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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십야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3
나쓰메 소세키 지음, 노재명 옮김 / 하늘연못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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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꿈 은 과학이 아직 완전히 설명하지 못하는 -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 신비한 현상입니다. 꿈은 우리의 희망, 걱정 등의 불안한 마음 상태를 표현합니다. 그래서 꿈이 우리의 이런 불안감을 해소하는 자아의 내적 기제(mechanism)라고 풀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꿈은 소름끼칠만큼 정확히 현실과 맞아들어가기도 하는데 이런 꿈을 우리는 예지몽이라고 부르죠. 여러분은 이런 신기한 예지몽을 꾸어보셨는지요? 제가 기억하는 한 저는 3번 정도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정확히 가까운 미래를 보여준 꿈들이 있었습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예지몽을 바넘효과로 설명하며 실제로 이런 꿈이 미래를 예견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꿈이 창가에 서린 입김처럼 얼마나 빨리 날아가버리는지 그리고 얼마나 추상적인지를 생각한다면 이러한 설명은 충분히 근거가 있어 보입니다만 여전히 꿈은 우리에게 신비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만큼은 틀림없습니다. 

ten_night_dream.png 



몽십야
일본의 국민작가라고 불리는 나츠메 소세끼는 비교적 늦은 불혹에 가까운 나이에 등단했지만 일본의 1000엔 지폐의 인물이 될 정도로 일본의 대표작가라고 합니다. 

몽 십야는 10개의 꿈을 꿈처럼 묘사한 소설입니다. 대부분의 예술에서 다뤄지는 꿈들은 이야기의 전개상 지나치게 구체적이고 인위적이라면 몽십야는 정말 현실이 꿈과 많이 닮아서 인물의 생각이 모호하고 전개되는 사건들조차 무언가 마무리가 애매한 정말 실제의 꿈과 아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소설은 쓰여진지 이미 100년이 넘었습니다. 100주년을 기념해서 일본의 영화 감독들이 모여 이 소설을 10개의 짧은 옴니버스로 만들어 영화를 발표했다고 하더군요.

오늘은 몽십야 중 5개를 골라서 요약해 드립니다. 모두 '이런 꿈을 꾸었다.'로 시작합니다.

제 1야 - 하늘에서 떨어진 별로 묘비에 세워달라고 한 여자가 말하며 자신이 곧 죽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여자의 뺨에 붉게 혈색이 돌고 있었으므로 나는 이 여자가 죽을 것처럼 생기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여자는 백 년을 기다려 달라고 한다. 나는 기다리겠다고 대답한다. 여자는 눈을 감는다. 나는 여자를 묻었다. 그리고 별을 그 위에 놓고 이제 백 년을 기다리려 한다. 해가 떠오르는 걸 바라본다. 해가 지는 걸 보며 하나를 센다. 붉은 해가 쏜살같이 지나간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백 년이 오지 않는다. 여자에게 자신이 속은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옆에서 꽃이 피기 시작한다. 나는 깨닫는다. 백 년은 벌써 와 있었구나.

 

제 3야 - 6살난 나의 아이를 업고 간다. 아이는 눈이 멀었다. 이상하게도 아이의 말투는 어른이다. 아이가 너무 주변을 잘 알자 나는 두려워졌다. 아이를 버리고 갈 생각을 한다. 아이가 자신이 무겁냐고 묻는다. 아이는 장님인데 길을 더 잘 알고 있다. 아이는 그때도 지금과 같은 밤이었다고 말한다. 나는 오래 전 장님을 죽인 것을 기억해낸다.

 

제 5야 - 나는 포로가 되어 적의 대장 앞에 있다. 적장은 나에게 항복할 것인지 죽을 것인지 묻는다. 나는 죽는다고 대답한다. 나는 죽기 전에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고 싶다고 말한다. 적장은 허락한다. 여자가 말을 타고 달려온다. 하지만 마녀의 장난으로 바위에 말이 부딪히며 늪으로 빠지고 만다.

