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쇳밥일지 - 청년공, 펜을 들다
천현우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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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이 많다. “할많하않”은 집어던지고 모조리 말을 해야겠다.
누군가의 글을 읽고 이처럼 생각이 좀처럼 정리되지 못할 만큼 분출해서 쏟아져 내리게 되는 경험을 하는 건 말 그대로 기쁜 일이다. 작가의 생각에 동의하면서 때로는 반론을 제기하며 내 관점을 다시 한번 재점검하고 앞으로 살아갈 나의 시간에 이정표를 더해 나를 탄탄하게 다지는 느낌이니까. 
우선 사전에 덧붙이자면 나는 작가를 이미 알고 있었다. (개인적인 친분으로 교류가 있었으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그건 너무 맹목적으로 일방적인 희망사항이다) 작가를 알게 된 것은 본 책의 한 에피소드에서도 소개하고 있는 “시사기획 창”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 덤덤히 본인 이야기를 스스럼없지만 어느 누구보다 분명하고 적확하게 꼬집어 내는 발언으로 나의 눈길을 끌었다. 시청한 지 꽤 오래된 프로그램이었고 심지어 해당 편성에서는 20대를 대변하는 여럿 인터뷰이가 편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천현우”라는 이름을 각인시키기에 충분한 임팩트를 주었음에는 부정할 수가 없다. (낯선 타인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나에게는 엄청난 일이다!) 그 이후로 이따금씩 작가의 이름을 검색창에 적어 넣으며 그가 어떤 기고를 하고 어떤 사고를 하는지를 주기적으로 확인했다. 다만 각각의 미디어에서는 그리 길지 않은 시리즈로 엮여있어 한참이나 분량이 아쉬웠다. 이미 그가 투척해버린 글들은 모조리 읽어버렸고(업데이트 주기는 왜 이렇게 느린지) 기고한 글만으로는 불충분했기에(조금 무서운 관심인가요? 저는 이상한 사람이 아닙니다만) 다큐 프로그램 편성 즈음 동시에 다른 매체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했던 미디어 속 작가의 모습도 모조리 체크했다. (심지어 칼럼에서 작가가 추천하는 추천 도서 목록까지 읽어야 했다: 나한테 만족스러운 큐레이션은 아니었으나 이렇게라도 조금이나마 작가의 철학에 다가갔음 했다) 그런 그가 “쇳밥일지”(이미 동일한 타이틀의 칼럼이 있다)로 책 한 권을 묶어냈다. 아니 겨우 이제야 하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드디어!”라는 감탄사를 낼 정도로 오만가지 감정이 드는 마음으로 작가의 글 앞에 섰다. 앞서 얘기했듯이 동일한 타이틀의 칼럼이 있었기에 나는 해당 미디어에 기고했던 글을 조금 덧붙이고 수정해 책으로 묶어냈다고 오해했다. (이렇게 쉬운 프로세스였다면 책이 더 빨리 출판되었겠지 하며 의문을 가졌다) 물론 기본적인 작가의 서사가 변화할 수 없듯이 배경 이야기는 동일하지만 본 책은 사실상 작가의 새로운 글임에 틀림없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프롤로그를 읽는데 겨우 3면 남짓한 책장을 넘기며 주체할 수 없이 묻어 나오는 작가의 세계에 이미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이 감상을 도저히 어떻게 글로 표현해야 전달할 수 있을지 도통 감당이 안된다; 이 서평이 두서없이 난잡한 이유도 모두 재능이 넘치는 작가 탓이다..) 기대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이상을 넘어간다는 건 작가의 작업이 정말 뛰어나거나, 혹은 내 기대가 그마저도 과소평과 되었다는 뜻일 텐데 어찌 되었든 무엇하나 비할 데 없이 그야말로 엄청났다. 

