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소주의자가 되기로 했다 - 자기 몫의 유연한 비건 지향 생활
이보람 지음 / 카멜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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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가 흥미로운 점은 일상에서 좀처럼 만날 수 없는 낯선 타인의 삶을 당당하게 엿볼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했다. 과연 옆에 스쳐 지나간 저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저기에 서있는 사람은 무슨 삶의 철학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 생기더라도 나는 결코 일상생활에서 무턱대고 아무 교류 없는 타인에게 무거운 사적인 질문을 던질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 말을 건네는 동시에 회피당하거나 신고를 받을 것이다) ‘축소주의’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목에서부터 당당히 던지는 작가의 삶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아니 그 이전에 앞서 나는 ‘축소주의’라는 개념은 또 무엇인가 의문이 들었다. 한창 유행처럼 떠돌다 스타일이나 콘셉트의 한 종류로 취합되어 버린 ‘미니멀리즘’의 또 다른 모습을 뒤집어쓴 새로운 트렌드인가 오해했다. 과연 작가가 얘기하는 ‘축소주의의 삶’은 무엇인가? 
자기 몫의 유연한 비건 지향 생활을 하고 있다는 부제에서 스멀스멀 느껴지듯이, 이것은 비건의 삶을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나도 그런 이야기를 듣고자 한 것도 아니다) 마치 이것은 바나나맛 우유와 같이 바나나의 향과 바나나 색을 가진 부차적인 부산물처럼 드러난 2차 결과물이지, ‘비건 지향’이라는 고고한 수식어로 대체되는 단순히 의지의 표명을 가진 어떤 의도에 다름 아니다. 정확히 정리하자면 작가는 비건을 지향하지만 때에 따라 육식을 즐기기도 하고, 제로웨이스트를 표방하지만 소비를 통해 원치 않는 쓰레기를 발생한다는 점에 대해 엄청난 기준을 갖고 스스로를 비평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것은 극단적인 제한으로 인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선한 의도를 꺾지 않으려는, 곧 자신의 행동을 오히려 독려하고 유지하여, 끊임없이 도전하고 격려하는 실패의 과정이라고 해석했다. 

다만, 나는 작가의 사견을 읽으며 의아한 점이 몇 가지 있었다. p35에서 “하지만 채소를 많이 먹었다고 채소독에 중독된다거나 기생충에 감염된다거나 영양실조에 걸리는 사람은 요즘 환경에서 보기 힘들다.”라고 언급하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2018년 미국 연방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는 모든 유형의 로메인 상추 섭취를 중단을 권고하며, 로메인 상푸를 먹고 병원성 대장균에 감염된 환자가 16개 주 최소 61명에 이른 점을 문제시했다. 애리조나주 유마에서 재배된 로메인이 시가독소를 생성하는 장출혈성 대장균에 노출되면서 문제시된 이번 사건은 상추류 수출국이 주로 중국과 대만이었기에 한국에서는 크게 다뤄지지 않아 녹색채소도 사람에게 위험한 식재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작가는 간과했다. 이전인 2011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산 로메인 상추에서 발견된 스테리아균 감염과, 콜로라도산 캔탈롭 멜론의 리스테리아균감염으로 인해 18명의 사망자와 82명의 감염자라는 보고에서 알 수 있다시피 단순한 식중독과 세균감염으로 치부하기에 육류만큼이나 채소에 대한 사람들의 경각심이 낮음은 꽤나 위험한 생각일 수 있다. 단순히 작가가 언급한 육류는 위험, 채소는 안전이라는 공식에 반기를 들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음으로 작가는 p109에서 “나는 자전거는 못 타지만 3년째 매우 만족하며 전기차를 이용하고 있다. 주 5일을 출근하며 타도 한 달 유지비는 1만 원 내외로 나온다. 어렸을 때는, 아니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전기차를 타는 일상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미래는 어느덧 현실이 되어 있다.”라고 언급하며 전기차가 가져온 세상에 대한 예찬을 남겨두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작가는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전기차가 많은 부분에서 화석연료가 대응하지 못하는 환경의 악영향에 개선의 여지를 두기는 하나, 전동화를 위해 이차전지 생산을 위한 공급망에서 환경을 해치고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리스크가 내재돼 있다는 문제점을 작가는 조금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차전지 공급망은 광물채굴 및 제련·정련, 소재·부품 제조, 이차전지 제조로 구성된다. 