 

제 7야 - 나는 배에 타고 있다. 나는 뱃사공에게 이 배가 어디로 가냐고 묻지만 답없이 웃기만 한다. 어디선가 어부들이 노래를 부른다. 나는 몹시 외로워져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배를 타느니 차라리 바다에 빠지리라고 생각한다. 어느 여자가 배에서 울고 있다. 나는 혼자만 슬픈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느 외국인이 다가와 신의 존재에 대해 얘기한다. 나는 마침내 죽기로 결심하고 바다로 뛰어든다. 그런데 내 다리가 배를 떠나는 순간 갑자기 목숨이 아까워졌다. 후회하지만 이미 늦었다. 점점 물로 가까워지는 발을 아무리 오므려도 물로 떨어지고 있다. 나는 어디로 가는지 몰라도 여전히 배에 남는 게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깨달음을 이용하지 못하고 나는 무한한 검은 바다로 빠져들어갔다.

 

제 9야 - 세상이 술렁거린다. 집은 조용하다. 3살난 아이와 어머니가 있다. 아버지는 밖으로 나갔지만 돌아오지 않는다. 어머니는 희망을 가지고 아이에게 아버지가 언제 돌아오는지 묻지만 아이는 '저~기'라고만 한다. 어머니는 남편이 돌아오게 해달라고 소원을 빈다. 하지만 그 아버지는 오래 전에 전쟁터에서 죽었다. 나는 이런 슬픈 이야기를 꿈속에서 어머니한테 들었다.

 

파프리카
꿈 에 관한 애니메이션으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파프리카가 있습니다. 저는 잘 모르지만 곤 사토시 감독은 일본의 애니메이션 거장으로 불리고 이 작품 이전 작들도 유명하다고 합니다. 누구나 이 애니메이션을 2006년에 봤다면 영화 인셉션의 기본적인 모티브가 파프리카와 아주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특히, 꿈 속에서 주인공이 돌아다닐 때 외부에서 음악을 들려주는 장면은 정확히 일치하지요. 

안 보신 분들을 위해 재미를 망치지 않는 범위에서만 소개해드리면 정신과 의사 아츠코는 DC 미니라는 꿈 Projector를 사용해서 의뢰인의 꿈을 해석하고 치료방법을 찾습니다. 직접 의뢰인의 꿈에 들어가는데 이 꿈에 들어간 아츠코는 파프리카라는 또 다른 자아가 됩니다. 그런데 DC 미니가 해킹을 당해서 의뢰인들과 병원관계자들의 꿈과 현실이 뒤죽박죽되어 버리죠. 딱 여기까지만 말씀드려도 영화 인셉션의 상상력의 출발점과 비슷하다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아 래 유튜브에 오피셜 트레일러가 아닌 팬 트레일러를 소개합니다. 제가 봐도 이쪽이 좀 더 재밌게 편집했네요.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면 보수적인 가정의 분위기라면 아이들과 다정하게 보기 편하지 않은 장면도 있습니다. 15세 이상 관람가)

http://youtu.be/CnkvMKl1y9M

오늘은 약간 내용이 길었지만 쉽게 읽으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본 작가를 소개한 김에 다음 주에 본격 병원 소설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즐거운 수요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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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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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지난 주 얘기를 요약해 보면 인간은 누구나 지금의 상태를 벗어나고 싶은 불안을 가지고 있는데 이 불안은 무언가를 성취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형태의 불안으로 변합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공동체를 조직하게 되고 그런 공동체 안에서는 역시 불가항력적으로 불평등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불평등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부산물로 인간의 존엄성 자체가 위협받기도 하는데 이는 현대에 와서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책에 나오는 몇 가지 주목할만한 글줄을 인용함으로써 이 책을 정리하고 joshua weekly의 올해 여름 로드맵을 살짝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알렉시스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1835)'에서 중세에는 비록 대부분의 농민들이 궁핍하게 살았지만 현재의 신분 외에 다른 가능성을 생각할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미국인들은 이제 18세기 평민들은 전혀 꿈조차 꾸지 않은 일들이 바로 눈앞에 그리고 매일 TV를 통해 펼쳐지면서 이루지 못한 꿈들로 더욱 불행한 사람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수성가하는 기업가들 이야기와 하루 아침에 벼락부자가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넘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신분의 급격한 변화는 예외적인 일들로, 예외가 규칙이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홉스의 책 '리바이어단'에서 우리는 이러한 현상들의 출발점을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홉스가 국가를 바라보는 관점은 루소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했지만 홉스는 지극히 묘한 리바이어단이라는 제목으로 국가라는 조직을 통해 충돌하는 인간들의 욕구는 적절히 통제되고 최대의 선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루소가 문명과 국가 조직이 인간들을 악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면 홉스는 그 정반대에서 국가가 있어야 인간들은 선해진다고 말하는 것이죠.



