃들로부터 떠난다는 의미이다.

  니체는 여기서 특히 민족주의적 열광에 도취된 독일 대중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싶다. 정열로 모든 의심과 학문, 비판, 이성을 잠재우려 하고, '역사가 자신들을 위해 증언하도록 역사를 왜곡'해야 하는 사람들, 정열을 진리의 논거인 양 제시하고 끝내는 그것을 하나의 양심이자 무구함으로 믿어버리는 사람들로부터 니체는 떠난다. "이 순간에 그대들은 투쟁, 도취, 분노, 희망 속에서 망아의 상태에 빠져 모든 의심을 넘어선다. 이 순간에 그대들은 그대들처럼 망아의 상태에 있지 않은 사람은 진리가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고 선포한다. 그대들은 이러한 상태에서 ─ 그것은 지성이 타락한 상태다─ 그대들과 동일한 믿음을 갖는 인간들을 발견하기를 얼마나 갈망하는지, 그리고 그들의 화염으로 그대들의 불꽃을 점화하기를 얼마나 갈망하는지!" 물론 이 성향은 이성이나 논리에 강하게 반발하며 '내적 감각'이나 '지적 직관'을 더 중시했던 당대의 철학 성향과도 관련된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철학 아래서 자신을 어떤 초자연적 마력을 가진 존재로, 어떤 불가사의한 특권, 어떤 '예술적 본성'의 소유자로 생각한다. 한마디로 "그들이 원하는 것은 종교다!" -199~200P


현재 한국 사회를 보는 듯하다. 지성을 지식을 갖고 자기 주장하는 것으로 착각한다.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이 진실이며 그렇지 않은 것은 왜곡이다. 이 말을 들으면서도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노년과 노년에 이르러 인생을 판단하는 것에는 최고의 신중함이 요구된다. 특히 노년은 저녁과 마찬가지로 새롭고 매력적인 도덕으로 변장하기를 좋아하며 저녁놀, 황혼, 평화로운 고요함이나 동경으로 가득 찬 고요함에 의해 낮으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느끼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년에 우리는 "이제야 비로소 통찰력을 갖게 된 것처럼 자신의 인생과 업적과 역정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일이 드물지 않다." 그러나 이 배후에는 "지혜가 아니라 피로가 존재한다."

  정신의 노쇠함에 빠진 현자들은 자신에게 예외적 지위를 쉽게 허용한다. 그는 "이제 사태들을 보다 가볍게 취급하고 증명하지 않은 채 (스스로를) 천재로 선포하는 것이 허용된다고 여긴다." 그리고는 외견상으로는 과거 자기 사상의 문제들을 고치면서 자기 업적을 넘어서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과 사람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부분들을 솎아내고 자기 사상을 향유하려고 한다. 이제는 더 나아가기보다 적당히 즐기며 쉬고 싶은 것이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멀어지는 고독, "앞으로 날아가는 모든 정신이 살고 있는 저 무서운 고독"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 대한 "확고한 당원, 회의하지 않는 동지, 지원군, 전령, 화려한 행렬"을 열망하고, 자신이 "경외, 공동체, 감동, 사랑의 대상"으로 남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제도화된 기관을 세우려 하며 어 이상 사상의 건축물을 세우려 하지 않는다." 이 '위대한 노인'이 원하는 것은 한마디로 "하나의 사원이다." 그는 사유의 격량이 되느니 그것을 막는 "방파제로 영구히 남으려 한다." 그러나 사상가는 그렇게 함으로써, 다시 말해 "자신을 성인의 명부에 올림으로써" , "자신의 사망증명서도 발급"하는 것이다. -209P


30대인 나만 해도 그렇다. 벌써부터 현실이라며 도전보다는 안락한 선택과 고민한다. 도전적인 성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니체의 말을 들으니 요즘 고민하고 있는 선택에 도움이 된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안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밑줄


이렇게 인간성을 통찰력 있는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유용하기는 하지만, 한 가지 불리한 점은 이런 관점을 다를 경우 친구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쇼펜하우어와 마찬가지로 철학적 염세주의자였던 샹포르는 그런 문제를 넌지시 드러냈다. "도덕적이고 고결한 태도로, 합리성과 진실한 마음을 갖추고, 관습이나 허영이나 격식 같은 상류사회의 소도구 없이 우리를 대하는 사람들만 만나겠다고 결심하는 순간(이렇게 결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멍청하고 허약하고 흉물스러운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그 대가로 우리는 결국 혼자서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종이책 156P


나의 가치관이 분명하면, 부딪힘이 발생한다. 내가 아는 것이 이런데, 그것과 다르면 피곤해지니까. 내가 아는 것을 강요하지는 않지만, 그게 합리적이라면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대해주었으면 싶다. 최근 친구들과도 그런 일이 발생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친구라 그때의 미성숙한 행동을 서로끼리는 이해해주리라며 할 때면, 나의 마음은 복잡해진다. 그래서 조금은 둥글게 살려고, 내게만 피해 주지 않으면, 그냥 넘어갔다. 하지만 단톡방에서 연예인으로 추정되는 음란물을 공유할 때 나는 그 방을 나와버렸다. 정확히 차분하게 문제를 직시하면 감정만 나빠지니까. 인권에 대해 얘기한들 가식이라며 뭐 그리 불편하냐며 듣지도 않을 테니까.