이차전지의 원재료인 리튬, 코발트, 니켈, 흑연 등을 채굴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수질, 토양오염과 지하수 고갈 등의 문제가 발생함을 간과했다. 특히나 배터리의 주원료가 되는 리튬은 호주, 아르헨티나, 중국 등 물스트레스가 큰 건조지역에 분포돼 해당지역의 물부족과 수질오염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 이외에도 토양 침식으로 인한 농경지 파괴, 유해 시약으로 인한 대기오염, 에너지 사용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 등도 야기하고 있음은 전기차가 단순히 유지비가 좋고, 당장 가시적으로 화석연료처럼 매연을 내뿜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당연한 이동수단의 차세대 선택지라는 타당한 근거가 될 수 있을까?  더군다나 이차전지의 핵심 원료인 리튬, 코발트, 니켈 등의 원재료는 개발도상국과 빈곤국에 매장돼 있다. 이들 국가는 노동기준과 전반적인 규제 집행 여건이 열악하기에, 실제 OECD가 ‘책임 있는 기업 행동 실사 지침’의 이행 지원을 위해 광물 산업의 사회적 측면 위험성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아동노동, 반군 지원, 인권침해, 뇌물 및 부패, 강제 노동 등의 위험이 나타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 일지 모른다. 그 외에도 이차전지 광물로 분류되는 코발트는 전체 광물의 아동노동 문제 중 40%를 차지했으며, 강제노동, 인권침해 등의 문제가 지적됐다. 코발트는 매장과 생산이 콩고민주공화국에 집중돼 있어 정치적 불안정과 무력 분쟁에 노출돼 있는 상황이다
분명히 이차전지는 화석연료 사용을 줄여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약 14%를 차지하는 운송부문, 약 25%를 차지하는 전력 부문에서 상당한 감축효과를 낼 수 있는 기술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된 이차전지의 공급망과 제조과정에서 초래되는 위험에 대한 대응은 상대적으로 미흡한 상황임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친환경을 기대하는 클린에너지에 대한 기대는 마케팅과 새로운 비즈니스를 위한 새로운 영역일 뿐 모두가 기대하는 바와 같은 완벽한 대안책이 아님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작가가 전기차를 주요 논점으로 책을 낸 것도 아닌데, 이렇게 구차하게 주절주절 거리는 이유는 마치 해결책으로 제시된 제안을 절대적인 가치로 오해하여 그릇된 자양분으로 삼을 독자들의 영향력을 제한하기 위한 이유에서이다. (더 다양한 관점을 가진 책을 통해 다각도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더군다나 작가는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여 육류가 왜 나쁜지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지 자세하게 들여다보았다. 육식을 위해 콩과 같은 GMO작물의 문제점을 들여다보고, 인간이 먹지 않는 사료를 위해 많은 토양과 환경이 불필요하게 훼손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그 최종 목적지인 육류라는 훌륭한 상품을 위해 여러 스텝을 거쳐 발생하는 단계를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전기차도 동일하지 않을까? 전기차라는 최종 소비재를 위하여 리튬의 재활용 문제와, 코발트 채굴의 아동문제, 광물 채굴로 인한 물부족과 수질오염은 한쪽으로 밀어 넣은 채 묵인해야 하는지 나는 반문하고 싶다. 

근래에 들어 많은 사람들이 플라스틱 남용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친환경소비를 독려하는 운동과, 육류가 환경에 미치는 부적절한 영향력을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하며, 이러한 원인이 환경파괴와 기후변화 그리고 그릇될 질병의 전 세계적인 발산에 미치기까지 영향력을 끼친 점을 몸소 체험했다. 이는 우리 모두가 지구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를 비자발적으로 겪으며 자연스레 다음세대를 위한 걱정 어린 행동이 아닌, 지금 우리를 위한 어떤 액션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는 점을 시사했다. 때문에 작가와 같이 제시한 생소해 보이는 듯한 개념을 들먹이면서까지 우리는 이제까지의 삶에서 다른 자세로 넘어가야 하는 과도기에 덩그러니 놓여있어 앞으로의 선택지를 강요받는지도 모른다. 지금처럼 그대로 살면서 온갖 문제를 뒤집어쓸 것인지, 조금 불편한 삶을 살면서 그나마 덜한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일 것인지. 
