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전체의 천들이 합창하는 백색의 노래는 아무리 들어도 지겹지가 않았다. 무레는 지금까지 이보다 더 엄청난 시도를 한 적이 없었다. 이번 백색 대전시회는 천부적인 진열 전문가인 그가 펼쳐 보이는 결정적인 한 방이었다. 백색의 홍수아래, 선반에서 우연히 떨어져 내린 천들이 무질서하게 흩어진것처럼 보이는 가운데, 일관된 조화로움이 전체를 지배했다.
백색은 태어나고 자라나 다양한 뉘앙스를 띠며 점점 그 영역을넓혀가면서 꽃처럼 활짝 피어났다. 복잡한 관현악법으로 연주되는 대가의 푸가*가 지속적으로 전개되면서, 끊임없이 더 높은 곳으로 영혼을 날아오르게 하는 듯했다. 오직 백색들만이존재했지만 결코 똑같은 백색이 아니었다. 백색들은 서로를 돋보이게 하거나 대립하고, 서로를 보완하기도 하면서 빛과 같은광채를 뿜어냈다. 처음에는 캘리코와 리넨의 무광 백색, 플란넬과 나사의 은은한 백색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벨벳, 실크, 새틴과 함께 단계가 차츰 올라가면서 백색이 조금씩 불타오르다가는 주름진 천의 가장자리에 이르러 불꽃이 점차 잦아들었다.
그런 다음 마지막으로, 투명한 커튼과 함께 높이 날아오른 백색은 지극히 가벼워 아득하게 서서히 스러져버리는 듯한 모슬린, 기퓌르, 그리고 무엇보다도 튈과 더불어 순수한 빛으로 다시 태어났다. 동양 실크의 은빛 장식은 거대한 규방의 안쪽 깊은 곳에서 목소리를 높여 노래하고 있었다.
그사이 백화점은 북적거리며 활기를 띠고 있었다.
*하나의 테마가 다른 파트에 규칙성을 가지고 계속해서 모방, 반복되어 가며 고도의 대립 기법으로 구성되는 복사율의 악곡을 가리킨다. - P2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