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1993년 8월 12일 20시를 기하여 대통령 긴급명령 형식으로 전격적으로 금융실명제를 실시했어요. 기득권의 저항이 만만치 않은 파격적인 조치였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역풍은 미미했어요. 왜냐하면, 당시 국민의 78.6퍼센트가 ‘찬성‘ 입장이었거든요. 《동아일보》 국민 의식 전국 여론 조사1994년 1월 1일)
국가정보원은 또 어떻고요? 2011년 2월 16일이던가요?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묶던 인도네시아 특사단 방에 들어가서 노트북을 만지다 인도네시아 직원들과 맞닥뜨리자 줄행랑을 쳐서 망신을 당한 적이 있잖아요. 결국 이명박 정부가 인도네시아 정부에 사과를 했어요. 정말 코미디 영화「7급 공무원」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어요. 보수 권력의 완력 역할을 했던 권력 기관들이 이렇게 한심한 지경으로 전락했어요.
그러니까 그런 시대에는 경험이 곧 지혜였어요. 산전수전 다겪은 마을의 노인이야말로 경험을 토대로 시도 때도 없이 닥치는 여러 문제에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었습니다.오랜 세월 동안의 경험이야말로 권위의 원천이었어요. 예측 가능한 사회에서는 경험이야말로 가장 큰 힘을 발휘하니까요. 인디언 추장, 집안의 어른, 국가의 원로들이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힘을 발휘하던 시대였습니다.
글쎄요. 사실 권력 이동의 징후는 이미 10년 전에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때부터 있었어요. 우선 그 5년 전인 1997년에 당시 김대중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는 과정부터 살펴봅시다. 우선 나라가 사상 초유의 부도가 났어요. 그것만으로도 정권 교체는 피하기 어려웠죠. 그리고 충청권에 절대적 영향력을갖고 있던 ‘유신 본당‘ 김종필 씨도 김대중 후보와 연합을 선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