알랭 드 보통의 해결책을 하나씩 짚어보면 문제점들을 변화시키는 근본적인 노력보다는 오히려 개인 스스로 마음을 편하게 갖는 법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연의 위대함을 보며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이런 광활한 자연 속에 결국 누구나 하나의 인간이라는 걸 깨닫게 되면 지금 눈앞에 있는 불행, 불평등은 잠시 잠깐의 일일 뿐이라고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항상 우리들을 괴롭히는 불안이라는 감정을 개인적인 차원에서 사회적인 차원으로 끌고 나옵니다. 어떤 서평에는 불안에 대한 오만가지 분석은 늘어놓았지만 정작 시원한 해결책은 없다고 인색한 평을 내리기도 합니다. 사실 이 책은 초반부에 불안의 5가지 원인인 사랑 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훨씬 더 많은 시사점들을 준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니까 불안의 대척점(antipodes)에 있는 행복이라는 상태로 가기 위해서 불안을 어떻게 몰아내거나 혹은 제어할 수 있는가를 읽는 사람이 스스로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이죠. 더 나아가서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불안이라는 감정이 단지 자신 혼자만의 문제가 아닌 모든 살아있는 사람들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하며 바로 이런 인류라는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과 위안을 느끼게 합니다.



지난 주 불행지수 지도에서 보신 것처럼 부와 행복이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어설픈 증거도 있지만 부의 불균형이 분명 불행의 조건이 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부의 분배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한국의 젊은 부자들’이라는 책에 보면 어느 날 모든 사람들의 재산을 모두 모아서 동등하게 나눈 후 각 사람에게 나눠준다면 어떤 일이일어날까라는 질문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책에서의 대답은 시간이 흐르면 결국 다시 부자였던 사람들은 다시 부자가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다시 가난해진다고 답합니다. 부자들에게는 부자들이 될 수 밖에 없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죠. 그렇다고 해서 부의 재분배는 실패할 것이라는 말이 정당성을 얻지는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게임의 룰이 그대로인 상태라면 언제든 부의 편중은 해소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부’는 어디서 오며 어떻게 발전했고 (부의 기원, 부의 미래) ‘부’의 소유와 분배를 어떻게 정당화할 것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또한 우리에게 진정한 정의는 실현될 것인가(미래의 물결)를 읽어볼 필요를 느낍니다.

 

그러기 전에 먼저 이왕 ‘불안’이라는 동굴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무수히 많은 문학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이 정서를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의 꿈만큼 불안한 우리의 심정을 잘 표현하는 것이 없을 겁니다. 다음 주에는 10개의 꿈을 그야말로 꿈처럼 표현한 일본 작가 나츠메 소세끼의 ‘몽십야(夢十夜)’를 만나러 일본으로 갑니다.



* 리바이아단(Leviathan) - 성경 욥기 41장에 나오는 거대한 동물, 성경에서는 리워야단이라고 읽으며 공룡을 묘사한 것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 위 도표가 마치 불안과 해결방법을 1:1로 맞춘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만 한 가지 불안 요소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결방법이 동시에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들어 애정결핍에 대해서는 자신을 다스리는 철학과 마음의 위안을 주는 예술 그리고 종교가 해결방법이 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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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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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오늘은 제 개인적인 이야기로 글을 시작해 봅니다.



