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에서 쑨원의 지위는 미약했고 중국 사회에서 그의 정치적 역할은 여전히 불분명했다. 다만 그는 1917년 장쉰이 전 만주 황제 푸이를 무력으로 복위시키려 하자 이에 반대했고, 같은 해 말 중국이 대독 선전포고 문제에 직면했을 때 스스로 대중적인 반대운동을 조직하는 등 여러 사건에서 대변인으로서의역할을 했다. 그는 1919년 베르사유 조약에서도 중국의 권리를 강력히 대변했다. 쑨원은 또한 직접 건설』을 창간하여 성장일로에 있는 중국의 새로운정치잡지 세계에 새롭게 재조직된 국민당을 개입시키려고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