누구도 절대적인 기준안에 스스로의 삶을 구획할 수 없기에, 강박적인 규율보다는 유연한 대처를 통하여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가 읽혔다. 목표점에서 실패한 듯 어쩔까. 어차피 자신이 만든 기준점에서 조금 벗어났을 뿐 어느 누구도 그의 삶을 부정하거나 비난할 자격은 없다. 다만, 비건과 친환경을 향한 삶이 아무리 지구를 위하고 사회를 개선하는 좋은 취지를 담고 있다한들 타인이 가진 개인의 삶의 방식을 비난하거나 개선의 여지를 둘 대상으로 여긴다면, 나는 어떤 이유에서건 그것은 옳지 못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과도한 우위에 올린 자기기만의 철학에 불과하다 생각한다. 나 또한 비건이 추구하는 지구에 대한 사려 깊은 생각과 취지에 동감을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타인을 재량 할 요량으로 삶을 구획하하는 단계로 사람들과의 생각을 구별 짓지 않으려는 점을 잊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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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천천히 가도 괜찮아 - 글로벌 거지 부부 X 대만 도보 여행기
박건우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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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직업으로 삼는 듯한 작가의 또 다른 책이 여기에 있다. 아내와 함께 도보로 떠난 대만여행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롭지만, 구태여 도보로 대만 전국을 돌아다니는 뭔지 모를 대단한 도전에 독자는 과연 어떤 여정이 펼쳐질지 책을 펼치지 않아도 기대를 갖게 만든다. 낭만적인 타이틀은 분명 작가의 의도가 아님에 분명해 보이지만 (때문에 책 내용과 이질적으로 보이는 한 글귀가 나는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 여정 자체는 그야말로 작가 자신 그대로였다. 아주 간단히 축약하자면 작가는 걷고, 또 걷고 구호물자로 불리는 사람들의 온정을 받으며, 오늘 하루를 마무리할 잘 곳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가 또다시 온정을 받거나, 사람들의 거절에 마음이 지치는 감정이 동어 반복적인 상황으로 계속해서 연출되어 가득할 뿐이다. 때문에 누군가 두꺼워보이는 책을 구태여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시간이 없다면, 앞서 언급한 문장으로 이 책을 읽었다고 간략하게 요약해도 좋을 정도이다. 이 책은 마치 누군가가 기획해 놓은 예능프로그램 같은 놀라운 상황들이 연속해서 펼쳐지며, 작가의 반응에 나는 함께 기뻐하며 흥미로워하고, 안타까워하며 같이 힘들어했다. 작가는 글의 빠른 흐름과 사진으로 상상 가능한 범위 내의 여정을 최대한 많이 지면에 녹아내려한 노력으로 도보여행이라는 구질구질해 보이면서 뿌듯한 노력을 선사한다. 그 자신만의 도전정신에 독자들이 금세 빠져드는 건 그야말로 작가가 가진 능력이었다. 나는 과거에 개인적으로 짧게 여행했던 대만에서의 좋은 사람과 여행 기억이 있어서  이 책이 더 마음에 크게 와닿았는지도 모른다. 말도 안 통하는 나라에서 온정을 느끼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감정은 어떤 말로 대체해서 느낄 수 있는 표현이 될 수 있을까. 여행은 늘 낯설지만 익숙함을, 또한 불쾌함과 깜짝 서프라이즈를 선물하며 기대하지 못한 순간의 감각을 일깨우기에 우리는 인생의 축소판처럼 느껴지는 여행을 떠나려 정착함을 뒤로한 채 불안함을 애써 파헤치려 한지도 모른다. 작가는 그렇게 일깨워준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작가와 함께 동반한 도보여행으로 지치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했다. 가보지 않은 여행을 이렇게나마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책을 통해 경험하는 최고의 선물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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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거지 부부 - 국적 초월, 나이 초월, 상식 초월, 9살 연상연하 커플의 무일푼 여행기
