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으로부터 한두 발짝 벗어날 수 있는 사람만이 스스로에 대한 농담을 지어낸다. 세상 속에 있다가도잠깐 세상 바깥의 눈을 가질 수 있는 사람만이 세상에 대한 농담을 지어낸다. 농담이란 결국 거리를 두는 능력이다. 절망의 품에 안기는 대신 근처를 거닐며 그것의 옆모습과 뒷꽁무니를 보는 능력이다.
절망 곁에서 훌륭한 유머 감각을 발휘하는 순간 내 얘기는 남 얘기가 된다. 나를 남처럼 바라볼 때 얻는 어마어마한 자유를 당신도 알 것이다. 그 자유는 영화가 해내는일이기도 하다. 농담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영화를 만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찬실이> 또한 한 편의 농담이다. 우리의 인터뷰에 찬실이는 없었다. 찬실이를 탄생시킨 감독과 찬실이를 온몸으로 구현한 배우를 만났어도 그건 찬실이와의 만남이 아니다. 찬실이는 영화로 물질화되어 그 안에 살고 있다. 감독과 배우 두 사람이 살아온 시간이 카메라 앞에서 재미나게 폭발한 결과다. 그 폭발의 찰나를 영화는 간직한다. - P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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