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간택이란 그것이 일어난 순간 이미 선택까지 마친 셈이어서,….이 암묵적 전제가 되어 생각의 방향을 이미 결정한다. 그렇게 분별은마음의 문을 닫는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이면 생각 없이 받아들이거나 정당화하려 한다. 싫어하는 것이면 생각하려 하지 않고 이해하려하지 않는다. 자신과 다른 생각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그것이 왜 잘못된 것인지를 입증하려 한다. "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난 이해할 수없어!" 이것은 어떻게 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에 대해 묻는 말이 아니라, 이해하고 싶지 않다고 선언하는 말이다.
1961년 이탈리아 작가 피에로 만초니는 자신의 똥으로 90개의 통조림을 만들어 ‘예술가의 똥‘이란 레이블을 붙여 전시했고, 그것을 같은 무게의 금값을 받고 팔았다. 30g의 똥을 담은 그 통조림 중 하나를런던 테이트갤러리는 2002년 3만 8천 달러에 샀다. 똥에 대한 호오미추의 분별이 여전히 남아있다면, 똥을 통조림으로 만들어 파는 작가나 돈을 주고 사는 갤러리를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만초니는 바로 이 분별심을 겨냥하여 똥을 통조림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똥이 미를 다루는 예술이 되고, 똥이 금보다 수만 배 비싸게 사고팔리는 이런 사태 앞에서 똥은 더럽고 지저분한 것이라는 호오의 마음을 그대로 견지하기는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예술과 똥을 가르는 분별심이 사라질 때, 예술에 대해서도 똥에 대해서도 우리는 제대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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