박건우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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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 유목민’이라는 타이틀로 자신을 소개하는 최근 작가의 글을 읽고 나는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호기심이 일었다. 엉뚱하고 두서없는 이 사람은 과연 어떤 인생을 살아온 것일까? 그에 대한 조그마한 답변은 그가 출판한 첫 번째 책에서 어렴풋이나마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작가는 일본인 아내인 동반자를 어떻게 만났는지, 어떤 경과로 그녀와의 결혼에 이르고, 그 가운데 무슨 결혼생활을 해 나간지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어쩌면 매우 개인적인 사생활 이야기들이 요즘 젊은 세대들은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 업로드했을 법한 내용을 (놀랍게도 작가는 유튜브 채널 또한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작가는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낸 결과물로 남겼다. 자서전이면서도 누군가의 앨범을 엿보는 듯한 느낌이 든 것은 작가 자신이 고백했듯 자신이 전문작가가 아니고, 단순히 사진에 조금 관심이 있던 여행을 많이 기록한 한 사람으로서 스스로를 내세운 탓도 있겠으나, 정돈되지 않고 두서없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면모가 그 자체로 러프한 상태가 흥미롭게 보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마 편집자도 이런 거친 콘셉트가 크게 맘에 와닿았기에 그의 이야기를 책으로 묶어내려 한 것은 아닐지) 
작가는 여행을 얘기하고 있지만 책에서 여행보다는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의 여정이 보이고, 여행책이 아니라 자신을 충실히 마주하는 한 인간의 모습이 집중되어 보여 나는 그 지점이 맘에 들었다. 작가는 어려운 미사여구로 자신을 포장할 생각도 없고, 아내와의 기록을 그저 행복한 무언가로 남겨서 타인의 관심과 시샘을 이끌 목적도 전혀 없어 보였다. (오히려 독자 입장에서 그들을 보호해 주고 싶을 정도로 걱정되는 부분이 많아 오히려 실소가 인다) 자신을 브랜딩 하고 포장하며 타인의 관심을 먹고 살아가야 하는 시대에서 현대 사회의 룰 따위는 상관조차 하지 않겠다는 청개구리 같은 의지를 통한 작가의 고집은 이런 면모에서 더 빛이 나는 것일까. 세상에는 너무 많은 얘기와 사람 각자 다른 철학을 가진 가치관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바라보게 된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그 세상에 나 한 명 마음대로 살아볼 자유를 펼쳐낸다는 구태연한 사상이 우습지 않게 작가는 지금도 도전하며 이렇게 기록을 남겨 사람들을 감화시키려 한 것은 아닐까. 본인도 모르는 힘에 이끌려 그렇게 나는 오늘을 살아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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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시사회 - 내일을 팔아 오늘을 사는 충동인류의 미래
폴 로버츠 지음, 김선영 옮김 / 민음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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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어느 한 기업이 마케팅 일환으로 내세운 슬로건 “Do what you can’t”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친한 친구사이에서라도 선을 넘는 듯해 보이는 과감한 조언을 기업은 마치 나의 오래된 지인 마냥 스스럼없이 내던지는 말투로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당신들은 뭐길래 그런 무책임한 말을 던지며 대중을 호도하려 하는가? (캠페인에서 장애인들을 기업 이미지로 내세우며 해당 기업은 사회적 자산으로서 책무를 다할 것이라는 기업의 의지를 반영하려는 선한 의도였을 것이다) 단순히 나는 그들을 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비판적인 관점에 세워두고 그들의 선한 의도를 부정적으로만 오해하여 편협하게 해석한 것일까. 본질이 무엇이 되었든 해결되지 않는 찝찝함을 뒤로한 채 금세 나는 수많은 기업의 또 다른 슬로건에 휩싸인 세계로 정신이 혼미해졌다. 이제야 한낱 휴지조각처럼 잊혀버린 그 캠페인을 나는 지금에서야 다시 기억 속에서 끄집어 내려한다. 이 책을 읽고 난 순간 나는 되새김질하며 과거의 흔적을 더듬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내가 그토록 거리껴했던 마음속의 씁쓸함이 무엇인지 나는 분명한 이유를 찾은 느낌이 들었다. 