붓글씨로 정갈하게 휘갈겨 쓴 폰트(아마도 작가의 작업복에 새겨진 이름과 같은 분위기를 내기 위해 의도된 것 같다)로 너무나도 분명하게 이것은 “산문”이라 책 표지에 명기하고 있지만, 과연 이 한 권을 “산문”이라는 좁은 범주에 작가의 글을 집어넣어 레디메이드 된 상품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작가의 풍부한 표현력과 다채로운 묘사를 따지면 자연스레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이런 글은 없었다. 이것은 소설인가 산문인가. 예예~ 현우소설산문입니다) 이유인즉슨 은주 씨와 초원 씨가 이 글을 허락해주셨는지도 의문이지만 중간중간 글이 너무 스윗하지 않은가.. 순간 이 것은 연애소설이 아니었음을 독자들은 다시금 정신을 붙잡지 않으면 안 된다. (작가님 저에게 왜 이런 혼동을 주시는 것이십니까) 극적인 결말을 예상(실례입니다만 스포일러)이라도 한 듯 관객 입장에서는 매우 안타까운 결말이 씁쓸하긴 했다. (역시 저자가 괜히 웹소설에서 등단을 시도하려 했던 게 아니었다;;) 몇 만부는 기본으로 초판 해버리는 여럿 유명한 소설 작가들의 커리어에 고뇌를 던지는 작가의 글에 프로페셔널한 그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가질까. (나 같으면 이런 무시무시한 필력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 무서울 거 같다; 그렇다면 여름 공포 시즌에 출간을 했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나는 그와 비슷한 시기를 비슷한 세대로써 비슷한 시간을 전혀 다른 경험과 배경을 뒤로한 채 작가와 공유했다. 마치 타국의 이방인을 대하는 호기심이 없다 했다면 거짓말이다. 작가의 이력은 그에게는 너무 당연하고 평범했을지는 몰라도 나에게는 너무 생경했다. 당연히 작가에게는 종래의 미디어가 다루는 그의 세대들이 수도권의 보통의(이것은 전혀 일반적인 보통이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소수는 당연하게 철저하게 외면당한다) 다수가 디폴트가 되어버린 낯선 것이었다. 웃긴 것은 시간은 공유하나 그가 전혀 다른 공간에 있다는 것이 아니었다. 다소 거리감이 있는 지역이기는 하나 ‘창원’, ‘마산’을 (안타깝게도 나는 전혀 그곳들을 가본 적이 없다) 외국지명처럼 바라보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은 웃픈 감정이 돋아나는 건 왜인지 아이러니했다. 
작가는 청강대 졸업 축사의 한편에서 “남이 떠먹여 주는 정보를 곧이곧대로 받아먹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했다.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표현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그 문장 그대로의 삶이 되어버린 것 같은 작가의 이야기는 환상 속의 동물인 유니콘처럼 아득하기만 할 뿐 ‘과연 내가 소화할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기대감만 던지다 이내 사그라들지도 모른다. 철저하게 작가의 이번 챕터는 한순간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그렇게 한 단락으로 치부하는 것이 적절하지는 않으나) 혹은 잠시 언론에서 주목하는 반짝이는 영웅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지금 현재 무엇을 경계하며 어떠한 파급과 울림을 내게 주었다면 지금의 나에게 있어 순수하게 그것에 집중해야 하고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결코 그가 앞서 말한 작가가 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설령 그러할지라도 작가 스스로가 타인의 철학에 대해 경계하고 스스로 판단해 해석하며 소화하기를 바라지 않았는가. 
그도 그의 배경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주어진 환경에 항상 당연함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되며, 지금 내가 있는 것이 누군가의 도움과 노력의 한 땀이 스며들어 있지 않음을 자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지 능력주의라는 논거로 철저하게 뒷받침되는 논리적인 근거는 전혀 없다. 하지만 인간은 너무 무력한 나머지 익숙함을 당연으로, 당연을 자신의 지위와 행동으로 치환하는 신기한 능력을 감추려 마다하지 않으며 철저하게 스스로의 관점에 타인을 무력화한다. 일반론으로 다수의 대중을 묶어 비난하기에 앞서서, 나 역시도 그들의 한 편이었고 작가와 같은 돌출된 모난 선구자들이 없다면 늘 그저 그런 하루를 보내며 자신을 탄성적으로 드높이려 들뿐이다. 작가가 있기에 감사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몰지각한 나를 되돌아보고 주변을 조금이라도 관찰하라는 명료하고도 당연하지만 너무나도 어려운 발의를 꺼내기에. 스스로가 못났다고 부족하다고 겸양으로 자신을 낮추던 작가는 더 이상 없다. 그의 변화처럼 희망도 엿보고 앞으로의 행보가 더 많이 궁금해서 또 그래서 대단하고 멋지고 훌륭한 사람과 한 시대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감사하고 축복을 받은 것 마냥 나는 그냥 기쁘다. 

