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학교와 기업들이 자신이 속한 사회를 위해 적극적으로 베풀고헌신하는 것은 마음이 관대해서가 아니다. 그들 자신들이야말로 사회의 가장 큰 수혜자임을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고귀한 ‘희생정신‘ 이 아니라 자신이 빚지고 있다는 사실을 올바로 아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다.
몇 년 전 한국에서 ‘일류 엘리트론‘으로 유명했던 한 기업 총수가 대학에서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으려다 학생들의 제지를 받은 사건이 있었다. 이 기업이 여러 학교에 기부금을 내는 것은 분명히 칭찬받을 일이다. 그러나 그 ‘사회 환원‘은 어디까지나 ‘자신‘ 의 차원이 아니라 사회에 진 빚에 대한 ‘보은‘ 의 차원이어야 한다.
만약 삼성의 기부 행위가 감사받을 만하다면, 20여 년 전 소니 ‘워크맨을 마다하고 별 세 개 로고가 찍힌 ‘마이마이‘ 를 사주었던 한국 소비자들의 ‘기부 행위‘ 역시 감사받아야 마땅하다. 당시 그 중소업체의 물건을 애국심만으로 써주고 아낌없이 조언함으로써 세계적 기업으로 키워낸 것이 국민들이었기 때문이다. 평범한 시민들이야말로 그 기업을 ‘먹여살린 은인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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