한국에서 직장을 다닐 때의 일입니다. 우연히 길에서 만난 고등학교 친구가 반가워 저녁까지 먹게 되었습니다. 드문드문 소식 듣는 정도였는데 그날은 자연스럽게 저녁 식사까지 이어진 것이죠. 학창시절에는 이렇다할 공부 실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조용히 지내는, 눈에 안 띄는 그런 친구였습니다. 그러니 이 친구의 이름과 얼굴을 떠올리려면 항상 누군가 그 주변에 앉아 있던 친구로부터 연상해야 가능했지요. 제가 잘 몰랐지만 이 친구 상당히 꾸준하게 무언가를 해내는 재주가 있었나 봅니다. 회사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이미 부장까지 올라가서 사내에서는 최연소 부장이지만 세일즈 규모로는 업계 최고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 결혼도 했고 아이들도 어느 정도 자라서 어느 모로 보나 안정되고 성공한 직장인의 여유있는 모습이었죠. 회사에서 지급된 고급차와 아파트 등을 보니 - 저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직장생활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 이 친구는 저랑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성공을 어린 나이에 이뤄냈던 것입니다. 유쾌하게 저녁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제 마음이 왠지 무거웠습니다. 그리고 한참 후에 깨달았죠. 제가 그 친구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혹시 이런 저의 상황이 여러분에게 생소하지 않으시다면 '불안'이라는 이 책이 콕하고 마음에 와닿을 것입니다.

알랭 드 보통이 말하는 불안

오래 전부터 저는 인류를 불행하게 만드는 온갖 문제들은 모두 불안에서 출발한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빈부격차, 지구온난화, 핵무기 개발, 영토분쟁, 부동산 대출 미지급 사태, 빈곤, 자살, 실업 등등 듣기만 해도 우울해지는 이 단어들 모두가 사실은 불안에서 출발했다는 것이죠. 이 재앙들이 어떻게 불안에서 시작되었는지 말씀드리기 전에 불안이 무엇인지 알랭 드 보통의 말을 빌려 풀어보겠습니다. 알랭 드 보통이 제시하는 불안의 원인 5가지는 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이라고 합니다. 이에 대해 역시 5가지의 해법으로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를 제시하지요.



이 책은 주욱 넘겨 보기만 해도 얼마나 저자가 좌충우돌, 횡설수설 하려나 기대가 됩니다.^^ 유럽인들 특유의 자유로운 상상력이라고 할까요. 저자가 꼽은 불안의 한 요소인 기대에 대한 설명 중 아래와 같은 공식을 선보입니다.



자존심 = 이룬 것 / 내세운 것



일상 생활에서 우리가 흔히 겪게 되는 상황을 이런 명랑한 공식으로 도출해 내다니 참 괴짜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 일상에서의 예는 끝없이 많습니다. 노래방에 가서 '나 이 노래 처음 부르는 거야'하고 노래를 시작한다든지... 축구팀 감독이 '이번에 주전급 선수들이 빠져서 힘든 경기가 예상된다'라든지... '약소합니다'라며 건네는 돈봉투라든지... '급하게 나와서 화장도 못했어'라고 말하는 여자 친구... 등등... 이렇게 다소 민망하기까지한 통찰력을 공식으로 옮길 수 있는 이 저자 알랭 드 보통의 뚝심에 찬사를 보냅니다.^^