지금 이 순간이 힘들고 괴로운 분께 이 한 권을 전해드리고 싶다. 당신보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삶의 바닥까지 추락해본 작가가 지금은 환골탈태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신데렐라 같은 희망 자극을 주려는 것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한 치 앞도 예견할 수 없는 지금을 마주해야 할 우리 모두의 앞에, 서로의 각자 다른 환경에서 이렇게 변화를 촉구하며 지금의 당신과 같이 살아가고 있음을, 그리고 지지를 보낼 누군가가 있음을 통해 조금이나마 응원을 보내주고 싶은 것이다. 내가 작가에게 받은 것만큼 말이다. 이 책은 정치적인 생각을 은근히 담고 있지만, 이 책을 단순하게 어떤 정치 편향으로 단정해버린다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판단이 아닐 수가 없다. (그것과는 별개로 전 대통령이 이 책을 추천해다는 이야기는 추후에 알았다; 그래서 더 주목을 받은 이유도 있겠지만 이미 ‘천현우’ 작가는 유명했다) 이 책은 국민의 삶과 대중의 사고, 그 안에 개인의 일상에 미치는 뭐 대단한 담론을 제시하며 극적인 변화와 돌출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런 화려한 일들은 정말인지 많은 사람들의 기표와 선택으로 이뤄진 무게를 감당해야 할 금배지의 사람들이 이끌어가야 할 행동이지 한 개인의 서사로 만들어질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오해 없이 읽어보시길 그리고 ‘포터 아저씨’ 마냥 거칠고 퉁명스러운 겉껍질에 오해해서 다가가기 힘들지만 그 안은 한 없이 진국인 대한민국의 많은 숨겨진 보석 같은 분들께 감사를 표한다. 

p.s 작가를 안 후, 줄곧 ‘천현우’라는 석자를 추천했던 친구에게 나는 말했다 “아니 왜 이런 능력 있는 대단한 사람을 가만히 내버려 둘 수가 있지?” 그 해답은 간단하리라 할 만큼 명료하게 마지막 챕터에서 결론을 맞는다. 작가는 미디어 업체에서 기자로 이미 활동을 하고 있다 했다. (그럼 그렇지.. 이런 훌륭한 인재의 재능을 이 사회는 가만히 놓아둘 이유가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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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계급투쟁
브래디 미카코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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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을 한 ‘나, 다니엘 블레이크’을 본 적이 있다. 주관적인 개입을 가능한 차단한 감독의 시선이 인상 깊은 영화이었지만 그보다 앞서 선진국이라 자부한 어두운 영국의 사회상을 그려낸 점이 다소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아 나에게는 한동안 멍한 인상을 남긴 작품이었다. 영화에 뒤지지 않을 것처럼 이 책 또한 적나라한 영국의 현실을 한 권으로 다시 한번 드러낸다.

’보육교사’와 ‘영국 정치’라는 도통 연관점이 없어 보이는 두 가지의 교집합에서 작가는 분명하게 말한다. 나는 여기서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음을. ‘브래디 미카코’가 전개하는 화법은 정말인지 매번 군더더기 없이 (그녀가 화두로 던지는 주제가 엄청 극적인 것에 반하여) 평이하기 그지없다. 분명 작가 개인이 겪은 아주 사소한 사적인 경험인데 어찌 된 지 나는 작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듣고 있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녀가 전개한 세상은 너무나도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탓인지 파고들면 금세 내 주변 얘기이고 누군가가 겪었던 어제의 야이기 마냥 들린다. (심지어 그녀는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경의 장벽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세계화의 일환인가?) 조금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시류의 흐름에 맞춰 정권의 변화에 따라 저변 탁아소와 긴축 탁아소를 거쳐 보육교사로 일을 했던 저자의 경험담은 정말인지 어느 영화보다 흥미롭게 전개된다.
