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춘당. 그 화려하고 달콤함으로 기억되는 사람. 사랑.
할머니에게는 할아버지가, 작가에게는 두 분이겠지.

나는 여름이 고여 있던 그 집을 오래 기억한다.
나의 여름과 겨울이 고여 있던 집들을 생각한다.
친가와 외가.
나는 그 집들을, 할아버지, 할머니와 사촌들, 친척들을 얼마나 잘 기억하고 있는지.
조금 씁쓸해진다. 쓸쓸해진다.
다시 돌아와 여기 고자동님, 김순임님, 두 분의 성격과 인품은 몇 가지 일화로 나타나는데
그 중 '술집 나가는 여자'들에게 집을 빌려주는 집은 할아버지 집 뿐이었다는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동네 사람들이 꺼려하며 할아버지께도 그러지 말라고 당부하지만..

할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그녀들과 함께 골목길을 쓸고 쓰레기를 치우셨다. 전쟁고아인 할아버지는 사람에게 돌아갈 집이 없는 걸 가장 두려워하셨다.
다른 사람들처럼 집을 안빌려주는 편이 더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다들 그들을 '술집 나가는 여자', 우리와는 다른 사람, 애들 교육상 좋지 않은 사람이라고 선 그었을 때 할아버지, 할머니는 집이 필요한 사람으로 여기고 싼값에 세를 주면서 함께 행동으로 폐가 되지 않는 사람들임을 보여주셨고, 밤늦게 들어오는 길을 위해 구청에 말해 가로등도 세워 주셨다. 동네 사람들이 '어머나~' 하고 다시 보는 것처럼, 나도 나 자신을 되돌아봤다.
할아버지가 폐암으로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조용한 치매로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짧게 다루고 있지만 10년을 가족들이 돌보고 10년을 요양원에서 살다 가신다. 함께 산 10년도 요양원에 모신 10년도 결코 쉽지 않은, 편치 않은 세월이었을 것이다.
두 분이 다시 하늘나라에서 만나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작은 위안이 될 것이다.
여기서 끝나면 좋을텐데
나는 자폐 아들을 생각한다. 치매 부모는 요양원에 모실 수 있다. 그 임종을 내가 지켜볼 가능성이 더 높다. 하지만 자녀의 경우 내가 먼저 하늘나라 갈 가능성이 높고 맡길만한 요양원도 많지 않은 상황. 죽기전에 아들이 머물 집을 만들어야 한다. 집보다는 요양원에 가깝더라도 안전한 곳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