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으로 끝난 이 참사에 원로원의 양식있는 의원들은 아연실색했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시민들도 후회로 가슴을 쳤다. 왕정 시대의 로마에서는 왕이 바뀔 때 유혈사태가 일어나는 경우는 있었다. 하지만공화정으로 바뀐 뒤 4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동포끼리 피를흘리면서 싸운 적은 한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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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것은 후세 연구자들이 선호한 분류 방식이고, 당시 로마인들은 이런 분류에 별로 집착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쨌든 해마다 두 명씩 선출되는 집정관 가운데 한 사람은 평민 출신인 것이 통례였으므로, 이론적으로는 해마다 한 사람씩 새로운 귀족이 탄생한다는 계산이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로마의 ‘귀족계급‘ (노빌리타스)은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신분은 아니었다. 넓은 토지를 소유하고, 파트로네스로서많은 클리엔테스를 거느리고 있는 ‘평민 귀족‘ 도 드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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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것은 후세 연구자들이 선호한 분류 방식이고, 당시 로마인들은 이런 분류에 별로 집착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쨌든 해마다 두 명씩 선출되는 집정관 가운데 한 사람은 평민 출신인 것이 통례였으므로, 이론적으로는 해마다 한 사람씩 새로운 귀족이 탄생한다는 계산이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로마의 ‘귀족계급‘ (노빌리타스)은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신분은 아니었다. 넓은 토지를 소유하고, 파트로네스로서많은 클리엔테스를 거느리고 있는 ‘평민 귀족‘ 도 드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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