원제는 “The Impulse Society”이나 “근시사회”가 현시대에 대한 저자의 문제의식을 더 명확히 드러낸다는 표현이라 생각하여 저자와의 합의를 통해 정리된 한글판의 타이틀은 그 사정이 어찌 되었든 간에 명확학 요점을 날카롭게 내비친다. 지금 현대 사회는 정말 이상하게 잘못된 방향을 향하고 있음을. 아니 너무 당연하고 올바른 이야기를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으니 오히려 그 발언을 일삼는 작가의 의도가 적어도 이 사회에서는 더 불순해 보일지도 모른다. 개인의 기호를 표출하기 위해, 욕망을 실현할 목적으로 소비를 통해 나를 드러낸다. 그게 뭐가 잘못된 것일까. 오늘의 기분을 표현하라는 옷과 각종 장신구는 기본이다. 최신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은 헤어스타일이나 메이크업까지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내가 맘에 드는, 때문에 내가 동경하는 누군가를 모방한 형태쯤은 나를 완성하는 아주 작은 조각임에 분명하다. 그렇기에 대중은 인플루언서로 대변되는 누군가(혹은 연예인, 선망의 대상)를 쫒고 따른다. 기업이 그들을 유심히 지켜보고 선구자에게 마케팅과 상업을 목적으로 계정을 일시적 매수하여 사람들을 또 다른 광고 창구로 활용한다는 것쯤이야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원하는 기호에 기초한다면 목적이 불순하든 그게 뭐 큰 대수이겠는가. 나는 쫓고 쫓기는 끝없는 굴레에 갇힌 소비의 욕망이 이미 하나의 시스템으로 정착되어 현대를 지탱하는 기업의 큰 톱니바퀴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묵인하고 잘 따르고 있다 생각했다. 때문에 우리는 자아욕망을 조금이라도 실현할 수 있는 창구를 획득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사람들이 과거보다 좀 더 우울해지고, 고립되고, 사회적 유대관계가 느슨해져 버리고, 정치적 관점은 양극화를 달리며, 신용불량자와 인격 없는 수많은 사회 사건들이 동반된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했다.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우리나라도 선진국의 반열에 발을 올려놓았는데, 국제적인 이슈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차츰차츰 발생하고 도처에서 번져나가는 현상을 나는 마치 GDP숫자가 상승하는 것만큼 호기롭게 지켜봐 왔는지도 모른다. 미디어에서 비친 경제성장률의 반향은 상승과 하락의 완곡한 흐름에 따라 마치 국민 모두가 반성과 자책 혹은 상장과 칭찬을 받아 마땅할 그 무언가의 척도처럼 여겨졌다. 고분고분한 국민으로서의 나 개인은 그들의 이념에 당연히 다소곳이 수렴하여야 했다. 
하지만 이 지점이 경제적으로 사회의 발전을 통한 국가를 탓하려는 목적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보이지 않은 수많은 혜택의 수혜자로 더할 나위 없는 풍요와 윤택한 삶의 기반 위에 마련된 국가의 국민을 나는 부정할 길이 없다. 다만 발전의 이면에 가려진 그림자가 이렇게 까지 외면받고, 발전속도에 맹목적으로 열중한 나머지 지나쳐버렸던 배제된 존재가 무엇이었는지 지금에서야 우리는 묻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개인적으로도 지독하게 이어진 사회의 룰 안에서 버려진 것 같은 지쳐버린 번아웃으로 자가 진단하지 않으면 멈출 길이 없어 보였던 스스로에 대한 보상이기도 했다. 고객이 소비자가 되어 자신을 찾는 역할에 심취해 있을 때 기업은 이에 호응하듯 재화를 넘쳐나게 제공하고 금융은 그칠 길 없는 욕망의 한계를 제한하지 않음으로써 막연한 개인의 이상을 차가운 순간의 만족으로만 대신했다. 편의의 끝을 달리려는 개인의 욕망에 대한 만족감은 무한한 욕심의 사회에서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역설적이게도 이곳에 살아남아 독립적으로 나를 돌아보고 우리의 가치를 지켜보려는 노력이 조금이라도 쓸모없어 보이지 않기 위해 나는 불편한 마음으로 오늘의 편의를 무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게 근시사회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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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 스웨덴 - 완벽하지 않지만 적당히 행복한 스웨덴 생활기