예술가들이 이런 갈망을 늘 노골적인 정치적 메시지로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스스로 그런 갈망을 의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작품에는 현재의 상황에 대한 항의가 나타나기 마련이고, 이에 따라 우리의 시각을 교정하고, 아름다움을 인식하도록 교육하고, 고통을 이해하거나 감수성에 다시 불을 붙이도록 돕고, 감정이입 능력을 길러주고, 슬픔이나 웃음을 통하여 도덕적인 균형을 다시 잡아주려고 노력하기 마련이다. 아널드는 이런 태도의 핵심을 이루는 선언으로 자신의 주장을 마무리한다. ― 예술은 "삶의 비평"이다. - 종이책 164P


예술은 미세한 선을 발견하고 그 선을 파고드는 데 있다. 그 선 사이에서 도덕과 감정을 논하는 것. 예술은 마냥 방탕해도 용서되는 것이 아닌 규율과 자유 사이를 제시하는 것. 그것으로 내 삶과 주변을 비평하는 것.




질문


힘으로 보호해주거나 식량을 조달해주어 원하는 지위를 얻을 수도 있다. 안전이 문제가 될 때는)고대 스파르타, 12세기 유럽) 용기 있는 투사나 말을 탄 기사가 존경을 받는다. 재빠른 동물의 고기에서 영양분을 섭취해야 하는 공동체에게는(아마존 지역) 재규어를 죽이는 사람들이 존경을 받고, 더불어 그 상징인 아르마딜로 허리띠를 얻는다. 교역과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나라에서는 기업가와 과학자가 존경의 대상이 된다(현대의 구미 지역). 반대로도 생각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한 일을 해주지 못하는 집단은 지위를 잃게 된다. 안전이 문제가 되지 않는 사회의 근육질 남자들이나 정착을 한 농업 사회의 재규어 사냥꾼들의 운명이 그런 경우다.

어떤 집단은 선한 태도, 신체적 재능, 예술적 솜씨, 지혜로 다른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어 높은 지위에 올라갈 수도 있다. - 종이책 226P


1) 한국의 과거와 지금의 한국에서는 높은 지위를 얻으려면 어떤 능력이 필요했고, 필요할까? 앞으로는 또 어떤 능력이 필요하게 될까? 높은 학업 점수와 비판적이기보다 복종하는 태도가 아닐까. 하지만 요즘 보면 연예인이나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대두되는 걸 보니 이목을 끌고 웃음을 주는 능력이 앞으로의 높은 지위를 얻는데 절실한 능력이 되지 않을까? 공감하고 빠르게 적용하는 능력?


2) 지위가 없다면 자존감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지위가 없는 상태에서 자존감은 어떻게 기를 수 있는지? 운동을 생각해봤지만, 우울하면 운동조차 하기 싫고 억지로 하기 때문에 그리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결국 현실 문제에 직면하는 것 말고는 없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곡 세트 - 전3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박상진 옮김, 윌리엄 블레이크 그림 / 민음사 / 201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꾸역꾸역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 세 권을 읽었지만 솔직히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굉장히 심오하고 배경지식이 상당히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쉽게 말해 양심적 태도로 개인과 사회와의 객관성을 지키며 살아가라는 방향성인 듯. 기독교에 관한 내용이 많이 나와서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불편하게 다가올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에 관심을 둘 정도면 종교를 넘어서 이 책을 통해 현실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독자이지 않을까.


내 자식의 귀여움도, 늙은 아버지의

연민도, 또 내 아내 페넬로페를 당연히 기쁘게

해 주었어야 할 나의 신실한 사랑도,


세상과 인간의 악과 가치에 대해

모조리 알고 싶은 내 가슴속의

열정을 이겨낼 수 없었소.


그래서 나는 오직 한 척의 배에 의지해

늘 나와 함께했던 소수의 동료들과 함께

깊고 넓은 바다로 나왔소.


멀리 에스파냐와 모로코까지 이쪽 해안과

저쪽 해안을 보았고, 이 바다에 몸을 적시는

사르데냐와 다른 섬들도 보았소.


나와 동료들은 늙어 갔고 몸도 둔해졌다오.

그 무렵 우리는 그 누구도 넘어가지 못하도록

헤라클레스가 표지를 꽂아 둔


비좁은 어귀에 도착했소.

오른쪽으로는 세비야를 떠난 뒤였고

반대쪽으로는 세타를 떠난 뒤였소.


나는 이렇게 말했다오. '오, 형제들이여! 수많은 위험을

무릅쓰고 드디어 우린 세상의 서쪽 끝에

다다랐다. 우리에게 생명은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태양의 뒤를 좇아 사람이 살지 않는

세상을 찾아가려는 마음을 버리지 마라!


그대들의 혈통을 생각하라! 그대들은

짐승처럼 살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덕과 지혜를 따르기 위해 태어났다.'


-단테 <신곡> 지옥편 26곡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