문명은 발전했는데 우리는 여전히 불행해...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평균 이상의 대우를 받거나 지금의 상태보다는 나아지고 싶은 욕망이 불안을 낳고 이 불안은 무언가를 이루는 과정에서 또 다른 형태의 불안으로 변화한다는 것이 이 책이 말하는 불안의 정의이자 기원입니다. 이 생각에 저는 기본적으로 동의하며 바로 이러한 불안이 사람들 사이의 불평등을 초래했으며 더 나아가 (모순되게도) 한 사람의 인격적인 대우를 위해 다수가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아야 하는 상황도 초래하기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국가와 국가 사이에도 대등하지 못한 관계 혹은 종속관계(식민지)가 생기는 것은 바로 이러한 불안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우리가 경쟁을 하는 것은 분명 더 나은 기술문명을 보장해 줍니다. 그런데 왜 그리고 누구를 위해 그런 경쟁을 하는지는 곰곰히 따져보면 그렇게 교육받고 훈련받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와 같은 소시민에게 자기계발을 하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는다면 끝내 성공을 얻을 수 있다는 구호도 결국은 국가, 사회 그리고 각 기업체와 조직의 차원에서 경쟁력을 끌어올리려는 하나의 명분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우리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높은 부의 수준을 이루고 있지만 불행의 수준은 그 이전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현재 평균적인 미국인 가정이 보유한 재산, 편의시설은 18세기 귀족들보다 높은 수준입니다. 물론, 전자제품으로는 비교 자체가 의미없지요. 그럼에도 미국 청소년들은 여전히 불행합니다. 마약을 하고 더러는 자기 파괴적인 행동까지 서슴지 않지요. 무엇이 이들을 공허하게 만드는 것일까요? 조사의 객관성은 좀 의심스럽지만 아래 그림은 나라별 불행지수를 보여줍니다. 이웃 나라 멕시코가 가장 행복한 나라 중 하나이군요.^^



제 글이 도덕적 차원으로 흐르지 않게 하려고 나름 노력했습니다. 그 보다는 무엇이 우리의 행복을 막고 있는가를 알아내서 행복을 찾아내고 싶었습니다. 이번 글은 생각보다 길어지네요. 여기서 줄이고 다음 주에 이 글줄을 이어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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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 살아있는 동안 꼭 생각해야 할 34가지 질문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지음, 백종유 옮김 / 21세기북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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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글에 이어...)

 

최근에 저는 이런 어리석은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했던 사람이 저만이 아니었음을, 지금으로부터 300년 전에 스위스에서 태어난 한 사내도 이 질문에 주체할 수 없는 답을 쏟아냈던 것을 알게 됩니다


루소는 프랑스 디종 학술원이 제시한 현상금이 걸린 학술과제를 보고 그 동안 자신이 공부한 지식과 경험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서 한 번에 머리와 가슴에 정리되는듯한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제출한 답이 바로 '인간 불평등 기원론'입니다. 디종 학술원이 제시한 과제의 취지는 '학문과 예술을 다시 복원하는 일이 인간의 도덕성 정화에 기여할 것인가' 이었습니다만 루소의 답은 오히려 그 질문을 완전히 뒤집어서 인류는 문명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오히려 불평등을 초래했고 조직과 국가를 통해서 개인의 자유는 침해 당했으니 문명은 인간을 악하게 만들었다고 문명사회의 개인들은 오히려 원시인보다 못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하지요. 매우 충격적인 답변이었지만 그 논리와 통찰의 깊이에 감동했는지 디종 학술원은 이 답변을 채택해서 루소에게 상을 줍니다. 루소를 한 번에 스타로 만들어준 사건이기도 했지요그 후에 루소는 이 책에 기초해서 발전시킨 '사회계약론'을 저술하는데 이는 너무 급진적이라고 판단해서 학술원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합니다그럼에도 이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 기초한 '사회계약론'은 프랑스 혁명의 가장 기본 사상이 됩니다.

 

예를들어 국제사진협회에서 '디지털 사진이 사진의 예술적인 차원에 기여할 것인가'라는 현상과제를 제시했는데 어떤 이가 디지털 사진은 사진을 경박하게 만들었고 사진의 양적인 측면만이 강조하게 되었으니 '필름으로 돌아가라'라고 주장한 논문을 제출하고 학회가 이 논문을 채택했다면 어떨까요?