이성원.조수영 지음 / 지콜론북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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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으로 이 책은 몇 가지 지점에서 정말 큰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지는 않은 가했다. 복지국가의 낙원이라는 변함없는 북유럽에 대한 환상을 고리타분하게나마 다시 한번 열거하는 이 책은 그 자체로서도 큰 의의를 가져야 했기에 그에 반하는 단점과 부정적인 면은 철저하게 뒤로 밀어냈다. 작가의 선별에 의하여 책의 구성은 물론 편향된 방향으로 편집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마치 국가 전체를 아우르는 것처럼 거시적인 관점을 취하면서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다는 착각을 조금도 비이상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와 같은 토대에서 이들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작가 부부는 결혼을 하자마자 아내의 대학원진학을 위해 함께 스웨덴으로 2년간 거주지를 옮겼다. 신혼이라는 낭만과 복지국가의 스웨덴은 격정적인 판타지를 꿈꾸는 삭막한 한국사회의 대척점에 놓여 책의 시작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관심을 주기에 충분한 요소를 다 갖춘 듯 보인다. 누구나 꿈꿔왔을 법한 외국에서의 삶은 여행기에서 비롯된 가벼운 호기와는 전혀 다르지 않든가? 하지만, 이 책은 2018년에 발행되어 그 이후에 발생한 지금까지의 스웨덴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당연히 책은 과거 기록에 그쳐있고 때문에 독자가 읽고 있는 동시대의 현실을 반영하기 바라는 건 큰 오류이다. 때문에 나는 시간적인 오차에서 기인한 차이로 다소 누락된 정보의 편협성에 작가의 코멘트를 관대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미 2018년 저자가 학생신분으로 거주했던 스웨덴의 남부 ‘말뫼’에서도 경쟁 폭력 조직 간 총기사건이 일어났으며, WSJ는 이미 스웨덴을 ‘총기 살인율 영국의 30배’가 일어난 국가로 보며, 이민자 통합이 실패한 정책으로의  스웨덴 모습을 인식하고 있었다. 작가 부부가 만난 그들의 좁은 세계에서 같이 수업을 듣고 친하게 지낸 이민자들은 매우 극소수에 불과하고, 때문에 스웨덴 사회는 이민지 유입과 낮은 검거율로 인해 살인사고가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단한 뉴스검색만으로도 우리는 알 수가 있다는 사실을 누락하며 그들이 경험한 가상의 아름다운 일상에만 집중하도록 했다. 이 책은 적어도 그들이 미디어와 이상화된 관점을 통해 스스로가 주입한 북유럽식 복지국가에 대한 환상을 되새김질하여, 그들만의 작은 경험을 통해 개체화된 사실상의 환상을 사실로 간주하는 판타지를 열거한 경험에 지나지 않음을 스스로가 시인한 것은 아닐까. 
중고거래와, 채식은 어떠한가?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개인적인 활동을 1등 시민이 취하는 당연한 자세로 바라보는 관점은 작가 스스로 강요처럼 비칠까 조심하게 된다고 언급하였지만, 그 자체로 너와 나를 구분 짓는 경계선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은 느끼지 못했나 보다. 구태여 ‘라곰’이라는 스웨덴의 문화 방식을 소개하며 스웨덴인은 한쪽으로 치우쳐지지 않은 적당한 상태를 추구한다면서도 작가 스스로가 편향된 가치에 목적을 둔 의견을 피력하는 의도는 모순이다. 대표적인 스웨덴 기업인 ‘이케아’를 예시로 들며 스웨덴의 정신이 깃든 독립적인 개인을 찬양하고 있지만, 사실상 스웨덴은 1984년 기업에 강제적으로 종업원 펀드를 만들고, 이 펀드로 주식을 구입한 노조가 기업을 통제하게 하며 노동자에 의한 기업지배 같은 사회주의 정책을 펼쳐왔다. 때문에 대표적인 이케아와 H&M, 코로나19 백신으로 알려진 ‘아스트라제네카와 같은 스웨덴 기업들이 상속세 70%라는 무시무시한 부담으로 자국을 탈출하는 많은 기업이탈로 스웨덴은 경제위기를 겪고 나서야 2005년 상속세를 폐지한 이력이 있다. 다만 이 책에 담긴 스웨덴 기업의 아름다운 이미지는 브랜드로만 남긴 채 다른 나라로 국적을 이동한 아이러니한 상황을 외면하며 부정적인 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는다. 

아마 결혼하자마자 떠난 스웨덴에 대한 환상과 기록으로서 작가는 2년이라는 거주지로, 혹은 짧은 여행지로서는 긴 여행이었을 스웨덴이라는 국가를 아름다운 모습으로만 바라보고 싶어 했는지 모른다. 이런 미담 같은 색안경이 모여 또 다른 스테레오타입의 관점을 더욱더 확고히 하고 사람들에게 반응시키는다는 점이 과연 작가가 그렇게나 제창했던 스웨덴의 다양성과 과연 부합하는 것인지 씁쓸한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감각적인 사진 몇 장과 그들이 경험한 몇 가지의 스웨덴 겉핥기로 독자들이 스스럼없이 감화될 것이라 기대했을까. 반문할 수도 있다. 지구상에 미화되며 아름답게 존재해야 할 그런 환상적인 나라 한 곳은 있어야 이 세상을 살아갈 막연한 의의는 있지 않겠는가? 작가 부부는 답 없는 한국현실의 막막한 답답함에 지쳐있는 국내 대중을 향해 막연한 기대치에 부합하려 애써 노력했는지 모른다. 노력이 가상하다는 것은 알겠다. 다만 진짜 현실을 그려낸 듯이 오해를 살 수 있는 가장으로 본질을 위협하지는 않았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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