“가장 낮은 곳에 있으면 정치의 변화가 사회를 어떻게 바꿔놓는지 잘 알 수 있다.”라는 작가의 말은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 정의와 같다. 이는 영국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도 적용 가능한 개념으로 팬데믹에서 시작된 유례없는 극심한 변화는 많은 부분에서 사회약자들을 배제하고 누락시키면서 그들의 존재를 지워버렸다. 이들을 보살피고 유심히 바라보지 않는 건 정치라는 집단지성의 권위자들이 오만하고 무지해서가 아니라(그들은 원래 오만하고 주변에 대해 무지하다) 분열되어버린 서로의 위치에서 더더욱 멀어졌다는 것을 시사한다. 아무리 좋은 말과 현명한 철학이 표면을 화려하게 장식한들 서로 직접적인 영향이 미치지 못한다면 탁상공론에 그치는 빛 좋은 개살구에 빗대어 뭐하겠는가. 안타깝게도 세상은 소수를 보존하기 위한 관점으로 방향을 틀어 나아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세심하고 사려 깊은 사고가 모여 힘을 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를 우리는 정말인지 바로 앞에 마주하고 있는데 이를 모른척하고 그들을 유령 취급한 채 살아가고 있다. 무지와 어리석음으로 변명을 둘러대던 입막음은 도대체 언제까지 묵인해야 할까. 이 책으로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고난과 비난이 되지 않도록 집단이 생각을 고쳐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경고를 작가는 에둘러 던지려 하지는 않았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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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못 산다고 말하는 세상에게 - 시대의 강박에 휩쓸리지 않기 위한 고민들
정지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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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중반부까지 읽던 나는 금세 작가가 글로 옮긴 자신의 생각이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본인이 믿어 의심치 않는 타인의 철학에 대한 강한 경계, 그리고 그 외의 의견에 대해서는 일괄로 폄하. 본인은 지식인임을 은근하게 드러내면서 오히려 가짜 뉴스(모든 언론사들이 받아쓰기해 마지않았던 한국은 사기범죄 1위)로 그의 소견을 뒷받침하면서 본인을 확고히 했다. 결국 대중의 경향을 일반화하여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내는데 작가가 반복해서 사용하는 말처럼 “~말하기도 어딘지 민망하기만하다.” 적어도 작가 혼자 뜬구름 속을 걷고 있는 것 같아서다.
책을 통해서 자꾸 독자를 가르치려고 하는 것은 세상에 대한 불만일지 작가의 오만 때문인지 대중에 물든 스스로의 변명인지 점점 헷갈렸다. 덕분에 나는 자신의 처지를 일반화하여 타인을 곡해하고 내치는 일방적인 관점에 대해 경계하며 늘 겸손하고 스스로를 드높이지 않도록 항상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과연 누가 감히 누구에게 잘 못 살고 있다고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우선 그에 앞서 ‘잘 못 산다’는 기준과 정의가 무엇인지 조차 구체화되어 있지 않은데. 적어도 남에게 불편한 조언을 하기에 앞서서 자신을 먼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남 탓이나 세상 탓을 하기에 앞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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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심리학 - 당신은 왜 부자가 되지 못했는가
모건 하우절 지음, 이지연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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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아니라 삶의 자세에 대해 곱씹게 된다. 작가가 외치는 주장에 반드시 수긍할 필요도 없지만 대략적으로 그가 왜 이런 화두를 던지는지 분명히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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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인터페이스 디자인 - 포르쉐 UX 디자이너가 들려주는, 2023년도 세종도서 교양부문 추천도서
박수레 지음 / 책만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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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직업을 읽다 보면 정말인지 매번 감탄을 자아내게 된다. 대단하다고? 놀랍다고 하는 감탄은 아니다. 그들이 갖고 있는 각각의 관점이 그들에게는 너무나도 평범하기 짝이 없어 지루할 정도로 노멀한 상태라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디자인 상태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모든 것이 실용적이 이유에서 출발했고 원인이 어찌 되었든 시작점은 모습을 다양화하여 발전되거나 혹은 퇴보하면서 현재를 구성한다. 어떻게 보면 다소 딱딱할 수도 없는 지루한 얘기들을 디자이너라는 특성 때문인지 잘 정돈해서 꾸며놓은 한 권이다. 군더더기 없이 딱 이 정도면 배경지식이 없어서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게 배려하는 작가의 의도가 맘에 들었다. 더 많은 정보와 깊이 있는 이야기를 찾고자 했다면 충분히 부족할 테지만 나한테는 딱 이 정도만 흥미롭게 작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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