 

루소는 전통적인 의미의 학자는 아니었습니다. 시계공의 아들로 태어나 동판조각가의 조수로 일하다가 법원 서기를 거쳐 음악가로 데뷔해서 오페라를 발표하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음악가의 꿈을 버리지는 못하고 음악평론가로 활동하지요.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또한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며 자연에서 이치를 깨우친 상당히 동양적인 학자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뚜렷한 소속 학파도 없는 루소에게 여러 귀부인들이 활동 자금을 대주었다고 하니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말 재주가 좋으면 밥벌이는 하나 봅니다.^^ 루소라고 하면 계몽주의의 대표사상가로 소개됩니다. 그런데 루소의 핵심정신을 꼼꼼히 살피다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는 게... 루소는 문명이 인간을 악하게 만들었으니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했거든요. 인간의 이성의 힘을 강조해서, 그 이성의 힘으로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자는 계몽주의와는 뭔가 박자가 안 맞는 주장 아닌가요

 

이렇듯 루소는 계몽주의에서만이 아니라 그의 생애 전체를 걸쳐 모순된 괴짜로서의 진면모를 보여줍니다. 루소는 귀족부인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음에도 결혼은 귀족이 아닌 어느 여인과 하고 낳은 아이들을 고아원에 맡기고 모른채 하며 자신의 집필 활동에 전념하지요. 그런 사람이 교육학에 관련된 '에밀'을 썼으니 이와 같이 모순된 행동이 어디 있는가라며 비판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라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독일에서는 대단한 반응을 얻었다고 합니다. 이제 오십도 안 된 젋은 철학자가 출판에서는 비인기 종목이라고 할 수 있는 철학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것이죠알라딘 서평 중에는 이 책이 뇌과학자들에게는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기존의 전통적인 철학자들에 대해서는 악의적으로 개인의 치부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 찝집하다고 합니다. 저는 사실 철학 쪽으로 깊게 공부를 안 해서 자세히는 모르겠네요. 그럼에도 이 책의 전개 방식이나 진지한 질문과 답변은 많은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 줍니다. 오늘의 부제 '나 아닌 다른 사람이 필요한가'는 이 책의 중반부에 나오는 인간의 사회성 그리고 문명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한 장(chapter)입니다. 33개의 질문이 더 있으니 이 책은 앞으로도 여러 번에 걸쳐 소개하게 될 것입니다.^^ 

 

다음 주에는 인류로 하여금 고도의 문명을 이루게 하고 동시에 여전히 인류를 괴롭히고 있는 불안의 정체를 파헤친 알랭 드 보통을 만나기 위해 스위스에 한 주 더 머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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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정진홍의 인문경영 시리즈 1
정진홍 지음 / 21세기북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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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먼저 잠깐 영원한 제국을 이어봅니다.)

 

앞 글서도 얘기했습니다만 이인몽은 작가 이인화의 아바타(작중자아)입니다이인화에서 한 글자를 꿈 ‘몽’으로 바꿔서 이인몽이라는 인물을 만들어 냈습니다이인몽은 이 소설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두 가지 꿈을 꿉니다하나는 조선이 높은 인격을 가진 왕의 통치로 완벽한 제국의 원형으로 돌아가는 것을 바라는 꿈 그리고 또 하나는 천주교를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잠시 헤어져 있게 된 부인과 만나는 꿈입니다이 애틋한 두 번째 꿈에서 이인몽은 부인에게 자신의 꿈에 와줘서 고맙다고 합니다그런데 부인은 이렇게 얘기하지요이인몽이 자신의 꿈에 와준 것이라고이 장면이 낯설지 않은 것은 영화 ‘인셉션’에서 꿈 속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누가 누구의 꿈 속에 와 있는 것인지 알아내는 장면이 있지요이런 상상력에서는 작가 이인화가 앞서 있다고 봐야 할까요.

