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조르바가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자유의 의미는 무엇인가?

카잔차키스의 모든 깨달음을 담아낼 그릇이 나에게는 없기 때문에 정확해 알 수는 없지만, 개인적은 소견으로는 작가와 독자가 우러러 보는 조르바의 자유는 우리가 단지 '선' 이라 생각하는 것에 대한 비웃음과 본능에 대한 무조건적 '순종과 실행' 이며, 사람의 생각속에 존재하고 있는 양심과 선에 대한 기준을 짓밟으며 느끼는 희열과 해방감이다. 이것이 과연 자유인가? 이것은 조르바가 자기속에 있다고 말하는 '일곱마리 악마'에 대한 또다른 구속은 아닐까? 

만약, 조르바가 이 글을 읽으면 '넌 아직 멀었어'라 할 것같다. 하지만, 난 악한 자유보다는 선한 구속을 택할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자유라는 것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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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때는
구원받은 자임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한때는 죄인이었음을 속삭이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선택했노라고.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때는
교만한 마음으로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실수하는 자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노라고.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때는
강한 자임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약한 자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힘 주시기를 기도하노라고.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때는
성공했음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했음을 시인하는 것이다.
내가 진 빚을 다 갚을 수가없노라고.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때는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이 아니라,
몰라서 혼란스러움을 시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겸손히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구하노라고 .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때는
온전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이 많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의 인정하심만을 믿노라고.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때는
삶의 고통이 사라졌다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내 몫의 고통을 지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찾노라고.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때는
다른 사람을 판단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판단의 권위가 내게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을 뿐이라고…(캐롤 위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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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평화로운 집안에

종종 전쟁이 일어납니다.

 

큰 애가 동생에게 공격합니다.

"메롱 바보야"

그럼 동생도 지지 않으려고

"아야 오빠강 메롱 바뽀야"

 

"아니야 너가 메롱 바보야"

"오빠가 멜롱 바뽀야"

그리고 잠사 후

목소리의 톤은 점점 높아집니다.

그럼 오빠는 강한 손을 들어올리면서

심한 위협과 함께 더 이상 반항할 수 없도록

외칩니다.

"너가 메롱 바보야"

강압적인 오빠의 비난과 놀림에

이길 수 없음은 간파한 동생은

울면서 엄마에게로 달려옵니다.

 

으앙...

"엄마 엄마 오빠가 멜롱 바보래"

"나 멜롱 바보 아이지"

"나 멜롱 바보 아이지.."

 

그럼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해 줍니다.

그래 우리 예쁜이 메롱 바보 아니야

우리집 공주지.

그치..!!

엄마 나 공주지 멜롱 바보 아이지..

울던 아이는 엄마의 판정을 듣고나면

얼굴에 웃음을 가득 담습니다.

 

세상은 종종 우리를 향해

비난의 날카로운 화살을 보냅니다.

종종 가깝고 믿었던 사람에게도

예기치 못했던 말로 상처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똑같이 욕하고 비난한다고 하여

상처 난 우리의 가슴을 어찌 할 수 없으며

분노의 불은 더 가슴을 태울 뿐입니다.

 

그러나 딸아이가 엄마에게 가져오면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듯이

우리의 상처 난 마음

분노하고 폭발할 것같은 그 가슴을

그대로 주 앞에 가지고 나와서 부르짖으면

모르는 사이에 우리 속에

평화의 그림자가 나타납니다.

 

우리를 비난하던 자에게

우리를 공격하던 자에게

우리를 넘어트리려던 자에게

쏘아붙이고 대항하고 싶었던 그 마음으로

하나님께 그냥 그대로 토해 놓으면

주님은 말없이 우리 곁에서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좋고 아름 다운 것 뿐아니라

우리의 이 상처나고 일그러진

못난 인격들을 새롭게 만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하나님 들어 주십시오.

우리가 이렇게 업신여김을 받고 있습니다.

제발 우리에게 퍼붓는 그 욕이

그들에게 되돌아가게 하여 주십시오.

그들이 노략을 당하게 하시고

남의 나라로 끌려가게 하여 주십시오

그들의 죄를 용서하지 마시고

그들의 죄를 못본 체 하지 마십시오

그들이야 말로 성을 쌓고 있는 우리 앞에서

주님을 모욕한 자들입니다. (느헤미야 4:4-5)

 

비난으로 인해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 버린 우리들의

모나고 온전히 못한 모습을

그리스도의 피로 씻기시고

새롭게 만드실 주님

그리고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이루실 그 주님을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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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이해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그 수많은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라는 아주 흔한 오해이다

이러한 오해는 직접적으로
우리가 늘 맞부딪치는 상대방에 대한 적대감을 낳거나
끊임없이 인정과 이해를 받고자 하는 쓸데없는
욕망에 사로잡히게 만드다는 점에서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가 꿈꾸는 이해에
대한 욕망은 해소가 불가능한 것이다

행복이란 집착이나 욕망에서 나오지 않는다
만약 행복이 집착과 욕망에서
얻어지는 것이라면 이 세상은
저마다의 욕망을 채우려는 사람들로 인해
걷잡을 수 없이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하지만 행복의 진실은 혼란스러움에
있지 않고 조화로움 속에 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를 받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다면
당신은 이제부터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이 세상에는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없고
나를 완전히 이해하는 사람도 없다
왜냐하면 애초에 그 두 가지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中에서...)

이해받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인정하고자 하는 마음
욕망에 집착하는 마음보다는 비우고 털어버리는 마음

돈을 움켜쥐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나누고자 하는 마음
사랑받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이..
바로!! 행복한 나라로 갈 수 있는 비밀-티켓이 아닐까요?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잠시 놀던
세상의 소꿉놀이를 버려두고, 하나님아버지집으로 돌아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나를 잘 이해해 주시고, 인정해 주시며, 사랑해 주시는
친구되신 주님과 동행하시는, 귀한 삶의 여행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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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은 양선함입니다
마음이 상했지만 답변하지 않을 때
내 권리를 주장하지 않을 때
내 명예에 대한 방어를
온전히 하나님께 내 맡길 때
바로 침묵은 양선함입니다.

침묵은 자비입니다
형제들의 탓을 드러내지 않을 때
지난 과거를 들추지 않고 용서할 때
판단하지 않고
마음속 깊이 변호해 줄때
바로 침묵은 자비입니다.

침묵은 인내입니다
불평없이 고통을 당할때
인간의 위로를 찾지 않을때
서두르지 않고
씨가 천천히 싹트는 것을 기다릴 때
바로 침묵은 인내입니다

침묵은 겸손입니다
형제들이 유명해지도록 입을 다물 때
하나님의 능력의 선물이 감추어 졌을 때
내 행동이 나쁘게 평가되든
어떻든 내버려 둘 때
바로 침묵은 겸손입니다.

침묵은 믿음입니다
그분이 행하도록 침묵할 때
주님의 현존에 있기 위해
세상 소리와 소음을 피할 때
그분이 아는 것 만으로 충분하기에
인간의 이해를 찾지 않을 때
바로 침묵은 믿음입니다

침묵은 흠숭입니다
"왜"라고 묻지 않고 십자가를 포옹할때
바로 침묵은 흠숭입니다. -토마스 머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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