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결정권은 없지만 정책을 입안할 때, 채용되고 않고를 떠나서 자기가 받아 분석, 종합한 정보에 입각하여 의견을 말할 수도있었다. 더욱이 서기국 동료들은 그의 생각에 싱싱한 반응을 보여주는 유쾌한 인간들이었다. 스물아홉 살의 마키아벨리는 좋아서의기양양한 기분으로 관료 생활을 시작한 것이 아닐까? 그의 입버릇이었다는 "에코 미!"라도 외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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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3일, 교황 특사와 정부 고관들이 정청의 벽을 따라 마련된계단식 좌석에 나란히 앉았다. 광장의 군중은 ‘불의 심판의 날보다 더 많았다. 모두 입을 꾹 다물고 말이 없었다. 정청 안에서 세수도사가 끌려나왔다. 판결문이 낭독되었다. 세 사람은 검은 수도복이 벗겨지고, 흰옷차림이 되었다.
맨발에 손은 뒤로 묶여 있었다. 흰 천으로 눈이 가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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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모 파치가 이끄는 제3 그룹의 성과도 엉망이었다.
"포폴로, 리베르타!" (민중, 자유!)하고 외치면서 선동에 안간힘을 쓰지만, 그 포폴로가 도무지 선동에 호응해 오지 않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성당에서의 참사가 알려지고, 페트루치가 치게 한 정청의 종루에서 울려퍼진 경종으로 변란을 안 사람들이 속속 광장에 몰려들었으며, 이들 속에서 "배신자!"라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게 되고 급기야 돌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위험을 느낀 음모자들은 선동은 고사하고 허둥지둥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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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건 하천이건 물은 있을수록 좋다. 다만 그 물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도시가 인간의 것이 되느냐 안되느냐가 결정된다고생각한다. 피렌체는 베네치아만큼 적극적으로 물을 이용할 필요가없기는 했지만, 물의 처리를 그르치지 않은 점에서는 같다.
마키아벨리도 산타 트리니타 다리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부터 팔라초 베키오 안에 있는 직장에 다닌 시기에 이르기까지 줄곧 하루에 몇 번이나 아르노강을 건너 다녔다. 그런데 그런 그가 쓴 것 속에는 ‘강을 건넌다‘는 뜻을 풍기는 말이 한마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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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남아 있지 않다. 오늘날의 18번지 건물은, 문 없는 입구를들어서면 안쪽에 가게가 몇 있고, 2층부터 그 위는 사무실과 주거로 사용되고 있는데, 입구에 들어서서 바로 오른쪽 문미(門) 자리에 주위의 새 건축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느낌으로 한 변이40센티미터는 됨직한 해묵은 각목이 얹혀 있다.
"이 들보는 1944년의 파괴 직후에 발견된 것으로서, 마키아벨리의 집에 사용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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