 


이 책은 전체를 다 읽지는 못했습니다만 제목이 눈길을 끌어서 서점에서 읽었습니다이 책은 3권까지 출간되었는데 오늘은 서론만 소개하겠습니다책은 청나라의 4대 황제 강희제의 창의적인 업적에 대해 풀어가며 시작합니다몽골족 출신인 청의 시조들은 한족들과 친할 수 없는 사이였습니다강희제는 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황제에 즉위한 후에 부단한 노력으로 박학다식한 신하들조차 머리를 숙이게 만들 정도의 풍부한 지식을 습득했다고 합니다외부적으로는 대체로 강경한 자세로 청의 위상을 높였지만 내부적으로는 백성들에게 선정을 배풀고 한족들을 적극적으로 요직에 임명함으로써 한족들의 불만을 잠재우면서 자연스럽게 몽골의 지배에 융화되도록 했습니다이렇듯 문화의 힘을 무시하지 않은 강희제의 창의적인 국가경영이 청나라가 강대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장에서 영국 축구 프리미어 리그의 성공 요인에 대해서는 너무 뻔한 분석이 나와서 좀 실망했습니다만 뉴욕의 감옥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한 어느 교수의 인터뷰와 그에 대한 처방은 인상적입니다뉴욕 감옥의 재소자 중 어느 여인과의 대화에서 이 교수는 단지 가난이 문제가 아니라 이들에게는 낮은 자존감이 문제였다는 것이죠그래서 이 수감자들에게 예술 공연에 노출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고 합니다이로부터 나타난 변화가 흥미롭습니다재소자들 스스로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는 자각을 하게 되면서 차차 그 감옥의 크고 작은 문제들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이 얘기는 이인몽의 꿈 얘기와 더불어 저를 다음과 같은 생각들로 이끌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조선에는 평민들도 도전할 수 있었던 과거제도라는 인재등용의 문이 있었습니다시험 내용은 주어진 시사적인 주제를 놓고 고도의 비유 그리고 풍자들을 사용해서 시를 짓는 것이었죠물론최종단계에서는 논술처럼 어떤 문제에 대한 답을 논리적으로 써내야했습니다어떤 경우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험이 이어졌는데 글을 잘 쓰기도 해야하지만 빨리 써내지 않으면 아예 심사대상에도 못 들었다고 하는군요수천명이 지원하고 불과 손에 꼽을만큼 뽑았으니 지금의 공무원 시험 경쟁률은 아무것도 아니죠후기에 대리시험 등의 악용 사례들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 시험의 정신만큼은 높이 살 수 있었던 것이 우선 일반 백성들 모두에게 기회를 주었고단순한 지식이 아닌 인격을 닦아 깨우친 사람들에게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니 가장 이상적인 형태가 아닌가 합니다자신의 인품을 수양하고 우주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이 관직에 진출하여 다스리는 나라는 정말 멋진 나라 아닌가요앞 글에서도 저는 조선을 가리켜 이상국가라고 했었는데 과거시험은 이 말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제도가 아니었을까요.

오래 전 시인인 한 친구가 '시인과 촌장'이라는 음악밴드를 보고 '시인이 곧 촌장인 마을의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라고 하더군요그렇듯 이 시험의 정신만 보자면 조선은 정말 행복한 나라가 됐어야 맞습니다.

그런 조선이 500년 역사를 마감하고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합니다대한제국으로 넘어간 것도 자발적인 개혁은 아니었지요저는 여기서 다소 불편한 질문을 던져 봅니다조선을 그냥 놔뒀으면 어땠을까요쇄국정책은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그리고 국력이 약한 나라를 마음껏 지배할 정당성은 어떻게 주어지는 것일까요마지막으로 국력의 기반이 과학기술이었다면 이 과학기술의 발전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었는지요?

 

최근에 저는 이런 어리석은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했던 사람이 저만이 아니었음을지금으로부터 300년 전에 스위스에서 태어난 한 사내도 이 질문에 주체할 수 없는 답을 쏟아냈던 것을 알게 됩니다다음 주에는 문명이 오히려 인간을 악하게 만들었다고,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주장한 루소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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